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레코드 1화
등록일
2020-04-24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12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지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는 사람들. 하지만 건너지 않고 그 앞에서 내게 서두르라는 듯 손짓하는 원피스를 입은 한 소녀. 익숙한 듯 내 몸은 그녀를 향해 서둘러 달려갔고, 흔들던 그녀의 오른손을 꼭 잡고 깜빡거리는 신호등에 등을 밀려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인사도 못 건넸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가벼운 눈웃음이 오늘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 했다. 얼마 남지 않는 신호등의 시간. 다른 이들 보다 뒤늦게 출발해 다급하게 건너야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 횡단보도를 전세 낸 것처럼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기시감이 가득한 풍경. 익숙함에 나른해져 무거워진 공기를 눈치 채지 못했다. 끼익 하면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듯한 두려움으로 몸이 굳은 듯 했지만 마치 녹화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것은 기다림 없이 진행되어갔다. 나는 빨갛게 물든 원피스의 소녀를 끌어않고 울부짖고 있었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자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멀어져만 갔다. 주변은 어둠으로 뒤덮여갔고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 으아..르러..아...”

-띵디링~ 띵디링~ 띵디링~-
“흐으아앗!!”
한 소년이 이불을 박차며 몸을 직각으로 일으켜 세웠고, 커튼 사이로 내리 꽂는 듯한 햇빛은 그의 눈을 강렬하게 찌르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맡에 있던 단말기의 알람을 끄고 흐릿한 초점을 맞추며 현재의 시간을 확인하였다. 번데기 같던 그의 미간은 희번뜩 하는 그의 눈동자와 함께 넓게 팽창되었다.
“크. 큰일 났다..! 오늘 지각하면 내 방과 후를 보장 받을 수 없어!”
소년의 이름은 ‘허진태’. 진태는 자신의 명찰이 붙어있는 교복을 서둘러 챙겨 입고서 책상에 널부러져 있는 공책과 과장봉지들의 틈 사이를 뒤적이며 그의 사진과 각종 숫자와 바코드가 표기된 학생증으로 보이는 카드를 챙겨 현관을 나섰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그의 목표지점인 학교가 단번에 시아에 들어왔다. 아무리 학교와의 거리가 가깝고 통학하는 학생들에 비해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숙사라 해도 불과 남은 시간은 4분. 지하철 개찰구와도 같이 생긴 교내의 입구. 진태는 책상에서 발굴해낸 학생증을 갖다 대니 삑 소리와 함께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돈되지 않은 머리, 구겨진 셔츠, 지퍼가 반은 열린 가방을 걸치고 필사적으로 교실을 향해 달려갔다.

보기에는 깨끗하지만 냄새만큼은 커버가 되지 않는 교내의 화장실. 운이 좋게 아침조회에 늦지 않은 진태는 1교시 시작 전까지의 20분가량의 시간을 틈타 세안을 하고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마땅히 얼굴의 물기를 닦을 것이 없어 손을 털어 물기를 제거하려던 순간 시간 확인을 위해 세면대 옆에 올려놨던 단말기를 쳐버려 바닥에 떨어트려 버렸다. 
“아이 이런... 내 것은 튼튼하니까 문제없겠지?...”
단말기를 집어 들었으나 바닥에 있던 물기와 손에 있던 물기로 인해서 단말기는 심하게 얼룩이 져있었다. 진태는 결국 물기를 제거하기 위해 교복바지의 허벅지에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 단말기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하기위해 액정에 화면을 띄우자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고장난 건가... 학교에서 지급해준 거라 교체는 어렵지 않겠다만... 응?”
마치 고장난 듯이 화면에는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중간 중간에는 알파벳과 한글도 몇 글자씩 섞여 이었다. 숫자는 아무런 규칙이 없이 나열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읽자니 마냥 낯설지 만은 않았다. 마치 주민등록번호의 앞자리 번호처럼 무언가의 날짜를 표기한 것 같기도 하였고, 어느 시간을 표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큰 단위의 숫자의 나열은 아니지만, 그 후에는 60 미만의 숫자가 나열되는 패턴이 보였다.
하지만 숫자보다도 눈에 밟히는 것은 숫자들 사이에 껴있는 한 글자 한 글자와 알파벳들 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투. 다이..? 누운... 백... 만..나...?”
무언가에 꽂히면 무아지경이 되어버리는 진태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듯 한 얼굴로 눈동자가 위쪽을 향한 채 화장실을 나와 교실 쪽으로 향했다, 그때
-퍽
“으앗..!”
“야 몇 번을 부르냐!”
진태의 뒤에서 옆구리를 가격한 한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여제희’. 진태의 하나뿐인 이성 친구이자 친구이다. 
“..... 제... 제희야..!!”
“무, 뭐야.. 왜 또 그래;; 야 손 치워..!”
조금 전 깊은 생각에 빠진 지적인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제희의 손과 어깨 그리고 얼굴을 만지려 하며 다가왔다. 그녀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움직임만은 익숙한 듯 요리조리 그의 손길을 모두 피해낸다.
“제희야... 나 오늘 정말 뭐 같은 악모..”
“또 같은 꿈을 꿨다고?? 하... 거기서 또 내가 죽었다고? 참 여러 번 날 죽이는 구나”
“으응으응.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히 오싹하자나... 혹시라도...”
“아 됐고! 오늘 방과 후 일정 기억하지? 오늘도 늦으면... 응? 너 단말기가 왜 그래? 이리줘봐.”
진태는 화면에 이상한 숫자와 문자로 가득한 단말기를 등 뒤로 숨기면서 그녀의 주의를 돌리려는 듯이 보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물이 있는 바닥에 떨어트려서 잠시 오류가 생겼나봐.. 히히... 한 번 리셋하면 멀쩡해질 걸?...”
가볍게 넘기려는 진태와 달리 제희의 앙칼진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그녀의 눈빛이 순간 너무나도 날카롭게 보였으며, 어투 또한 바뀌었다.
“... 어쨌든 오늘은 늦으면 안돼. 또 저번...... 늦을 것 같으면 미리 말하고.”
“앗. 응... 오늘은 지각해서 방과 후에 잠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미안!”
두 손을 모아 사과하는 진태와 달리 제희의 분위기와 눈빛은 이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이에 둔한 진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어떻게든 승화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그래 그러면 30분 정도 연기하자 됐지?”
“고, 고마워!”
제희는 매섭게 몸을 틀어 자신의 교실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진태는 멀어져가는 제희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미안... 사실 오늘 지각하지 않았어... 그런데 거짓말을 해버렸어... 그녀를 속여 나는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진태는 등 쪽에 숨겼던 단말기를 다시 꺼내들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알 수 없는 패턴들을 주시하였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지나도 진태의 패턴에 대한 집념은 멈추지 않았다. 도무지 진전이 없자 진태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시내와 가까운 학교여서 인지. 백화점과 높은 빌딩, 공원 그리고 인파가 많은 시내의 상징은 X자 횡단보도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빌딩의 간판을 보고 그의 심박 수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투 다이.. 투데이, 오늘... R의 뒤에서 오후에 co 라... 이건...!”
진태가 내린 패턴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2510210816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오늘16:23 R사 빌딩의 지하주차장 뒷문과 연결되는 골목으로 와라’
화면 속 모든 숫자의 패턴을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은 확신했다. 위와 같은 메시지는 확실히 존재했고, 가장 앞에 있는 숫자는 바로 오늘 그가 악몽에서 깨어난 날짜와 시간의 나열이었다. 무엇보다도 오늘 미간을 찌푸리며 봤던 단말기의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 숫자가 그에게 확신을 안겨주었다. 반면에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에 진태는 두려움 또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가 확신을 갖자 오늘 하루 바탕화면처럼 계속 비춰지던 알 수 없는 패턴은 서서히 사라지더니 단말기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수많은 인파의 발소리. 신호에 걸려 멈춰 있는 차량들의 엔진소리와 경적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내의 한복판. 하지만 진태가 향하는 곳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이런 장소에 올 일도, 이런 장소가 있는 줄도 몰랐을 곳. 햇빛도 들지 않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비좁은 골목. 왠지 모를 퀘퀘한 냄새와 습기까지. 골목의 저만치에는 어렴풋이 시내의 거리가 보였다. 걱정 반 의심 반으로 이곳으로 온 진태는 분위기 탓에 긴장감은 더욱 고조가 되었다. 그렇게 그는 주차장 뒷문이 보이는 10미터 지점에서 걸음을 멈춰 섰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아... 그럼 그렇지... 그냥 오류 창 가지고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한 거였나... 이렇다 제희와 약속시간에 늦으면 곤란하니 이만 돌아가자.”
그렇게 진태는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건 뭐지...?”
자신이 왔던 길에 무언가 자물쇠의 아이콘처럼 보이는 붉은색의 홀로그램 같은 것이 나타나 있더니 그곳으로 향하려 하자 밀릴 듯 말 듯 한 투명한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마치 투명 벽에서 마임쇼를 하는 것만 같은 관경. 하지만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땀이 나기 시작한 진태. 그렇게 10초 정도가 지났을 무렵 그의 뒤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황한 진태가 뒤를 돌아보자 2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도 할 수 없을 만큼 후드모자를 눌러쓴 사람 한명이 서있었다.
“이거... 그쪽이 한 짓이야!?”
두려움과 다급함이 묻어나오는 질문. 그러자 푹 숙이고 있던 후드모자의 고개가 살짝 올라갔다. 가뜩이나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골목 탓에 후드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들었음에도 그 후드의 안에는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그림자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저승사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무슨 수작이야!... 내 단말기에 보낸 코드 메시지도 보낸 것도 그쪽이 한 짓이지!?”
“...시간이 많지 않아...”
변조된 기계의 목소리. 얼굴이 보이지 않아 후드의 말하는 입모양이 보이지 않는 탓인지 그가 내뱉은 말은 마치 직접 몸에 꽂히듯 전신에 울려 퍼졌고, 그로인해 두려움을 증폭시키기엔 충분해 보였다. 위화감을 느낀 진태는 무언가 호신용으로 삼을 것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고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향한 순간 그의 시아에 후드 녀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게 방심하기도 잠시 등 뒤에서 오한이 느껴져 돌아보려던 순간.
“끄앗...! 무. 무슨 짓을...”
주사? 전기 충격기? 후드 녀석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으로 진태의 목덜미를 가격하였다. 곧바로 진태가 쓰러지려는 듯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자 후드 녀석은 곧바로 진태를 부축해 천천히 바닥에 앉혀 건물 외벽에 등을 댈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기시감이 드는 경험을 한다면 모두 의심해야해. 일이 잘 풀린다면 의심부터 해라. 나에게 자주 해주던 말이잖아. 다음에는......”
정신을 잃어가는 진태. 그렇게 시아도 흐릿해져 갈 무렵 후드의 기계음은 또다시 온몸을 통해 전해졌지만 마지막 한 마디 만큼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진태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고 가장먼저 단말기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였다. 
“으으읏. 망했다... 아니야 그래도 3분 정도 늦은 건 커피한잔 사들고 가면 용서해주겠지?”
자신이 왜 골목에서 졸고 있었는지도 잊은 듯이 보이는 진태는 그렇게 인기척이 느껴지는 골목의 끝으로 향했고, 그곳에 도달하자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이었다. 여기저기 충돌되어 있는 차량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 울부짖으며 엄마를 찾는 어린 아이의 모습. 그리고 하늘은 마치 깨져버린 유리파편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구 종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진태는 그대로 몸과 생각이 멈춰 버려 넋을 놓고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거대한 유리조각이 떨어지자 보이는 것은 새카맣게 곡선의 형태를 띄는 벽과 가로 새로의 흰색 줄이 격자로 되어 있어 마치 무언가의 설계도면과도 같이 생겼었다. 거대한 조각은 하나둘 지면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지금부터 달려도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크기의 파편이 진태를 향해 떨어지고 이었고, 체념한 듯 한 진태는 시선을 어느 한 빌딩의 옥상으로 돌렸다.
“저건... 악마인가? 아니면 외계인...?”
초점을 잃은 그의 눈에 밟힌 것은 종말의 진경을 지켜보듯 서있는 인간형태의 시커먼 무언가 였다. 하지만 악마라고 하기엔 무언가 슈트를 입고 있는 듯 한 날카로우면서도 기계적인 모습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황급히 눈을 뜬 한 소년. 악몽이라도 꾼 듯 호흡은 거칠어져 이었고 심장은 한동안 요동치고 있었다. 단말기의 시간을 확인한 그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대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맛있는 냄새와 함께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인사가 들려왔다.
“어 진태야~ 일어났어? 웬일이야 깨우지도 안았는데 일어나고? 금방 아침 되니까 세수부터 하고 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진태. 잠시 생각을 정리한 듯 진태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꿈을 꿨어... 하늘이 유리파편처럼 무너지고 사람들은 혼돈에 쌓이고 나는... 무언가 악마같이 생긴 로봇을 본거 같아...”
“푸핫...! 어제 무슨 SF영화라도 보고 잔거야? 아니면 잠이 덜 깬 거야?”“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응? 뭔데~”
“여긴 어디지...? 분명 나는 학교 기숙사에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제희 너는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묘한 정적과 함께 바삐 움직이던 제희의 손은 잠시 멈췄고, 진태를 향한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