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장하연, 「첫사랑은 안름다워서」(2020-1학기 <웹소설창작과비평>)
등록일
2020-07-10
작성자
국어국문학과
조회수
976


 

 

 

1. 미련한 미련

 

*****

 

야 너 그거 들었냐?”

?”

최재윤 이혼했데.”

 

.

 

아 씨. !”

 

수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뿜어버렸다.


아 미안 미안. 뭐라고? 이혼?”

그니까! 여자가 바람났다나 뭐라나. 애는 뭔 죄야.”

미쳤네. 애 딸린 여자가 바람이 나?”

그러니까. 꽤 됐다던데? 4년인가..”

하여튼 최재윤. 얼굴보고 결혼할 때부터 알아봤어. ? 우리 지서랑 그 때 결혼했어야 되는데.”

 

나는 나의 머리에 묵직한 돌을 맞은 듯 한 느낌이 들며, 앞에서 조잘대는 수현이와 혜주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야 그 얘긴 하지말지?”

왜 뭐 어때서~ 우리 지서, 재윤이 잊은 지 오래됐잖아. 글치 않아?”

맞다 그리고 혜주야. 희주 있잖아. 그 학교 다닐 때부터 지랄하던…….”

아 ㅋㅋㅋㅋㅋ미친 개웃기다. 그치 지서?”

. 듣고 있냐? 듣고 있냐고!!!!!!”

아 미안. 야 나 먼저 갈게.”

? ? ! !!!!!!!!!!!!!!!!”

 

이건 무슨 기분이지. 용기가 없어 결혼식에는 가지 못했던 나는 이듬해 재윤이 아가의 돌잔치도 다녀왔기에, 행복해 보이는 세 가족의 모습을 보며 이제 내가 낄 자리는 확실히 없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고, 행복한 재윤이의 모습을 보며 나까지 행복해졌었는데. 재윤이의 모습을 보았을 때 슬프다라는 감정이 처음으로 나의 뇌리에 스치지 조차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나는 재윤이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내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았다.

 

*****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침대에 누워 조금은 누렇게 바랜 천장을 바라보며 눈도 감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깨톡

 

수댕이 야 너 괜찮냐?’

 

그래 깨톡. 깨톡 알림음이 들리자마자 나는 재윤이에게 깨톡으로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수현이의 톡에 답장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재윤이와의 11 대화방에 들어갔다.

 

그래 잘 지내

 

내가 마지막에 보낸 깨톡에 1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혼했어?’ ‘재윤아 소식 들었어.’ 등의 터무니없는 말들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에라이 이지서. 보낼 용기도 없으면서. 나는 침대 한 켠에 휴대폰을 던져버린 후 그대로 눈을 감았다.

 

*****

 

왈왈! ! 왈왈왈! ’

 

..여보세요?”

!!!!!!!!!!이지서!!!!!!!!!!’

아 시끄러..”

그렇게 가버리고 쳐 자냐?’

..”

!!!!우리 왜 만났는데!!!’

우리.....? 지금 몇 시냐?”

“7시다 이년아 빨리 나와.”

미친. 금방 갈게.”

 

. 맞다 오늘 동창회 때문에 미리 만났었지. 이지서 생각 없는 년.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대충 다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

 

쐬주 한 잔포차

 

띠링

 

어서오세요! 손님 몇 분이세요?”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친절한 알바생이 나를 반겨주었다.

 

예약했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인설고 동창-”

지서! 여기!”

 

두리번대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수현의 부름에 곧장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 저 자리시구나! 세팅 하나 더 해드릴게요ㅎㅎ

 

열댓 명 정도 있는 우리의 자리에는 몰라보게 달라진 여자애들과 차키를 빈츠라는 브랜드 마크가 보이게끔 상 위에 올려놓은, 고등학교 때부터 유별났던 남자애, 그 때부터 사귀어서 애까지 데리고 나온 우리 반 대표커플 등이 있었다.

 

와 이지서 개 오래간만 이네. 잘 지냈냐?”

그러게 진짜 간만이다. 너네는 갈수록 예뻐진다?”

오자마자 여자어 남발이냐?”

아니 ㅋㅋㅋㅋㅋ그런거 아니구ㅜㅜ

너는 회사 취직했어?”

남자친구는 있고?”

 

사회의 때가 묻지 않았던 그 시절 순수한 대화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졸업 후 10년이 지난 지금. 소위 왕따라고 할 수 있었던 우리 반 최고의 소심이는 영업사원이 되어 우리에게도 본인 회사의 물건을 영업하고 있었고, 일명 일진이었던 우리학교 퀸카는 음주 뺑소니로 사람을 치고 벌금 낼 돈이 없어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들 많이 변했네. 나는 대학 졸업 후 여태 무엇을 하고 살았나. 혼자 생각에 잠겨있을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순간 경직되어버린 나의 얼굴과 몸.

 

야 최재윤! 왜 이렇게 늦었냐!”

아 나 일 끝나고 오느냐고. 회사가 안양이라

 

회사가 안양이었구나.’

 

자자!! 그럼 우리 인설고등학교 3학년 9! 다 모인 것 같으니 지방방송 끄고 건배부터 하자구~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위하여!”

 

*****

 

반장의 건배사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술자리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나이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이 아닌, 졸업 이후 10년간 서로가 살아왔던 인생을 나누며 진행되었다.

 

지써ㅇ야ㅏ아. 너뉸 왜 안치해ᄊᅠᆼ?”

? 아 나도 취했어. ㅎㅎ 얘들아 나 담배 한 대 피고 올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자신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고등학생들이 담배 피는 것을 보면 쫄지 않고 혼낸다는 둥. 남자친구가 바람났지만 어차피 그 남자는 가지고 놀던 남자여서 상관없다는 둥. 결국 본인들의 자랑거리, 어쩌면 과장된, 지어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파티였다. 나는 가게 밖으로 나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들을 보며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너도 재미없냐?”

? 아 아니야 ㅎㅎ

 

얜 또 언제 따라 나왔냐.

 

담배.. 아직도 피네.”

? . ..”

미안하다.”

 

미안한건 아냐? 쌍놈아?’

 

? 아니야! 내가 못 끊은 건데. .”

조심히 먹고 들어가.”

왜 신경 쓰는데?”

?”

 

이제 와서 나를 신경써주는 듯한, 챙겨주는 척 하는 재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다. 많이 당황한 모습의 재윤을 보고 곧바로 후회하긴 했지만.

 

아니다. 너도 조심히 먹고 들어가.”

나 이혼했어.”

 

담배를 던지고 뒤돌아 들어가려는 나의 등에 대고 재윤이가 갑작스레 본인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멈춰버린 나의 전신.

 

혹시 알고 있었어?”

대답을 하지도, 말하고 있는 본인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런 나의 뒷통수에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는 최재윤.

 

그냥. 안 맞았어. 어느 날 내가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때 식탁에 쪽지 한 장만 남아있더라고. 친정에 올라간다고. 애기도 같이 갔더라.”

 

도대체 왜? 이런 말들을 나한테 왜 하는 건데?’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어머니가 전화하셨어. 이미 우리 집까지 가서 애 못 키우겠다고, 남편 뒤치다꺼리 더 이상 하기 싫다고 말하고 친정으로 가버렸데. 애기도 데리고 가려는 거 우리 어머니가 못 데려가게 잡아놔서 일단 애기는 서울 집에 있다고.”

 

횡설수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재윤이를 보며 술기운 때문인지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 진짜 어이없다. 뭐 동정심이라도 유발하게 하려고?”

?”

왜 나한테 이런 얘기 하는 건데? 애까지 거론하면서? 내가 매달렸을 때, 그 여자한테 떠난 건 너였어.”

지서야.”

그 때 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넌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청첩장이나 날리더라. 니 아들? 돌잔치도 오라고 초대하고. 이제는 이혼 했다고 뻔뻔하게 다시 만나자 이딴 소리 해볼라고?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나 너랑 이런 얘기하려고 이 자리 나온 거 아니야. 동창회야 여기. 너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착각 하지 마. 나 예전의 이지서 아니니까.”

 

*****

 

추적추적 내리던 빗방울은 어느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리기 시작하였고, 나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띠띠띠띠

 

집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한 나는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오랜만에 공들여 한 색조화장을 지웠다. 최악의 동창회. 나는 절대 다시는 인설고 동창회에 참여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

 

빌어먹을. 눈을 뜨자마자 생각나는 게 왜 어제의 최재윤일까.

 

아 오늘 토요일이구나.’

 

깨깨오톡 (32)’

부재중 전화 6

 

일어나자마자부터 확인한 휴대폰 기록은 곧바로 나에게, 다시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놓게 만들었다.

 

청소나 하자.’

 

생각이 많을 때엔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려고 마음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책꽂이에 쌓인 먼지들과 피아노 위에 쌓인 먼지들을 닦았다. 그 때 울리는 나의 전화기.

 

왈왈! ! 왈왈왈! ’

혜주놈

 

어 혜주야.”

야 너 어제 대체 언제 집 갔냐.’

아 나 담배피고 바로 집 갔지.”

애들이 너랑 최재윤 쌍으로 없어졌다고 아주 찾고 난리도 아니었어!’

 

최재윤도 나와 대화를 끝마치고 인사 없이 집으로 갔나보다.

 

그랬냐. 말도 없이 가서 미안하다.”

일단 나와. 밥이나 먹으면서 어제 못 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해보게~.’

알았다. 나가면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을 나섰다.

 

*****

 

뚜루루루루루~’

 

예쓰. 지써!’

나 나옴. 어디로 갈까.”

김천 김천~’

오키

 

혜주와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집 앞의 김밥천국으로 향했다.

 

*****

 

띠링

 

지서! 여기!”

아 씨발.”

 

혜주의 옆에는 수현이가, 그리고 그 앞자리에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재윤이가 앉아있었다. 재윤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욕만 작게 읊조린 채 가게 밖으로 나왔다.

 

지서야.”

 

조용히 뒤따라 나와 낮은 음성으로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왔어. 한 번만 얘기하자.”

 

나는 등을 돌려 최재윤의 눈을 응시한 채로 말했다.

 

어제 그 정도 말로는 못 알아들은 거야? 나 이제 좀 잘 살아보려 해. ? 좋았지. 많이 좋아했지. 근데 그거 다 과거잖아. 그냥 길가다 마주치면 인사나 하는. 그런 사이로 지내자.”

지서야 근데 나는-”

 

무언가 슬픈 눈을 하고 나에게 말하려는 최재윤의 말을 끊고 나는 말했다.

 

야 최재윤. 얼마나 더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하는 거야? 너 좋아했던 만큼, 난 상처 많이 입었고. 여태 다른 남자도 못 만났어. 아니 안 만났어. 너가 자꾸 생각나서. 그리고 너와의 추억은 그냥 너와의 추억만으로 남기고 싶었으니까. 너는 그냥 그 자체로 나의 기억 속에 남겨놓고 싶었으니까! 그렇다고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개소리는 아냐. 이런 말 자꾸 할 거면 다신 보지 말자.”

 

병신. 바보같이. 차오르는 눈물이 눈에 꽉 찬 채 눈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기 직전 나는 재윤이 에게서 등을 돌려 내가 먼저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그 때 나의 손목을 잡고, 가는 날 붙잡는 재윤이.

 

보고 싶었어.”

 

변명할 줄 알았다. 횡설수설.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을 쳐 가며. 어떤 변명을 하던지, 어떤 말을 꺼내던지 나는 이 손을 뿌리치고 갈 것이라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떤 변명보다도, 길고 긴 말들보다도 재윤이가 말한 다섯 글자의 위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지서야.”

 

다시 한 번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는 재윤이.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뒤 돈 채로 대답도, 손을 뿌리치지도 못한 상태로 바닥만 보고 있었다.

 

내 얘기.. 한 번 들어줄래?”

 

 

2. 그 땐 어렸어

 

*****

 

내 얘기.. 한 번 들어줄래?”

 

재윤이의 말을 들은 나는 등을 돌려 재윤이의 눈을, 아니 정확히는 재윤이의 미간을 보며 말했다.

 

아니. 들을 필요도, 이유도 없을 것 같아.”

...?”

또 아프기 싫어,”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곧바로 집으로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흔들릴까봐. 재윤이의 말을 들으면 내가 또 다시 바보가 되고, 또 다시 상처받을까봐. 도망쳐버렸다.

 

*****

 

집에 도착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예쁜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나의 첫사랑. 이번 생의 마지막 여자를 만나 결혼이라는 사랑의 종착점,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새 출발을 했던 그가 마침내 긴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다시 나에게 들어오려 한다. 하지만 나는 거부했다. 아니 거부해야한다. 많이 아팠기에.

 

왈왈! ! 왈왈왈!’

혜주놈

왈왈! ! 왈왈왈!’

수댕이

깨톡

 

이후로 나의 휴대폰은 수현이와 혜주의 전화와 깨톡으로 사정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괜히 괘씸한 마음이 들어 휴대폰을 꺼놓은 채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생각을 비우기 위해 청소를 마무리 했다.

 

*****

 

지난 금요일의 지옥 같았던 동창회, 신나는 토요일 아침부터 나의 기분을 잡치게 만든 사람 때문에 나의 주말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월요일 아침인 지금, 이번 주는 저번 주와 반드시 다르리라 다짐하며 올라오지도 않는 텐션을 억지로 끌어올린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계란프라이 하나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백수인 나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왈왈! ! 왈왈왈!’

엄마

 

어 엄마.”

그래. 뭐하니?’

방금 밥 먹었지.”

요새 별 일은 없고?’

백수가 무슨 일이 있을 리가 있나 ㅎㅎ

오늘 약속 있어?’

아니 딱히. ?”

오랜만에 딸래미랑 데이트할라했지.’

나야 좋지. 챙기고 집으로 갈게.”

 

낮은 목소리의 엄마가 낯설었다. 나에게 항상 상냥하던 우리엄마. 엄마가 먼저 이렇게 연락을 하실 분이 아닌데, 내가 요새 엄마한테 소홀했었나. 아니라면 혹시 아빠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엄마 집으로 향했다.

 

*****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집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띠띠띠띠

 

엄마 나 왔어요!”

그래 왔어?”

 

평소에 엄마의 다정함이 아니었다. 약간은 지친 듯한. 아빠의 건강이 정말로 악화된 것인가 걱정만이 앞섰다.

 

응 ㅎㅎ 아 뭐야아. 엄마!”

? .”

데이트 가자며! 얼른 옷 갈아입어요.”

 

엄마의 평소와는 다른 기분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 엄마가 평소에 아껴놓고 좋아하시던 꽃무늬 원피스로 갈아입게 했다.

 

아유 남사시려워.”

! 이쁘기만 하구만. 나가요!! ㅎㅎ

 

*****

 

커피오브사운드

엄마 아메리카노 따뜻한거요?”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랑 따뜻한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 음료 나오면 진동벨로 알려드릴게요.”

 

우리는 진동 벨을 받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창가자리에 앉았다.

 

아빠는 요즘 몸 좀 괜찮아?”

한결같지 뭐.. 의사가 준비하라고 하더라.”

.. 얼른 한 번 찾아뵈어야겠다..”

지서야.”

?”

 

지이이이잉

 

또 한 번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위기를 조성하며 나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때마침 음료가 완성되었다는 진동벨이 울려 음료를 가져오는 동안 엄마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엄마가 어떤 얘기를 할지 두려워졌다.

 

지서야 너는 내 딸이야.”

엄마 갑자기 왜 그래! 당연히 난 엄마 딸이고 엄마는 내 엄마죠 ㅎㅎ

가슴으로 낳은 딸.”

 

요즘 나한테 다들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근데 나는 한 번도 지서가 내 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네 아빠를 사랑했던 만큼 너도 많이 사랑했으니까. 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고 있으니까.”

엄마..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많이 당황스러울 것도 알고, 많이 미울 것도 알고, 많이 아플 것도 알지만, 네 아빠의 소원이셨어. 내가 직접 너에게 말 해주는 거. 하지만 나는 그동안 용기가 너무 없었던 거 같아. 혹시나 우리 지서가 날 떠나고 원망하고 미워할까봐. 이번에, 그리고 지금. 우리 지서 믿고 용기 내 봤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지서야.”

 

눈물은 나지 않았다. 27년 동안 인생 살면서 한 번도 의심조차 할 수 없게 잘 키워주신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껴야할지, 거짓말을 해 오신 아빠에게 미움을 느껴야할지, 어딘가에 살아있는 또는 죽었을지도 모를 나를 낳아준 분에 대한 원망을 느껴야할지를 몰랐다.

 

..엄마.”

그래 지서야..”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는 후련함 때문인지,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나는.. 나는 괜찮아요. 엄마, 울지마.. 엄마가 이지서 엄마 아니면 누구 엄마야 ㅎㅎ

 

내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안도감이 드셨는지, 27년간 숨겨왔던 진실을 나에게 말해준 엄마는 가슴 한켠에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셨던 것인지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치며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소리내어 펑펑 울기 시작하셨다.

 

엄마! 울지말구 ㅎㅎ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 데려다줄게 가서 쉬어요.”

 

엄마의 눈물은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엄마를 집에 모셔다드리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 차 안의 엄마는 희미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운전하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서야.”

응 엄마?”

아유. 어쩜 이런 복덩이가 나한테 왔을까.”

 

엄마는 나의 머리와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미안해 고마워 라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

 

엄마! 조심히 들어가요!”

아 지서야 잠깐 올라갔다가 가.”

? ?”

지서 줄게 있어.”

알겠어요!”

 

엄마 집 앞에 도착한 후 엄마를 내려드리고 출발하려하는데 집에 잠깐 올라갔다가 가라는 엄마의 말에 나도 같이 엄마 집으로 향했다.

 

*****

 

헤엑. 뭐가 이렇게 많아!!”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는 냉장고 문을 열고 황금색 보자기에 잔뜩 싸여있는 무언가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보자기를 열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미역줄기, 메추리알 장조림, 깻잎 장아찌, 배추김치, 오이지 등의 반찬들이 있었다.

 

지서 밥도 잘 못 챙겨 먹을거 아냐..”

아유 그래도 엄마아~ 나 혼자 살잖아, 너무 많다. 좀 덜어서 가져갈게요.”

아니야! 너 주려고 만든거라 너 아니면 줄 사람도 먹을 사람도 없어. 후딱 갖고 얼른 가. 피곤하겠다.”

하여튼 우리 엄마 손 큰 건 알아줘야한다니까? 알았어. 엄마. 나 이제 들어갈게요. 푹 쉬어~”

 

무거운 황금색 보자기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탄 후 거울에 비친 나의 입가에도 희미한 행복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

 

엄마 맛있는 밥 한 끼 사드리려고 나갔는데.’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세탁기에 넣기 전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한우식당한우 꽃등심 1인분 공짜 쿠폰이 들어있었다.

 

밥이나 먹어야지.’

 

엄마 반찬을 받은 김에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집밥을 먹겠구나 싶어 밥을 차렸다.

이게 얼마만의 진수성찬인지. 밥을 먹다가 엄마가 내 생각을 하며 이 많은 반찬을 만드셨을 생각에 울컥했다. ‘아차싶어서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엄마에게 밥을 차려놓은 사진을 보내드렸다.

 

*****

 

오랜만에 든든한 한 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잠깐 소화라도 시킬 겸 간단한 운동복 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다.

 

이태리 음악학원

피아노 선생님 구함

 

? 여기 피아노 학원이 있었나?’

 

집 근처 아파트 상가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 모집 공고를 발견했고, 고민을 하다 휴대폰의 은행 어플ㅂ 들어가 보니 차츰 바닥을 들어내는 나의 잔고를 보며 조심스레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안녕 하세요!”

네 안녕하- ? 지서야!”

 

학원 가운데에 있는 원탁 책상에 앉아 아이들 이론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던 선생님은 뒤를 돌아 내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 !!!“

어 지서!”

쌤 여기로 이사 오신거에요? 저도 이 근처 사는데!”

아 그래? 나 이 동네로 왔지. 지서 동네인지는 몰랐네. 이제 학원 문 열었어 ㅎㅎ

 

알고 보니 그 피아노 학원의 원장님께서는 전에 나와 같은 학원에서 일했던 선생님이셨다.

 

결혼하고 이사 가신다고 학원 새로 여신다더니 여기에 여셨구나..’

 

~ 이제 원장님이네요? ㅎㅎ

에이 그냥 쌤이라고 불러~ 근데 웬일이야?”

..저 집 앞 산책하다가 피아노 선생님 구하신다고 하시 길래 들어와 봤어요..”

모차트르는 그만 뒀어?”

.. 당연하죠! ”

그러게.. 지서가 우리 학원 와 주면 너무 좋지!! 믿음직하구ㅜㅜ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

? 갑자기요?”

일하고 싶어서 왔다며! 지서 볼게 뭐있어 바로 합격~”

좋게 봐주셔서 감사 합니다 ㅜㅜ 전 언제든 가능해요!”

그럼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가능해?”

!”

좋아.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하구 음.. 주중에 저녁이나 한 끼 할래? 아이들 특징도 알려줄겸.”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ㅎㅎ

번호 안 바뀌었지? 연락 줄게~”

네 저녁 먹을 때 봬요~!”

 

내 인맥이 쓸모 있을 때도 있구나~’

 

운 좋게도 나의 일자리는 일사천리로 구해졌고, , 아니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

 

집에 들어온 나는 아침에 먹었던 식기를 설거지하고 간단하게 집 정리를 한 뒤, 원장님께 받은 피아노 교재를 펼쳐보며 피아노 연습도 하고, 책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잠을 청했다.

 

*****

 

왈왈왈! 왈왈! !!”

‘010-5864-****

 

모르는 번혼데, 누구지?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을 의아해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지서야.’

 

수화기 속에서는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3. 너의 1순위

 

*****

 

왈왈왈! 왈왈! !!”

‘010-5864-****

 

모르는 번혼데, 누구지?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을 의아해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지서야.’

 

수화기 속에서는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원장님!”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

두말하면 잔소리죠 ㅎㅎ

그럼 오늘 8시까지 창덕궁 한우로 와!’

네 알겠습니다!”

 

바로 약속이 잡혔네.’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려 했던 나의 계획은 무참히 실패했다.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며 6시부터 준비를 시작하리라 다짐하고 몸을 일으켰다.

 

청소나 해야지

 

일주일 남짓 하지 않은 화장실 청소, 베란다 청소를 하며 잡 생각들을 떨쳐버렸다.

 

맞다 오늘 분리수거 하는 날이지.’

 

청소를 하다 나온 쓰레기들을 현관 앞에 모아두고, 청소를 마무리한 뒤 나는 자고 일어난 그 상태 그대로 삼선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아빠, 이거는 비닐이야?”

.”

아이고 하준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분리수거장에는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모여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분리수거를 하러 나온 건지 노가리를 까러 나온 건지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다. 이런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의 분위기를 망각하고 씻지도 않은 채 나온 내 자신이 바보 같다고 잠시 느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뭐.’

 

나는 혼자 분리수거를 다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 본 순간, 나의 몸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그와 마주친 내 두 눈. 당황했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며 곧바로 나의 눈은 집으로 가는 길 정면만 바라본 채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집으로 향했다.

그를 지나칠 때 나의 시야로 보이는 나를 향한 그의 시선.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다가 그에게서 내가 보이지 않을 때 쯤 집으로 냅다 달렸다.

집에 돌아와 문을 닫고 나서야 나는 달리기를 멈춘 채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최재윤이 여기 왜 있어?’

 

분리수거장은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아파트 입주민이 아니라면 절대 갈 필요도, 갈 이유도 없는 곳이기에 나는 불길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지난주의 동창회 일은 7년 만에 일어난 해프닝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최재윤에 대한 생각은 떨쳐버리려 노력했던 나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주쳐버렸다 또.

책을 읽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온갖 다른 일을 해 보아도 최재윤. 이 이름 세 글자와 그의 얼굴 눈, , 입 하나하나가 나의 뇌 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간은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나는 옷 방에 들어가서 검정색 슬랙스 바지와 박시한 흰 티를 골라 화장실로 향했다.

 

*****

 

창덕궁 한우

왈왈왈! 왈왈! !!”

원장님

 

네 원장님! 저 지금 차 대고 있어요. ㅎㅎ

원장님은 무슨 ㅎㅎ 차 대고 들어와서 진율희라고 말하면 안내해줄 거야!’

ㅎㅎ네 알겠어요! 금방 들어갈게요.”

 

*****

 

띠링

 

어서 오세요! 일행 분 있으신가요?”

네 진율희요.”

이 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백합룸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어 지서! 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막 물티슈로 손을 닦고 있는 원장님이 있었다.

 

일찍 퇴근 하셨나 봐요. 원장님!”

. 아니 넌 어떻게 원장님이라는 말이 벌써 입에 붙었냐?”

ㅋㅋㅋㅋ쌤!”

어우 야 그래. 난 그 말이 제일 듣기 편하다. 둘이 있을 때 만이라도 ㅜㅜ 뭐 먹을래?”

ㅎㅎ네. 저 여긴 처음 와봐서요! 드시고 싶으신 거 뭐든 괜찮습니다.”

아 그래?”

 

띵동

 

네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여기 꽃등심 3인분이랑. 지서 밥 먹을래?”

!”

꽃등심 3인분이랑 공깃밥 두 개 주세요.”

네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직원이 구워주는 고기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서. 일은 얼마나 쉰 거야?”

아 저 한 3개월 정도? 쉰 것 같아요.”

? 그리 오래 안됐네?”

네 ㅎㅎ 쌤 나가고 한동안 아이들 때문에 버티다가 수연이 수시 합격하고 나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나왔어요. ㅜㅜ

어머 수연이 수시 합격했어? 축하한다고 한 번 연락해야겠다. 하긴 그 원장이 워낙 유별났지 돈만 밝히고.”

그쵸 ㅋㅋㅋㅋ

 

오랜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할 것 없이 전 학원 원장을 까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역시 뒷담화는 최고의 안주인가.’

 

식사가 마무리 되어갈 때쯤 원장님은 조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전에 우리 학원에서 일하던 친구가 나 몰래 피아노 전공생들한테 우리 학원 그랜드 피아노 연습실을 빌려준 거 있지? 그래서 거기도 이제 CCTV를 달았어.. 이제 6사람을 또 어떻게 뽑아야 하나 막막했는데 너가 와줘서 난 너무 좋아 ㅜㅜㅜ 진짜 힘들었다.”

와 진짜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 맞다. 내가 어제 너 가고 너 담당으로 맡을 친구들 추려봤거든?”

헐 벌써요?”

 

여전히 부지런하시구나.’

 

ㅋㅋㅋ응. 일단 세 명정도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한 명은 지유라고 18. 얘가 진짜 천재야. 한예종 보내볼라고.”

한예종이요?!”

. 레슨은 내가 하고 연습실 빌려서 거의 하루 종일 우리 학원에서 연습하는데 중간 중간 소리 듣고 피드백 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너가 레슨 해줬으면 줗겠어. 여러 사람의 귀로 들어보는 것도 좋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 너 편한 요일에 2시간!”

전공생 안 가르쳐 본지 오래됐는데 오늘 집에가면 피아노 연습부터 다시 시작 해야겠네요ㅋㅋㅋ

그럼! 지유 일단 입시곡은 쇼팽 혁명하고 베토벤 발트슈타인이야. 그리고 로희. 얘는 7살인데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어머님이 피아노 시키시는 거거든? 지루해하지 않게 로희가 아는 노래 같은 걸로 많이 칠 수 있게 해주고 노래 같이 부르는 것도 좋아! .. 모차르트의 윤수라고 생각하면 돼.”

아 ㅋㅋㅋㅋ 윤수 되게 오랜만이네요.”

ㅋㅋㅋ그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준이. 이 친구는 엄마가 없어.”

?”

엄마랑 아빠랑 이혼했다나봐.”

...”

그래서 이준이 앞에서는 절대 엄마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안 돼. 그 부분 말고는 잘 따라오는 친구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

꼭 명심할게요!”

*****

 

밥을 다 먹고 내가 맡을 아이들에 대한 주의 사항도 들은 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려다줘서 고맙다 야.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 다른 아이들 건 몰라도 지유 곡은 초견이라도 보고 와줘.”

네 알겠습니당 ㅎㅎ

 

나는 쌤을 데려다드리고 나도 집으로 향했다.

*****

 

일주일 후

 

안녕하세요!”

어 지서 왔어? 여기 앉아서 편하게 수업 준비 하면 돼 ㅎㅎ

!ㅎㅎ

맞다. 오늘 지유는 나랑 레슨이고. 로희는 가족여행가서 안 온데! 이준이는 3시쯤 올 거야. 이준이 오기 전이나 가고 나서는 아이들 이론 공부 봐줘!”

네 알겠습니다. ㅎㅎ

 

*****

 

띠링

안녕하세요.”

이준이 안녕!”

아 너가 이준이구나 ㅎㅎ

이준아 인사해! 앞으로 너 피아노 공부 시켜주실 이지서 선생님이야.”

 

이준이라는 아이는 원장님의 말에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자신의 유치원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피아노 연습실로 들어가 버렸다.

 

친해지기 진짜 힘들겠구나..’

 

나는 이준이가 들어간 연습실을 따라 들어갔다.

 

이준아! 안녕? ㅎㅎ

 

나는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이준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때 연습실 방 문을 나서는 이준이.

 

선생님. 저 오늘 하농이랑 체르니에요?”

!”

 

이준이는 학원 가운데에 있는 원탁테이블에서 다른 아이들 이론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는 원장쌤에게 자신이 오늘 해야 할 부분이 뭔지 물어봤다. 원장쌤의 대답을 들은 아이는 다시 연습실로 들어와서 책을 펼쳤다.

 

이준아! 이준이 몇 살이야?”

“7살이요.”

 

어떻게 7살 아이가 이렇게 무뚝뚝할 수 있는지. 아이의 상처가 너무나 큰 것은 아닌지 나는 이 아이와 반드시 친해지리라 다짐했다.

 

! 이준아 여기 같이 쳐볼까?”

우와~ 7살인데 벌써 체르니를 배워?!”

진짜 잘 친다~!”

 

역시 애기는 애기인지. 과장된 칭찬을 해줄 때마다 아이의 입 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친해질 수 있겠다 싶어진 나는 더욱 더 노력을 기울였다.

 

*****

 

출근한 지 1주일 째, 아이들을 만난 지도 벌써 1주일이 되었다. 좋아하는 과일은 딸기, 좋아하는 색은 주황색,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 이렇게 하루에 하나씩 틈이 보일 때마다 이준이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이제 조금씩 나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것 같은 이준이다. 이런 맛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나는 또 하나의 보람찬 추억을 만들었다.

 

*****

 

이제 한 달이 되었다. 이준이는 원장님께서 놀랄 정도로 나에게 마음을 열었고, 학원 안에서 나와 이준이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준이 왔구나. ㅎㅎ

선생님! 나 오늘은 유치원에서 이거 만들었어요!”

우와~ 이게 뭐야?”

가면이요! 선물이에요 히히.”

정말? 이준이 고마워 엉엉ㅜㅜㅜ

? 선생님 왜 울어요? 선물 줬는데!”

! 안 울지롱~”

 

나도 이준이가 오는 시간대가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이준이도 요즈음에는 학원 오는 시간만 기다려진다고 한다.

 

선생님! 나 오늘 생일 이래요!”

헤에! 진짜루? 선물 준비 못했는데 ㅜㅜ

괜찮아요! 그래서 아빠랑 꼬기 먹으러 가기로 했어요. 선생님도 같이 가면 좋겠다!”

ㅎㅎ아버님만 괜찮으시면 선생님은 환영이지~”

 

천진난만한 이준이를 볼 때마다 나까지 힐링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선생님! 나 쉬 마려워요!”

그럼 이준이 얼른 화장실 다녀오세요. ! 선생님도 같이 가야지ㅎㅎ

!”

 

띠링

 

이준이는 저기 남자 화장실 들어가서 쉬야하고 나와! 선생님은 여기 앞에 서 있을게.”

히히 네!”

화장실 앞의 복도에서 이준이를 기다리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곳에는 정장 차림의 최재윤이 서 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볼 새 없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내가 여기서 일하는 건 어떻게 알았데?’

 

나는 표정을 굳히고 최재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 뭐야? 나 여기서 일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 아니 난 그냥..”

그냥? 그냥 뭐. 너 나 따라다녔니?”

아니 난 그게 아니고..”

 

그 때 뒤에서 이준이가 뒤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

 

선생님!!”

 

 

 

 

 

 

 

 

 

 

 

 

 

 

 

 

4. 한번만 미안하다 해줘

 

*****

 

나는 표정을 굳히고 최재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 뭐야? 나 여기서 일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 아니 난 그냥..”

그냥? 그냥 뭐. 너 나 따라다녔니?”

아니 난 그게 아니고..”

 

그 때 뒤에서 이준이가 뒤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

 

선생님!!”

 

나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 뛰어오는 이준이를 최재윤이 안보이게 등지고 안아줬다.

 

.. .. 이준아.. 얼른 들어가자!”

 

나는 이준이의 손을 잡고 학원으로 들어가려했다.

 

선생님! 우리 아빠랑 친구에요?”

? 이준이 아버님은 만난 적이 없네?ㅎㅎ

난데.”

 

언제부터 뒤따라오고 있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해오는 그의 음성. 난데..? 난데!?!??!?

 

아빠!”

 

이준이는 또 한 번 소리치며 당황하며 서 있는 나를 돌아 지나치고 최재윤에게 달려가 안겼다.

 

아빠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직 달님 없는데 하늘에!”

아빠 오늘 회사가 일찍 끝났어. ㅎㅎ

그럼 돈 많이 벌었어?”

그러엄~ 우리 재윤이 꼬기 먹으러 가야지.”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던 최재윤의 다정한 목소리와 말투.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최재윤의 아들이 이준이였다니. 나는 충격에 빠져 몸이 굳어진 채 벙쪄 있었다.

 

꼬기 먹으러 갈 거야?”

!”

그러면은 선생님도 같이 가자!”

 

이준이의 갑작스런 발언에 나와 최재윤은 눈이 왕방울이 되어 이준이만을 바라봤다. 잠시 내 눈을 바라봤다 이내 다시 이준이에게 눈길을 돌리는 최재윤.

 

? 아빠 안 돼? 아빠 돈 많이 없어?”

? 아니 그게 아니고 이준아..”

 

이준이에게 정작 말은 하지 못한 채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최재윤. 정말 난감하다.

 

ㅠㅠㅠㅠㅠ안 돼?”

 

최재윤과 내가 대답을 미루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이준이는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아 이준아! 선생님도 같이 가자!”

 

대체 내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이준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나도 모르게 같이 밥을 먹으러가자고 말 해버렸다. 이지서 미친년.

 

*****

 

그렇게 원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최재윤과 나. 이준이는 삼겹살을 먹으러 고깃집에 도착했다. 걸어오는 동안 최재윤과 나 사이의 대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준이 위주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꼬기다 꼬기~ 꼬기~!”

이준이 꼬기가 그렇게 좋아?”

! 선생님. 아빠가 꼬기 먹으면 키도 쑥쑥 큰댔어요.”

ㅎㅎ맞아 꼬기 많이 먹어야 키 커!”

 

나는 천진난만한 이준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미소지으며 이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띠링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세 명이요.”

이 쪽으로 모시겠습니다~”

 

*****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는 채로 고기를 먹었다. 이제 드디어 식사 자리가 마무리 되어가는 듯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선생님! 아이스크림!”

 

맞다 아이스크림. 이준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너튜브 영상만 바라보고 있길래 밥 먹는동안 너튜브 안보고 아빠 말 잘 들으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약속했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야지. 이준이 선생님이랑 얼른 가자!”

오예~!”

 

*****

 

베로션라빈스31’

 

이준이 무슨 맛 먹을래? 딸기?”

딸기!”

 

역시나 딸기를 고른 이준이. 이준이의 취향을 알고 있는 내가 신기한지 최재윤은 나를 계속 주시했다.

 

*****

 

이준이 이제 집 가서 코 잘 시간~”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우리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준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오직 이준이에게만.

 

헤헤 선생님도 집 가면 코코넨네 해요!”

웅 우리 이준이 좋은 꿈 꿔~!”

 

이준이와 인사를 하고 나는 황급히 집으로 들어왔다.

 

이준이 아빠가 최재윤이라고?’

 

기분이 또 이상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아니 아니라고 하기에는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한 달 남짓 이준이와 함께한 시간들 속에서 봤던 아이는 상대방의 마음도 따뜻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이 아이의 아버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남자 혼자 이렇게 아이를 기를 수 있는지. 그런데 그게 최재윤 이였다니. 최재윤은 내 한 평생 원망하고 증오할 것이라 수없이 다짐했었다. 나에게 내 인생에서 그 보다도 더 클 수 없는 상처를 줬기에.

 

*****

 

7년 전.

 

재윤아~!”

안녕.”

뭐야아.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왜 이렇게 다운텐션 이실까?”

헤어지자 이지서.”

?”

갈게.”

 

그 때 나의 눈물에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떻게 그렇게 항상 사랑만을 외치던 나의 재윤이가 이렇게 한순간에 돌아버릴 수 있는지. 나의 첫 사랑이자 마지막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재윤이가. 나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 후로 수많은 날에 나는 취기를 빌려 재윤이에게 전화해 이유를 물어봤다. 사실 어떠한 이유도 변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미안하다, 한 마디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단 한 번만 더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했던,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재윤이를 믿어 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재윤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의 주정을 듣다 내가 울다 지쳐 잠이 들면 그 때서야 전화를 끊곤 했다.

그리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고 재윤이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날. 재윤이는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나와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의 전화기를 빌려 재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제서야 받았던 재윤이. 내가 왜 내 전화는 받지 않느냐며 화를 내던 찰나,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재윤이 오빠 여자 친구이고 저희 이제 다음 달이면 결혼하는데요. 이제 연락 좀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었다. 털끝만큼 가지고 있었던 나의 희망이 그 여자의 목소리 한 방으로 처참히 부서졌다. 그래. 최재윤. 너 그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사람 잘못 봤구나.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연애를 할 수 없었다. 7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저 첫사랑은 아픈 것이라며 단념했다.

 

*****

 

왈왈! ! 왈왈왈!”

‘010-6483-****“

 

좋은 기분인지, 나쁜 기분인지, 과거를 회상하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여보세요?”

난데. 지금 잠깐 나올 수 있어?’

 

또 다. 그 익숙한 목소리. 이젠 놀랍지도 않다.

 

.”

한 번만 나와 줘.’

어디로.”

‘204동 앞 놀이터

 

지난 번 동창회 때부터 할 말이 있다며 나를 계속해서 찾은 최재윤이기에, 문득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 번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최재윤에게 얘기했다.

 

지금 나가.”

 

*****

 

놀이터에 나가보니 이미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최재윤이 있었다.

 

왜 불렀어.”

나와 줬네.”

 

그런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제발.’

 

왜 불렀어.”

고마워 지서야. 그리고 미안해.”

 

정면만 주시하던 최재윤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7년 전 그토록 바라왔던 말. 그 말을 이 아이는 지금 내 앞에서 너무나도 쉽고 간결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우리 이준이. 밝은 아이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준 너에게 너무 고맙고, 항상 너로부터 도망만 쳐왔던 나라서 미안해.”

 

도망? 도망을 쳤다고?’

 

사실 7년 전 그 때 너에게 사실을 말하기엔 너의 반응이 어떨까 너무 두려웠어. 그 땐 너를 말로만 믿었었나봐. 혹시나 니가 소문을 낼까 하고. 나를 떠날까 하고. 그게 너무 두려웠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지나다보니, 니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며 수도 없이 많이 아프고 아팠어. 그리고 그게 더 날 두렵게 했어.”

?”

 

당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최재윤의 말에 나도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그런데 어렸던 나의 선택이 잘못된 거였더라고. 그냥 사실대로 말 했어야했어. 사실대로 말 하고, 올바르게 해결 했어야했어. 나의 마음이 가는대로. 더 이상 너에게 돌아와 달라 구차한 말은 하지 않을게. 그치만, 이제야 조금 생긴 용기로 말할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했고, 많이 보고 싶었고, 너무 미안했어.”

 

재윤이는 나의 눈을 응시하며 말하다가 마지막 말을 할 때 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그가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할 말 끝났으면 나 이제 들어갈게.”

잠깐만. 잠깐만 지서야.”

 

또 한 번 나를 붙잡는 재윤이. 그 때 날 이렇게 잡아줬더라면. 아니 내가 널 이렇게 붙잡았을 때 니가 조금만이라도 잡혀줬더라면. 그치만 나의 자존심은 나의 발걸음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이길 수 없었다. 또 잡혀버린 나.

 

.”

 

허탈하게 웃으며 이번엔 또 무슨 말을 듣고 내가 흔들리게 될까 생각했다.

 

그냥. 조금만. 같이 있어줘.”

 

그렇게 나는 다시 벤치에 앉았고,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그네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제 재윤이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지만 더 이상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더 생각했다간 흔들리다 못해 찾아가서 나도 미안했다고 해버릴 것 같아서. 이 찝찝한 기분을 어서 풀고 싶어 나는 오랜만에 아빠를 뵈러 가기로 했다.

 

*****

 

한국대병원 826

 

아빠!”

.....우리...따ㄹ...”

너무 오랜만에 왔지. 미안해요.”

....”

아빠 말 안해도 돼! 목 아프잖아 ㅎㅎ

 

난 그렇게 아빠의 병실에서 아빠의 말동무가 되어주며 내 속의 답답함, 찝찝함 등을 다 날려버렸다.

 

*****

 

아빠! 나 이제 갈게!”

............”

울지 말구! 앞으로 정말 자주 올게요 ㅎㅎ 맞다 엄마한테는 들었어! 아빠 소원 ㅎㅎ 그러니까 마음의 짐 다 내려놓고 편히 쉬어요. 나 간다? 안녕!”

 

*****

 

집 앞에 도착하니 웬 여자가 우리 집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누구세요?”

이지서씨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가차 없이 날라 오던 그녀의 손바닥. 꽤 매웠다.

 

너 이렇게 나한테 복수하니? 다 망가뜨려놓으니까 좋아!?”

저기요. 왜 이러시는 건데요. 누구세요.”

?”

 

 

 

 

 

5

 

 

*****

 

집 앞에 도착하니 웬 술 취한 여자가 우리 집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누구세요?”

이지서씨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가차 없이 날라 오던 그녀의 손바닥. 꽤 매웠다.

 

너 이렇게 나한테 복수하니? 다 망가뜨려놓으니까 좋아!?”

저기요. 왜 이러시는 건데요. 누구세요.”

?”

최이준 엄마. 최재윤 전와이프!!!!”

?”

 

갑작스럽게 그녀의 입에서 듣게 된 이준이라는 이름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끝까지 모르는 척 할래? 너 예전에 나 때문에 최재윤한테 까여서 복수 할라고 지금 이러는 거지? 왜 이혼하니까 꼴 보기 좋냐?”

지금 조금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인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네요.”

 

잔뜩 흥분한 그녀를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내가 말을 할 때마다 그녀의 화만 돋구는 꼴이 되고 있었다.

 

대체 왜!!!!!! 너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건데? 너 같은 년이 뭐가 잘났는데!!! 대체.... 뭐가....으흑......”

 

나의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죽일 듯한 눈빛을 바라보는 그녀에게서 나는 살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흘리고 주저앉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동질감에 빠졌고, 그녀를 위로해주기에 이르렀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에게로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나는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조금씩 말 해줄 수 있어요?”

너 지금 나 동정 하냐?”

그녀는 나의 호의를 호의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고, 나를 증오하는 듯 한 그 눈빛은 내 말문을 틀어막기에 충분했다.

 

나는!!!! 술 취한 놈 데려다가 20살 어린 나이에 억지로 애까지 임신해서도, 애를 낳고도 붙잡고 있을 수 있던 시간이 겨우 3년뿐인데. 너는. 너는 대체 뭐가 있는데 최재윤이 그렇게 너만 애타게 찾는 건데? 대체 왜!!!!!”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어제 최재윤이 한 말들의 의미를. 이 여자의 말과 조합해보면 최재윤은 술김에 이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는데 이 여자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최재윤은 이 여자와 결혼 생활을 한 것이라는..?

 

최재윤 안되면 최이준이라도 내놔.”

?”

그 새끼 핑계대고라도 만날 수 있게 애새끼만이라도 내놓으라고!”

 

혼란스러워졌다. 모든 것이. 7년간 그토록 증오했던 나를 버리고 간 최재윤. 그런데 그게 버린게 아니라 이 여자가 꾸민 일이라고? 이 여자는 내가 가만히 멍을 때리며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으니 점점 더 심한 말을 해댔다.

 

너는 이준이 엄마라고 할 자격도 없다. 앞으로 어디 가서 최이준 엄마라고 하고 다니지 마라.”

? 이년이 진짜. !!!!!”

 

나는 그 여자를 뒤로한 채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장 안에 주저앉아 문을 벽 삼아 기대 주저앉았다.

 

어이 아가씨! 여기서 이러면 안 돼!’

! ! 저 년을 죽여야 날 봐 줄거야.’

단단히 미쳤구만.’

그래 나 미쳤어!! 이거 놔! 안놔?!’

 

문 밖에서 계속 나에게 쌍욕을 하며 소리치던 그 여자는 얼마 후 아파트 입주민의 신고로 경비원들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다.

 

진짜 최재윤. 어디까지가 진실이었고 나한테 뭘 말하지 않은 거지..?’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감싸며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

 

선생님!! 선생님!!!!!!”

.. ?”

 

나를 부르는 이준이의 목소리에 멍 때리기에서 빠져나올 수 가 있었다. 어제도 하루 종일 최재윤 생각뿐이었는데 이준이를 보니 더더욱 생각난다. 이제 보니 이준이가 재윤이 판박이네.

 

! 이준이 우리 이거 쳐 보자!”

 

나는 이준이를 바라보고 밝게 웃으며 다시금 수업을 시작했다.

 

*****

 

그 여자가 찾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이준이 때문이라도 이준이와 최재윤이 같이 있을 때 나와 마주치면 인사는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학생 학부모와 학원 선생님의 관계로.

그리고 나는 점점 동창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이제 나에게 있어 우울감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있었다.

 

지서쌤. 나 먼저 퇴근한다! 지유 연습하는 거 조금 듣다가 지유 들어갈 때 같이 퇴근해줘 ㅎㅎ

네 쌤!”

 

3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지유의 연습이 끝나고, 나와 지유는 함께 학원을 나섰다. 학원 문을 잠그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최재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지유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한 후 최재윤 앞에 섰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렇게 마주보고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일이었는데.

 

할 말 있어?”

내 전 와이프 너한테 갔었다며.”

, 들었구나.”

미안해. 괜찮아?”

아니. 난 괜찮아.”

저기.. 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왈왈! ! 왈왈왈!”

엄마

 

잠깐만.”

 

저녁 9. 이 시간이면 엄마는 원래 자고 있을 시간인데.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서야....”

? 엄마 왜 울어?”

지서야.. 아빠가..”

 

나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아빠가 있는 병원을 향해 달렸다. 차의 속도도 나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저 나의 두 다리 뿐. 차로 15분 거리인 한국대 병원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했다.

 

‘826

 

..........엄ㅁㅁ...”

 

활짝 연 병실 문에 아빠는 없었다. 아빠 병실에 아빠가 없었다. 정신이 반 쯤 나간 채로 간호사실을 찾았다.

 

우리.. 우리 아빠!!! 우리 아빠 이춘재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 이춘재 환자분..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간호사를 뒤따라가면 갈수록 울음소리가 내 귓가엣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이건 아니지. 아니겠지.

 

여기로.. 들어..가세요..”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연 간호사는 나의 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본인의 자리로 가버렸다.

내 앞에 활짝 열린 문 안에 있는 하얀 침대위에. 우리 아빠가 누워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뗀 체로. 엄마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지 체념한 표정으로 풀린 눈을 하고 동공에는 초점이 없이 아빠 손만을 꼭 잡은 채 아빠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아빠.. ....”

 

아빠의 죽음이 정말 현실 일까봐 다가갈 수가 없었다. 다가가기가 너무 두려웠다. 그 때 아빠 곁에 있던 간호사가 말했다.

 

어서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지요. 아직 청각은 살아계실 거예요. 마지막 말 어서 전하세요.”

 

나는 간호사의 말을 듣자마자 용기 내어 아빠에게 다가갔다. 오랜 투병생활로 많이 수척해진 우리 아빠. 나는 대체 뭐 때문에 뭘 위해서 이런 아빠를 뵈러 오는 것도 미룬 채 살아왔나. 많은 후회가 밀려왔고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아빠...아빠 다음 생에도 꼭 내 아빠로 태어나줘..”

“....”

내가.. 내가 꼭 효도할게요. 이번 생에는 아빠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았어..”

 

나는 엄마가 붙잡고 있던 아빠의 오른손을 함께 잡으며 아빠의 손등에 이마를 대고 하염없이 울었다. 아직은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아빠의 손등...이젠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니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한국 장례식장 3호실

 

이젠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아빠의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진짜 같아서. 그리고 살아났을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관 뚜껑을 열어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너무 많이 들었다.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가고 새벽시간이 되었다. 나는 지친 엄마를 보내고 아빠의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 속의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빠.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였어요.”

“....”

아빠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고. 그런데 아빠. 아빠는 날 낳아준 사람이랑 왜 이혼을 했어요?”

“....”

나를. 나를 왜 아빠가 데려왔어요?”

“....”

내 주변에 애기가 있는데 이혼한 친구가 있어요. 그리고 그 애기는 그 친구가 데려왔구요. 알고 보니 그 친구 애기를 내가 가르치고 있더라구 피아노 ㅎㅎ. 저번주에는 그 친구 전 부인까지 나를 찾아왔어요. 보자마자 이름을 확인하더니 다짜고짜 때리더라고. 모르는 사람한테 맞아본 건 또 처음이라 되게 당황스러웠는데 ㅎㅎ.”

“....”

그런데 그 친구가. 내 첫사랑이야. 난 나랑 만나는 동안 바람이 나서 나는 버려진 줄 알았는데. 그래서 7년 동안 되게 힘들어서 우리 아빠가 나 결혼하는 모습도 못 보고 가셨는데. 그런데 내가 오해를 한 거 였더라고. 이제 나 어떡하죠. 아빠? 또 그 친구한테 정이 가면. 나 맞는건가?

“....”

 

나는 한동안 아빠의 사진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도 잠을 청하려 뒤를 돌았을 때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최재윤이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호실 밖에서 나를 무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어떻게 왔어?”

나는 혹시나 내가 아빠한테 한 말들을 들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하며 인사를 건넸다. 최재윤은 아무 말 없이 아빠의 영정사진 앞으로 다가가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절을 올렸다.

 

담배나 한 대 필래?”

 

어색함을 깨기 위해 내가 먼저 건넨 말 이었다.

 

*****

 

흡연구역

 

재윤아, 혹시..”

들었어.”

 

단호한 최재윤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내가 널 어떻게 버릴 수가 있었겠어. 지서야.”

...... 난 너무 힘들었어.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니가 너무 멀리 떠나버려서. 그리고 넌 내가 낄 수 조차 없게 너무나도 행복해보여서.”

 

갑자기 재윤이가 나를 끌어안았다. 싫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울다 지쳐 정말 아무나 붙잡고 안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재윤이가 되었다. 이제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정리되었다. 정말 바보 같은 이지서는 7년간의 고통이 최재윤의 포옹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지금부터의 행복이 더 중요했다.

 

지서야. 미안해 정말로. 내가 정말 큰 죄를 저질렀어. 너한테. 세상 가장 큰 상처를 줬고..”

 

정말 사랑해 이지서..”

 

 

 

 

 

 

 

 

 

 

 

 

 

6. 처음이었다

 

*****

 

갑자기 재윤이가 나를 끌어안았다. 싫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울다 지쳐 정말 아무나 붙잡고 안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재윤이가 되었다. 이제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정리되었다. 정말 바보 같은 이지서는 7년간의 고통이 최재윤의 포옹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지금부터의 행복이 더 중요했다.

 

지서야. 미안해 정말로. 내가 정말 큰 죄를 저질렀어. 너한테. 세상 가장 큰 상처를 줬고..”

 

정말 사랑해 이지서..”

 

*****

 

3년 후.

 

나는 어느덧 33살이 되었고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엄마!”

아이고 우리 이준이 이제 많이 컸네! 엄마가 안아주지도 못하겠어. ㅎㅎ

헤헤 오늘은 학교에서 축구했는데 내가 골 널었다!”

 

해맑게 웃는 내 아들 이준이.

 

오늘 점심시간에는 이모가 왔어!”

아이구 그랬어?”

응 내가 좋아하는 딸기 도시락을 싸와서 짝꿍이랑 나눠먹었어.”

맛있었겠다!”

헤헤 맞아. 그런데 이모는 오늘 일이 있다고 엄마랑 이준이랑 더 안 놀고 간데ㅜㅜ

이모가 바쁜 일이 있었나보네~”

! 엄마 나 오늘 꼬기 먹고 싶어.”

아빠한테 오늘 고기 먹으러 가자고 할까?”

! 아아!!!! 이준이가 할거야!! 하준이!!”

 

오늘도 왔다 갔나보네. 이준이의 학교가 마칠 시간에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동생 하준이의 유모차를 본인이 끌겠다는 이준이. 어쩜 이런 복덩이가 나에게로 왔을까.

 

*****

3년 전.

 

우리.. 이제 결혼하자 지서야.”

 

나는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30년의 인생을 살면서 행복한 눈물을 흘려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행복해도 눈물이 나온다는 말이 맞았구나.

 

결혼식 일주일 전.

 

이준아~ 꼬기 맛있어?”

! 나 계란찜도 먹을래!”

 

고깃집에 오면 나오는 계란찜에 밥을 비벼 고기와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는 이준이. 오늘은 나와 이준이, 재윤이 사이에 가장 중요한 날이다. 이준이에게 우리의 결혼 사실을 알리는 것. 어떻게 하면 이준이가 상처를 받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재윤이는 차라리 원래 엄마가 맞다고 거짓말을 해볼까 말했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진실에 혹여 이준이가 상처를 받을까 그것은 내가 거절했다.

 

있잖아. 이준아!”

네 아빠!”

.. 이제부터 우리 지서쌤이 이제 선생님이 아니고 엄마야! 가족. 아빠랑 이준이랑 같이 사는거야.”

 

안 그래도 똘망똚망하고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먹던 포크를 내려놓는 이준이.

나와 재윤이는 모든 신경을 이준이에게 집중했다. 혹시나 상처가 된 것은 아닌가하며.

 

그러면...”

 

이준이는 말하기를 망설였고, 나와 재윤이는 더욱 더 부드럽고 말하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 이준이도 이제 엄마가 생기는 거야? 막 유치원도 데리러 오고 목욕탕도 가고 아빠랑 엄마랑 셋이서 같이 침대에서 자고 그러는 거야?”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그런 것들을 엄마라는 존재와 함께하길 바랐던 이준이의 속마음이 나온 말이었다. 재윤이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터트렸다.

 

! 이제 내가 우리 이준이 엄마에요 엄마.”

야호!!! 나도 이제 엄마가 생겼다!! 그럼 나 오늘 밤에는 엄마가 노래 불러주는 거 들으면서 잘래. 엄마!!엄마!!!!!!! 내일 유치원 선생님한테 자랑해야지~~~”

 

이준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것을 들으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리고 이 어린 아이가 엄마라는 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항상 아빠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 아이가 엄마가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속에 맺힌 한을 풀 듯 엄마라는 소리만 연신 해댔다. 재윤이는 참지 못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나섰다.

 

선생님! 아니 엄마!! 이건 비밀인데..”

 

재윤이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나에게 귓속말을 하려 다가오는 이준이에게 나의 귀를 갖다 대주었다.

 

난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

 

3년 전 결혼식 당일.

 

신부 측 아버님 석. 우리 아빠 자리에는 아빠의 영정사진을 놓았다. 아빠도 내 한 평생 제일 예쁜 날을 보시라고. 외롭지 않았다. 아빠는 아버님 석에서 나를 바라보며 세상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고, 나의 신부입장은 우리 이준이가 함께 꾸며주었다.

 

엄마!! 엄마 오늘 지인짜루 예쁘다아~”

우리 왕자님도 오늘 너무 멋있으신데요?”

아빠가 제일 못생겼다 그치?”

ㅋㅋㅋㅋㅋ그러게 말이야.”

 

많은 사람들의 환영과 축하 속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세 가족이 되었다. 드디어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가족이다. 우리 세 사람은 함께 손을 마주잡고 주례 선생님 앞에서 같이 주례 말씀을 들었다. 혼인 서약을 하고, 신랑, 신부, 아들이 함께 행진을 하며 결혼식은 마무리 되었다.

 

이준이! 오늘 우리 예쁜 옷 입고 사람들 앞에서 축하받았지요?”

!”

항상 앞으로 우리 세 가족 행복하게 살자. 사랑해.”

 

인천공항.

 

이준아! 우리 오늘 비행기 탈거에요 ㅎㅎ

떴다~ 떴다~ 비행기~

맞아 그거!! 저기 하늘 날아가는 거 보이지?”

우와!! 이준이도 하늘 난다!”

 

우리는 베트남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우리에겐 또 다른 축복, 둘째 하준이가 태어났다.

이준이는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을 매우 좋아했다.

 

이준이 오늘도 학교에서 재미있었어?”

응 엄마! 근데 오늘은 어떤 이모가 와서 나 밥을 줬어.”

? 어떤 이모?”

그 이모는 맨날 많이 오는데 나 보면 막 울라고 그래 ㅜㅜ

어떤 이모일까..?”

근데 맨날 맛있는거 줘서 좋아!”

ㅎㅎㅎ우리 이준이가 좋으면 됐지! 어서 손 씻고 밥 먹자~”

 

나는 그날 밤 이준이를 재우고 재윤이와 맥주 한 잔을 기울였다.

 

재윤아. 이준이가 요즘 학교에 어떤 이모가 자꾸 찾아온다고 그러네?”

? 어떤 이모?”

그걸 모르겠어. 내일 학교라도 찾아가야하나.”

내가 가볼까?”

아냐 당신 바쁘잖아. 내가 내일 갔다올게!”

항상 고마워 지서. 사랑해 너무. 우리 이준이도 너무 사랑해줘서 고맙고.”

그게 니 이준이냐? 우리 이준이지 ㅎㅎ 내 아들이야..”

ㅎㅎㅎ우리도 얼른 들어가서 자자.”

 

다음 날.

 

나는 이준이 학교 점심시간에 맞춰 이준이의 교실을 찾아갔다. 나는 교실에 있는 이준이를 보

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자가 있었다. 이준이를 낳았던. 2년 전 나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때 어린 티는 얼굴 곳곳 어디에도 묻어있지 않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

면 사람이 저렇게 2년 만에 상할 수가 있는지. 이준이를 슬픈 얼굴로 바라보며 계속해서 이준

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먹여주고 아이가 학교에 가져간 장난감으로 같이 놀아주고 있었다.

는 그 여자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 여자는 이준이에게 2년 전 양육비라도 받겠다

며 이준이를 내놓으라고 했을 때의 악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말 나와 재윤이가 이

준이와 하준이를 바라보는 눈빛, 정말 순수한 눈빛 그 자체였다.

그 여자가 이준이와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정말 화가 나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준이에게 하는

행동을 10초만 바라보니 그런 생각은 진작에 없어졌다. 뒤늦게 나타난 모성애인가.

다른 곳으로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이준이쪽을 보니 그 여자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여자는 내 앞에 와 있었다.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요?”

 

‘ING 카페

 

죄송해요. 이준이 찾아와서.”

미안할 건 아는 건가요? 이준이가 얘기하더라구요. 어떤 이모가 자꾸 찾아와서 먹을 것 주고

챙겨준다구요.

이제 와서 아무 소용없겠지만, 이준이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모든 걸 다 잃고 나서 보니 남

는 건 제 핏줄 밖에 없더라고요. 요즘 찾아오며 느낀 게 어떻게 저렇게 착한 아이에게 모질게

대할 수 있었는지. 철 없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아니요. 이준이는 지금의 제 남편과 저 사이에 행복한 광경만 보고 자라다보니 성격이 많이

변한거에요. 제가 엄마가 아닌 선생님으로서 처음 봤던 이준이는 7살 아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무뚝뚝했어요. 그리고 제가 이준이의 엄마를 하겠다고 이준이에게 처음 말했던 날,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엄마에 대한 한이 서려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 제 한 편생 이준이를

제 아들로 무척이나 사랑할 것이라고 다짐했어요.“

감사합니다.”

찾아오지 말라고는 안할게요. 그치만 선을 지켜야 해요. 당신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고.”

.. 감사합니다.”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그 여자를 카페에 내버려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보니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재윤이.

 

? 집에서 밥 먹고 가려고?”

아니 그 이모 말이야. 걱정돼서.”

~ 그거 ㅋㅋㅋㅋ 수현이랑 혜주더라구. 이준이 예쁘다고 계속 가서 같이 놀아주나봐.”

 

갑자기 나를 끌어안는 재윤이.

 

이렇게 착해 빠져서 어떡하냐. 진짜 나 아니면 너 지켜줄 사람도 없겠다 이지서.”

아 뭐래~!”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재윤이.

 

우리의 첫사랑은 성공했네. 첫사랑은 아름다운거야. 아픈 것마저도 아름다운 것..”

사랑해 최재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