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김용, 「피아노 도둑」(2020-1학기 <웹소설창작과비평>)
등록일
2020-07-10
작성자
국어국문학과
조회수
84


1

 

 

나는야 도둑, 숨어지내며 세상을 한탄하는 도둑 그저 세상 살기 힘들어서 하는 이야기지, 이 이야기는.

눈을 뜬다. 혈기왕성한 청년에게서 나는 진한 체취가 느껴진다. 이윽고 알람이 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연다. 상쾌하지만, 아직은 서늘한, 더 이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 든다. 바로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기지개를 쭉 편다.

인마는 아직 자나?”

내버려둬라 여보야, 아직 깰 시간 아니다.”

점마는 나중에 뭐 할란고.”

방황하는 시기 아니가, 약간만 더 지켜보자. 다녀온나

, 간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그제서야 나는 있는 힘껏 피곤한 척하며 방문을 나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 엄마 오늘 할 일있어가 먼저 나간데이, 식탁에 빵 구워놨으니까 먹어라.”

엄마도 나가시고 나서 나는 빵 한 조각을 집어들고 태블릿으로 노래를 튼다.

랜덤으로 돌리니 일본 노래가 나온다. 전주를 들어보니 아마자라시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다. 아마자라시의 특유의 허스키한 저음과 현대 사회의 소외된 인물들을 일으켜 세우고 힘을 주는 가사를 들으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쳤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은 너무나 공감이 되는 노래이다. 노랫말이나 나나 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면서 흘린 땀과 약간 남은 피곤을 씻어 내리기 위해서 샤워를 하며 옛날 생각을 한다. 물론 이것이 입 밖으로 나올 때는 술에 떡이 되었을 때 밖에 없다.

나는 예전에 피아노를 치고 싶었고, 여러 번 도전도 했었다.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동생과 나를 차별했었고, 동생은 예술 쪽에 재능 있다고 미술, 음악학원을 보내놓고 나는 재능이 있건 없건 안 된다고 하셨다. 부조리를 느끼지만 자기주장이 약한 나의 성격상 강하게 나갔던 적도 없었고 자기주장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위협과 고함뿐이었다.

결국 우리 형제의 결말은 비극이었다. 동생은 알고 보니 예술 쪽에 관심도 없고 재능도 결국 없다는 게 탄로나 아빠에게 크게 깨졌고, 부모님을 피해 멀리 있는 적당한 대학에 들어가 버렸고 나는 재능이 있는지 확인도 못한 채 통학할 수 있는 대학을 갔고 이윽고 군에 갔다 왔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못하고 목표를 잃어버린 이후에 그저 적당한것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목표 없는 이런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아닐까.

슬슬 현기증이 난다.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진동이 울린다. 울림을 들어보니 전화다.

어 재혁

뭐하누 승재?”

뭐 그냥 씻고 머리 말리고 있지. , 놀자고?”

나도 심심하고 계절 바뀌는데 옷도 사야하고 그래서 시내 가려고

뭐 그럼 나도 가야지 앨범 좋은 거 없나 찾아보고 밥도 같이 먹고 하자.”

알았다 한 한시 반? 그때까지 시내 입구에서 보자

휴대폰을 본다. 12시이다. 시내까지는 얼마 안 걸리니 여유롭게 몸단장을 한다. 길어진 수염을 깎고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르고 얼마 전 새로 산 옷을 돌려가며 입어보고 머리를 빗고,

이윽고 문을 박차고 나는 집을 나왔다.

 

아직 여름으로 익어가지 않은 희미한 열기가 느껴진다. 동시에 마지막이라고 소리치는 소심한 한기가 발목을 감싸돈다. 시내까지는 걸어서 가면 시간에 맞추어 도착 하리라. 이어폰을 귀에 끼운다. 그리고 내 폰속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부두 차일드를 튼다, 기타의 신이라 불렸던 그의 일렉기타 사운드와 당시 히피문화가 활성화 되었던 시기의 소울풀한, 한편으로는 서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통과한다. 플레이타임 장장 15분의 대곡은 여러 가지의 변주와 기타솔로를 통해 그 일관성을 비틀고, 지겨움을 없애준다. 그리고 현대노래에 비하면 상당히 음이 낮고 평이함에도 불구하고 몸의 열기를 올린다. 부두술사가 있다면 이런 것으로 사람들을 조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노래를 들었으니 이제는 비교적 최신 노래를 들어주는 것이 응당 조화롭다. 시내까지는 약 10, 원룸 서사시, 원룸 서사시다.

불타라 불타라 모두 불타라

마을의 아름다운 햇살도 그 애에겐 어울리지 않는 추억도 힘든 내일에 솟아나는 꿈도

비에도 지고 바람에도 지며 눈에도 여름의 열기에도 지고

그래도 인생이란 놈에게만큼은 질 수가 없어......

목표를 잃고 인생에게 지려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노래이다.

조금은 기분이 다운되었지만, 조금 더 차분한 기분으로 시내에 도착한다.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그 녀석이다.

여 브라더.”

, **브라더, 왜 이리 늦었누?”

“1분차이인데, 무슨 문제라도?”

시간은 금 인거 모르나?”

과거의 네가 가장 많이 늦었어요. 이 친구야.”

별 의미 없는 안부인사가 끝나고 일단은 친구의 옷부터 보러가기로 한다.

바뀌는 계절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올 계절만 기다리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진다. 00는 아웃도어 옷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는 옷 입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미세한 차이를 운운하면서 어울리냐 물어본다. 나는 대충 대답하며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옷 구매를 마치고 옷가게에서 나온다.

나오고 나서는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문득 이 친구의 반짝거림이 부러워 물어본다.

너는 상당히 반짝거리는 것 같네 중학교 때는 잘 안 꾸미고 그랬는데, 지금은 옷이 자주 바뀌고 머리도 자주 바뀌니까.”

, 무언가 되고 싶은 내가 있기 때문일까? 오히려 바뀐 건 너지. 중 고등학교때는 있는 멋 없는 멋 다 치켜세우고 다녔잖아. 요즘은 매일 무난한 옷만 입고 다니잖아.”

나도 많이 바뀌었지. 열정이 꺼지고 재가 되어버렸달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미래에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

뭐 아직 20대다, 조금 더 찾으면 안 되겠나?”

안 된다. 맨날 아빠는 돈만 벌어오라하고, 말도 안 되는 루트만 말하는 것 같고, 그래놓고 아무런 지원없이 혼자 알바하며 벌어서 이루래.”

뭐 지원없이 힘들기는 많이 힘들기는 하지. 왠지 기분이 많이 다운된다.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풀자.”

. 더 말하고 싶어도 내기분만 더 잡칠 뿐이다.”

하지만 이 좋지 않은 기분은 내 마음을 더욱 조여갈 뿐이었다. 옛 일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강대한 사람이지만 너무 낙천적이고 자신의 기대를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다. 기질은 바뀌지 않고 나와 내 동생은 서로 협동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중학교 때 좋은 결과를 내도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날아온 건 회초리와 욕설뿐이었다. 그 결과 나와 동생은 고등학교때 포기해 버렸고, 자신감을 잃고, 가식이란 가면을 쓰고, 아버지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지도 않았을 뿐더러 동생은 도피생활, 나는 내 4평방에서 서사시를 쓰기 시작했다. 진정한 망상가로 진화해버린 나를 어머니는 내 잘못인가 하며 한숨만 내쉬셨고, 아버지는 이미 신체가 성장하고 단련되어버린 나를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고 집안은 아주 회색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에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주식하다가 망해서 빚을 지고, 아직 퇴직까지는 먼 이야기지만, 늙어가는게 눈에 보인다. 나라고 그 부담을 덜어줄 수도 없고, 이미 내 나침반은 고장나버려 바늘이 빙그르르 돌아가고만 있는 상태이다.

후우우우

가슴이 답답하다. 몸이 본능적으로 행복의 맛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행복의 맛은 곧 단 맛,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매운 맛을 더하면, 떡볶이 같은 분식이 머리를 자극한다.

분식 어떠냐? 매운 거랑 단 게 좀 땡기네.”

그럼 가면 되지,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약간은 연식이 있는 분식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정을 잃었다는 애가 먹는 얘기하니까 자기가 갈 방향을 정하는 건 좀 모순인데.”

뭐 어때, 생존을 위해서는 먹어야 되고, 이는 행복이 되지 나는 인간의 근본적인 행복을 채우러 가는 건데.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네 네 철학가에 인문학자 납셨어 흐흐. 뭐 그런 게 싫지는 않으니까. 아직은 생각해봐 뭐가될지, 나도 너네 아버지의 철학은 이해 안 가긴 한데, 그렇다고 네 가능성이 이대로 멈춘 채 있는 것은 너만 손해니까.”

“....”

한때 열정맨 이었잖아? 다시 모인 재 위에 땔감과 불씨를 올려. 더 큰 불꽃을 일으키게.”

고맙다. 한탄에 대답이라도 해줘서.”

천만에, 친구라면 이정도야. 멀어질 수는 있어도 버리진 않는다.”

...다 왔네, 예산은 얼마정도?”

1만원 이하면 배터지지 않겠나?”

손때탄 문을 열어제끼며 분식집에 들어간다. ‘또 왔네 총각.’이라며 주인아주머니가 반겨준다.

대표메뉴와 음료수를 시킨 우리는 잠시 앉아 다리의 피로를 풀고,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 같이하는 모바일 게임을 하며 허기를 잊어본다. 역시 게임은 좋다. 모든 걸 잊고 집중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느새 내 얼굴 앞에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파전이 등장하였고, 자연스레 게임에 가 있던 집중은 허기를 해소하기위해 음식으로 옮겨갔다. 역시 인간의 생존본능은 무섭다.

허기와 갈증을 해소한 뒤 내가 가려던 서점과 레코드 숍에 가보려 한다.

아직도 일본노래에 빠져있나?”

그렇다면 그렇지 뭐 일본노래만 듣는 건 아니지만. 노래엔 국경이 없다고 생각해서.”

네다씹...인건가?”

그건 좀... 시덥지 않은 농담은 자제 좀 해라.”

알았어. 흐흐

레코드 숍에 들어가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반의반쯤은 몽롱했던 정신도 돌아온다.

친구를 한국노래 코너에 데려다주고, 바로 해외노래 코너로 직행한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건 영어노래, 하지만 그것을 제치고 왼쪽복도로 직진한다. 직진 중 첫 번째 코너에서 좌회전. 그러면 바로 중국, 일본노래 코너이다. 해외로 진출한 우리나라 아이돌의 앨범 표지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메이저한 각 나라의 밴드나 가수의 앨범이 보인다. 나는 바로 아마자라시의 앨범, 그중에도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실린 앨범 아노미를 집어든다.

입가가 올라가는 것을 인식한다. 항상 차분했던(그런 것 같았던) 기분이 들뜨며 머리와 발끝을 잡아당기는 황홀감과 만족감을 감미하며 그 자리에서 나는 서있었다.

아마도.

2

 

 

나는야 도둑

옛 이야기를 하지

이야기의 절반은 술자리의 애교지

진지하게 듣지 마 진심으로 듣지 마

이제 와서는 웃어넘길 이야기야

나는야 도둑

나카노의 거리

비를 피하는 척 물건을 둘러보는 일요일

색색의 우산이 펼쳐지고 접히고

마음마저 들떠버리는 휴일의 퍼레이드...

 

피아노 도둑의 초반부는 무언가 밝은 분위기의 노랫 가사지만, 이미 꿈을 잃어버린 이에겐 자비란 눈곱만큼도 없게만 보이는 비가 오는 휴일이다. 어떻게 이 노래는 열정이 꺼져버린 나를 비추어줄까, 역시 현대사회의 음유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밴드의 노래다.

중반부는 다시 열정이 있을 때를 떠올리고 기억을 되살리는 부분이다.

 

저 피아노를 훔쳐서

들려주고 싶어 숨겨왔던 비장의 클래식 발라드

피아노소릴 들으면 떠나갔던 그 여자애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날 다시 봐주겠지

피아노를 훔쳐서

다시 연주하고 싶어 나의

빌어먹을 인생

마침 사람 눈을 피해 살금살금 살아가는데

싫증이 난 참이었어...

 

정말 나 같은 사람을 대변해주는 노래가 아니겠나, 하지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노래속 화자는 열정이란 불씨고 남아있고,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 가슴속 불씨는 꺼져 버린 것 같다.

먹는 것도, 게임을 하는 것도,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하는 거라 생각이 든다. 무언가 할 때 집중할 수 없고, 내면의 깊숙한 곳부터 공허함이 올라온다.

내면의 허무를 채우기 위해 노래를 들으며 심취해 있는 중, 친구가 곁에 다가온다.

그거 살려고?”

응 괜찮은데 마음 바뀌기 전에 사야지.”

그럼 빨리 사고 노래방이든 피시방이든 가자. 여기 들어 온지 벌써 1시간은 지난 것 같다 야.”

알았어, 뭐 이거 사고 나갑시다..”

점원에게 계산을 맡기고 밖으로 나설 때, 무언가 불편한 표정이었던 친구는 입을 뗐다.

요즘 많이 힘들지?”

그건 왜?”

그냥, 오래본 친구니까 드는 느낌적인 느낌?”

너도 알잖아,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지, 근데 떨쳐내야지 후우...”

이미 열정은 꺼져버렸는걸, 그리고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겠지.”

아니, 너희 부모님 잘못도 있고, 대책을 만들지 못한 너도 미련한 거지.”

그래......”

아니 너가 성인이 되고 다양한 길을 보게 해주는 건 부모가 맞아, 근데 너희 부모님은 그걸 동생한테만 열어주고 너한테는 안 보여준 건 맞아. 더 아는 건 없지만 그건 잘못한 거라 믿어. 하지만 한 가지 길만 보고 가다 넘어진 채로 아무것도 안하는 너도 아주 잘못한 거라고. 나도 무슨 직업을 가질까 고민을 했었고, 좌절도 했었지만, 너처럼 밟아도 꿈틀거리지도 않지는 않았어.”

그 정도로 격정적인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구만,”

심각해야한다 너는. 이런 말 다른 애들이 해줄 것 같나? 그나마 오래본 친구라서 이런 말 하는거다.”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았나?”

그건 하는 거에 달렸고 보는 거에 달렸지.”

그런가....”

잠시 동안의 실랑이가 끝나고, 둘은 멀찍이 떨어져 둘 다 이어폰을 낀다. 피시방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고 노래로 가득 차서 음소거 상태인 거리는 한 없이 분주하지만, 의미는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친구와는 항상 이렇다. 다투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얼마간 있다가 다시 가까워져서 다시 다퉜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것, 상당히 효과적이고 오랜 친구라 가능한 갈등해소법이다.

피시방이다. 머리를 식히도록 하자.

게임을 하며, 언제 다투었냐는 듯 다시 친근한 사람을 향한 비속어와 흥분감이 담긴 소리를 뱉고 또 듣는다. 멍해져서 가라앉았던 가슴도 정비를 새로이 한 엔진처럼 다시 달아올랐다.

열띤 플레이가 끝나고 흥분된 머리와 가슴을 진정시키고, 마지막 게임에 대한 총평을 서로 나누며 피시방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미 고점을 찍어버린 가슴은 다시 싸늘하게 식어가며 아까 다툰 것을 상기시키고, 또 냉정해진 머리는 후에 무엇을 할까, 무엇이 합리적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기...”

?”

아까는 그냥 화내서 미안하다.”

아니 건성으로 대답하고 소통해서 내가 더 미안하지. 그래도 너 때문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

허허. 그걸 게임 도중에 생각하고 바로 발표하시겠다?”

아직까진 난 내가 하고 싶은 것, 거기에만 앞만 보는 경주마마냥 달려간 것 같아.”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내가 하고 싶었던, 할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건 지인이었을지도 모르는, 아니면 TV프로그램에서 보았는지도 모르는 지금은 흐릿한 안개속의 기억의 단편들 때문이다.

 

언젠가 엄마한테 들은 적이 있다. 악기점에 강도가 들었을 때, 어떤 노숙자가 강도를 막아섰고, 노숙자는 강도에게 공격을 받아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었다. 사건이후 2주일 뒤, 노숙자는 가까스로 눈을 떴고, 이에 악기점 주인이 보상을 하려는데 노숙자가 한 말은 색소폰을 한번이라도 더 불고 싶다고 했었다고 한다. 그는 원래 능력있는 색소폰 연주자였는데, 사기를 당해 길거리에 나앉았고, 악기점을 매일매일 바라보면서 자신의 찬란했던 날을 회상하며 돈을 모으고 살아갔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 악기점에 강도가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의지가 되는 무언가를 잃기 싫었고, 그래서 용기를 내어 자신보다 덩치도 큰 강도를 막아선 것이었다.

어쩌면 나도 지금 그 상황에 놓여있는지도 모르는 일인 것 같았다. 내 의지가 되는 무언가를 강도에게 뺏기는 그런 상황, 내 열정과 의지는 부모님이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계기를 줄뿐. 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지? 라는 의문이 들고, 15분밖에 안 되는 그 시간을

느리게 가게하며 고민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피아노를 쳤었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왜냐면 동생이 더욱 예술적 재능이 있어 보였으니까.

동생은 예술이 싫다고 했고, 부모님은 수긍했다.

그래도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셨다.

비상금을 빼 학원에 등록했을때도, 매일같이 친구 집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을때도 구태와 욕설만 날아왔다.

난 그때 꺾인 것이다.

그때 조금만 더 버틸걸, 한번만 더 악을 써볼걸

아니 이미 아닌 길은 가는 게 아니야, 그쪽은 1등이 아니면 봐주지 않는다고.

왔다 갔다 하는 마음속 갈등, 이중 한쪽을 지지하지 않으면 난 영원히 목표를 잊어버린 채 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부정적인 것만 더욱 생각하려 한다. 그게 생존의 모토이고, 지금까지 발전해온 원동력이니까.

내겐 행복했던 시절도 충분히 있었다. 이사를 가서 내 방을 얻었을 때, 동생과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엄마가 아플 때 죽을 끓여 칭찬을 받을 때, 피아노로 저학년 상을 탈 때, 노래를 부를 때, 친구들과 어우러져 놀 때, 등등.........

특이점이 온다. 그리고 스치는 그 가사.

 

어차피 길바닥에서 죽어갈 뿐인 빌어먹을 인생

그렇다면 무대 위에서 받는 한 번의 박수갈채

이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걸

 

그렇다.

벽을 만드는 것은 나다. 부모가 아니고

벽은 없다. 선 긋고 선 안에 같인 개미처럼 머무르는 내가 잘못한 것이다.

여태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 그래서 일탈도 한 것이다.

근데 내가 나한테 좌절해 주저앉았다.

한 번 더 도전했었어야한다

한 번 더 바위에 계란을 부딪쳐 보았어야 한다.

한 번 더 승부 보았어야 한다.

 

 

 

한 번이라도 더 도전하면 나쁘지 않겠다.

그것은 다시 한번 불태우는 열정.

바보같은 선택이라도 내가 행복하면, 내가 의지가 있다면

꺾이지 않는다면

후회할 수 없다. 후회할리 없다.

길바닥에 누워 죽어갈 확률은 적지만

그 박수갈채, 한번이라도......

행복하고 싶다.

도전하고 싶다.

 

이윽고 내 입술은 떼지고, 성대는 떨리고, 그리스 잔뜩 끼어있는 심장은 기름때를 벗어던지고 쿵쾅대기 시작한다.

흥분의 시작이다.

생각해보니 세상은 더 넓은데, 점만 보고 선과 면은 쳐다보지도 않는 내가 부끄러웠어, 아직도 난 어리지, 기회는 한 번 두 번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눈빛도 바뀌고.”

선 긋고, 선 안에 머무른 건 나지, 선 그은 것은 주위 사람들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야. 나야 나. 잘못한 것은 나라고, 목표를 놓친 것도, 함부로 좌절한 것도 결국엔 나였어.”

잠시만, 너무 흥분했어, 주위 사람들 다 쳐다본다. 뭐냐 그 중2병 같은 대사는 근처 커피숍이나 가자 내가 살게 거기서 말해 알겠지?”

흥분을 자제할 수 없다. 방출해야 하는 것 같다. 흥분된 상태로 빠른 걸음으로 커피숍을 향한다.

거기서 간단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마시면서 마저 이야기를 한다.

이어서 말할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차라리 지금 한 번 더 도전해보는 게 좋겠다고, 행복하고 싶다, 도전하고 싶어, 도전도 안 해보고 좌절이니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니 하기엔 난 어린나이야.”

너무 빨리 태도가 달라져서 너무 놀랐어, 중학생 때 너 보는 것 같아. 생기가 확실히 도네.”

고맙다. 다시 생각할 계기를 주어서, 그리고 옛날부터 생각하고 실행하는 건 빨랐잖아.”

흥분이 가라앉은 나는 부끄러워 화제를 돌린다.

그렇긴 하지 항상 무언가 생각하고 실행하자 하는 놈은 너였지.”

이후 옛날 어렸을 적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이윽고 해는 숨어버리고 밤이 되어 버렸다.

커피숍에서 나오고 둘이 밤의 시가를 걷는다. 집에서 나올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한결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통통튀는 걸음걸이를 느끼며 걷는다.

어쩌면 오늘이 새로운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꽃이 피기위한.

집에 아버지와 어머니께 드릴 말을 생각한다.

두렵기보단 그냥 있는 대로 잘 말하고 싶다.

부정을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말하겠다.

주먹을 꼭 쥔다.

결의의 주먹이다.

목표란 것은 멀리 있지 않고 놓친 것 또한 아니었다.

언제나 잡을 수 있고, 바뀔 수 있는데 나는 그 동안 일부러 기회를 놓쳐가고,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았다.

지금부터 승부시간이다.

좌절 할 수 있겠지만, 상관없다.

집으로...

3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두려움이 층층이 쌓이고, 지지 않을 열정과 용기도 쌓여간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집은 저녁식사 전의 열기가 가득 차 있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저녁은?”

안 먹었어요. 그보다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을 하길래 눈까지 번뜩이면서 그라누.”

제 꿈에 대한 이야기요.”

일단 들어와라.”

어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아버지가 앉아계시는 소파 반대편에 앉는다.

그리고 거침없이 입을 뗀다.

아버지, 저 다시 음악으로 가도 될까요?”

...니 방금 뭐라 말했노?”

부모님이 동생을 편애한 것도 알고 자라면서 그 편린과 좌절도 겪었어요.”

이게 대학도 시덥잖은데 가갖고 뭐가 어째?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아버지의 분노가 눈에 번뜩이고 화낼 것이 뻔히 보인다.

지지 않는다. 꺾이면 영원히 설 기회는 없다. 침착하게 나는 핵심을 찌른다.

그러는 아버지는 제게 기회를 주셨어요? 제게 목적으로 발걸음을 한 발짝도 못 가게 막으셨잖아요, 물론 거기에 좌절해서 적당히만 성적 받고 적당히만 대학 간 저도 잘못한 거에요. 돈은 제게 지금은 상관없어요. 제가 필요한 건 지금 제가 그리고 앞으로의 제가 원하는 걸 하며 현실이란 것에 지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돈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는데 니가 행복할 수 있어? 먼저 돈을 벌어야 행복해 지는 거야. 인생의 즐거움은 나중에 찾아도 된다.”

상관없어요. 위험한 선택인 걸 전 알아요. 하지만 한 번의 기회와 도전도 못 잡아보았는데 단정지을 순 없잖아요? 그러는 아버지도 옛날에는 군인이 되고 싶어서 장교 학교 가셨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게 반대했다는데, 저도 한 번 오기를 부려도 되는 거 아닐까요? 한 번,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으셨잖아요. 저는 피아노를 치고 싶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저한테 끝까지 기회조차도 주지 않으셨는데 그런 말하긴 이른 것 같아요.”

음악하면 못살아 너한테 재능이 있을 것 같아? 네 동생도 그정도 재능으로....”

제발 그만하세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물러날 마음 없다. 꺾이면 끝이다.

그놈의 동생, 동생 지겹지 않으세요? 동생만큼의 기회를 주셨어요? 기회의 평등따윈 한 번도 없었잖아요! 제가 틀린 말 했어요? 단 한 번의 기회라도 주지 않으시고 제가 만든 기회는 짓밟았잖아요. 어린 시절 강한 의지를 짓밟은 것에 쾌감이라도 느끼셨나요? 전 아버지의 꼭두각시 아니에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부탁이에요. 편애의 대가라 생각하시고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열심히 할게요.”

니가 뭘 알아?”

아버지의 손이 올라간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손을 막고, 아버지를 힘으로 다시 소파에 앉힌다. 그러자 어머니가 악에 받힌 목소리로 아버지를 힐난한다.

여보 제발 손부터 올리지 마라고. 그게 비극의 시작이라고 형 동생 다 패놓고 자기 원하는 것만 하라고 한건 사실이잖아 자식들에게 미안한 것도 없나?”

이 여편네가 무슨 소리고? 내 돈으로 20년 넘게 먹인 거잖아?”

그라믄? 애를 왜 놓자 말하고 왜 아를 놓노? 책임은 우리가 지는 거잖아 독립하기 까지는 니 돈이면 어쩔거고 내 돈이면 어쩔낀데? 제발 구닥다리 같은 생각하지마라 그리고 애 키우는 건 의무다 애를 낳은 이상 거기 들어가는 돈은 우리 돈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한소리 한다. 아버지께 하는 것보단 감정이 덜 실려있다.

니도 아버지잖아. 더 힘쓰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라. 둘 다 차분해지라 저녁은 따로 묵자.”

, 오히려 후련하네요 방에 들어가 있을게요.”

알았다. 여보 얘기좀 하자. 그동안 우리가 쌓은 업보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인다. 흥분의 반동으로 피로가 엄습한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 흥분이 사라져간다. 눈을 감는다. 그대로 무의식의 세계로 간다.

 

왠지 울고 있다. 종아리에 멍이 들어있다. 화난 아버지가 막 팔다리를 휘두르고 있다.

아버지가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고, 나는 손으로 눈을 비빈다.

눈물의 장막을 걷어내니 난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고 앞에는 피아노가 있다.

옆에는 왠지 기타도 있다. 작은 나는 점점 현재의 나가 되어간다.

이윽고 건반에 손을 얹고 귀에 익은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저 멀리 친구들의 얼굴과 부모님이 보이고, 그동안 나를 지켜봐온 사람들이 내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연주가 마무리되자 그들은 박수갈채를 보낸다.

나는 일어서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이후에 휘청휘청대며 그대로 쓰러진다.

분명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날 둘러싸던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봐주고,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내 손을 본다. 손가락이 길어진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얼굴에 웃음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스르르 눈이 감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눈을 뜬다.

 

밤이다. 대략 8시에 침대에 누운 것 같으니 적어도 6시간은 잤으리라. 오묘하고 행복한 꿈이었다. 머리맡에 쪽지가 있다. 불을 밝히고 펼쳐보니 엄마의 글씨다.

 

아들 먼저 자네, 그 동안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했던 행동을 애써 무시하고 기회를 안줘서 다시 한 번 미안하다.

아버지랑은 이야기 했어 네가 피아노와 음악을 배울 수 있도록 설득했어.

아버지도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 원래 자기 잘못을 인정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원.

엄마는 놀랐단다. 오늘 네가 다른 눈을 가지고 무서워하던 아버지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네 의견을 말하고 그럴지는 이제 네가 다 크긴 했나보네.

편애는 평생 너에게 미안해야할 죄악이야. 그건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어떤 계기가 되었든 그 의지 꺾지 마.

, 그리고 학원이나 이런 거는 네가 찾아야 한단다. 돈은 엄마 비상금이라도 써서 대줄게.

꺾이지 마 열심히 해 알았지?

-엄마가-’

드디어 인정을 해 주시는구나 감개무량하다.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제는 기회가 온 만큼 노를 저어 나가야 한다. 그게 기회에 대한 대가니까.

바로 내가 피아노를 언제 무엇을 쳤는지 생각하며 근처의 음악 클래스를 찾아본다. 분명 끊어졌던 희망이라 분명 퇴보되어 있겠지만, 그 정도도 극복하지 못하면 아버지 엄마에게 한 말들이 모순이 되어버릴 것이다.

휴대폰을 뒤져보며 학원을 찾아보는 중, 고등학교 때 드럼을 치던 친구가 있었음을 떠올리고 3년 이상 연락을 끊은 아이지만 조심스레 다이얼을 눌러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도윤이니? 00인데, 기억나?”

어어.......기억이 나지... 덩치 적당히 크고 매일 노래듣고 있던 애?”

응 맞아. 부탁이 하나 있어 너, 음악학원 다녔잖아 그치?”

그렇지 지금은 안 다니긴 하는데, 혹시 음악에 관심이 생겼어?”

으응, 말하자면 길긴 한데, 소개시켜줄 수 있을라나.”

그래, 어느 쪽으로 나갈려고?”

피아노랑 보컬.”

그래 전화는 해볼게 좀 이따 문자해 줄게.”

고마워 나중에 만나면 밥 한 끼 살게.”

어 열심히 해라, 엄청 좋은 곳이니까.”

전화를 끊는다. 가슴이 벅차다. 잠시 후 문자로 주소와 학원의 이름이 왔다.

내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단련할지 생각지 않고 잠시 망상에 빠져본다. 내가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고, 버스킹을 하고 친구들과 노래도 부르는 나를.........

휴대폰을 켠다. 엄마에게 전화한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학원 찾았어요. 열심히 할게요.”

그래~”

 

라고 한게 제가 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 겁니다.“

 

그래서 그날이 현재의 자신을 만든 날이다 이 말이죠? 승재씨?”

, 그래서 전 아무리 생각해도 그 휴일과 그 다음날의 입씨름과 눈물, 그 다음날의 기회 때문에 이런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위에는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들려오고 나는 마이크를 들고 청중들의 앞에 서 있다.

희망은 꺾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차질이 생기고 반대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절망하지마세요, 용기와 정열을 다시 불태우세요. 다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설득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네 그리고 다음 노래는 제가 힘들 때 가장 도움이 된 노래입니다. 일본노래라서 참 죄송하게 되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노래에는 국경은 없다. 그게 제 신념입니다. 아마자라시의 피아노 도둑입니다. 마지막 곡이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자가 스테이지 뒤로 나가고, 무대가 어두워진다. 피아노에 앉고, 눈을 감고, 그날 그 멜로디, 그 때의 생각을 한다. 잠시 후 불이 켜지고 나와 피아노를 비춘다. 눈을 뜨고, 미소를 짓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술자리의 애교로도 나오고 무대에서도 하는 흔하디 흔한 인생이야기이기도 하다.

 

....

지금부터 무대야 맞아 내 차례거든 이래봬도 피아노는 특기란 말이지

 

내 피아노를 들어줘

 

어떠냐 내가 소중히 아껴놓았던 자신 있는 클래식 발라드

흘러나오는 건 멍청한 남자의 멜로디

집행유예와 함께하는 변변한 찬가

 

내 피아노를 들어줘

 

어차피 길바닥에서 죽어갈 뿐인 빌어먹을 인생

그렇다면 무대에서 받는 박수갈채

이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눈물이 흐른다. 청중들이 보지 못하게 빠르게 훔친다.

눈물을 훔치는 찰나에

현재의 행복감과 그 날 이전의 아픔이 겹쳐 올라온다.

눈물이 방울방울 넘쳐흐른다.

눈꺼풀이 그 날의 기적으로 넘쳐흐른다.

 

이런 바보 같은 남자를 위한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다.

눈물을 흘리면서 애써 웃으며 지금이 행복함을 청중들에게 보이려 노력한다.

개중에는 우는 사람도 묵묵히 박수치는 사람도 미소를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바보의 이야기와 노래는 다른 사람을 똑같은 바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곳은 바보로만 가득 찼다.

바보만.

바보만...

 

 

 

 

4

 

 

만족스런 옛 이야기를 한 콘서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차를 타고 있다. 몸을 시트에 뉘이고, 물수건을 눈 위에 얹는다. 긴장과 흥분감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의욕 없던 나날을 보내다 인생의 전환점을 모두에게 밝힌 나는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도 옛 일이 계속 생각난다.

나를 태운 차가 집 앞에서 멈춘다.

도착했습니다.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 오늘도 고생했고 내일은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아마 잡지 인터뷰 한 번 밖에 없을 겁니다.”

알겠어 내일보자. 조심히 들어가.”

네 내일 봬요.”

매니저를 보내고 나는 적적한 집의 현관을 연다. 집에 피곤한 몸뚱이를 밀어넣자마자 바로 침대로 돌격해 엎드린다. 그리고 몸을 뒤척이며 아직 흥분한 뒤 모두 식지 않은 머리로 옛날, 머나먼 저편의 단편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 날의 결심 후에도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성공하기 전에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 이후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또 내 노래의 방향성을 잡게 된)은 이것인 것 같다.

때는 한창 음악을 배우며 알바도 하던 25살 때의 이야기이다.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자고, 오후에는 음악학원을 다니는 그런 생활 사이클이 겨우 몸에 익은 그런 때였을 것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중 항상 같은 시간에 오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오전 1시만 되면 항상 편의점에 오셔서 담배 한 갑과 삼각김밥을 하나 사시고 유리문 밖에 쪼그려 앉아 삼각김밥을 먹고, 담배 한 대를 태우시고 가던 길을 가셨다. 아마 그 시점이 봄이 오기 전 겨울이었을 것이다. 항상 하얀 입김을 뱉으시면서 그렇게 하시는 게 불편해 보여 어느 날에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대답은 참 엉뚱했다.

학생, 피아노 치지?”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가지고 그분에게 불편하지 않냐 재차 물어보았다.

이유가 있나. 난 내가 정한 행동을 매일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 노망난 노인의 강박증이라 생각하면 돼,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네 지금 뜻이 있어 배우고 있어요. 노래랑 함께요

할아버지의 눈이 초점과 생기가 돈다.

거 잘 됐구만.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아. 자네 손가락 사이사이가 넓게 벌어져 있었거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데요?”

, 난 이래봬도 옛날에 음악 쪽에 소질이 있었다고, 지금은 이름아래 뻘건 줄이 쫙 그어져 있지만은.”

어휴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그건 말하자면 추레한 내가 더 초라해 보이지 않겠나?”

그렇죠.”

뭐 상관없네, 학생, 내 말을 내일도, 모레도 들어줄 수 있는가?”

?”

그럼 내일도 오겠네.”

명료한 대답을 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그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밤의 일의 모두 끝나고 잿빛의 베일을 벗기고 아침 해가 뜰 때 집에 가서 침대에 몸을 뉘인다.

몸과 마음은 피로로 찌들어 더 이상은 잠이란 장사를 이기긴 어렵게 되었지만 머릿속 한 켠에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맴돌았다.

그래도 점점 잠에게 정신을 빼앗긴다. 눈이 감기고, 그대로 잠에 든다.

 

일어나보니 정오 즈음 되었다. 6시간 정도 잔 것 같다. 몸의 피로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겠지만 혼란스러웠던 정신은 아직 덜 깨었는지 눈꺼풀이 무겁다. 한 시간만 더 잘까 생각을 하지만, 딱히 잔다고 좋은 것은 없을 것 같아서 어렵사리 이부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킨다. 거실로 나와보니 밥 한공기와 몇몇 반찬, 계란말이와 콩나물국이 랩에 싸여 식탁에 놓아져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한상 차리고 일하러 가셨나 보다. 음악을 시작하고 시간이 상당히 지났지만 한 번 지원해주기로 한 어머니는 그 지원을 끊지 않으셨다. 엄마에 대한 감사로 간단히 고개를 숙인 뒤 식사에 들어간다.

식사를 끝내고 뻐근한 몸을 풀고 있던 차에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금일부터 내부 공사로 인해 3일 동안 학원이용이 어렵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원장-’

원래 다음 주로 예정이 되어 있었는데 당겨서 공사를 하나보다. 그럼 오랜만에 오후시간대가 알바를 가기 전까지 비어버려서 그 비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잠시 고민에 빠져본다.

일단 오후시간대는 내가 노래를 부르든 피아노를 치든 주민들이 뭐라 하지 않는다. 전보다 일취월장한 노래와 피아노실력을 나 자신에게 점검 차 시간을 채울까 아니면 요즘 보지 못한 친구들을 보러나갈까 아니면 레코드샵에 가서 새로운 앨범을 사올까 선택지는 적지만 셋 다 나에게 적잖은 위로와 휴식, 그리고 멘탈회복도 되는 선택지라 쉽사리 결정내기는 어렵다.

일단 2안으로 생각을 굳히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본다.

몇몇은 공부한다고, 몇몇은 할 일이 있다고 안 된다고 한다.

내가 친구들과 다른 시간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즉 그 날은 평일이었을 것이다.)

2안을 폐기하고 남은 두 선택지를 저울질 하고 있는 찰나 이런 여유있는 시간 때 레코드 샵에 가서 다른 가수들의, 밴드들의 노래를 들으면 자기계발과 음악적 성장을 이룰 수 있어 일거양득이 아닌가란 생각이 머리를 관통해 지나간다. 지갑을 들어 현금을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카드의 잔액을 확인한다. 넉넉하게 남은 잔액, 이정도면 가도 어떻게든 나의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다. 결정.

바로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이 머리부터 발까지 감싸 적시기 시작하고 이내 비누거품이 온몸을 덮는다. 다시 물을 끼얹어 비눗기를 씻어내니 건장한 청년의 진한 냄새가 물과 비누와 함께 씻겨 내려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감과 청량감이다. 욕실에서 나와 속옷을 입고, 머리를 이리저리 휘적이며 열풍을 쐬어 말린다. 옷은 아주 실용적으로 방한에 신경써서 내복을 갖춰 입고 그 위에 스웨터 패딩, 기모처리가 된 청바지를 입고, 외출준비를 끝낸다.

밖을 나오니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스치고, 그 압도적인 상쾌함에 몸을 떤다. 오늘도 시내까지는 걸어간다. 여유롭게 걸으며 노래를 듣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탁월하고, 또 가는 동안 듣는 노래도 많아진다. 추운날씨는 방한대책을 착실히 하고나온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 처음으로 듣는 노래는 조금 레트로하게 옛날 노래로 들었다. 바로 예전 영화로 다시 주목을 받은 밴드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이다. 옛날 보험회사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쓰였는데, 제목의 뜻을 알면 그야말로 개그가 따로 없다. ‘한 놈 더 저승으로 간다.’ 노리고 넣은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광고를 해야 했나 생각이 든다. 오늘은 가는 동안은 퀸의 노래로 옛날 감성을 몸에 집어넣어야겠다.

Are you ready, hey are you ready for this?

Are you hanging on the edge of your seat?

out of doorway the bullets rip

To the sound of the beat

 

Another one bites the dust

Another one bites the dust

And another one gone, and another one gone

Another one bites the dust

Hey, I'm gonna get you, Too

Another one bites the dust

 

몇 년이 지나 점점 바뀌고 새로워진 시가지, 한 가게가 성행하다 문득 사라지고, 시내 활성화를 위한 야시장도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고, 그저 먼지만 날리게 되었다. 하지만 내 안식처인 레코드샵는 마지막 잎새 마냥 원래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외관도 조금 더 낡았고, 종업원도 많이 바뀌었지만 어쨌든 거기 남아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레코드샵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찬 공기를 서서히 들이마신다. 머리가 냉정해진다. 마음속의 묵은 때를 털어낸다. ‘그 날이후로 생긴 버릇이다. 기쁘든 슬프든 당혹스럽든 강한 감정이 내 마음을 때리고 지나갈 때마다 가라앉히기 위해 한숨을 쉬게 되었다.

아마 그 때의 한숨은 기쁜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쉬었던 것이리라.

레코드샵에 발을 들인다. 훈풍이 몸을 감싸고 체감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오늘은 영어 노래를 공부 할 겸 사러 왔기 때문에 곧장 해외코너로 간다.

그 날은 왠지 가게 주인이 카운터를 보고 있었고, 주인은 나에게 학생, 혹시 옛날노래에 관심있나? 그러면 이번에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리마스터링 앨범이랑 퀸 메이드 인 헤븐 리마스터링 앨범이 들어왔어.”라 말하셨기 때문에, 그 두 앨범의 샘플링을 들어 본다. 둘 다 중2병이 돋았을 때부터 듣고 좋아했던 유이한 옛날밴드이기 때문에 지금은 녹음된 것 밖에 들을 수 없는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솔로와 프레디 머큐리의 피아노와 음색을 느끼며 솟아오르는 구매 욕구를 채울까 말까 저울질 하고 있는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학생!”이라 놀란 목소리로 나이 드신 분의 목소리가 노래과 나로 이루어진 시공간을 깨고 들어온다.

자네 편의점에 아르바이트 하는 그 학생 맞지?”

?”

맞구만, 맞아. 자네도 나를 매일 보았겠지 매일 담배와 삼각김밥을 사간 할아버지를.”

네에에?!”

그 목소리의 주인은 매일같이 오전 1시에 오셔서 담배를 사시는 노인이었지만,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그리 놀랄 필요가 있는가. 매일 보는 사이인데.”

그런데 왜 여기에, 또 평소와 옷이 다르시네요.”

난 그 추레한 노인이 맞네, 이 옷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고, 자네가 그렇게 놀라면 이쪽이야말로 기분 나쁠 수밖에 없네.”

노인은 상당히 비싼 재질의 정장(하지만 오래되어 보이는)을 입고 있었다.

분명 편의점에 올 때는 누더기 같이 여러 장의 옷을 이것저것 입고 있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지만, 지금 보는 그는 새벽의 나는 잊어주게라 무언으로 말하듯 풍격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은빛으로 빛나고 뒤로 넘겨 고정한 머리카락하며, 오래되었지만 깔끔한 정장과 구두. 피곤에 찌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드러내니 상당히 위풍당당한 얼굴, 마치 근대의 신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머리에 육중한 충격이 온다.

 

 

5

 

 

충격에 어벙벙해진 나를 보고 노인이 덧붙여 얘기 한다.

뭐 세상사 새옹지마라지만, 이건 좀 특별하구만. 학생 잠시 나가지 않겠나?”

노인의 말을 따라 잠시 레코드샵을 나갔다.

, 뭐부터 이야기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분명 음악하는 사람이었지?”

, 피아노 조금 치고, 노래 좀 배우고 있죠.”

나랑 비슷한 것을 하고 있구만, 나도 예전에는 피아노도 치고 그랬다고.”

그럼 그 양복은....”

그렇네, 그 영광의 시절의 파편 중 하나지 이래 보여도 꽤 잘나가는 연주자였다네 좋은 밴드에도 들어가 있었고.“

그렇다면 왜 지금은 그런....”

지금 말하기는 그렇네, 하지만 나도 노래가 너무나 듣고 싶지만 꾀죄죄한 모습으로 들어가면 과거의 나에게 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서 나 자신의 안정을 위해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거 라네. 그럼 이만 하던 것 마저 하시게. 다음에 또 보세.”

도망치듯 빠르게 노인이 멀어진다.

대화로 명확하게 그의 과거를 엿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예전에 큰 일을 많이 겪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레코드샵에 들어가 다시 샘플링을 들으며 무엇을 살까 고민했지만, 노인생각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아 노래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잠시간의 생각 끝에 오늘은 앨범 사는 것을 보류 하도록 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뉘인다. 알바 시간까지는 휴식을 취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게 한다.

 

일어나 휴대전화를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확인한다. 부재중전화가 3, 문자와 카톡이 각각3개씩 와있다.

전화는 모두 친구들의 것 이었다. 내가 뿌린 전화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카톡도 마찬가지 였고, 문자는 하난 스팸문자, 두 개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아들, 오늘 엄마 늦을 것 같으니까 알바가기 전에 저녁 꼭 챙겨먹고 나가거라.’

거실 서랍장에 상품권 넣어 놓았으니까 그걸로 장봐서 먹고 싶은 거 해먹어라

알바 시간까지는 2시간 남았다.

잠시 장을 보러 밖을 나간다.

오후의 일 때문에 밥 생각이 거의 없지만, 길고 긴 야간 아르바이트를 버티기 위해서는 그래도 뜨끈하게 속을 채워야 한다.

마트에 들어가 보니 야채호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것은 효율적으로, 특히 뒤처리가 어렵지 않은 음식이 시간적으로 더 합리적이다.

3개 할인가 4천원 가격도 비싸지는 않다.

같이 마실 캔 음료수도 하나 골라 카운터에 놓는다.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욱여 박고 성큼성큼 집으로 가서 전자레인지에 호빵을 집어넣는다.

뜨거운 것을 잘 못 먹기에 먹기 좋은 온도가 될 때 까지 좀 더 따뜻한 옷과 이어폰, 그 외 알바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놓는다.

호빵이 먹기 좋은 온도로 식었다. 호빵을 입에 넣으면서, One Ok Rock의 노래를 튼다.

so this is heartache

so this is heartache

주워 모은 후회는 눈물로 바뀌어 oh baby

so this is heartache

so this is heartache

그 날의 너의 미소는 추억으로 바뀌어 버려

I miss you

노래를 들으며 내가 어느 쪽,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현재는 락발라드 쪽을 주로 배우고 있고, 이외에 곁들여 재즈와 해외 팝을 배우고 있다.

여러 장르를 섭렵해야 해 조금 더 피곤하기는 하지만, 현재는 어떤 일이든 한 가지만 해서는 부족하다.

짧은 고민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끝내고 나서 옷을 단단히 입고, 알바를 하러 집을 나선다.

시간은 권태의 늪에 빠져 있는 나를 느리게 끌고 갔지만, 착실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지나가 새벽 1시가 되었다.

슬슬 그 노인이 오지 않겠나 싶었지만, 30분이 지나도록 노인은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오늘 오전에도 만난 사람인데...... 알바를 시작 할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오셨던 분이라 무언가 아쉽고 기분이 이상하다.

이후 몇몇의 취객들과 커플들,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노인은 오지 않았다.

또 권태로 둘러싸인 시간이 지나가고, 또 밤의 종족들이 스쳐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밤은 서서히 새벽빛에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인은 결국 오지 않았다.

후번 교대에게 인수인계를 해주고 가게를 나올 때 까지 노인은 오지 않았고, 나는 이내 집으로 가 버렸다.

집에 도착하자 잠이 쏟아진다. 그냥 옷만 허물처럼 벗어버리고 침대에 눕는다.

 

눈을 떠보니 정오쯤 된 것 같다. 오늘은 엄마께서 집에 계셨다.

오 아들 일어났나? 알바 고생했다. 아침은? 아니다 점심은 먹을끼가?”

네 엄마, 간단하게 주세요.”

정수기에서 냉수 한 잔을 받아 마신다. 차가운 물이 정신을 맑게 몸을 차게 해준다.

나한테는 요 일주일 동안 정적만이 돌았던 부엌에 오랜만에 온기가 돈다.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나서 거실 소파에 앉아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본다.

 

뉴스에서는 요 몇 달 사이 유행하고 있는 전염병과 정치문제, 요 근래 있었던 살인사건 등을 다루었다.

뉴스를 보고나서 휴대폰을 확인하니 문자가 3통 와있다.

친구 재혁이가 만나자고 하는 문자가 2통이 와 있었다. 엄마에게 말씀을 드리고 나갈 채비를 한다.

재혁이가 만나자고 한 곳은 동네의 한 만화방이었다. 예전에는 많이 갔었는데 지금은 바빠서 못가고 있는 곳이라 오랜만이다.

어 승재 왔나?”

어 왔지. 그런데 왜 불렀냐?”

그냥 만화 좀 보면서 덕질 좀 하자구, 오늘도 학원 쉰다매?”

그렇긴 한데, 굳이?”

요즘 관심 있는 작가 신작 나왔는데 입고되었다 들어서.”

몇 년 전만 해도 나보고 씹덕이라는 새퀴가 이제는 덕질 하자고 조장하노.”

그럴 수도 있지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다.”

알았다. 항복, 그럼 1시간 반 정도만 보자.”

그래, 자 회원권 카드.”

내 이름이 적힌 만회방의 회원카드가 재혁이의 손위에 있다. 예전에 잃어버렸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 맡겨놓고 까먹었나보다.

다른 말은 굳이 오해를 살까 말을 줄이고, 화제를 돌린다.

요즘 뭐한댔지? 너 기계, 전기 쪽 아니었나?”

그냥 백수지 군대 갔다오고 1년도 안되었는데.”

너 군대 늦게 갔지 참.”

그렇지 뭐

회원권을 찍고 만화방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간다.

만화방은 2면이 거대한 책장으로 되어있고 2면에는 의자, 테이블과 땅굴이라 불리는 낮은 공간이 여기저기 있었다.

들어가서 책장에서 얼마 전에 완결 된(되었다고 재혁이가 가르쳐 준) 작가의 책을 내가 가장 마지막에 보았던 권의 다음 권부터 서너권정도 조심히 빼든다.

그리고 한 땅굴에 자리잡고, 무릎담요를 덮고 최대한 편한 자세로 탐독한다. 이 만화는 눈이 보이지 않는 가수와 듣지 못하게 된 작곡가의 이야기인데 한때 빠져서 몇 번을 반복해서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감명 깊게 보았던 책이기도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혁이도 각각 다른 시리즈의 책을 네 권 뽑아들어 내가 있는 곳에 와서 누웠다.

그리고 무언의 체크를 한 나와 그는 만화의 세계에 잠시 말없이 빠져들었다.

 

얼마 후 책을 모두 읽었을 때 거진 한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재혁이는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한 모습이다. 아무리 편한 자세라도 오래 있으면 온몸이 찌뿌드드 해진다. 일어서서 기지개를 펴고 읽던 책의 바로 뒤의 권을 두 권 뽑아서 다시 온다.

돌아오니 재혁이가 물어본다.

승재 심심하나?”

딱히, ?”

볼 건 다 봐서 그렇다. 그래서 명분 좀 잡을려고.”

자신의 의도를 남한테 알리는 바보가 있네, 아 이거 막 뽑아왔는데.”

피방이나 갈까, 요즘 같이 게임 안한지도 꽤 됐잖아.”

“....알았다.”

다시 책을 책장에 도로 돌려놓고 나서 만화방을 나섰다. 피시방은 같은 건물에 있기에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기를 몇 시간, 이제 알바를 생각해야 하니 작별의 시간을 고하기로 한다.

작별의 인사를 하고 피시방을 나서는데, 계단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인지 궁금증이 생겨 계단으로 건물을 내려가 본다.

역시 한 사람이 캐리어가방을 베개삼아 몸에 이것저것 휘감고 자고 있었다.

깨워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을 하는 중에 그 사람이 일어난다. 그리고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캐리어를 들고 몸에 걸친 것들을 악착같이 싸들며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이상한 사람이네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그 사람의 눈매와 눈동자는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났었지만, 긴가민가해서 애써 누군지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챙겨먹고 오늘도 피곤한 야간 알바를 하러 간다.

오늘은 알바 교대 때 정산에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해결하는 데 진을 뺐다. 전번초를 속으로 욕하면서 바쁘게 빠진 물건이나 계산을 찾으랴, 손님 맞으랴 아주 바빴다.

오전 1시를 10분 남기고 문제를 해결하고, 나는 카운터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좀비처럼 서있었다. 1시가 되고 오늘은 그 노인이 편의점에 와서 담배와 삼각김밥을 사서 나갔다. 여기까지는 평소의 풍경이지만 조금 분위기는 달랐다. 항상 계산을 할 때 눈을 마주치던 노인이 오늘은 안절부절 못하며 애써 눈길을 피했다. 또 다급하게 담배와 삼각 김밥을 계산하고, 나와서 근처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가져가서 먹으려는지 가던 길을 바로 가버렸다. 내가 먼저 말을 걸려 했지만 그조차도 애써 피하면서.

6

 

 

이후로는 당분간 노인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노인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몇 달 동안은 같은 생활 사이클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을 서서히 잊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다시금 머리에 새기게 된 계기는 시내에서의 사건이었다.

그 날은 기억 상으로 노인이 안 보이게 된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뀌어 무더운 여름 일 때였다.

나는 그 때 알바를 그만 두고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시기였다. 그 날은 그냥 시내로 나가고 싶었기에 머리도 식힐 겸 친구들을 불러 시내로 나갔었다.

시내는 그 해부터 상설이 된 야시장 때문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했다.

알바하는 동안 소비가 많이 줄어서 그런지 돈이 꽤나 많이 모였고, 쓸 수 있는 돈도 꽤 있어서 친구들에게 한 턱 쏘기로 한다.

야 원하는거 하나, 아니 두 개까지 골라봐 한 턱 쏜다.”

이야 승재 돈 많나 보네 웬일로 너 같은 짠돌이가 한 턱 쏘노.”

입 닫고 시키기나 시켜라 재혁아.”

그럼 우리 저기 랍스터 치즈구이나 먹을까?”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에이 8500원 정도야 애교 아닌가?”

알았다 장부일언중천금 지킬게 사라.”

와아 오케이

남자네

친구들이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시키기 위해 흩어진 가운데, 나도 무언가를 시키려 한 곳의 매점에 가서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 도중에 저 멀리 실랑이가 났는지 소란스런 인파가 보인다. 일단은 음식을 먹어야 하니 애써 무시하고 한 테이블을 잡아 친구들과 모여 음식을 나눠 먹었다. 친구들은 신기한 해외 음식, 전통적인 한식, 간식거리, 또 일본만화의 마쓰리에서나 볼만한 그런 음식 등 각양각색의 음식을 보여주며 맥주도 걸쳐서 신나게 떠들고 마시고, 먹어댔다.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나서 개중에는 취기가 올라온 친구도 있었고, 아직 양이 안찼다며 아쉬움의 한마디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일단 한 친구의 제안대로 노래방에 가기로 해서 친구들을 먼저 노래방으로 올려 보내고 앞에서 잠시 담배를 태우는 재혁이랑 잡담을 하고 있었다.

아까 매점에서 본 소동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듯 아직도 소란스러웠다.

뭔 일이길래 아직도 시끄럽누 그렇제 승재?”

한 번 보러갈까?”

그래? 그래 함 보자.”

소동이 일어난 지 꽤 됐지 싶은데.”

그리하여 소동의 진원지로 둘이 가보았다. 그 곳에는 누더기를 입은 노숙자 한 명과 멀끔한 정장을 입은 노인 네 명과 젊은 여성 한명 젊은 남성이 한 명 있었다.

아버지, 저 희수에요 제발 같이 돌아가요.”

저는 당신 같은 사람 몰라요 제발 가라구요.”

요한 나라고 너와 같이 음악의 길을 걸은 수영이라고 제발 정신 좀 차려

안타깝네, 제발 우리를 따라오게 도움을 줄 터이니.”

아버지 왜 딸을 딸이라 부르지 않는 거예요?”

나는 너같은 딸, 아들 친구 둔 적 없다고. 제발 가세요. 제발 가라고!!”

어느새 기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고 이제야 경찰이 그들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자 서에 가서 말합시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그러더니 노숙자는 주위를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아는 사람을 찾은 듯한 표정을 하고 한순간에 내 쪽으로 뛰어와 저놈들 좀 쫒아내라며 내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노숙자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굴이 굳어 버렸다.

그는 수 개월 전 항상 편의점에 오던 그 노인이었다.

경찰관이 노인의 옷자락을 잡고 끌며 굳어버린 나에게 말했다.

혹시 관계자 되십니까?”

“........?”

이 할아버지 관계자 되시냐고요.”

, 아닙니다. 예전에 뵌 적 있는 분인데 저 알바할 때 항상 오시던 손님이셨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죄송하지만 전화번호 좀 주시겠습니까? 혹시 몰라서 그렇습니다.”

, 알겠습니다.”

안 된다. 나 살려줘 학생 안 된다 안 돼!”

노인이 끌려가고 나서 나는 전화번호를 경찰관에게 주고 난 뒤 재혁이와 함께 노래방에 올라갔다.

재혁, 승재 왜 이리 늦었누 둘이 또 뭐 먹고 왔나? 담배 태우는거 아니었나?”

미안, 내 요즘 담배피는 양이 늘어갖고, 꼴초 다 되었다.”

재혁이가 눈짓을 하자 나도 대충 둘러댔다.

어 맞다. 얘 요즘 많이 피드라 스트레스라도 많이 받는지.”

찜찜한 기분으로 노래를 몇 곡 부르고 친구들과 헤어지고 재혁이와 단 둘만 남았다.

승재, 그런 일 갖고 이래 엮이면 귀찮지 않나?”

뭐 정직한 게 재산인데 후회는 안 한다. 아는 걸 안다 하지 뭘 굳이 거짓말을 치겠누.”

곤란해지면 전화나 문자 한통 주라 도움 될 수 있는 대로 줄게.”

니가 뭔 도움이 될라고. 마음만 받을게.”

그럼 잘가라잉.”

오케 조심해서 들가라.”

다음 날

정오가 된 이후 조금 지나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그 노인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해서 와줄 수 있냐고 정중히 부탁을 하길래 일단은 부탁을 들어 노인과 이야기를 하기위해 00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엔 어제 소동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다. 경찰관은 나를 노인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할아버지, 저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 들어서요.”

어 학생 왔는가. 내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미안하군.”

, 아니요 미안할 필요까지야 마땅치 않는 소리죠.”

내 이야기를 들어 주겠나?”

몇 달인지 모르지만 그 전에 말해주려 했는데 못해서 말이야.

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다루었고, 청년이 되자마자 마음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여 노래를 부르고는 했지. 70년대에 한창 문화 탄압이 심했을 때도 숨어서 여러 극장에서 노래 부르고 했었지. 뭐 그 당시의 유명한 가수 아이콘 급은 아니지만, 나름 수입도 괜찮았고 그랬었지.

탄압이 끝나고 나서 나와 나의 친구들이 만든 밴드는 멤버는 몇 명 바뀌었지만 고점을 찍고 전성기에 다다랐었지.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그랬다고. 그 때 미국 회사에서 우리 밴드를 메이저로 만들어 준다고 계약을 하자고도 했었네.

하지만 영어를 모르던 나는 하기 싫다고 했지만, 영어를 할 줄 알던 한 녀석이 가보자고 하더군, 그게 나를 좀먹는 사기극일지는 몰랐지만.”

사기극 이라뇨, 그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상놈의 양놈들은 계약서에 우리가 냈던 노래의 저작권을 가져간다고 명시를 해놓았지. 근데 영어를 할 줄 알던 놈은 그 회사와 작당을 하여 그 돈의 일부를 받기로 약속을 해버린 거지.

그래서 나와 내 밴드는 바다건너 미국으로 가서 여러 극장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고 음반을 만들었지. 처음에는 현지에서 신기하다며 반응이 좋아서 수익을 많이 올렸었지. 그 때가 좋았지 좋았어. 하지만 4년도 안되어 우리의 노래는 좋은 반응을 더 이상은 받지 못했고, 회사에서는 재계약을 거부했고, 저작권도 모두 뺏겨서 우리는 우리노래를 우리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눈물을 흘리며 고국으로 돌아왔네.”

아 그렇군요.”

장승재씨, 이제 사건 조사를 해야 되는데, 슬슬 이야기를 끝내주세요.”

바깥에서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듯 하구만, 다음에 또 내 이야기를 들어주게나.”

...”

 

경찰서에서 나와 휴대폰의 시계를 보니 2시 즈음 되었다. 3시부터 레슨이니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은 하고 싶은 노래를 연주하고 부르는 레슨을 하는 날이다.

나는 몸 풀기로 자전거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고, 본편으로는 One Ok Rock'Wherever you are'을 부른다.

 

Wherever you are I always make you smile

Wherever you are I'm always by your side

Whatever you say the feelings and thoughts all in my head

I promise you forever right now oh yeah

 

노래가 끝나고 감상에 젖어 몇 초 동안은 눈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이 입을 떼신다.

, 처음 무대포로 와서 가르쳐 주십시오 하면서 왔을 때가 언젠데 벌써 이만큼 잘하네, 이제는 거의 웬만한 언더 밴드 보컬 급은 되겠어, 근데 아직 멀티태스킹이 부족한 것 같은데 싱크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다. 고쳐 그런 건.”

네 알겠습니다.”

이제 많이 왔어, 같이 활동할 친구나 밴드, 아니면 공연거리 생각하고 있지?”

네 찾아보고 있어요.”

그래, 그날까지 기량을 끌어 올려야지 좀만 더 열심히 해.”

.”

그럼 쉬러가 수고했어.”

 

레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소파에 퍼질러 앉아 쉬고 있는 그때 엄마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통화를 누르니 어머니께서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승재야 니 혹시 경찰서 갔나? 내가 술 좀 작작 마시라고 했잖아.”

아니 엄마, 어제 작은 사건이 있었는데 내가 알바 할 때 맨날 온다고 했던 할아버지 기억나요?”

어 기억나는데?”

그분이 무슨 사건에 휘말렸는데 나까지 휘말려서.”

조심 좀 하지 그래가 별 문제 없고?”

, 문제없어요.”

알았다. 밥 안 안쳐놨는데, 밥좀 안쳐놔라.”

잘못한 게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밥을 안쳐놔서 적절한 시간에 밥이 되었고, 엄마가 사온 오징어 회를 반찬으로 간단하게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엄마는 불안했는지 다시 물어본다.

니가 뭔짓 한거는 아니제? 맞제?”

, 그분이 저를 붙잡고 늘어져서 그런 거예요. 전 맹세코 허튼짓 안했어요. 재혁이도 같이 있었는데 걔한테도 물어보세요.”

글체? 믿는다.”

 

대화가 끝나고 이러저러하게 시간을 보내다 침대에 눕는다.

스르륵 잠에 들때까지도 나는 그 노인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