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Piece of Cake 1화
등록일
2020-04-24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95


* 본문에 제한되는 용어가 있어 순화후 내용 업로드 합니다. 내용 진행에는 큰 지장 없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아 음산한 기운만이 감도는 도심 중심에는 붉은빛에 둘러싸여 
검붉은 핏빛을 발하는 건물이 하늘을 뚫을 듯 높게 뻗어있다.
 
죽음과 벌을 담당하는 구역인 ‘데스 토피아’
그곳에는 흔히 인간들에게 마물이라 불리는 인간과 가깝고도 먼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이 도심의 중심에서 환생을 위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죽음과 유토피아...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인간들은 말한다.
하지만 우리 마물들에게 있어 죽음은 그들을 환생하게끔 해주는 매개체이니 유토피아로 가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에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이가 있다.
‘데스 토피아’ 회장의 양딸, 피스.

“부장님, 자신의 본분을 지키십시오.”
 
영문을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음악이 제 말을 잘라먹는 통에 그녀에게는 잘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피스의 어지러운 사무실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음악 볼륨을 낮췄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부장님께서는 좀 더 성숙해지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위험한 놀음은 자제하십시오.”

짜증 섞인 어투가 스미었지만 언행만은 단정히 했다. 이런 그녀와 마주할 때면 매니저라는 명목하에 하고 있는
 이 집사 노릇을 뒤로하고 피스가 자신의 직속 후배였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 없는 생각이 스친다.

그런 와중에도 피스는 금방의 조언이 무색할 정도로 태연했다.
 
"오랜만이네요, 요새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까 반갑죠?"

"농담은 삼가해주시죠."

"흠...인간계에서 매니저님 같은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진지충이라고 해요~ 진!지!충! 진지병이라고도 하던가.”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가 제 손톱에 바르던  것을 들이붓더니 그걸로 허공에 글씨를 써 내 눈앞에 들이민다.

이런 잔재주는 어디서 배워오는 걸까.

“진지충들은 웃자고 한 장난도 정색하면서 받아친다는데. 우리 매니저님이 아주 정석이시네~ 
뭐 그건 그렇고 우리 매니저님이 왜 그러실까~ 상사한테 찍히셨나? 고백했는데 차였다던가! 아니면~ ”

신난 듯 재잘거리는 것이 꼭 옆 동네 날 정령들 같다. 그런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아까보다 더 힘주어 말을 이었다.
 
“이는 회장님 지시입니다. 전 지금 경고가 아니라 명령을 전해드리는 겁니다. 
부장님의 유능함은 인정하나 이 이상 인간계에 손을 대신다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그랬죠? 감시하라고. 근데 어째요~ 인간계에 정들어버렸는걸~ 
매니저님도 알잖아요. 나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내가 거짓말은 안 하잖아~ 거짓말도 여기서는 중죄인 걸. ”

“….”
아니다. 그녀가 사람에게 정이라는 걸 느낄 리 없다. 적어도 내가 여태껏 봐온 피스는 그러했다.

어느샌가 미간에 힘이 들어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재미없게 왜 그래요? 아~내가 가는 게 싫은 거구나? ”

그렇죠? 맞네~라며 제 허벅지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리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생도 까마득하고 어쩌면 후생도 없을 가여운 존재인 그녀가 자신의 존재하지도 않는 
후생을 위해 속죄의 조각을 모으고 결국엔 그걸 또 완성하려고 한다는 게 몹시나 가여워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 그녀를 연민한다는 게 우스웠다.

“뭐야…진짜예요?! 소름 끼쳐! 매니저님 그렇게 안 봤는데 사실 저 좋아하시고 계셨던 거예요? 
저 거의 업고 키우신 분이!“

“저는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기는! 이렇게! 이렇게 웃었잖아요!”

얼굴을 디밀며 시늉하는 모습을 보니 쓴웃음이 새어나간 모양이다. 워낙 웃질 않으니 오해할 만했을 터이다. 
그래도 내가 저를 업고 키웠다니…
순간적으로 나이를 계산해보다가 관두었다. 그래도 내가 키웠다면 이리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다.

적어도 그와는 달리 살아갈 수 있도록 뿌리라도 남겨두었을 것이다.


……………………………………………………..


“아직인가~”

인도자 명단에 ‘K’라는 이름만 써진 프로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일렁이는 환영을 손으로 내저으며 없앴다.  
저를 환생시켜 줄 마지막 조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리 뒤져봐도 정보가 나오지 않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마지막 조각이라고 깐깐히도 구네.

목에 걸린 이 환생의 조각.
아니, 단순한 조각이라기엔 이제 제 모습을 갖추어 보석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을 몇 번이고 더듬어본다.

그러다 문득 매니저가 한 말이 떠올라 기분이 팍 상했다. 
평소에는 제 편 들어줘놓고 이제 와서 아빠 편을 든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 잠자코 구경이나 하라지."

사무실 구석에서 자고 있던 러브가 어느새 다가와 위로하듯 다리에 머리를 부빈다. 
역시 우리 러브는 나를 너무 잘 안다니까~

"러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어차피 마지막 조각만 모으면 나도 이 지긋지긋한 세상이랑 
인간계에 관여 일절 안 할 거니까! 음…못하는 게 더 맞겠지만~”

러브의 양 뿔 사이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기분 좋은지 아르릉 거리며 길쭉하고 큰 귀를 쫑긋거렸다. 
요새 이 녀석이 꽤나 귀여워 보인다.
하지만 미련 같은 걸 가져서는 안되고 정을 붙여서도 안될 것이다.

인간계도 마찬가지겠지.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매니저에게 정이 들었다고 했을 때 스스로도 놀랐다. 
농담 반 진담 반이 엇 것만 정말 그간 인간계에 정이라도 붙은 건가~

그럴 리가.

내가 이렇게 인간계를 드나들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10년하고 조금 흘렀을까?
마계 나이로 280살 때, 그러니까 조각을 90% 수집했을 무렵.

어쭙잖게 모습을 갖춘 조각이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해왔다.
다른 마물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들 인간계를 꺼려 직접 나서지는 않는 모양이었지.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인간계에 내려가 환생의 조각을 빠르게 모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유로 내가 바란 소원은 시공간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능력을 가진 이후로 인간계를 오가며 1년 사이에 9%를 모아 완성도 99%까지 도달하면서 
조각 수집률 최단 시간을 기록했다. 이런 나를 보며 다른 마물들로 하여금 부러움을 받거나 
회장의 딸에게 특혜를 준 것이 분명하다는 뒷담화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과 같은 목표는 아니기에 우월감이나 억울함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 부장님, 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럼 그렇지.
조용히 넘어갈 자가 아니긴 했다만.

답지 않게 회상에 젖어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이였다.

"쯧, 알았어요~ 금방 간다고 전해주세요."

- 아, 그리고 이번엔 제발! 정문으로 들어와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러니 데스 토피아에서 내 이미지가 바닥이지. 이렇게 사사로운 것까지 알려주고 말이야. 
이렇게라도 나를 골탕 먹이고 싶은 모양인가.

"제가 워낙 비범해야 말이죠~ 일단 회장님 얼굴 보고 이야기할게요."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한 번 튕기며 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물론 정중하게 얼굴 보면서 인사드려야지 않겠어?

"으아악-!!"

거 되게 요란하네. 아랑곳 않고 인사를 하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화를 낸다. 
이제는 좀 익숙해질 때 안됐나.

"되게 한가하신가 봐요? 이렇게 앉아서 여유나 부르고."

"네놈 이야기를 잘도 하는구나! 너 또 인간계에 다녀오면서 장난친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내가 언제 말린 적 있더냐? 그냥 조용히 다녀오면 될걸! 왜 그걸 못 하냐고!"

어우... 옆 동네 날 정령이 따로 없네. 뭐 저렇게 말이 많아.
버럭 소리를 질러 되는 꼴이 내가 바라던 바이긴 했지만~ 
역시 골탕 먹이기로는 얼굴에 물 뿌리는 게 더 속 시원하겠어.

"에이~그런 거 있잖아요. 왔다 갔다고 표시해두기! 인간들은 그런 거 좋아하던데. 
저라고 못할 게 뭐 있어요!"

"뭐? 표시? 낙서도 정도껏 할 것이지 매번 그렇게 크게 그려서 쓰나! 
인간들이 그걸 보고 어찌나 떠들썩 되는지."

"지금 제 예술을 무시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물들이 했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없다고요. 
다들 외계인 짓이라던데. 뭐라고 하더라~ 미스터리 서클이라던가~ 귀엽지 않아요?"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인간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거냐? 
참으로 우습구나. 그렇게나 미련한 것들을, 쯧."

"아빠도 좀 귀여워해봐요. 인간들 덕분에 데스 토피아도 순환하는 거잖아? 
아니었으면 길바닥 행인 분이 불만이 많으셔서 어째요~"

놀랬켰을 때보다 더 화내는 걸 뒤로하고 얼른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까랑 똑같이 뿅 하고. 역시 유용하다니까.

돌아오니 방금까지 없었던 자료들이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인간계에서나 쓸 법한 종이들인데. 이게 다 뭐지?

어느새 러브가 책상에 올라오더니 종이 주위를 사뿐히 맴돌아 앉았다. 
그리고는 꼬리를 탁탁 치며 문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마치 누가 다녀갔다는 눈치다.

"그래, 나도 알아. 근데 누가 다녀간 거냐고~ 이건 또 뭐고."

그래봤자 내 사무실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몇 안 된다. 손가락 안에 다 들어오지.
종이를 맨 위장을 슬쩍 살펴보니 포트폴리오 같은 것인 듯했다.

종이를 통째로 들어 다음 장을 넘기니 'K'라는 인간의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나는 잠시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 
내가 찾을 때는 그렇게 안 나오던 건데 이게 왜 이제서야 버젓이 내 사무실 책상에 놓여있는 거지?

나는 재빨리 손가락에 꼽히는 이들을 나열해보았다. 
아빠, 매니저, 청소 담당자, 시스템 관리자, 부하 직원들…역시 매니저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계에 발 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가 이렇게 대놓고 
'인간계로 가세요^^' 하고 줄 리가 만무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그리고 이건 인간계에서 취업할 때나 쓰는 거 아니야? 이걸 어떻게…아아악, 머리 아파!
그래도 내심 이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난 얼른 환생의 조각을 모으는 게 목적이니까.

"뭐, 누가 두고 갔던 다음에 나 없을 때 오면 고맙다고 전해줘. 러브야, 알았지? 
한국에선 고마우면 밥 사준다던데. 밥이라도 대접해야 하나~"


 ……………………………………………………..


정보를 입수하고 인간계에서 머문지 일주일째다. 지금쯤 눈치챘을 법도 한데 러브가 잘도 내 흉내를 내는 모양이다.

인간계에서 본 모습을 하는 건 문제이기도 하고 또 금방 밖을 나갔다고 하면 떠들썩해질 테니 러브와 몸을 바꾸었다. 
고양이랑 비슷해서 그런지 역시 다니는 데 도움이 된단 말이지.

정보를 입수했지만 여전히 그의 정확한 이름과 예정 수명은 알 수 없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여태까지 봐 온 걸로 봐서 근시일에 죽을 것처럼은 안 보인단 말이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깡소주 들이키는 것 봐~
편의점 테이블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K를 멀리서 지켜보다 그에게 조심히 다가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