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저 마왕의 성에 취직했습니다 - 01
등록일
2020-04-24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138


 '안타깝지만 귀하는 저희와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또 불합격이었다. 
면접도 보지 못하고 받은 불합격 통보.
문자를 확인하고는 스마트폰을 던져 버리려다가 참았다.
함부로 다루기에는 아직 할부가 남아있기에
아직은 소중히 여겨야 할 스마트 폰을 바로 옆 침대에 고이 올려놓았다.
대신 부팅하는데 한 세월이 걸리는 노트북의 화면을 나름 분노를 담아서 닫았다.
그러나 이 마저도 하나 밖에 없는 노트북이기에 마지막에는 힘을 뺐지만.
분노가 가라앉자 체념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후-.”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왔다.
벌써 몇 번째 받는 불합격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담배가 격하게 땡겨서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지만 잡히는 것은 먼지뿐이었다.
그제서야 당장 먹고 살 생활비도 부족하여 담배를 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야 하는 거지?
주변 친구들은 벌써 직장에 들어가 그럴듯하게 자리도 잡고
또 누구는 연애도 하고 그런다는데
나는 도대체 이게 뭐냐고.
잠깐이지만 눈을 감았다가 뜨면 다른 세상으로 변하는 
소설에서나 보던 마법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없었다.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비좁은 고시원,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우스운 단칸방에 앉아있는 나.
천장 위에 누렇게 물샌 자국도 그대로였다,
책상위에 쌓인 여러 고지서와 각종 돈 나갈 곳도 그대로였고.
물론 불합격 통보도 마찬가지로.


당장에 스마트폰 요금부터 해서 생활비까지 
돈 나갈 데가 한 두 곳이 아닌데 수중에 돈은 없었다.
그렇다고 불과 세 달 전에 큰소리치고 집을 나왔기에
벌써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팍팍하기만 한 현실에 기운이 쭉 빠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실의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른 곳을 찾아야 했고, 지원서를 보내야 했다.
구식 노트북을 열고 전원 버튼을 올리자
한참을 버벅거리던 노트북에 전원이 들어왔다.
아까 쓰던 자기소개서를 띄우고 다시 한 글자씩 우겨 넣었다.





“이건 또 왜 이래?”


간만에 창작의 신이 강림해서 쭉쭉 써 나가고 있었던 자기소개서는 온데간데없고
공포의 푸른색 화면이 눈 앞에 등장했다.
모든 이들이 보기를 두려워한다는 블루스크린.
아까의 분노의 일격에 대한 노트북 나름의 복수인건가?
가지가지 한다 진짜.


‘그래도 자동저장은 됐겠지?’


여러 번 전원 버튼을 눌러봤지만 노트북은 블루스크린을 띄어 놓은 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인생…ㅆ
이후의 노력은 헛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노트북은 계속 파란 얼굴로 반겨줬을 뿐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렸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더니.


문득 침대가 울리길래 스마트폰을 봤다.
수 많은 부재중 전화의 알림이 스마트폰 화면 가득 채웠다.
혹시나 싶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시간은 저녁 11시를 넘겼다.
편의점 새벽 알바에 가야 될 시간이었다.
아니 이미 교대를 했어야 하는 시간을 한참 넘어 있었다.





결국 전 근무자인 창혁이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이게 다 옆 방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면서 모든 일에 예민한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알람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럼 이렇게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인간미가 있었야지. 
언제나 빡빡하게 굴던 그 녀석 항상 마음에 안들었어.


그보다 창혁이 이놈도 지각한 적은 있다는데 나한테만 이렇게 심하게 구는 건 또 뭐라 말인가.
게다가 매대정리는 왜 하나도 안해놓은건데!
이게 진짜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을 우습게 아나 보다.
한두번도 아니고.
내일 아침에 교대하는 점주에게 직접 말해야겠다.
자기도 한번 당해보라지.
한달동안 응어리진 원한을 보여주마.
아주 그동안 벼르고 있던 걸 낱낱이 고할 거야.
그보다 노트북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가 큰 문제였다.
이걸 어쩐다.





‘이걸 어쩐다…’


노트북 수리 문제와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창혁이를 조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나름 심도 있게 고민하던 사이 어느새 아침이 밝아 있었다.
그리고 점주가 출근했다.
드디어 문제 중 하나는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하던 내게 점주는 이렇게 말했다.


“창혁이한테 들었다. 너 어제도 늦었다며?
  한두번도 아니고 말야.
  젊은애가 그렇게 안봤는데…
  앞으로는 나올 필요 없다.
  어제까지 일한 거는 월급날에 보내줄 테니,
  더 이상 나오지 마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한두번이 아니라니? 뭘? 지각을? 내가?
그보다 창혁이 그 놈이 나를?
그건 제가 아니라 창혁이 그 놈이겠죠. 점주님.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자 점주는 나를 문 밖으로 밀어냈다.
아니 그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라니?
이거 고용무슨무슨법에 위반되는 거 아닌가?
항변의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나보다 배나 덩치가 큰 점주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왕년에 조직폭력배에 몸 담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는 점주의 팔은 과장 좀 보태서 내 허리만 했다.
점주의 포스에 쫄아 버린 나는 그냥 가던 길 그대로 뒤돌아 와버렸다.


‘이제 어쩌지…’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고 있던 알바 자리마저 짤리고, 지금 내게 남은 건 뭐가 있지?


‘부우웅-‘


집으로 가는 길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문자 한통
사람이 그냥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나는 통화버튼을 누르며 발길을 근처의 카페로 옮겼다.





“여깁니다. 이쪽으로.”


카페에 도착하자 마자 한 남성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의 사내는 자신을 아웃소싱의 한 부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 머리숱이… 크흠. 고생 꽤나 하셨나 보다.
잠시 부장의 머리에 애도를 표하고 있자 한부장이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에…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으나, 아까 통화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여기가 앞으로의 전망도 괜찮고 
  또 젊은 사람들이 일하기 좋아보이는 곳인데…”


받아든 서류에는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오망성 컴퍼니
회사명 한 번 되게 특이하네.
한 부장의 설명은 한 귀로 흘려들으며 급여 내용을 우선 훑었다.
급여가 생각보다는 적긴 했으나 최저 시급도 맞춰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이런 걸 따질 처지이던가.
당장 내야 할 핸드폰 요금도 있고 앞으로 고시원비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했는데.
일단은 급한대로 다녀보면서 또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리라.
앞으로의 일을 머리속으로 그려보는데 한 부장이 뭔가를 내밀었다.


“이것 좀 마시면서 보세요. 이른 시간이라 당장에 되는 커피가 없다고 하네요.
  어떻게 회사는 괜찮은 것 같으십니까? 궁금한 점은 없으시고요?”


먹기 좋게 따진 포도 음료수 캔이 내 앞에 놓였다.
무슨 카페가 이른 아침부터 되는 커피가 없나 싶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어차피 알바 때문에 새벽을 꼬박 깨 있었던 지라 꽤 피곤한 상태였는데
뭐든 좋으니 시원한 것이 필요하긴 했었다.
음료를 한 모금 마시자 정신이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그보다 이 음료수 새로 나온건가?
신상품이면 내가 모를리가 없는데?
내가 먹었던 맛이랑 조금 다른 거 같기도 하고.


“예, 궁금한 점은 딱히 없고요. 어디? 여기다가 사인하면 되나요?”
“바로 결정하시는 건가요? 좀 더 고민해 보시고 하셔도 되는데…”
“제가 좀 급해서요. 아, 음료수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아유,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예, 예, 서명은 여기에다가 하시면 됩니다. 
  에… 그리고 되도록이면 이름은 정자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한 부장.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이리 굽신거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비즈니스 관계 아닌가?
어쩐지 한 부장이 부담스러워졌지만
고개가 땅에 닿을 듯이 꾸벅이는 것이 좀 미안해서 
한 부장의 요청대로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 넣었다.


‘박복한’
내가 쓰고 있는 이름이지만 이름 참 특이하다 못해 이상하다.
아버지는 인생에서 복이 많으라는 의미로 이렇게 지어주셨다는데,
아무리 봐도 성씨인 박은 고려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여태 내가 제대로 된 취직 한번 해보지 못 한게
어째 내 이름 때문이 아닐까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뭐, 어찌 되었든 지금은 당당히 내 이름 석자를 넣을 공간이 생겼다.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부터 돈을 좀 모아서 부모님께 못 다한 효도도 해 드리고
또 뭐가 있나 그래 고시원 탈출도 해보자.
그러고보니 아까 얼핏 본 계약서에 회사에서 운영하는 기숙사가 있었다고 본 것 같기도 하고.
좋아, 그러면 한동안은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저축을 좀 하자.
짧은 시간에 여러 장밋빛 미래를 꿈꿔 보았다.
어차피 사회 초년생이 모아 봤자 얼마나 번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이것이 제대로 된 첫 직장인 셈이었다.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는 거죠?”
“그 출근에 관해서는 곧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어, 일단은 댁으로 돌아가시죠.”


카페를 나오자 해가 환하게 얼굴을 비췄다.
그래, 너도 내 미래를 응원해주는구나.
역시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사실 어제부터 있던 불행들이 이 순간을 위해서 존재했던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발결음을 옮겼다.
오늘은 기분 좋게 잘 수 있으리라.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덜컥 불안감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지금 몇 시지? 지각인가?
하지만 이내 떠오른 아침의 기억이 불안감을 가라앉혔다.
맞아, 나 짤렸었지.
이제 더 이상 귀찮은 편의점 일 따위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나도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란 말이다.
다시금 자리에 누우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들떴다.


그래, 이렇게 여유를 부려보는게 도대체 얼마 만이냐?
사람이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니까 평소에 보던 천장마저도 다르게 보이네.
그래 사람이 이렇게 여유가 있어야지.
그 동안 내가 얼마나 팍팍하게만 살아왔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가만 근데 저게 뭐지…


천장에는 늘 보던 누런 물 자국 대신 굉장히 굵은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와 저기에 걸리면 아무리 인간이라도 뼈도 못추리겠는데.
근데 내 방에 저런게 있었나?






모르는 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