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등록일
- 2020-07-10
- 작성자
- 국어국문학과
- 조회수
- 217
1회
사실은 우리가 통속의 뇌라면? 베타고가 전기 신호를 주고 있는 거라면?
글쓴이 프리티엔틱기어919
이중 슬릿이라고 아는 사람만 아는 위대한 실험이 있음
대충 파동과 입자를 구별하는 실험이라고 생각하면 됨
근데 현실은???
전자가 에너지화 돼서 파도처럼 표적에 부딪힘
말이 안 되잖아.
왜 멀쩡한 입자가 파동으로 변하는데?
(슈레딩거! 당신의 고양이가 돌아왔소! 내가 고전 역학을 파괴하고 말 것이오!)
당시 과학자들에게 존나 충격이었음.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아주 작은 세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고
2019는 11월 11일 한 논문이 발표됨
안톤 차일링거는 이중 슬릿 실험이 미시세계가 아니라 거시세계에서도 통하는지 실험함
전자가 아니라 그라미시딘이라는 현미경으로 보이는 커다란 물질을 표적에 쏴보기로 함
“그런데”
그 물질이 슬릿을 통과한 것을 확인함.
(스크린에 찍혔단 소리임)
이게 무슨 소리냐?
작든 크든 상관없이 모든 물질은 파동(에너지)으로 존재한다는 거임
단지 관측, 즉 에너지를 주고받지 않는 상태라는 조건이 있어야 함
물론 이건 물리학자들이라면 1999년 풀러렌 실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
오히려 이 실험이 단백질 같은 복잡한 분자를 균일하게 쏘아 실험한 기술이나, 질량이 큰 물질이 만드는 간섭무늬를 확인하는 측정기술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음
세줄요약
관찰할 경우 - 물질
관찰이 안 되는 순간 – 파동
보통 게임에서 컴퓨터의 성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플레이어가 보는 시야만 랜더링하고 안 보이는 부분을 땡처리 하는데 이게 자연에서 일어남
세상만물과 상호작용 없는 물질은 파동형태로 존재하며 전혀 물질로서 구현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짐. 그러다 누가 보거나 건드리면 물질로 보임 – 관측자가 대상에 영향을 끼침
따라서 뭐다?
내 논문도 완성되어 있는 상태로 관측만 하면 쓰지 않은 논문이 완성되어 있다는 소리임
추천 75 비추천 4
-참고 그라미시딘은 세균임
└아무도 안 물어봄
-슬슬 중간고사 시즌이지
-내가 먼저 빈 문서를 관측했기 때문에 님 논문은 계속 미완성임
└안돼
-그런데 닉이 그게 뭐냐
└뇌먹새에서 선착순 하면 안 됨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만든 어메이징 짤을 잘 써서 기분 좋음
-만약 우리가 통속의 뇌가 아니라면? 어느 미친 과학자가 없다면? 실제로 지금 인생을 조지고 있는 거라면?
SCP 이야기
글쓴이 SCP재단이급기밀문서 링크
일련번호: SCP-3652
등급: 케테르(Keter)
특수 격리 절차: ■■■■에서 채취한 샘플 SCP-3652-a에 한정하여 기술한다.
고농축 우라늄을 SCP-3652-a와 함께 납으로 된 상자에 밀봉할 것.
SCP-3652-a를 발견할 경우 즉시 그 자리를 이탈할 것을 권하며 당장 해당 지역을 봉쇄한다. 발견자는 최대한 빨리 격리 조치하여 정밀검사를 실시하도록 한다.
혹여 SCP-3652를 관측한 일반인이 있다면 유령, 괴담 등을 유포하여 그 사실을 감출 것.
설명: ■■■■의 현지인이 자주 환각·환청에 시달린다는 소문을 들은 ■■■■■ ■■■박사는 이 현상을 연구한 결과 모두 동일한 위치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결론. 이후 ■■■■■ ■■■박사와 접촉한 요원들은 ■■■■에서 ■■■ ■■을 관측. 이를 SCP-3652라 명명.
이후 박사와 요원들이 ■■■■에서 SCP-3652를 관측하는데 성공. ■■■■에서 자생하는 생물 샘플을 ■■함.
SCP-3652-a ■■■■■ ■■■박사가 ■■■■에서 ■■한 생물 샘플. 균류와 이끼의 중간형태를 하고 있으며, 방사능을 중화하는 성질을 가짐. 고농도의 방사능이 SCP-3652-a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됨.
SCP-3652-M-ray ■■■■ ■■■박사의 의견에 따라 M선이라 정정
<■■■■ ■■■■■박사와 ■■ ■■박사가 ■■■-■■■로 촬영한 사진>
■■ ■■박사와 ■■ ■■박사가 발견한 전자파의 일종. SCP-3652가 발생한 지역에서 검출된다. M선의 밀도에 따라 SCP-3652의 ■■■■을 ■■할 수 있다.
실험기록 ■■■■■ ■■■박사의 보고서
SCP-3652-M-ray(이하 M선)에 피폭될 경우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SCP-3652-M-ray-1 초기에는 대조군보다 신체능력이 증가한 것을 발견했으나 조사량이 늘어나자 ■에 ■■■인 ■■을 발견. ■■■을 보임. ■■.
SCP-3652-M-ray-2, 3, 4 SCP-3652-M-ray-1와는 달리, 대조군간 차등을 둔 채로 매 회 동일량을 조사. 회당 조사량은 숫자가 클수록 많다.
<열람 불가>
SCP-3652-M-ray-4 첫 실험에서 ■■■가 관측. ■■.
SCP-3652-M-ray-5 ■■도중 M선에 노출된 ■■■. ■■후 ■■. ■■에서 M선이 검출되지 않음 <열람 불가>
SCP-3652-M-ray-6 [O5의 지시ㄹ 자료 폐기]
내일은 SCP-3772임 그럼 20000
추천 82 비추천 2
-마그네■이트?
-어틀라스가 이놈 함ㅋㅋㅋㅋㅋ
-대파괴가 일어나야만ㅋㅋㅋㅋ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속도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했다. 속도는 중력에 의해서 관측값이 바뀐다. 시간의 기준이 되는 빛의 속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시간은 중력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길고 어렵게 설명할 것도 없이 같은 시간도 군부대 안에서 보내는 시간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경험한 일일 것이다.
지루하다. 심심하다. 시간이 안간다. 인터넷을 떠돌아 다녀도 이 시간은 게시글 속도가 떨어지고 올라온다고 해도 중복글에 불과하다. 차라리 게임을 하려고 해도 오늘은 목요일 밤이다. 정기점검이라 불가능하다. 연장점검만 아니라면 남은 시간동안 잘 버틸지도 모른다. 물론 이 전자분제에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선배?”
“왜?”
날 부르는 것은 박동규, 내 후배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장승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의외로 겁이 많고, 목소리가 여리여리한 친구다.
“카메라가 먹통임다?”
“뭐야?”
동규의 말에 모니터를 바라본다. 여러 카메라의 화면을 보여주는 모니터 중 하나에 영상이 잡히지 않았다. 시설관리팀 뭐하는 거야.... 왜 하필 내가 일하는 시점에서 망가지는데....
“씨발.”
조용히 욕지기를 내뱉으며, 스마트폰 화면 구석 배터리 잔량을 확인한다. 계속 충전하고 있었던 만큼 만충이다.
“넌 여기서 모니터링하고 있어. 내가 가서 볼 태니까.”
비록 두 명 뿐이지만 지금 당직관리자는 나고 사고가 터지면 내가 피를 본기에, 이런 사고가 나면 내가 가야 했다. 예전 같으면 동규를 보내겠지만, 책임자가 나인만큼 동규가 친 사고를 내가 뒤집어쓰기보다는 내 몸이 잠시 귀찮은 게 차라리 나았다. 절대 내가 부당한 업무를 지시한 선임을 이런 방식으로 골로 보내버려서 몸을 사리는 게 아니다.
“뭐 있으면 무전 해,”
나는 동규의 대답을 뒤로 하고 주머니에 폰을 넣고 무전기를 챙겨서 관제실을 나갔다.
*
직원이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연구실은 마치 고전 국산 공포게임 순백의 날처럼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지금 수위는 나다.
사람들에게 삼한 산업이라고 한다면 누군가는 근본 없는 사기꾼이라고 매도할 것이고, 누군가는 신흥 신화를 쓰는 대기업이라 할 것이다. 군용 관리프로그램 개발을 시작으로, 게임용 서버 데이터를 대여해주는 데이터 뱅크로 사업을 확장해 지금은 관공서를 주 고객으로 하는 다목적 기업이 되어버렸다. 내가 근무하는 제 2 연구소도 대형 입자가속기 RAON2에 들어가는 부품을 설계하는 곳이다. 물론 지금은 내부 공사 중이라 운영을 하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고작 경비원이라도 경찰에 보급하는 장비와 거의 비슷한 물건을 지원받는 것도 전부 회사의 빽이다.
“후, 후, 잘 들려?”
“옙! 잘 들림다.”
장비점검을 빙자한 실없는 무전을 하며 손전등에 불을 켰다.
“몇 번 카메라냐?”
“2층 6번 카메라임다.”
동규의 무전에 머리를 빠르게 굴린다. 2층 카메라 배전판은 분명 비상구 옆이다.
“알았다.”
“선배. 비상통로에 뭔가 보임다. 쥐는 아님다.”
“이런 씨발! 어디로 가는데?”
재빨리 손전등을 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거기에 굳이 상대에게 이쪽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1층으로 내려오는 중임다.”
“수는?”
“계단을 내려오는 것은 하나. 2층 복도에 보이는 것도 하나.”
둘! 그런데 이 녀석들 어떻게 들어왔지? 분명 인수인계할 때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 일단 잡아야 한다. 따지는 건 그 뒤다.
“어디야?”
“비상구 문 앞까지 다 왔슴다.”
문이 움직였다.
먹어랏. 눈뽀오오오오오옹!
근무자용 손전등은 최대 800루멘까지 밝힐 수 있다. 이 정도 수치라면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비춰졌을 때 일시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질 수준이다.
그 다음은 상대의 시력이 돌아오기 전에 제압하는 것.
오른손으로 테이저건의 안전장치를 풀고 격발.
따다다다다다다닥!
명중이다.
역시 교육은 중요하다. 결코 근무책임자에게 사고책임을 떠넘기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테이저건의 전선이 엉키지 않도록 거주자를 겨누고 다가간다. 회사의 지급품은 혹시 상대가 움직이더라도 한 번 더 전기 자극을 줄 수 있는 사양이다.
“오.... 씨발....”
앙 손을 뒤로 묶고 손전등을 비추었다.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각종 기인들을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돌고래에 환장한다던지. 시험기간이라 정신이 나간 대학생이라든지....
침입자의 얼굴은 그때 본 고대인 화석에 더 가까웠다. 피부가 말라붙어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았고, 애완견용 말린 닭고기처럼 가늘고 앙상한 근육은 도저히 혼자 움직일 수 없어 보였다.
“이런 건 본 적 없는데?”
“저도 처음보지 말입니다.”
“남은 한 놈은 어디 있어?”
“아직 2층 복도에 있슴다.”
다행히 어느정도 시간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케이블타이로 손발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
계단을 오르며 테이저건의 카트리지를 교환한다.
2화
힘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충분히 숙련된 기술이라면 상대의 칠 할의 힘으로 상대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얼핏 보면 힘보다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힘의 차이가 심하다면 무용지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시부사■ 고키같이 단신이 거한을 집어던지는 일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도 다윗은 원거리 무기를 쓰지 않았던가. 만약 다윗이 사울 왕이 입혀준 칼을 들고 싸웠다면 분명 골리앗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그것은 바닥을 나뒹굴다 다시 일어났다.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말년에 정립한 합기회의 기술 체계는, 그의 평화주의 사상에 입각해 싸움이 아니라 도주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유도나 레슬링에 비해 공격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목적에 맞게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는데 탁월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동규야. 문 잠궈.”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부터 2급 유출사고로 규정. 연구소를 폐쇄한다.”
매뉴얼에 따른 2급 유출사고. 지진, 정전 등의 이유로 연구소 내부의 위험물이 연구소 밖으로 유출될 지로 모르는 상황을 말한다. 그렇다면 일단 연구소를 폐쇄 후 진압, 이후 보고 혹은 지원을 요청한다고 관리규정에 쓰여 있다. 절차에 따르면 사고를 발견한 연구원이 경비요원에게 보고, 경비요원이 연구소를 폐쇄한다. 하지만 연구원이 없는 이상 경비원의 판단에 따라 폐쇄하고 보고해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 진짜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이지만.
합기라는 것은 관절의 가동범위와 균형 잡기에 불리한 이족보행이라는 형태를 활용한 기술을 말한다. 그렇기에 합기의 기초 또한 손의 관절을 비틀어 지면으로 몸을 던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사족보행을 하는 생물이거나, 역관절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합기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도....
다시 그것이 달려든다.
이번에도 공격을 피해 사각으로 파고든다.
안면에 주먹.
꽈드득.
마치 닭 뼈를 부수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턱뼈가 날아간다. 완력에 비해 뼈가 약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좀비가 팔을 휘두른다.
“으극!”
아프다. 뱃속이 울릴 정도다. 재빨리 낙법을 친 덕분에 기절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시 자세를 잡고 그대로 스피어.
그것의 힘은 좋지만 선회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옆구리를 들이받은 즉시 바닥에 매다 꽂는다.
그리고 일어나기 전에 머리를 뭉개버린다.
꽈직꽈직꽈직꽈직꽈직꽈직꽈직....
단순한 주먹질에 턱뼈가 날아가는 시점에서 인간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머리통을 빠개버려도 살인죄는 아닐 것이다.
“동규.... 이런 젠장.”
아까의 스피어 태클로 무전기가 망가진 모양이었다.
*
『지금부터 2급 유출사고로 규정. 연구소를 폐쇄한다.』
2급 유출사고. 삼한보안에 첫 입사했을 때 교육으로 들은 이후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가끔씩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야간 근무 도중에 근무규정집을 읽어두지 않았더라면 선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동규는 매뉴얼에 따라 연구실 외부로 통하는 문의 전자잠금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비상호출버튼을 누른다.
“제2 연구소. 2급 유출사고 발생. 본부 지원바람다. 2급 유출사고 발생. 본부 지원바람다....”
“알았다. 곧 가겠다.”
매뉴얼에 따르면, 앞으로 본부의 지원이 올 때까지 대략 30분 간 연구소는 완전히 밀실이 된다. 이로써 본부의 지원이 올 때까지 제 2 연구소는 무법지대가 된 샘이다.
*
“씨발 이게 뭐야?”
분명 2-6번방은 셈플 실험실이었을 터였다. 기운이 알기로는 2 연구소는 RAOM가속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연구하는 곳이었고 그렇다면 눈앞에 영롱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기계장치는 그 부품이 분명했다.
아마도 카메라가 망가진 것은 저 기계가 뿜어내는 빛의 영향일 것이다. 비록 내가 공학도는 아니지만 빛이 전자파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전자파는 전자장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기계장치는 두 개의 거대한 도넛이 겹쳐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바로 이 장치에 전기를 공급하는 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비상동력장치에 연결했나?”
나는 장치에 다가갔다.
그때였다.
마치 내가 다가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기계장치가 뿜어내는 빛이 강해졌다.
*
머리가 아프다.
훈련소에서 섬광탄을 봤을 때 이런 느낌이었다.
“아아아아아 씨발 눈.”
나는 눈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마치 소리와 함께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는 것처럼.
한동안 소리를 지른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눈에서 손을 땠다.
나는 손을 펴 바라본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며 눈에 이상이 있는지 살핀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는 2-6번 연구실이 아니다.
도넛 모양의 기계장치는 여전히 있었지만 2-6번 연구실보다 큰 방이었다.
방에 있는 거라고는 더 이상 빛을 뿜지 않는 기계장치와 철판으로 된 벽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납치되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든 문이라도 만들었나?”
2 연구소에 일하는 괴짜들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양자 상태라면 공간도약도 가능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개입하고 있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전기가 들어오는지 방 밖은 밝았다.
나는 손전등을 허리에 차고 테이저건을 들고 방을 나섰다.
복도는 마치 옛날 영화에 나오는 잠수함이나 우주선처럼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충 여섯 걸음에 문이 하나, 아마도 방 하나에 40미터 정도 되 보였다.
여러 방을 지나 도착한 방은 처음 정신을 차린 방처럼 넑은 방이었다. 아마 40미터 길이의 길죽한 방은 통로나 복도인 모양이었다.
방에 있는 것은 각종 기계장치였다. 그리고 그 중에 내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남자라면 이걸 그냥 넘기지는 못하지.”
강철로 된 알과 유리창은 마치 우주선의 탈출용 포트처럼 보였다. 영화를 조금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미군대장이 강화시술을 받을 때 들어갔던 장치와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철관(鐵棺)을 더듬으며 잠금장치를 찾았다.
상자의 중간 부분 형식번호가 새겨진 장식 아래에 있는 잠금장치를 건들자 상자가 힘없이 열렸다.
분명 세 부분으로 나뉘어 열리도록 설계되었겠지만 관리를 받지 못한 지금은 하나하나 따로 움직이며 상자 안에 든 그것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T-800.”
나는 그것의 형식번호를 소리 내어 읽었다.
강화복.
우주복처럼 생긴 그것은 과거 추가수당을 노리고 시착해본 작업보조복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보다 정교하고 투박했다. 핼맷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쓰는 핼맷처럼 생겼지만 얼굴 전체를 가리는 오토바이 핼맷에 더 가까운 형태였고, 가슴과 팔 그리고 다리에 이어지는 투박한 디자인은 풀 플레이트로 된 갑옷을 입은 전사를 연상시켰다. 가슴과 몸통을 이루는 합성수지 보호판은 총알도 튕겨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등쪽 옆구리에 장착된 공기순환장치는 착용자를 보다 쾌적한 환경을 제공했다. 거기에 완전히 밀폐된 내부는 외부의 위험에서 착용자를 완벽하게 보호해줄지도 모른다. 비록 동력기관을 필요로 했지만 작업보조복과 비교하는게 미안할 정도의 물건이었다.
*
인생사 세옹지마라 누가 말했던가.
강화복을 얻은 것이 행운이라면 그에 합당한 불운이 있어야 하는 법.
강화복을 얻은지 얼마 안 되어 도착한 방은 괴물 소굴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동력이 없었지만 내가 입은 전투복이 그만큼 일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동력 상태의 T-800은 동작보정장치로 성능이 우수했다. 보다 적은 힘으로도 보다 강하게, 거기에 T-800의 장갑은 동력이 없어도 단단하다. 이 말은 단순한 주먹질조차 전투망치를 휘두른 것과 같은 위력이라는 뜻이었다.
주먹질에 머리통이 터지고, 단순한 발길질에 팔다리가 부러진다.
그것뿐이랴.
나보다 작은 녀석의 공격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야말로 인간 전차!
“하지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구부정하게 서 있음에도 동규보다 머리가 두 개는 더 커 보이는 짐승이다. 자세로 보아 곰이나 고릴라처럼 평소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다 두 발로 일어서서 앞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거기에 자동차 타이어보다 큰 머리에는 양처럼 굽은 뿔이 달려있다. 튀어나온 주둥이와 가지런하지 않은지만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은 이 생물이 육식을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크이에에에에에엑!”
닭과 곰의 울음소리가 뒤섞인 괴성.
괴물이 달린다.
자세를 잡고 온 몸을 비틀어 주먹을 휘두른다. 동작보정장치의 도움으로 그야말로 예술적인 어퍼컷이 들어갔다.
하지만....
단단하다. 아무리 체급차이가 심해도 T-800 무동력 모드라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동도 없는건 너무한 거 아닌가?
분노한 짐승은 앞발을 휘둘렀다.
“끄응....”
아프다. 다행히 몸을 날려 직격을 피했지만 고속으로 날아갈 위력이다. 아무리 강화복을 입었다고 해도 죽지 않을 뿐 전신에 충격이 전해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엎드려라.”
무뚝뚝한 고음.
본능적으로 그 말에 따른다.
그리고 머리 위로 들리는 또 다른 폭력의 선율.
-투콰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캉
쉬지 않고 들려오는 발포음 사이로 들리는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
미니건이었다.
한동안 이어진 폭격의 노래가 끝나고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위험했구나.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여기는 인간 마을과 떨어져 있는데.”
상당히 높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덩치는 2미터, 아니 3미터는 될지도 모른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별말씀을. 그래 여기는 무슨 일이지?”
3회
“죽고 싶지 않다면, 엎드려라.”
다급한 목소리에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폭발음.
묵직한 총성은 화기가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폭력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위험했구나. 터미네이터.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여기는 인간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
터미네이터? 날 말하는 건가. 그나저나 키가 매우 크다. 내가 올려다 볼 정도다. 거기에 각질인가? 얼굴이나 팔 등 피부에 각질 같은 게 올라 있어서 내가 헬멧을 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만약 얼굴을 보였으면 저 괴력으로 내 얼굴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여기 있는 이유....”
“잠깐. 여기는 위험하다. 따라와라. 이야기는 나중에 듣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거 어째서 열려있지? 나 이거 열린 거 처음 봤다.”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 길에 내가 들어온 문을 보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말이죠. 저기서 왔거든요.”
“누가? 녀석들이?”
그는 미니건을 열린 문을 향해 겨누었다.
“.......”
“너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는 지하로 통하는 곳인데?”
“사실은 말이죠. 저 안쪽에 게이트 같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게이트?”
“따른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임시로 지은거지만 말이죠. 아마도 워프 게이트가 있어서 그걸 통해 온 것 같습니다.”
“아마도? 워프 게이트?”
이런. 의심이 심해진 모양이다. 어떻게든 의심을 풀어야만 한다.
“아, 제 이름은 오기운이라고 합니다. 삼한 산업의 경비요원을 하고 있죠. 이번에도 평소처럼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감시 카메라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걸 고치려다가 아까 전에 만났던 좀비 같은 것들에게 습격을 당했거든요. 그때 연구소에 있던 기계장치가 작동하면서 여기로 와 버렸습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녀석들이 나타난 걸 보면 믿을 수밖에 없어.”
“녀석들 말입니까?”
“그렇다. 좀비. 시체가 뮤파에 많이 노출되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옥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지옥입니까?”
“뮤파는 생명체의 성장과 변이를 촉진시킨다. 처음 과학자들이 발견했을 때는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이라고 떠들었다. 전기보다 에너지 효율이 좋다는 게 밝혀진 뒤로는 환경단체도 핵발전보다 친환경 에너지원이라고 떠들기도 했다.
새로운 자원이 생기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게 인간의 단점이다. 뮤파는 부작용이 심하다.”
“변이로군요.”
“그렇다. 짧은 시간동한 적은 양이면 안전하다. 하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변이가 일어난다. 터미네이터. 걱정하지 마라. 네가 입고 있는 옷은 뮤파 발전소에서 작업용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래서 그 옷을 입고 있는 동안은 뮤파에 안전하다.”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것인지 안심하라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동력이 모두 사라진 모양이다. 그 상태로는 불편할거다. 잠시만 기다려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선반에서 꾸러미를 가져왔다.
꾸러미 안에 든 것은 벨트와 파우치였다.
“터미네이터. 네가 입은 보호복을 전투복으로 개조하는 장비다. 그렇게 놀라지 마라. 보호복에 내장된 자세제어장치에 외부 동력을 전달해 출력과 기동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는 내게 벨트를 건넸다.
“이건 외장 배터리다. 마그네틱 접지인가 뭔가를 쓴다고 한다. 나도 잘 모른다. 이 버클은 뮤파를 충전해 에너지로 변환하는 장비다. 이 버튼을 누르면 뮤파 흡수율이 올라간다. 이 다이얼은 출력을 조절하는 장치다. 굳이 움직일 필요는 없을 거다. 그리고 이 버튼은 출력을 높여준다.”
그는 내게 손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자세하게 아시네요?”
“여기 나 혼자 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말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 전부 읽었다. 외울 정도다.”
그래서 말이 저런 방식이었군.
“내 말이 이상하지는 않은가?”
본인도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면 능숙한 편이네요. 그....”
“오, 이런. 내 이름을 안 말했다. 보그라고 불러라.”
“특이한 이름이네요. 보그씨?”
“보그라고 불러라. 이렇게 되기 전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 그렇고 아직 설명이 더 필요하다. 일단 착용해 봐라.”
말을 돌리는 걸 보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들쑤셔서 사이가 나빠질 필요는 없는 법이다.
“왼 손에 화면이 나타날 거다.”
보그의 말 대로 왼쪽 전완부에 장착된 터치스크린에 전원이 들어왔다.
“그것으로 보호복의 조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거.”
기억자로 꺾인 장비를 보여준다.
“뒤 돌아 봐라. 장비해 주마.”
보그의 말에 따르며 등을 보여 주었다.
“뭡니까?”
“작업보조용 카메라다. 왼쪽 어깨에 장착했다. 이제 화면에 문자가 뜰 거다.”
오. 사실이다. 보그가 설명서를 모조리 외워버렸다는 말이 허세는 아닌 모양이다.
“야투경도 겸하고 있으니까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일 거다. 줌 기능도 있으니까 멀리 있는것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헬멧을 벗어도 된다. 뮤파 정제기가 많아서 안전하다.”
“그런데 이렇게 줘도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 오랜만의 손님. 말상대가 되어주었지 않은가.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라. 빈 방은 많다. 저녁은 기대해도 좋다.”
표정이 거의 들어나지 않는 보그였지만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
12게이지 벅샷 35발, 슬러그탄 40발. 그리고 12게이지 더블 배럴 샷건. 옻칠한 나무가 고급스러운 빛을 내는 물건이다. 심지어 정비도 잘 되어 있었다.
“기운. 부탁이 있다.”
“뭐지?”
“여기에 상당히 좋은 물자가 있다. 내가 키운 작물도 상당히 품질이 좋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난 이런 모습이다. 인간에게 팔 수 없다.”
“확실히.”
보그는 과도히 늘어난 뮤파에 의한 사회 붕괴, 소위 선별의 날에 뮤파에 노출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 빨리 대피소에 숨은 덕분에 이성이 날아가지 않고 외형만 변이가 일어난 정도로 끝났지, 대피소로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모조리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참고로 오늘 아침에 먹은 햄버거에 들어간 고기는 변이한 토끼고기였다. 다행히 중금속처럼 체내에 축적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부탁한다. 네가 물건을 거래해 주었으면 한다. 가까운 인간 마을이 어디있는지는 알려준다. 필요한 것은 조미료와 일용품 그리고 책을 원한다. 다른 건 괜찮지만 책은 꼭 부탁한다.”
확실히. 아직 소금도 많이 남아있고 마늘도 최근에 심어서 그렇지 조미료를 대신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홀로 살아가는 이상 시간을 보낼 것이 필요한 법이다. 보그가 지내는 방에 책이 많이 있었지만 모조리 외울 정도라고 했다. 어지간히 시간이 남아돌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받은 게 많으니까 거절할 수는 없지.”
“고맙다. 이건 선금이다. 그리고 인간 마을은 이 쯤에 있다.”
보그는 꺼낸 지도에 표시를 해 주고 총과 탄환을 넘겼다.
보그가 꺼낸 지도는 낡았지만 선별의 날 이전의 것이다. 웬만한 수제 지도보다 정확할 것이다. 거기에 동력과 카메라가 설치된 T-800은 스마트폰 정도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이기도 했다.
“왕복하면 하루 반나절에서 이틀 정도 걸리겠는데.”
“오늘 밤은 센티넬 호텔에서 숙소를 잡아라.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많다. 빨리 오지 않아도 된다.”
“그런가. 그럼 마을에 팔 건 없나?”
“이걸 가져가라. 밀가루와 송곳토끼의 고기로 만든 소시지다.”
나는 보그가 준 꾸러미를 지게에 실었다.
“늦어도 괜찮다. 다치지 마라.”
보그는 떠나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
홀로 사막을 건너는 것은 심심하고 무료한 일이다. 그래도 T-800덕분에 몸은 가벼웠다. 비록 한여름처럼 더웠지만, 옆구리에 장치된 쿨링팬 덕분에 쾌적했다. 거기에 뮤파의 농도가 높아 축전지에는 계속 에너지가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느긋함도 이제 끝인 모양이었다.
시야 한 구석 무언가 보인다. 카메라를 열화상모드로 바꾼다.
움직인다. 사람인가?
보그에게 받은 산탄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사격자세를 잡는다.
증강현실이 적용된 시야는 총을 겨누는 것만으로 예상 탄착지를 표시해준다. 레이저 조준기도 필요 없는 고성능이다.
다행히 상대는 이쪽을 눈치체지 못한 모양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폐허가 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열화상모드로 살펴본 결과 대형견만한 생물이 있다. 둥지를 튼 모양이다.
조용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짐승의 둥지는 3층이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아직까지는 둘 다 날 알아차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창문으로 다시 바라본다.
보그가 준 카메라는 상당히 성능이 좋은 모양이라 1킬로미터 정도는 충분히 식별 가능했다.
먼저 표적 주변을 살펴 동료가 있는지 알아본다.
제기랄!
많다. 적어도 열은 넘는다. 자칫하다가는 총알이 부족할 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료 간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것. 이는 본진이 아니라는 말이며 또한 우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왼쪽을 파고들어 돌파하는 것이 상책이다. 괜히 중앙돌파를 했다가는 포위당한다. 상대와 거리가 있는 이상 크게 우회해 돌파한다. 설령 접촉한다 하더라도,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이상오른쪽을 파고들 경우 선회능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돌파 루트를 머릿속에 그린다.
건물을 나와 총의 안전장치를 건다.
근무시간에 본 베테랑 영감의 베필프 필승법 영상에 따르면 엄폐물을 향해 최단거리로 뛰어가는 것이 생존율이 높다고 했다.
그럼 머릿속에 설정한 우회루트에 있는 가장 가까운 건물을 향해 가볼까.
4화
4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해 건물 파편에 몸을 숨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열화상으로 한 번 더 주변을 살핀다. 모래바람 때문에 주변 시야가 나쁜 탓이다. 다행히 거동 수상자 무리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왼팔에 있는 액정을 바라본다. 물론 열화상 카메라로 주변을 살피는 것은 빼먹지 않는다.
T-800의 왼팔에 있는 단말기는 T-800을 제어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단말이기도 했다.
화면을 눌러 지도를 꺼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지도는 보그가 준 데이터에 들어있는 지도에 지금까지 카메라에 찍힌 주변 정보로 고쳐쓴 것이다. 아무리 보그가 준 지도의 정확성이 높아도 몇 년 전에 만든 지도인지라 지금 상황에 그대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당장 이 사막에 가까운 길도 보그의 지도에는 포장도로라고 나오지 않는가.
역시 방법이 없나.
지도에 열화상에 찍힌 거동 수상자 무리의 정보를 입력한 결과 더 이상 이들을 우회할 수는 없었다.
열화상 정보를 다시 지도에 다운받는다. 완전히 우회는 못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찾았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완전할 수는 없는 법! 왼쪽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이의 공간이 가장 넓었다.
그럼 해 볼까?
*
달린다.
T-800는 공랭식이다. 공기가 보호복 내부로 들어가 빠져나오면서 사용자의 체온을 내리는 식이다. 그리고 이 공기의 흐름을 만드는 것은 옆구리에 있는 배기구에 달린 여섯 개의 공기순환장치이다.
그리고 이 공기순환장치의 구조는 선박용 스크류와 흡사한 바, 회전날개의 출력을 올리는 것으로 양력을 일으켜 추진력으로 삼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시속 15킬로미터. 아무리 발이 느린 사람이라도 몸에 이상이 없다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 속도. 이 이상은 소위 재능의 영역이라 부르는 그 경계선. 그리고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
하지만.
공기순환장치의 출력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난 양력은 내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게 해주었다.
시속 16킬로미터....
시속 17킬로미터.......
사람이 보인다. 총을 들고 있고 방독면을 쓴 병사다.
이미 열화상으로 누군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놈은 날 보더니 재빨리 총을 겨눈다. 하지만 늦었다.
총이 날 겨누기 전에 아스팔트 덩어리 뒤로 숨는다.
그리고 아스팔트를 크게 돌아 나온다.
목표지점은 타이어가 삭은 자동차 뒤.
재빨리 뛰어가 자동차 뒤에 숨는다.
생각 외로 재빠른 몸놀림에 놈은 당황한 모양이었다.
보그의 말대로 이곳은 뮤선의 수치가 높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전력을 낭비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T-800의 배터리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다시 뛰어나간다. 놈이 동료를 부를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총구를 내게 겨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가까워 졌다.
총열을 오른쪽으로 쳐낸다.
방아쇠울에 오른손가락을 걸고 있으니 오른쪽으로 쳐내면 상대는 총에 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대로 살짝 비튼다.
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총을 놓치기 않으려는 반사적인 움직임.
총열을 쥔 채로 오른쪽으로 한 바퀴.
그러면 자연히 상대의 팔이 꼬인다.
그대로 총을 쥐고 내려배듯이 휘두른다. 그러면 상대는 어깨를 다치지 않으려고 바닥으로 몸을 던진다.
상대의 무기를 빼앗은 것과 동시에 제압하는 팔방던지기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달린다. 돌아볼 시간 따위는 없다. 상대가 일어나기 전에, 동료를 부르기 전에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
제나는 용병이다. 그녀는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용병대에 속해 있었다. 부하도 스물이 넘었고, 관리하는 정착지도 하나 있었다.
이 시대 용병은 일종의 군벌이다. 선별의 날 이후 살아남은 군인이나, 운 좋게 무기고를 접수한 집단이 그 무기를 앞세워 주변을 장악해 간다. 그 중에 정착지가 있다면 조금의 보호비를 받고 주변에 있는 도적들을 토벌한다. 만약 보호비를 주지 않거나,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 마을로 도적들을 몰아낼 뿐이었다. 직접 약탈하지 않으니 약탈자들과는 다르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주변 정착지에 공포심을 줄 수 있다.
제나에게 귀(Ear)의 람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남자였다. 자경단을 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소수의 약탈자 무리를 찾아내 보호비를 줄이려고 했다.
그녀는 부하들을 이끌고 탑이 보이는 구역을 살폈다.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탑. 최근에 그 탑에 컬트 교단이 자리 잡았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었다.
옛 도시의 흔적이 수색을 어렵게 했다.
카키색 전투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생각 이상의 빠른 속도로 용병 한 명을 쓰러뜨리고 수색망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곧바로 신호탄을 쏘았다. 통신기가 없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
괴한(?)을 따돌리고 도착한 마을은 그다지 좋다고 보기 힘들었다. 차라리 판자촌에 가까웠다. 거기에 곳곳에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마저 보인다. 현대인(?)의 눈에는 치안이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저기 저기, 여행자씨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귀는 처음이야?”
내게 말을 건 아이가 물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꼴에 말을 걸려고 하다니 어지간히 간이 부었구나.”
“여기서 그런걸 신경쓰면 못 벌어먹지. 만약 길안내가 필요하면, 하루 병뚜껑 50개로 해 줄수 있는데 어때?”
병뚜껑? 가을출타냐.......
“병뚜껑 50개는 너무 많은데? 5개로 하지.”
“30개.”
“너무 비싸. 7개.”
“에에이. 15개. 저녁도 못 먹는 다고.”
“7개, 보존식 추가. 싫으면 말고.”
“으음......, 그럼 그걸로 좋아. 어딜 가고 싶은 거야?”
나는 일단 영양 블럭 하나를 그녀에게 줬다.
“교역소. 필요한 물건이 있어.”
“좋은 곳이 있어. 그리고 병뚜껑은 여기서만 쓰는 거니까 나갈때는 따른 물건으로 바꾸는 걸 추천해.”
영악한 아이다.
개판이구만. 아무리 치안이 나쁘다고 해도, 이런 꼬맹이를 미끼로 쓰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그 꼬맹이도 없고....... 한패라고 봐도 되겠지?”
“눈치가 좋구만. 그 꼬마는 우리 말단이거든. 등에 지고 있는 걸 전부 두고 가라. 그러면 목숨만은 남겨주마. 어때 좋은 거래지?”
이 강도 놈은 발리송을 휘두르며 말하고 있는데 무섭기 보다는 손 다칠까봐 불안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발리송 묘기를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길안내를 맞길까?
“이런 식으로 거래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하나만 묻자. 이 마을에 경찰이 있나?”
“경찰? 그건 또 뭐야?”
경찰을 모른다라. 이 놈. 늙수그레한 얼굴을 하고 아직 십대냐? 연상인줄 알았는데.......
“유감이구만. 도와줄 사람도 없다고.”
아. 정말 어떻게. 웃고 싶은걸 참을 수가 없어.......
“아. 그래 정말 유감이야.”
재빨리 달려들어 오른손 스트레이트!
자고로 길거리 싸움은 먼저 때린 놈이 이기는 법이다.
“어, 어어?”
애송이들아. 어어거릴 틈은 없단다.
한 놈의 코를 뭉갠 즉시 왼발 뒷차기. 이어서 왼쪽 로우킥. 오른손 팔꿈치 치기. 파고들어 중단 태클. 어차피 애들 싸움이다. 한 놈 당 한 대씩 때려서 코피를 쏟게 만드는 쪽이 이기는 법이다.
“별 것도 아닌 놈들이. 야,”
발리송을 휘두르던, 선빵 맞은 녀석을 부른다.
“네, 넵!”
“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내가 팔 물건이 있거든? 어디 있는지 알지?”
“아, 알고 있습니다.”
역시 말보다 주먹이다. 시건방진 놈들은 패는 게 빠르다.
“니들도 엄살 피우지 말고. 그리고 이런 것 좀 들고 다니지 마라. 애송이가 위험하게.”
발리송을 빼앗는다. 이거 생각보다 만듦새가 좋다.
“이거 누가 만들었냐?”
꼬맹이들에게 길안내를 시키며 물어본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산빵 맞은 녀석이 고개를 젖히며 말했다.
“야, 그러지 말고 코를 눌러. 그게 빠르다.”
그렇게 말하고 발리송 묘기를 한다. 포인트는 칼등이 붙은 손잡이(세이프 헨들)를 잡는 것. 발리송 묘기의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이걸 잘 못해서 손을 다치는 사람이 많다. 이 꼬마도 이걸 못해서 무섭기 보다는 불안해 보였지.
“이정도로 만들 실력이면 만들어 팔아라. 이딴 강도짓하지 말고.”
손에 감기는 맛이 있는 물건이다. 공산품보다 좋을 지도 모르겠다.
“여깁니다. 마을에서 쓰는 물건은 다 여기서 팔고 있습죠.”
얼치기 강도들이 안내한 곳은 외장이 벗겨진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물건이 다양하게 있었다.
책 다섯 권, 소금 한 봉지, 고춧가루 한 통을 마늘 한 단과 육포로 계산한다. 다행히 병뚜껑을 받지는 않았다.
거래를 끝내고 길안내를 했던 꼬마(이름은 다운이라고 했다)를 찾는다. 물론 얼치기들을 앞세우는 것이 기본이다.
5화
한 마리 거대 파충류가 자고 있다.
앞발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긴 발가락, 네 발로 기어 다닌다고하기에는 지나치게 튼튼한 허벅지, 거기에 살이 잘 오른 몸통보다 긴 꼬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덩치도 커서 어림잡아 보기에도 3미터가 넘어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마을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피해 다니던 상대였지만, 마을에 들어오니 맞서 싸워야 할 상대가 되어버렸다.
*
다운이와 그 일당들에게 마을 안내를 받고 있던 도중에 덩치 큰 남자가 말을 걸었다.
“외지인인가?”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들을 풀어주는 게 어떤가?”
뭐라는 거야 이 인간은?
“풀어주다니 무슨 말이지. 난 이 녀석들에게 길안내를 받고 있을 뿐이야.”
“자네는 주먹으로 대화하는가 보군?”
그는 창우의 얼굴을 보며 이죽거렸다.
아차. 표시가 나지 않게 팼어야 했는데 너무 티나는 데를 때렸구나.
“어떤 일이 있었든, 여기 사람들은 자네가 아이들을 두들겨 패고 끌고 다니는 걸로 보지. 길안내를 받는 걸로 보지 않아. 나도 신고를 받고 오는 거라서 말이야.”
“이 마을에 경찰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따라오게. 잠잘 곳도 없지?”
이때 순순히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도 이러기는 싫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나.”
씨발. 개자식들. 그렇다고 감옥에 집어넣어!
“그 녀석들이 마을에서 알아주는 악동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 나도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지만, 일은 일이지 않나. 기본적으로 그 녀석들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 이런 시대이지 않나. 이렇게 소속감을 모으는 거지. 안 그러면 자다가 칼 맞는 건 나거든. 그래도 내일 풀어줄 태니 얌전히 있게나.”
당했다. 그래도 물건을 뺏기지는 않았다. 덤으로 저녁도 나왔다.
분명 다운이가 내게 접근한 것부터 계획된 일이다. 어린이라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거기에 창우와 그 일당에게 당하면 끝이고 아니면 촌장이 나서서 해결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어린이를 두들겨 패는 외지인을 촌장이 붙잡은 미담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도 도망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정말로 마을 사람들에게 어린이 납치범으로 남게 된다. 다시 이 마을을 들를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촌장 말대로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괜찮아?”
다운이가 창우에게 물어보았다.
“괜찮습니다. 누님. 치료도 받았으니까요.”
창우가 다운이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하지만 나이는 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다운이는 잔머리가 잘 돌아갔다. 그 덕분에 창우를 포함한 파벌을 이끌게 되었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자. 어디 아프면 빨리 말하고.”
다운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창우를 침실로 보냈다.
“그래? 어떤 것 같아? 평소대로 외부인한테 했는데.”
창우가 침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다운이는 람에게 물었다.
“나쁜 결과는 아니다. 전투복을 입고 있으니 어느 정도 강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창우 녀석들을 죽이지 않는 무른 구석이 있다. 홀로 황무지를 떠돌 실력은 있다는 거겠지.”
“만약 창우 녀석들한테 당했으면 어쩔 생각이었어?”
“그렇다면 붙잡아서 용병 놈들과 거래할 때 써먹으면 그만이다. 전투복을 입은 외지인이 아무런 제제 없이 마을에 들어온 거다. 거기에 우리 손에 잡혔으니, 상납금을 줄여도 할 말이 없겠지.”
“와. 람 씨 엄청 나쁜 사람 같아.”
“이런 세상이다. 그런 것도 안 하면 못 살아남는 거야.”
“쓸만할 것 같아?”
“그건 내일 되어 봐야 알겠지.”
*
“그거 안 불편해?”
아침을 가져온 다운이가 물었다.
“공기조절장치가 있는 거야.”
아. 보그가 왜 그리 잘 대해줬는지 알 것 같군. 고작 사나흘이다. 그런데 대화가 그리워지다니.... 나 같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줬을 거다.
다운이가 창살 안으로 식판을 집어넣는다.
“오. 국물이 있는 요리라니.”
식판에 담긴 요리는 그다지 새로운 요리는 아니다. 몇 년간 주기적으로 먹던 물건이다. 소위 빵식이라는 녀석이다.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인 물과 모양은 그저 그렇지만 딱딱하지 않은 빵이다. 이건 구운지 얼마 안 되는 물건이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다는 거겠지. 보기보다는 풍족한 마을인 모양이었다.
그건 그거고 남이 쳐다보는 와중에 밥을 먹는 건 그것 나름대로 신경줄이 굵어야 하는 법이다. 나야 그런 건 옛적에 극복했지만서도.
“넌 아침 안 먹냐?”
“나야 먹고 왔지. 왜, 누가 보고 있으면 못 먹는 타입?”
“그럴 리가.”
어디서 도발을.
식판을 받아들고 침대로 간다. 감옥 안에 식탁이 있을 리 없으니 매트리스 없는 침대를 식탁 삼아 먹어야 했다.
헬멧을 벗는다. T-800은 안전장치가 있어서 착용자가 아닌 이상 외력으로 벗는 건 불가능 하다. 물론 몇 가지 꼼수는 있는 법이다.
공기여과장치로 걸러지던 천연 발효빵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현대인이라면 호불호가 갈리는 냄새라지만, 나는 최근에 이 정도로 신선한 빵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이 또한 향기롭게 느껴지는 법이다.
빵을 반으로 쪼개고 그 반을 잘게 잘라 스프에 담근다. 크림스프같은 점성이 있는 스프가 아니라 숨이 죽은 야채를 끓여 소금을 탄 것이 전부인 국물이다. 식판을 이용하는 요령 중에 하나가 바로 국밥이다. 빵을 재운 국물은 빵만 떠먹어도 얼추 다 먹을 수 있는 법이다.
포카락으로 같이 나온 고기를 적당히 잘라 먹는다. 보그가 준 쥐고기와는 다른 맛의 고기다. 심지어 다지지 않고 소금으로 간해 바로 구은 야성적인 고기는 쥐같은 작은 짐승이 아니라 돼지나 소처럼 큰 짐승의 고기일 거다.
알찬 식사였다. 훌륭한 아침 식사다. 게걸스럽다 말하지 마라. 나는 지금까지 쥐고기로 만든 페미컨으로 겨우 살아온 거니까.
식사가 끝나고 바로 헬멧을 쓴다.
“식사 끝났나?”
걸걸한 목소리. 오셨구만. 망할 영감.
“그래. 이제 풀어주시지?”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말이야. 자네는 공식적으로 범죄자라고. 그러니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아니, 이 인간이....
“오늘 자네가 먹은 고기가 마을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고기지. 그래서 몇 마리좀 잡아오는게 어떤가?”
“내게 어떤 이점이 있지?”
“자네가 수락한다면 다음에는 제대로 된 방을 준비해 주지. 식사도 더 먹을 만 할 거야. 그리고, 총알을 주지.”
저자식 내 총을....
“12게이지. 붐스틱. 처음 보는 디자인인걸 보면 특주품인가? 벅샷 서른 발. 어떤가?”
“그래서 어떤 일인데?”
“스틸클로. 공룡같은 녀석들이지. 오늘 아침에 먹은 고기기도 하고.”
오....
“그걸 두 마리. 만약 더 잡아온다면 슬러그탄을 더 주지. 어떤가?”
“어떤 녀석인지. 어디 사는지 알려줘.”
일단 일을 받자. T-800이라면 이딴 쇠창살 즘은 간단히 때려 부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이 마을과 적대 관계가 될 것이 뻔하다. 보그가 준 지도에는 이 마을 밖에 없으니 그렇게 되면 곤란한건 나다.
*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보그가 준 탄알을 지금껏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람 영감과 트잡이질을 한 결과 선불로 뜯어낸 벅샷 10발을 포함해 수중에는 벅샷 45발. 슬러그탄 40발이다.
스틸 클로는 보기에도 튼튼한 가죽을 가지고 있었다. 벅샷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슬러그는 얼마 없는데....
건물에 숨어 혼자 있는 스틸 클로를 노린다. 탄은 벅에서 슬러그로 교체.
산탄총의 유효사거리는 50미터를 겨우 넘는다. 보다 작은 K2도 250미터를 맞출 수 있다고 말하지 마라. 강선 없는 총은 조준사격 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 12게이지 슬러그탄이면 40그램이 조금 넘는다. 일반 소총탄의 열 배나 되는 무게다. 대인 화기로 멀리 날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가지. T-800의 성능을 믿고 달려들어 머리에 납탄을 때려 박던지, 아니면, 유도해 쏘던지 둘 중 하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 마리가 내 겉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
일단 한 마리.
가슴을 노린 한 방이다.
사람이 아닌 짐승을 노릴 때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바로 해드샷이다. 보통 게임에 머리를 쏘면 한 방에 골로 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경우에나 그런 것이다. 아무리 머리뼈가 단단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뼈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빈약한 뼈를 가지고 있다. 평생 축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돼지 마저도 정강이뼈는 사람의 3배에 달하는 강도를 가지고 있다. 무스까지 안 가더라도 소 정도라면 머리를 쏜다고 해도 뇌진탕으로 쓰러질지언정 죽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를 노려야 하는가.
정석은 앞발옆구리다. 사람으로 치면 겨드랑이 아래. 인간이라면 발달해 있을 삼각근과 광배근을 이어주는 근육군이 인간이 아닌 생물에게는 발달하지 않았다. 왜냐. 바로 이 근육은 물건을 멀리 던지기 위한 근육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만큼 멀리 던질 수 있는 동물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겨드랑이를 노리는 것이 베스트이지만 그게 불가능할 경우 노리는 곳은 하나다.
바로 가슴. 심장을 빗겨가도 폐를 뭉개버릴 수 있다면 동료를 부르지 못하고 호흡곤란과 고통으로 의식을 잃기 마련! 그렇기에 저 거대파충류의 가슴에 납탄을 때려박는다.
6화
폐허처럼 위장한 울타리와 함정을 지나 대피소로 들어간다. 대피소 안에는 보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라. 기운. 마을은 찾았나?”
“그래. 나름대로 수확도 있었지.” 짐을 내려놓는다. “여기에 부탁한 책. 옛날 물건은 없었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배껴썼다고. 거기에 이건 선물.”
캐리어 하나를 보그에게 넘겼다. 얼굴이 저 모양이라 표정으로 감정을 읽기는 어려웠지만, 목소리로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오오, 이건, 예상 이상, 이다. 고맙다. 통조림, 고기라니, 잘도, 이런 걸구했구나. 그리고 이건?”
“오다가 잡았지.”
보그가 꺼내든 캐리어에는 스틸클로의 넓적다리 살이 들어 있다. 저걸 한 번에 잡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총소리를 듣고 모여든 스틸클로 사이에서 잡은 스틸클로를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렇기에 일단 물러나 스틸클로 무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스틸클로 무리는 시체로 모여들어 주위를 살피더니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동족포식을 신경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일이다. 아니, 문화로서의 금기에 지나지 않는다. 멕시카의 아즈텍을 보라. 포식한 동족의 머리뼈로 탑을 쌓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분에 넘치지 않게 물러나 이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물러나면 남은 고기를 적당히 갈무리하면 그만이었다.
“오면서 피는 적당히 빼 뒀다.” 라고 해도 식수에 담가둔 것이 전부다. 먹으려면 한 번 씻어야 했다. “늘 쥐고기만 먹는 것 같아서 큰맘 먹고 가져 왔지. 식사는 했나?”
“아직이다.”
“그럼 그걸로 먹자고.”
내 말에 보그는 좋다며 스틸클로의 고기가 담긴 캐리어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정말로 기쁘다. 무엇이 기쁘냐면, 기운이 돌아온 것이 기쁘다. 솔직히 말해서, 그대로,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 했다. 널, 믿지 않은 걸, 미안하다.”
식사 도중에 보그가 말했다.
“이런 세상이다. 남을 믿을 수 없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이해 할 수 있어. 하지만 보그, 이걸 잊지 마. 넌 널 도와줬다. 네게 어떤 이득도 없었을 텐데. 아니, 날 구해줬을 때는 타산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가 날 구해준 것은 변하지 않아. 그렇다면 그 빚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철저한 자본주의자다.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건 없으며,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어디까지나 돈이 모자란 것이다. 거기에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 적절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공짜라는 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아니 두려운 것이다. 이 사람이 이걸 빌미로 이것 보다 더한 일을 시킨다고 해서 내가 거절할 명분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남의 선의에 기대면 안 되는 법이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그래서 보그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기운..., 기운, 분명 좋은 말이지만, 부끄럽지 않아? 나는 부끄러운데?”
이 녀석.... 나도 신경 쓰는 부분을 찌르다니. 이런 낯 뜨거운 이야기를 할 때는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게 예의 아닌가? 망할 녀석.... 그렇다고 싸우지는 않는다. 싸운다면 부끄럽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
지난번의 실패를 발판삼아 다시 도전한다. 이번은 다르다.
사냥에는 총을 쓰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덫을 놓거나 짐승을 풀거나 팀을 짜서 하는 몰이사냥도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다. 람 씨가 알려준 스틸클로의 서식지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이 녀석들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다. 평균 체고가 3미터나 된다. 이족보행을 한다고 했지만, 사람보다는 새에 가까운 구조다. 거기에 발달한 앞발은 손으로써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물건을 움켜쥐기에는 손가락이 길지만 무언가를 할퀴거나 긁어내는 작업은 가능했다. 거기에 상당히 힘도 쌘 편이라 주식인 돌연변이 염소의 목을 짓눌러 제압할 정도였다. 그리고 몸통만한 꼬리는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면서도 영양소를 저장하는 역할도 한다. 그렇기에 비슷한 덩치라도 꼬리의 길이나 굵기가 모두 제각각이다.
몇 일간 숨어 관찰해본 결과 스틸클로는 크게 유체(幼體), 아성체(兒成體), 그리고 성체(成體) 세 형태로 구분이 가능했다. 알에서 태어나, 실제로 난태생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파충류는 모두 알에서 태어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1미터 이상 커지기 전, 아직 깃털이 빠지지 않아 다른 생물로 보이는 어린 스틸클로가 바로 유체상태다. 이 시절은 어미가 붙어있기 때문에 노리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새끼를 키우는 어미를 피하라고. 그래도 어린 스틸클로를 노리는 대상은 많기 때문에 아성체로 넘어가는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성체가 되면 어미품에서 벗어나 무리에서 이탈한다. 가끔 성체 스틸클로가 과자 까먹듯이 아성체 스틸클로를 잡아먹는 것을 보았을 때 스틸클로에게 이 시점이 가장 살아남기 힘든 시기로 보였다. 아성체의 특징이라면 전신에 듬성듬성한 깃털이 빠지고 등뼈와 앞발뼈를 따라 자라는 점이다. 아성체가 되면 탈피를 시작한다. 탈피는 앞발로 몸을 긁으면서 한다. 따라서 스틸클로의 허물은 조각조각 분해된다. 탈피를 할 때마다 깃털이 빠져 체고가 2미터 정도 되면 몸에 있는 털이 전부 빠진다. 이 시점이 성체다. 물론 이 분류는 내 개인적인 분류이기 때문에 학술적인 것을 따지지 마라.
성체가 된 스틸클로는 다시 무리로 돌아오거나 다른 장소로 떠나는 것을 보아 아마도 성별에 따른 조건이 있어 보인다. 코모도 왕도마뱀의 경우 암컷이 무리를 떠나 단성생식으로 새로운 무리를 만드는 경우가 있으니 같은 파충류인 이들도 비슷할 것이다.
그럼 노릴 개체가 정해졌다.
먼저 개별 생활하는 아성체일 것.
두 번째로 무리로 돌아가지 않고 떠나는 성체다.
사냥이 편한 쪽은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는 성체이지만, 이쪽을 상대하려면 귀한 슬러그를 소비해야 한다. 그에 비해 무리의 성체와 경쟁해야하는 아성체의 경우에는 벅샷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했다. 어떻게 그걸 아냐고 묻지 마라. 나도 그걸 알고 싶지 않았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녀석들 파충류인 주제에 코가 그다지 좋지 않을뿐더러 피트기관도 없다. 무슨 소린가 하면 단순위장으로 충분히 속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겠지.
여기까지 오면서 주워 모은 고철을 가지고 덫을 만들 차례다.
녀석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철사로 만든 올가미 몇 개를 설치한다. 철사이기 때문에 지지대가 없어도 새울 수 있는 것이 철사 올가미의 장점이다. 노리는 곳은 발이다. 죽일 필요도 없이 발을 묶은 뒤에 붐스틱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열 개 정도 설치한다. 근무시간에 본 생존 프로그램에 따르면 함정의 성공률은 5퍼센트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길목에 함정을 설치한다고 해도 사람의 냄새에 도망가거나 이 길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동물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저 둔감한 녀석들은 인간의 냄새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고, 이 일대 먹이 사슬의 정점에 오른 녀석들이 몸을 사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녀석들이 올가미에 걸릴 확률은 낮을 것이다.
올가미 설치가 끝나면 열 개의 함정에서 50미터에서 60미터정도 떨어진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철판과 흙으로 사람 한 명 들어갈 굴을 만든다. 포인트는 철판 위에 흙을 덮어 굴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이제 굴 안에 기어들어가 스틸클로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누가 내 모습을 보면 그런 중무장으로 너무 소심하게 싸운다고 말할지 모르나 시대가 시대다. 다치면 구해줄 사람도 없는데 뭣 하러 날뛰겠는가. 그러다 다치면 그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겁쟁이라고 욕하라지.
*
부하가 당했지만 다행인 것은 그 강화복 입은 사람의 기묘한 기술이 부하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마을 주변을 감시하고 컬트 교단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제나 일행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에는 가운이는 이미 마을을 떠난 뒤였다.
막사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옛 건물이었다. 콘크리트는 몰라도 이 시대에 질 좋은 철근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새로 지은 구조물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더 단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슨 일이야?”
막사에 람 씨가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다.” 람 씨가 의자에 앉았다. “마을에 식량이 떨어져서 말이지.”
거짓말이다. 제나가 이 마을에 온지 몇 달이 지났지만 람 씨가 식량으로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을 외곽에는 농장도 있어서 풍족한 편이었다. 물론 농장도, 식량창고도 철저히 숨기고 있는 이상 외지인이라면 이런 거짓말에 속을지도 몰랐다.
“자경단과 함께 스틸클로를 잡으러 가려는데 도와줄 수 있나?”
귀에서 스틸클로 사냥은 오락이자 자경단의 훈련이었다. 거기에 한 마리 잡으면 마을 사람들이 전부 먹을 수 있었고, 두 마리를 잡으면 마을 안에서 고기가 유통되기도 했다.
“분배는?”
“5대 5로. 발골, 가공은 이쪽에서 하지.”
“중간에 빼먹는 건 아니지?”
“부하를 시켜 감독해도 괜찮네.”
제나는 머리를 굴린다. 스틸클로 사냥은 총알이 든다. 그리고 귀는 농경지지 공장이 있어 총알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가끔씩 마을 사람들이 황무지에서 총알을 찾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귀의 자경단은 도르래 석궁을 가지고 있긴 하기만 그것으로 다 자란 스틸클로의 피부를 뚫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러니 람 씨는 제나에게 용병단이 가지고 있는 화기를 빌리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지. 한 마리를 잡으면 그 쪽이. 이후에 짝수면 5대 5, 홀수면 이쪽이 하나 더.”
마음 같아서는 더 요구하고 싶었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면 이쪽이 불리해지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