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이정엽, 「하늘에서 용이 떨어진 건에 대하여」(2020-1학기 <웹소설창작과비평>)
등록일
2020-07-10
작성자
국어국문학과
조회수
178


 

 

 

1화 첫 번째 별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누구에게나 정해진 짝이 있다고?

 

그런거 듣기 좋게 포장된 광고 문구일 뿐이잖아.

 

그래,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깨를 볶고 있을지도 모르지.

 

다만..

 

그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을뿐..

 

 

 

 

“..아 너는 왜 그렇게 욕심이 없니..?”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여인이 손에 새까만 뱀을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엄청 위험해 보이지만 뱀은 얌전히 여인의 손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또 이 꿈..

 

잊을만 하면 꾸게 되는 이 꿈은 항상 한명의 여인과 한 마리의 뱀이 나온다. 여인은 뱀에게 욕심 좀 가지라 말하고.. 뱀은..

 

가지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처음 이 꿈을 꿨을 땐 뱀이 말하는 것에 대해 매우 놀랐지만 몇번 반복해서 꾸게 되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궁금한 건 여인이 뱀을 부를 때 이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꿈인데 어떤가.. 어차피 일어나면 사라질 것인데..

 

뱀이 대답했으니 이제 여인의 마지막 말과 함께 잠에서 깰 차례였다.

..아 그럼.. 나는..

아직도 꿈인 것 같나요?”

 

..?!

 

지금까지 꾸던 꿈과는 전혀 다른 진행.. 무엇보다 지금까지 뱀을 보고 있던 여인의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한 파란색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말한건가?

 

. 당신에게 말한거랍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게 미소지어 보인다.

 

이건.. ..??”

. 맞아요. 이건 당신의 꿈이긴 하죠. ..”

 

당황하던 내게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하는 여인의 팔이 보였다. 그걸 보며 담담히 말을 잇는 여인.

 

.. 아직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보네요.. 그럼.. 다음에 봐요.. ..아니 영주님.”

 

 

오 영주야 오늘은 지각 안했네?”

 

교실에 들어서자 검은 단발에 얌전해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활기차게 물어오는 소녀.

 

수영아 안녕. 오늘은.. 악몽을 좀 꿔서 일찍 일어났거든.”

.. 또 그 꿈..?”

머 일단은.. 그 꿈..”

 

수다가 시작되려 할즈음 교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자 다들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아라. 아침 조회하자.”

 

선생님의 등장에 교실은 마치 잘 정돈된 서랍장처럼 변했다. 우스운 일이다. 선생님의 권한인걸까? 선생님의 한 마디에 교실의 아이들이 군인처럼 통제가 된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재를 보고 똑같은 수업을 받는다.

 

지루해.. 으악..!”

 

창밖을 보던 영주에게로 새하얀 분필이 날아들었고 정통으로 맞은 영주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걸 보고 웃느라 정신없는 반 아이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 반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조용조용. 거기 영주님 창밖보지 말고 나와서 이 문제 풀어봐라

 

분필을 던진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문제를 풀게 시켰지만 별명 때문에 아이들은 다시 웃음바다가 된다.

 

영주님. 영주라는 이름 때문에 어렸을때부터 영주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달콤한 로맨스를 꿈꿨으나 학기 초부터 영주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려 이제는 그냥 전부 친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하아.. 내 팔자가 이렇지 뭐.. 으악..!”

자꾸 뭐라고 중얼거리는거야?! 빨리 나와서 안 풀어?!”

 

또 한차례 분필을 날리며 소리치는 선생님이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하굣길..

영주는 수영과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거기에 주먹을..!”

아 맞다!”

 

평소처럼 수영의 수다를 들으며 걸어가던 영주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멈춰섰다.

 

깜짝이야.. 무슨 일이야??”

.. 핸드폰을 두고 왔어..”

“..? 하아.. 아침부터 상태가 이상하더라니.. 핸드폰을 두고 오냐..”

미안한데 같이 가주면.. 안될까..?”

뭐야 여전히 학교가 무서운거야?”

 

영주와 수영이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몇가지 괴담으로 유명했다. 제일 유명한 괴담 중 하나가 바로..

 

학교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그런거 장난인게 뻔하잖아.”

우으.. 그치만! 나 귀신에 약한거 알잖아..”

 

영주는 무엇보다 귀신을 엄청 무서워했다. 오죽하면 중학교때 학교에서 축제때 만든 귀신의 집을 보고 혼절했을 정도였다.

 

깔깔깔 맞아맞아 너 귀신에 엄청 약했지.”

 

반대로 수영은 할머니가 무당이셨기 때문에 어렸을때부터 귀신같은건 무서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안. 오늘은 할머니 도와드리기로 해서 빨리 가봐야해. 나 간다~. 파이팅!”

 

그 말을 마지막으로 냅다 달려가버리는 수영.

그런 수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영주는 터덜터덜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으으.. 왜 하필 들어간 고등학교에 이런 괴담이 있는 학교냐구?!”

 

투덜대며 학교로 걸음을 옮기는 영주.

학교가 무서워 옮기는 걸음이 느려지고 있지만 하늘은 야속하게도 어두워지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결국 학교에 도착할 즈음에는 하늘은 이미 새까만 상태였다.

 

하아.. 내가 핸드폰을 왜 두고 왔을까..”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며 서서히 학교로 들어서는 영주는 아직 열려있던 교문 사이로 들어갔다. 마치 호러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학교에 겁을 먹었지만 핸드폰만 얼른 가지고 나오자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복도가 들어오자 아무 생각도 들어오지 않았다.

 

“2.. 2층에 빨리 가서 얼른 핸드폰만 갖고 나오는거야..!”

 

터벅.. 터벅..

 

아무도 없어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울리자 영주는 다시 겁을 먹고 제자리에 멈춰섰다.

 

히이익!”

 

이내 얼른 올라가자는 생각에 냅다 뛰기 시작한 영주. 계단을 뛰어올라 2층에 올라선 순간.

 

까꿍~!”

“.. .. ..”

어라..?”

 

눈앞에 나타난 새하얀 가면에 놀라 멈춰섰다. 아무 말 못하고 가만히 서있자 새하얀 가면은 손을 들어 영주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어라라? 뭐지?”

 

자세히 보니 하얀 가면의 몸은 새하얀 천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발이..

 

발이.. 공중..공중에.. ....? 으게엑..”

 

발이 공중에 떠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영주는 선채로 기절해버렸다.

그런 영주를 보며 재밌어하는 새하얀 가면.

 

어라? 기절했어? 기절했다! 꺄하하! 너 정말 재밌구나~?”

 

선채로 기절한 영주의 주위를 돌며 꺄르륵 거리며 웃는 하얀 가면.

 

요괴 사냥꾼 때문에 고생이었는데 한동안은 재밌겠네. 이 정도면 참을수 있지.”

 

한 동안 빙글빙글 돌던 귀신은 도는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어느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무엇이 보인 것일까.

한동안 쳐다보던 가면은 아직도 기절해 있는 영주를 한번 돌아보고는 이내 모습을 감췄다.

 

아쉽네.. 다음에 또 보자구. 재밌는 인간.”

 

귀신이 모습을 갑추고 조금 지났을까. 귀신이 바라보던 방향에서 검은 단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걸어왔다. 새파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났고 만약에 영주가 정신을 차렸어도 다시 기절할 만큼 차가웠다.

 

흐음.. 이쯤이었는데.. ..?”

 

선채로 기절해 있는 영주를 보며 가만히 멈춰선 소년.

어두운 밤 학교 복도에서 선채로 기절해 있는 영주를 보며 놀랄만도 하건만 소년은 익숙한 듯 영주를 안아들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

여느 때와 다름 없는 꿈이었다. 손 위의 뱀을 보며 말하고 있는 여인. 아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거대한 뱀. 아니.. 거대한 검은 용의 손에 예의 그 여인이 들려있었다.

 

여인은 죽은 듯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 여인을 바라보던 용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 .. .. ..?”

 

뒷 말이 들리지 않았지만 용은 내게 무언가 질문을 했고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용은 여인과 함께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익숙한 가구와 벽지.. 영주의 방이었다. 익숙한 포근함에 다시 잠드려는 그 순간..

 

허업! 핸드폰! 학교!”

 

다행히 핸드폰은 바로 옆에 있었고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어떻게 된거지.. 엄마아!!”

 

어제의 일을 떠올리던 영주는 방을 나서며 엄마를 찾았다. 다행히 엄마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엄마! 어제 나 어떻게 된거야?!”

 

그 말에 날아오는 등짝 스매씽.

으이구 이 기집애야! 그건 내가 할말이지! 너 어떻게 된거야?! 기절한 상태로 네 학교 선배가 데려다줘서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너 또 귀신의 집 갔지?!”

아야야? 선배..??”

됐고 나중에 만나면 꼭 감사인사하구 씻구와서 밥이나 먹어 이 기집애야!”

 

아픈 등을 문지르며 욕실로 향한 영주는 씻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선배..? 그 시간에 나 말고 학교에 남아있던 사람이 있었나? 아니 그보다 내 집을 어떻게 알고?? 으아악..! 몰라! 나중에 생각하자!”

 

이내 아무 생각없이 샤워에 몰두하는 영주였다.

 

 

파란색 눈동자?”

그래 처음에 깜짝 놀랐다니까 외국인 혼혈이라구 하던데 그런 색은 처음 봤다. ~”

 

샤워를 마치고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나 아는 선배 딱히 없는데. 어떻게 우리 집을 알았지?”

나야 모르지. 뭐 학생부나 그런거 본거 아니겠어? 아니면 우리 딸에게 평소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던가? 어머어머 드디어 우리 딸도 분홍빛 나날을 보내게 되는건가?”

 

영주의 일에 열을 올리며 수다가 늘어나는 영주의 엄마.

 

아니야..! 엄마도 참.. 얼굴은 커녕 누군지도 모른다구..”

 

로맨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은 엄마나 영주나 매한가지였다. 중학교부터 꿈꾼 로맨스를 바라며 고등학교에 올라왔지만 별명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주는 어제의 사건도 있고 누군지 모르는 선배를 생각하며 분홍빛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영주....”

 

밝았던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른 학교 옥상. 검은 단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멍하니 앉아 어제의 소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선채로 기절해 있던 소녀는 기억에 안남을래야 안남을수 없었지만 소년은 이미 영주를 알고 있던 것처럼 그리워하는 눈빛이었다.

몇 년 동안 차가운 인상처럼 차갑게 얼어있던 소년의 마음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걸까. 영주라는 이름은 차가은 소년의 마음에 오랬동안 남아있었다.

평소라면 알아차렸겠지만 영주라는 이름에 취해 누군가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한동안 그 자리에서 계속..

 

 

2화 달빛이 닿은 곳

 

흐아아.. ..”

, 그렇게해서 땅이 꺼지겠어?”

 

채소를 손질하다 말고 식탁에 엎드리는 영주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그치마안.. 학교가 쉴게 머냐구.. 사고가 난 건 다른 건물인데..”

 

본래라면 학교에 있을 시간. 하지만 영주는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백화점에서 폭파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쉬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집에서 엄마와 집안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학교에 가서 그 선배에 대해 알아보려구 했는데..”

, 스토커 짓은 나중에 학교가서 하시고 슈퍼가서 두부나 사와

아니 엄마! 위험한 사건이 있었는데 딸한테 심부름을 시키는거야?”

 

영주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한껏 애교를 부렸지만..

 

사고가 난건 다른 건물인데 머 어떠니.”

 

매정하게 눈을 돌려버리는 어머니였다.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조용히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아주 조용히..

하지만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구멍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아무 관심 없이 자기 갈길을 가고 있었다.

 

엄마, 저기 하늘에 이상한게 있어!”

그래 그래 알겠으니까 얼른 가자.”

 

공중에 생겨난 검은 구멍을 어린 아이가 가리켰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장난으로 치부하며 무심하게 아이의 손을 이끌고 길을 서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한 검은 구멍은 자연스럽게 크기를 키워갈 뿐이었다.

 

 

 

사고가 났던 백화점 근처 슈퍼에 도착한 영주가 본 것은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로 가득한 가게 안이었다. 바로 코앞에 커다란 백화점이 있다보니 찾아오는 사람이 적었던 슈퍼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라라, 웬일로 사람들이 많네 백화점 때문인가..?”

 

사람들로 인해 좁은 통로를 지나며 두부를 찾던 영주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춰섰다.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아름다운 은발을 가지고있어 눈에 매우 잘 뛰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주의 눈을 끌었던 것은 바로..

 

소년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똑바로 영주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소년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였고 마주 손을 흔들려는 순간 소년은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어라..? 내가 잘못 본건가..?”

 

멍하니 소년이 있던 위치를 바라보던 영주는 사람들에 밀려 자리를 이동했고 밀리고 밀리다 어느 사람에게 부딪혀 멈췄다.

 

아야.. ..죄송합니다..”

“.. ..”

 

영주는 부딪힌 코를 부여잡고 부딪힌 상대를 확인했다. 학교 교복, 영주와 같은 학교였다.

 

.. 같은 학교다..”

그런가요..?”

..! 죄송해요! 사람들에 밀려서 그만..”

괜찮아요. 안다치셨나요..?”

 

사과도 잊고 같은학교란 사실에 명찰을 살피던 영주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자상한 목소리. 사과하는 영주를 끌어 다른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게 한 상대는 그나마 사람이 한적한 곳으로 이끌었다.

 

.. 감사합니다.”

같은 학교라고요?”

, 네 저도 그 학교 다니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또 볼수있겠네요..”

네 그렇겠죠..? ..?”

 

잠시 고개를 돌린 순간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교복의 소년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 나 오늘 귀신에 씌인건가..”

 

털썩..

 

괴상한 일을 겪은 영주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대로변이 마치 폭탄이 터진듯한 참혹한 광경입니다. 이상 기자 박OO였습니다.”

으음..”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보도와 함께 눈을 뜬 영주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하얀 침대가 늘어서있고 그 위에는 빈 자리 없이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여긴..”

아이고 이 기집애야!!”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큰 소리와 함께 영주의 엄마가 들어왔다.

정신이 멍한 영주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며 영주는 벙쪄있었다.

 

..엄마? 왜그래 무슨 일이야??”

이 기집애가 사람 걱정시켜놓고 무슨 일이긴?! 두부 사오라고 시켰더니 병원에서 연락와서 엄청 놀랐던거 알아?! 어디 다친데는 없는거지??”

..그러고보니 슈퍼에서 기절했던거 같기도..”

 

그 사이 영주와 영주의 엄마에게로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다가왔다.

 

.. 영주 학생의 보호자 되시나요?”

네네.. 선생님 우리 영주 어디 다친데는 없는거죠?”

네 다친 곳 없이 멀쩡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폭탄이 터진 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아마 폭탄이 터지면서 많이 놀라셨던 것 같네요.”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정말..흑흑..”

 

영주는 다시 울음을 터뜨린 엄마를 달래며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 그것 때문에 기절했던건 아닌거 같지만.. 근데 폭탄이라니 무슨 말이지..?’

 

엄마 괜찮아. 이렇게 멀쩡하잖아. 근데 선생님폭탄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죠?”

.. 아마 기억을 못하시는 것 같은데요. 영주 학생이 발견된 곳에서 좀 떨어진 대로변에서 폭탄이 터졌어요. 경찰에서는 백화점 사건 때랑 같은 사건이라는데.. 자세한건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영주 학생.”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의사 선생님은 다른 환자에게로 다가갔고 영주는 잠시 뒤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퇴원해 집으로 왔다.

 

 

익숙한 하얀색 천장을 다시 마주하며 영주는 생각에 잠겼다.

 

.. 대체 머였던거지.. 정말 귀신에 홀렸던건가..”

 

분명 봤었지만 거짓말처럼 눈 앞에서 사라진 두 소년과 알 수 없는 폭탄. 하루사이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영주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으.. 몰라! 잠이나 잘래!”

 

영주는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눈앞에서는 오늘 있었던 일이 사라지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라진 은발의 소년과 같은 학교의 소년이 계속 눈앞에서 잠을 못자게 아른거렸다.

 

나한테 왜그래? 이 귀신들아!!”

시끄러 이 기집애야 퇴원하고 왔으면 조용히 잠이나 자!!”

 

괜스레 지른 소리에 문 밖에서 엄마가 소리쳤고 영주는 배게로 머리를 감싸며 자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새 잠이 들었다..

 

 

~! 일어나! 친구가 찾아왔어!”

우으.. 친구..?”

 

엄마의 목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깨어난 영주는 방에서 나와 손님을 맞았다. 같은 반 절친인 수영이었다.

 

? 수영아 무슨 일이야?”

왜긴 친구가 병원에 실려갔다고 해서 걱정되서 왔지. 근데 멀쩡하네?”

.. 직접적으로 휘말린건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럼 말야..”

 

수영은 자연스럽게 다가와 영주에게 팔짱을 끼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럼 영주야 나랑 어디 좀 가자!”

? 어딜??”

잔말말고 따라와~!”

 

영주는 외출준비를 마치고 수영에게 이끌려 집을 나섰다.

 

대체 어디가는건데~?”

어허! 넌 그냥 조용히 따라와~ 좋은데 가는거니까!”

 

불안함을 지닌채 수영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카페였다. 장사가 잘되는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 여기에 이런 카페가 있었나? 기억에 없는데..”

생긴지는 오래됬데. 근데 유명해진건 요 근래야.”

..?”

그건 들어가보면 알아~!”

 

줄을 기다려 겨우 자리를 잡은 영주는 메뉴판을 보지않고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 수영을 이상하게 보며 시선을 따라갔다. 수영의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서빙복을 입은 소년이었다. 은발이 아주 잘 어울리는 소년. 어딘가 익숙함을 느끼고 자세히 바라본 영주는 이내 돌아선 소년의 얼굴을 확인했고 이내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은발의 소년은 바로 어제 슈퍼에서 봤던 소년이었던 것이다.

 

역시.. 너도 사람 볼 줄 아는구나? 어때 엄청 잘생겼지? 저 오빠가 여기 알바를 시작한 뒤로 사람이 엄청 몰렸다나봐. 음 저 정도 얼굴이면 그럴만하지!”

 

수영은 그런 영주의 속사정도 모른채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영주는 듣는둥 마는둥하며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을 느낀걸까. 소년은 자신을 보고 있던 영주를 보았고 이내 눈이 마주치자 영주는 홱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머, 얘는.. 이제와서 부끄럽냐 기집애야?”

저 사람이야..!”

머가? 미래의 남편감이? 미안하지만 난 양보 못한다~?”

아니! 저 사람이야! 어제 눈앞에서 사라진..!”

? 그게 무슨 말이야. 귀신이라도 본거야?”

그래, 귀신! 귀신이야 분명..!”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들 하고 계신가요, 아가씨들~?”

 

어느새 다가온 은발의 소년이 밝은 미소를 지은채로 물어봤고 수영은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는게 보일정도로 헤벌쭉해져서 소년에게로 집중했다.

 

 

호호. 아니 글세~ 이 애가 오빠보고 귀신이라고 하지 뭐에요~ 호호!”

하하하.. 재밌는 이야기네요. 제가 귀신이라니.. 제가 그렇게 잘생겼나요?”

 

소년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영주를 바라보았지만 수영은 그 미소마저 좋은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영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은발의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어제 저 본적 있죠. 슈퍼에서..”

.. 글쎄요.. 그런 멘트는 보통 남자쪽에서 하지 않나요? 제가 맘에 드셨나봐요. 하하..”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주시오. ...!”

 

아저씨란 호칭에 수영은 물론 대화를 몰래 듣고 있던 카페 안의 다른 여자 손님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정작 소년과 영주는 신경도 쓰지 않고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싸움은 소년이 먼저 정적을 깨는 것으로 끝이 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장난이 심했던 모양이네요. 사과드립니다.”

 

소년은 허리를 숙여보이며 사과를 했고 영주도 더 머라하지 못했고 이내 사과를 받았다.

 

아니에요.. ..인거 같은데 제가 더 무례했던 것 같네요. 수영아 미안 나 먼저 갈게.”

.. ..? 영주야 잠깐만..!”

 

영주는 붙잡는 수영을 버려두고 카페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런 영주의 뒷모습과 소년을 바라보던 수영은 영주를 따라나섰고 소년은 그런 수영의 팔을 붙잡았다.

 

죄송하지만 말좀 전해주세요. 무례를 저질러서 죄송하다고.. 그리고.. 나중에 제가 찾아가서 사과하겠다고요..”

! 걱정마세요!”

 

수영은 곧바로 따라 나섰고 소년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영주.. 그래요.. 제가 찾아갈게요.. 우린.. 곧 다시 보게 될겁니다..”

 

카페 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소년의 마지막 말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화 꽃말

 

내가 미안해! 전부 잘못했어!”

 

바닥에 엎드려 사과를 하는 수영을 보며 영주는 한숨만 쉬었다.

 

뭘 잘못했다고 사과하는건데..?”

 

수영은 살며시 고개를 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그 카페에 데려간....?”

“.. 그래 그것도 잘못한거라면 잘못한거네.”

 

차가운 대답에 들었던 고개를 다시 내리는 수영을 보며 영주는 다시 한숨만 내쉬었다.

 

계속 이래서 뭐하겠냐.. 일어나 얼른.”

 

껌딱찌처럼 바닥에 붙어있던 수영은 영주의 한마디에 잽싸게 일어나 달라붙은채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영주야, 그럼.. 우리 오랜만에 놀러갈까?”

“..너 정신을 아직 못차렸구나..?”

 

영주의 한마디에 수영은 또 어느새 저만치 물러난채로 말을 이었다.

 

..아냐 이번엔 그런게 아니라!”

 

말을 하며 손으로는 빠르게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 수영은 영주에게 한 홈페이지를 보여줬다. 홈페이지는 개점한지 얼마되지 않은 유명한 카페였다.

 

카페..?”

. 왜 저번에 네가 맛있다고 했던 카페있잖아. 거기 분점이야. 근데 어제 갔던 곳이 손님들을 다 끌어가서 아직 소문이 제대로 안났다고 하나봐.”

헤에.. 우리 저번에 줄서서 들어간 곳 아닌가?”

맞아. 그러니까 지금가면 줄설 필요없이 들어갈 수 있지 않겠어?”

웬일로 네가 괜찮은 짓을..?”

어제 사죄의 의미로 내가 쏠 테니까 가자~ ?”

그래.. 어제는 나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까..”

 

그렇게 수영에게 이끌려 다시 집을 나서게 된 영주였다. 영주와 수영이 이야기한 카페는 둘이 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 유명한 가게였다. 스타곤(stargon)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다양한 나이대의 손님을 겨냥한 다양한 제품들이나 카페 고유의 대표 메뉴들이 인기가 많아 한번 들어가려면 긴 줄을 서야하곤 했다.

 

어느새 카페에 도착한 둘은 허전한 카페 안을 보며 천천히 들어섰다. 고급지진 않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가 두 소녀를 맞이했다. 카페 안에서 나온 점원이 둘을 카페의 한 자리로 안내했다. 안내한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전에 갔던 카페와는 확연히 사람이 적었다.

 

사람이 적네요. 저번에 갔던 카페에서는 사람이 많아서 줄을서서 기다렸었는데..”

 

기분이 상하게 들릴만한 말이었지만 점원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아 지금 다른 카페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금세 손님을 끌어들일수 있습니다. 저희는 역사가 깊은 가게니까요. 하하.”

 

점원은 카페에 대한 자신감이 매우 높아보였다.

 

멋지네요.”

 

그 모습을 보며 영주는 진심어린 감탄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반하시면 곤란합니다. 저 여친이 있거든요. 하하하.”

 

빠직

 

이내 그런 감정은 사라졌지만..

 

수영은 영주가 폭발하기 전에 메뉴를 시키고는 점원을 돌려보냈다.

 

에이 기분전환하려구 왔는데 일일이 화내지 말자~ ?”

하아.. 그래 괜히 기운빠지게 그럴 필요없지.. 근데 뭐 시켰어?”

저번에 시켰던거 그대로에 새로운 추천메뉴가 있길래 그것도 시켜봤어.”

기대되네.”

 

단 것을 좋아하는 두 소녀는 취향도 맞아 같이 카페를 다니고는 했다.

이윽고 주문한 메뉴들이 나왔고 두 소녀는 사진을 찍느라 바빳다. 그런 두 소녀에게로 아까의 점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하.. 아까는 제가 장난이 심했네요.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메뉴들에 대해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영주는 거절할까 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호의를 받아들였다. 점원이 제일 처음 설명한 것은 연한 분홍색 크림이 얹어진 미니 케이크였다. 크림 위에는 귀여운 곰돌이모양 초콜릿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래넌 케이크는 래넌큘러스라는 꽃을 이용해 만든 생크림을 바른겁니다. 달콤하면서도 너무 느끼하지 않게 만들어 젊은 여성분들게 인기가 많은 상품 중 하나입니다.”

 

다음은 보라색 빛을 내고 있는 쿠키였다. 괴상해보일수도 있었지만 영롱한 빛을 내는 쿠키는 신비한 느낌이 가득했다.

 

네네 쿠키는 아네모네라는 꽃을 이용한 쿠키입니다. 알싸하면서도 끝맛이 달콤해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다음은 푸른 빛을 가지고 있는 푸딩이었다. 마치 바다의 한 조각을 떠놓은 듯 푸딩의 반대편이 비춰보였다.

 

곤 푸딩은 용담이라는 꽃을 이용한 음식이에요. 맛도 좋지만 보는 맛도 일품이기에 마찬가지로 젊은 손님분들게 인기가 많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의 음식들은 영주도 저번에 본적이 있는 것들이었지만 마지막의 음식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마 수영이 주문한 새로운 추천메뉴라고 했던 음식인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음식은 노란색의 음료수였다.

 

보기에는 오렌지 주스로 보실수도 있지만.. 칸나라는 꽃을 이용해 만든 음료입니다. 꽃으로 만든 음료라 하니 거부감이 드실수도 있지만 이미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시는 메뉴로 자리잡았답니다. 후훗.”

 

설명을 마친 점원은 다시 사과와 함께 돌아갔고 영주와 수영은 사진을 찍고 음식을 살피기 바빳다.

 

여전히 비현실적인 비주얼의 음식들이네.”

그러네. 저번에 갔던 경험이 아니었다면 먹어도되나 엄청 고민했을 비주얼이야.”

왔으니 즐겼다 가자구!”

 

화려한 음식을 앞에 두고 파이팅을 외친 두 소녀는 처음보는 음료수부터 한모금 마시는 것으로 음식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차게 길을 나선 영주는 익숙한 등굣길을 따라 학교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을 지나던 영주는 한 지점에서 멈춰섰다.

 

....?”

 

비어있던 가게에 어느샌가 꽃집이 들어서 있었다.

 

하교때 수영이랑 한번 들러볼까..?”

 

가게 밖에서 잠시 가게를 살피던 영주는 다시 발을 놀려 학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호기심보단 지각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영주는 반 친구들에게 오다가 봤던 꽃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꽃집이라.. 학교 끝나고 다같이 한번 가볼래?”

.. 한번 구경하러가보자.”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다같이 꽃집을 구경하러가는 것으로 흘러갔고 꽃집은 소녀들의 머릿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채로 학교에서의 일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럼 이상으로 오늘도 다들 수고했고 집까지 조심히 가도록.”

 

담임선생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우르르 교실밖으로 뛰쳐나가는 남학생들을 보며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남자애들이란..”

 

그런 영주에게로 여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영주야 아까말한 꽃집 가보자~!”

 

학교가 끝나고 반 여자아이들과 함께 꽃집으로 향하던 영주의 눈에 한 소년이 들어왔다. 다름아닌 같은 반 아이였다.

 

영주야 왜그래? 갑자기 멈춰서고..?”

저기 봐. 쟤 우리반 남자애 아냐?”

.. 그러네 현수잖아? 근데 저기가 네가 말한 꽃집이야?”

맞아. 꽃을 사러오다니.. 뭘까..?”

.. 혹시..고백하러..? 따라가보자!”

 

목표가 꽃집에서 현수라는 같은 반 남자아이로 바뀌었지만 영주와 여자아이들은 탐정이라도 된것마냥 현수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인원도 인원인데다 사람들이 수상하게 쳐다보았지만 현수는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주변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가고 있었다.

 

소녀들이 현수를 따라 도착한 곳은 어느 집이었다.

 

..? 여긴..”

 

현수가 도착한 집은 영주일행 중 한명의 집이었다.

 

쟤가 왜 우리집에..?”

혹시 진짜 고백하러..?”

 

소녀에게 고백하러 온것인가에 대해 토론이 벌어지며 소란스러워진 일행은 상상의 날개를 펼쳐나갔고 이윽고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걸어나왔다.

 

? 언니..?! 고백 대상이 내가 아니라 언니였어..?!”

에이 머야. 시시해..”

 

핑크빛 상상의 날개가 깨지며 현실로 돌아온 일행은 다시 상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현수는 소녀에게 고백을 하는 것 같았지만 소녀는 거절을 한 듯 소년을 냅두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고 소년은 충격을 받은 듯 손에 들린 꽃다발을 떨군채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으이구 차일만하지. 우리 언니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고.”

.. 더 따라가는건 별로겠지?”

응 더 볼 것도 없는데 그냥 가자.”

꽃집..은 가기엔 시간이 애매하네 다음에 가자.”

그래야겠네. 그럼 다들 잘가 내일 보자.”

 

바로 앞이 집인 소녀가 인사를 하며 집으로 뛰어갔고 나머지 소녀들도 이윽고 뿔뿔히 집으로 흩어졌다.

친구들과 헤어진 영주는 같은 방향인 수영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던 영주는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멍하니 있었고 그런 영주를 보던 수영은 영주의 팔꿈치를 살짝 꼬집었다.

 

아야!”

영주야 너 현수한테 관심있었어? 뭘 그렇게 생각에 빠졌어?”

됐거든! 걔한테 관심이 있기는.. 그냥.. 고등학교에서 잘생긴 남자친구 사귀는걸 꿈꿨는데 중학교때 알던 애들만 따라와서 포기하고있었거든. 근데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핑크빛 사랑이 생기기도 깨지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

헤에.. 그래서 그렇게 멍하니 있었구만.”

아 집 다왔다. 그럼 난 먼저 들어가볼게. 조심히 가.”

그래. 나도 이만 가볼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수영은 손을 흔들며 뛰어갔고 영주는 그런 수영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교복을 입은채로 침대에 다이빙한 영주는 현수가 고백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가 뒤따라 들어온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고는 화장실로 쫓겨났다. 피곤함을 제쳐두고 목욕을 마친 영주는 엄마가 차려주신 저녁밥을 먹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몇일내에 겪은 일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아까 한번 깨서 그런 것일까 다시 스르륵 잠이 오지는 않았다.

 

내게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걸까.. 귀신남친이라.. 쿠쿠쿡.. 그것도 나름 재미있을지도..”

 

재미있는 상상을 하던 영주는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엄마의 등짝 스매쉬도.. 다른 방해도 없이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아무 꿈도 꾸지않고 푸욱 잠든 밤이었다..

 

 

4화 사형선고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자 높은 건물들이 전부 무너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누워있는 건물 외벽에는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녹색 식물들이 자라 있었다. 마치 혼자의 시간은 홀로 내버려둔채 주위의 시간만 흘러가버린 것 같았다. 소녀는 혹여나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곳에는 자신뿐인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을 먹을만도 하지만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그작.. 아그작..

걷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백화점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 외벽 뒤쪽에서 무언가 작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조심스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고 건물 뒤의 광경은 소녀를 주저앉게 만들기 충분했다. 몸을 감싸는 짙은 갈색의 코트는 물에 젖은 듯 무거워 보였고 얼굴이 있어야할 위치에는 어떤 짐승의 것인지도 구별이 안가는 괴상한 해골이 위치해 있었다. 소녀가 주저 앉는 소리에 그 무언가는 하던 행위를 멈추었고 몸은 가만히 있는 상태로 머리만을 돌려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 기괴한 해골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소녀는 비명을 지를새도 없이 기절하고 말았다.

 

“.. ..”

 

소녀를 바라보던 그것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하던 행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한창을 행위에 집중하던 그것은 다시 멈춘채 소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정확히 소녀가 있던자리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에 의문을 가질 법 하건만 그것은 아무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려 행위를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다.

 

……

 

영주가 노크를 위해 손을 들어올리던 차에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이 열리고 보인 것은 머리가 새하얀 백발의 소녀였다. 하얀 머리는 묶어올렸음에도 허리까지 내려왔다.

 

.. 저기..”

들어와..”

 

잠깐동안이었지만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영주는처음보는 사람이 나오자 잘못찾아왔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 물어보려 입을 열자 백발의 소녀는 들어오라는 말만 남기고는 문은 열어둔채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검은 동굴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두운 문너머는 걸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영주는 잠깐 고민을 하다 결국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문을 닫고 들어가자 밖에서 들어오던 빛마저 사라져 안은 더 어두워졌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때까지 기다렸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점차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갈수록 주변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벽에는 괴상하게 생긴 조각상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무서운 모양을 하고있어서 기가 약한 사람은 기절하고 남을정도였다. 괴상한 조각상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어두운 복도와는 반대로 밝은 빛이 문틈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져있던 눈이 밝은 빛을 마주하자 눈을 뜰수 없어 고개를 돌렸고 다시 눈이 빛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가 빛이 새어나오는 문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문틈 사이로 조금씩 새어나오던 빛은 문이 열리자 주변을 감싸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변 사물을 확인할수있을 정도로 시야가 회복되자 방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지나온 복도의 분위기와는 맞지않은, 오히려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방이었다. 알록달록한 예쁜 인형들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가구 하나에는 적어도 3~4개의 인형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멍하니 서있지말고 와서 앉으려무나.”

 

이쁜 인형들 한가운데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가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아까의 소녀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끌끌.. 이쁜 인형들과 이쁜 소녀 옆에 웬 쭈구랑 할머니가 있으니 이상하니?”

 

할머니가 웃으며 말하자 영주는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저, 바깥이랑 분위기가 전혀 틀려서..”

끌끌.. 그래. 그건 손님맞이용이란다. 저리 해두면 기가 약한 놈들은 오질 못하거든. 끌끌끌.”

그렇군요..”

 

조용히 웃던 할머니는 그 작은 눈으로 잠시동안 영주를 관찰하듯 쳐다보았고 영주는 그 눈빛에 그저 조용히 서있을 뿐이었다. 말없이 영주를 쳐다보던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연 것은 10분이나 흐른 뒤였다. 그마저도 옆에 있던 소녀가 말리지 않았다면 더 오래갔을것이 분명했다.

 

그래, 수영이가 어디까지 듣고왔느냐?”

그게.. 그냥 할머니꼐서 한번 보자고 하셨다고..”

 

영주는 수영에게 자신의 할머니가 한번 보고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찾아왔지만 그 외에 들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쯧쯧.. 그 녀석은 시킨 일도 잘 못하고 말이다.. 지 누나를 조금이라도 닮았으면 좀 좋아. 안그러니 수연아?”

 

할머니는 혀를 차며 수영이에 대해 얘기했고 수연이라 불린 백발의 소녀는 곤란한 듯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을뿐이었다. 할머니는 다시 영주에게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들은 것이 없다니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주마. 잘 듣거라.”

..”

너는 올해가 끝나기 전에 죽을게야.”

“.. .. ..?!”

 

사람이 죽는다는데 담담한 표정의 할머니는 이 상황과 거리감이 느껴져 방금 자신이 맞게 들은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놀랄 것 없다. 제대로 들은게 맞으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면 넌 올해를 넘기지 못할게야.”

그게..갑자기 무슨 말인가요?”

 

영주의 물음에 할머니는 조용히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사진에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업혀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사진 한켠에는 작은 글씨로 사진이 찍힌 날짜가 적혀있었다. 사진에 적힌 알짜는 자신이 학교에 갔다가 기절했던 날이었다.

 

할머니.. 이건..?”

그 남자가 누군지 아느냐?”

 

할머니는 자신을 업고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 같은 학교 선배라는 것밖에는..”

그 남자가 널 죽게 만들게야.”

“..?”

 

학교 선배와의 분홍빛 로맨스를 꿈꾸던 영주는 그 상대가 자신을 죽게 만든다는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선배가 저를 죽게 만든다는거죠..? 근데 할머니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영주야,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느냐?”

.. 무당.. 이시죠..?”

그래 무당, 귀신과 관련된 일을 하지. 그리고.. 그 선배라는 남자는 인간이 아니란다.”

..? 잠시만요. 저기.. 지금 머리가 못 따라가겠어요. 제가 올해가 가기전에 죽을거고 저를 죽게 만드는게 그 선배라는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라고요..?”

 

지금까지 들은 말을 정리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영주를 할머니는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그럼 그.. 방법이라는 건 뭐죠? 그 선배랑 엮이지 않으면 되는건가요?”

그래, 그게 제일 좋지. 엮이지 않고 있으면 수연이가 다 알아서 해줄게야.”

 

영주는 여태껏 조용히 앉아 있던 수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분은.. 괜찮은 건가요..?”

.. 사정.. 넌 살고 싶으면.. 그 남자랑 엮이지 마..”

 

나름 자신은 걱정해서 물어본거였는데 차갑게 돌아오는 대답에 영주는 속이 상했지만 방금 들었던 이야기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일단..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혼란스러울 테니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서 쉬거라. 그 남자랑 엮이지 않게 조심하는거 잊지말고.”

네에..”

 

아직도 머리가 혼란했던 영주는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영주가 나가고 현관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때까지 조용히 앉아있던 할머니는 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만.. 괜찮겠느냐..?”

제가.. 그토록 원하던 것.. 괜찮아요.. 제 억지를 들어줘서.. 감사해요..”

네가 원한다니 해주었다만.. 결국 끝은 똑같을게야.. 혹여 중간에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말하거라.. 뒤는.. 이 할미가 봐줄 테니..”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큰 절을 올린 수연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흡사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처럼..

 

 

……

 

 

터벅터벅.. 끼익..

다녀왔습니다..”

터덜터덜 걸어 집에 도착했지만 엄마는 일찍 잠자리에 드셨는지 집안이 조용했다. 불이 꺼져 어두운 집안을 잠시 바라보던 영주는 다시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불을 키지도 않은채 침대로 걸어가 드러누웠다. 그리고 오늘 들었던 이야기를 전부 지우려는 듯 작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

 

 

“.. .. ..”

“.. .. ..”

“..무슨 볼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백발의 소녀와 흑발의 소년이 서로 마주보고 있기를 수십분, 보다못한 반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학생도 아닌 것 같은데 아침부터 백발의 소녀가 교실로 쳐들어와 소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수십분째 아무말도 없이 소년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소년도 아무 말없이 마주 보고있다는 것이었다. 소년이 아무 말이 없으니 서로 아는 사이인가 했지만 그건 아닌듯하니 더 문제였다. 하여 반장의 의무를 지키고자 총대를 매고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시였다. 총대를 맨 것이 무색하게 촉 처진 어깨로 반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무언의 대치는 수업이 시작하여 선생님이 수업을 위해 들어올때까지 계속되었다.

 

 

……

 

 

“... ..주야..? 영주야!!”

“......?!”

 

학교에 와서도 계속 멍때리고 있던 영주는 수영이 부르는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얘는 무슨 일 있었어? 하루종일 정신줄 놓고 뭐하는거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반 친구들이 전부 짐을 싸고 교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어라..? 오늘 야외수업이 있었나..?”

 

수영은 잠꼬대를 하는 영주의 이마에 꿀밤을 먹여주고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 , 잠꼬대는 그만하고 얼른 집에 가자. 하루 종일 정신줄 놓고있구 너답지 않게 왜그래? 빨리 가자. 나 배고파.”

 

먼저 교실 밖으로 향하는 수영을 따라잡기위해 헐레벌떡 짐을 싼 영주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저 앞에 가던 수영을 따라잡고 숨을 고르던 영주에게 수영이 입을 열었다.

 

너 그렇게 하루종일 넋놓고 있는 동안 학교에서 재밌는 일 있었다?”

무슨 일인데..?”

.. 내가 너한테 내 위로 언니가 한 명 있다고 말한적 있지?”

.. 알지..”

 

언니라는 말에 어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린 영주는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고 집에 도착할때까지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5화 진실과 진심

 

 

“.. ..”

“.. ..”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수연이 말없이 흑발의 소년, 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지겨워진것일까 결국 무언의 대치를 끝낸 것은 수연이었다.

 

당신은..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는건가요?”

네가 누군진 몰라. 하지만 날 보고있는데 이유가 있어서 보는거라 생각해서 먼저 말걸기까지 기다렸을뿐이야.”

“.. ..”

이제 이유를 말할 생각이 들었어?”

“.. ..”

뭐 말할 생각이 없다면 됐어. 말하고 싶을 때 말하도록 해.”

 

말을 마친 유현은 그저 미소지은 채로 수연을 바라볼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수연은 조용히 유현을 바라보다 수업종이 울리자 평소처럼 천천히 교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

 

 

아그작.. 아그작..

무언가를 하던 그것은 행위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가면이 허공에 둥둥 떠있었다.

 

안녕~?”

“.. ..”

아직도 그거하는 중이야?”

“.. ..”

 

새하얀 가면이 계속해서 재잘재잘 질문을 했지만 그것은 잠시 가면을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내리고 하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곁에서 재잘되는 가면이 시끄러울만했지만 그것은 곁에 아무도 없는 것마냥 하던 일에 열중했다.

 

여전하구나~ 그게 뭐라고 몇백년째 여기 앉아서 그 짓을 하고 있는지~ , 고생하라구~ 난 이만 가련다~ 인간 세상에는 재밌는게 너~무나 많단 말이지~~ , 그렇지! 나 얼마 전에 말이야 재밌는 인간 여자를 발견했지 뭐야~ 날보고 서서 기절하는거 있지~? 키키키키.”

“.. .. 그 인간을.. 건드리지 말아라.. .. ..”

 

그것은 처음으로 다른 일에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해골 안에서 흘러나왔다.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놀란 것일까, 묵묵히 자신의 일만을 하던 그것이 말을 한 까닭일까, 새하얀 가면은 공중에서 놀란 듯 멈춰서 있었다.

 

“..헤에 몇백년째 말도 안하고 다른거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네가 말을 하다니..”

 

새하얀 가면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더 관심이 가는걸 어떡하지이~~?!”

 

원래의 활발한 성격에 광기가 가득해지자 가면은 점점더 짙은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

 

붉은 가면의 한 가운데에는 어느새 커다란 구명이 뚫려 있었다.

 

어라라..?”

 

가면은 붉은색에서 다시 하얀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녀석..!”

자라..”

 

그 말을 끝으로 가면은 재가 되어 사라졌고 그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사복을 입은 경찰관 두명이 대로변에 서있었다. 뉴스에서는 폭파사건이 벌어졌던 장소라고 보도가 나갔지만 대로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깨끗할 뿐이었다.

 

아 선배님~ 여기는 대체 왜 맨날 오시는거에요. 이상없잖아요~.”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겠어?! 뭐가 이상이 없냐고! 뉴스에서 폭탄이 터진 장소라고 보도된 거에 비해서 너무 깔끌한거 모르겠냐?”

이미 뒤처리가 다 끝났다잖아요.”

 

그저 빨리 돌아가서 낮잠이나 자고싶어하는 후배를 보며 선배, 창수는 머리를 짚었다.

 

대체 너는 어떻게 경찰이 된거냐.. 이게 뒤처리가 끝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빠른거야. 이 바보야, 게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가 다들 시간차를 두고 돌아왔다는데 정작 그에 대해서는 도보가 안되고 단순한 폭파 사건이라고만 보도되었어. 뭐 이상하지 않냐?”

저는 모르겠어요. 얼른 가서 쉬자구요~ 선배~~”

하아.. 다음부터는 혼자오던가 해야겠군..”

 

창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진짜야! 저기에 검은 구멍이 있었다니까아!”

얘는 진짜! 알겠으니까 얼른 가자구!”

우으.. 엄마도 내 말 안믿는거지?! 너무해! 진짜란 말이야!”

 

걸음을 옮겨 경찰서로 돌아가던 창수는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려온 곳에서는 한 아이가 엄마로 보이는 여인에게 떼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경찰입니다만.. 무슨 일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경찰 수첩을 보여주며 다가가자 여인은 경계하는 듯했으나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애기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자.”

경찰 아저씨! 엄마가 제 말을 안 믿어줘요! 진짜루 검은 구멍이 있었는데!”

검은.. 구멍..? 꼬마야, 그게 무슨 말인지 이 아저씨한테 설명해줄수 있을까?”

..얘가 자꾸 꿈에서 본 걸 진짜처럼 얘기하는거 뿐이에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인은 불안한 듯 큰소리까지 내며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자 했으나 이미 떼를 쓰기 시작한 아이는 결국 자리에 드러앉아버렸고 이도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무슨 일인지.. 협조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창수가 경찰 수첩을 더욱 들이밀며 협조를 요청하자 안절부절하던 여인은 결국 포기하고 장소를 바꾸기를 요청했다. 창수는 후배를 먼저 경찰서로 보내고 그들을 데리고 가까운 카페로 가서 주문을 시키고 음료가 나오자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 아까 아이가 얘기했던 검은 구멍..이라는게 뭡니까..?”

.. 그게.. 사실은 저도 직접 본적은 없어요.. 다만.. 혹시 뉴스에서 폭파 사건이라고 보도디었던 일을 알고 계시나요?”

, . 알고있습니다. 아까도 그것 때문에 그 도로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렇군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여인은 창수가 놀라지 않는 모습에 오히려 자신이 놀랐다.

 

저도 그에 대해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서 혼자 조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니까요. 이야기.. 계속 해주시겠습니까?”

, .. 그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전 그 도로에서 아이가 허공에 검은 구멍이 있다고 말을 했었는데.. 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도 했고.. 갈길이 바빠서 무시하고 있었죠..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밝은 빛이 터지듯 주위를 감싸고.. 정신을 차렸을때는 전혀 다른 곳이었어요..”

다른 곳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여인은 그 날의 일을 떠올리는 듯 두 팔로 자신을 감싸안았다.

 

말 그대로에요 주위의 건물들은 그 도로와 똑같았지만 전부 부서져 있거나 쓰러져있었고 시간이 오래 지난 듯 이끼가 가득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여인은 말을 잇기 힘든 듯 두 팔로 자신의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떠올리기 싫은 것을 떠올린 그 상태를 발견한 창수는 여인을 말렸다.

 

그 이상 떠올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무리를 시킨 듯 하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다만 제가 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어디가서 밝히지 말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여인과 아이를 집까지 바래다 준 창수는 편의점에서 끊었던 담배를 사서 피기 시작했다. 창수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 흐릿한 연기가 하늘을 감싸기 시작했다.

 

내가.. 대체 뭘 들은거지..”

 

나름 의심스러운 사건에 대해 밝혀내고자 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들은 사실은 믿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거짓을 말했다기에는 너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고.. 진짜라는건가..”

 

창수가 그 자리를 떠난 것은 담배 반갑을 비운 뒤였다. 창수가 떠난 자리에는 라이터와 반갑 남은 담배가 남아있었다.

 

 

……

 

 

아그작.. 아그작..

 

“.. ..”

“.. ..”

 

유현은 여전히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고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가 수연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커다란 덩치에 괴상하게 생긴 해골.. 그것은 여전히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유현에게는 일절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할배..”

“.. ..”

듣고 있는 거 알아. 오늘은 할배한테 의견을 듣고 싶은게 있어서 왔어.”

 

까딱까딱

 

할배라 불린 그것은 듣고 있다는 듯이 하던 일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손을 들어 말해보라는 듯이 흔들었다.

 

용이 될 수 있는 이무기가 여의주를 발견했어.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하던 일을 멈추고는 유현을 쳐다보았다. 해골 때문에 그것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리가 없음에도 유현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걸까. 그것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역시.. 할배도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럼.. 그 이무기가 여의주를 두 개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 할배, 할배는 어떻게 생각해..?”

 

자고로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여의주였다. 용이 된 이무기는 평생을 하나의 여의주만을 가지게 되고 그 여의주는 용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는 것이었다.

 

근데.. 왜 난 나를 선택한 여의주보다 다른 여의주에 더 끌리는걸까? 할배는 알아?”

“.. ..”

 

마지막 질문이 애처롭게 들렸던걸까. 그것은 열중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지만 유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것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수십여분 그러다 잠깐, 아주 잠깐 그것은 몸을 돌려 유현이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유현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다 이미 유현이 자리에 없음에도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아가야..”

 

그것은 새하얀 가면에게 들려줬던 쇠를 긁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가 아닌 따스함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말을 마친 그것은 다시 몸을 돌려 하던 일에 열중했다. 그 일이 제일 중요하다는 듯이. 그것이 자신의 숙명이라는 듯이..

 

 

6화 꿈

 

 

“.. .. .. ..”

 

평소라면 유현의 교실에 찾아가 유현을 바라보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웬일인지 수연은 자신의 방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누워있었다.

 

수연아.. 뭐가 생각대로 잘 안풀리느냐?”

 

보다 못한 할머니가 방에 찾아와 질문을 던졌다.

 

“..분명.. 같이 있는 시간이 길수록.. 의식하게 되고.. 호감이 쌓인다고..”

“..누가 그러디..?”

“.... ..”

하아..”

 

왜 다짜고자 찾아가서 같이 있었는지 이제야 이유를 안 할머니는 머리를 짚었다. 완벽할거 같은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 네가 원하던 것이니.. 알아서 하거라.. 나는 이만....!”

 

몸을 돌려 나가려던 할머니는 뒤에서 붙잡은 수연의 손길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와줘.”

“..?”

할머니 도와줘! 내게 연애에 대해 알려줘!”

“.. ..?!”

 

수연의 할머니는 젊었을적부터 영적인 능력이 뛰어나 무당으로서, 퇴마사로서 이름을 날렸었다. 많은 인기와 돈, 명성을 날린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귀신과 연관이 깊은 직업적 특성 탓에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없었고 결국 지금까지 남자는 물론 연애 경험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기에는..’

 

수연이 너무나 간절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할머니는 차마 자신도 연애경험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결국..

 

자고로 남자란 정성에 감동하지! 무작정 찾아가지만 말고 정성이 잠긴 요리를 만들어 가는거다!”

오오..!”

 

그렇게 연애경험 없는 할머니의 연애 강의가 시작했다.

 

 

……

 

 

뭉크의 절규가 이렇게 생겼을까. 영주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를 보고 매우 놀랐다.

 

안녕? 구면이지?”

 

마트에서 봤던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 문제라면.. 수영의 귀띔으로 알게 된 눈앞의 선배의 정체가 자신이 엮이지 말아야하는 그 사람이랄까.

 

..렇네요..”

자기소개는 한적이 없지? 그 때는 하도 정신이 없다보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유현. 영주는 이렇게 사람좋은 미소를 짓는 유현이 자신을 죽이게 된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전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일까 유현에게 무작정 호의를 가질수도 적의를 가질수도 없었다. 유현은 그런 영주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알지도 모르지만 내 이름은 유현이라고 해. 성은 한이야.”

, .. 저는.. 영주라고 해요.. 김영주..”

그렇구나.”

 

영주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더 환하게 웃는 유현을 보며 온갖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람은 왜 날 찾아온거지? 혹시 할머니 말이 진짜인건가? 날 죽이려고 사전답사를..?! 아니면 그 때 그해준 보답을 받기위해..?

 

혼란스러워하는 영주를 구하기 위해서일까 때마침 울린 수업 종소리에 유현은 또보자는 인사와 함께 교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영주는 마치 저승사자를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았고 다시는 차자오지 말라는 기도와 함께 자리에 드러누웠다.

 

 

……

 

 

“.. ..”

“.. ..”

하아..”

 

또 수업시간에 잠들어 버린 것일까. 눈 앞에 있는 검은 용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용을 마주보자 영주는 어딘가 용이 익숙함을 느꼈다.

 

아니지.. 이 꿈을 꾼게 벌써 몇 번째인데 익숙해질만 하지.’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안녕..”

 

인사를 받아준 검은 용은 다시 조용히 영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주는 한숨을 내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보니.. 그 여자분은 어디가셨나요? 안보이시네요.”

“..내가 죽였어.”

그렇군요. 그쪽이 죽이.. ..?!”

 

하도 담담하게 말하는 용의 말에 영주는 아무 생각없이 말을 따라했다가 놀라고말았다.

 

저번에 봤잖아. 왜 놀라?”

 

용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저번에 꾼 꿈에서 용의 손에 여인이 있었떤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이 죽였고 그것을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다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영주는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익숙하게 느껴졌던 눈 앞의 용은 아까 만났던 유현을 닮았던 것이다. 짙은 검정에 파란 눈동자는 깨닫고나니 유현과 매우 겹쳐 보였다.

 

혹시.. 유현..선배..?”

? 그게 누구야?”

 

혹시나 해서 불러본 이름에 용은 들어본 적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영주는 이상하게도 눈 앞의 용과 유현이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구면이죠..?”

 

유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따라해 보았다.

 

그렇지. 내가 용이 되기 전부터 네가 찾아왔었으니.”

 

하지만 용의 반응은 영주가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다. 왜 자신이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물어붙일 수는 없었기에 영주는 포기하고 이 꿈에서 얼른 깨기로 했다.

 

이제 갈거야?”

“..가야죠. 저는 학생이라 수업을 들어야 하거든요.”

그렇구나.. 또 올거야?”

제 맘대로 할 수가 있나요? 그저 잠들면 여기에 오는데..”

아니야. 여기에 오는 건 네가 원해서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단순한 악몽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눈 앞의 용과 대화를 하게된지도 오래고 심지어 이번에는 본인의 의지로 찾아온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니 영주는 너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제가.. 원해서 이 꿈.. 아니 여기를 오는 거라고요..? 여기가 어딘데요..?”

그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알아서는 안되는 사실을 말해주는데에는 큰 대가가 필요해. 예를 들어.. 누군가 죽게되는 원인이라던가..”

..? 그게 무슨..?!”

이제 가봐야겠네. 너를 찾는 사람이 있어.”

“..?”

 

그 말과 함께 영주는 눈 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고.. 이마에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우리 영주님이 이제는 앉아서 자는 능력까지 얻으셨나봐~?”

 

언제 들어오셨는데 선생님이 영주의 이마에 분필을 던진 것이었다. 아픈 이마를 부여잡으며 이러다 머리 나빠지는거 아닌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영주였다.

 

 

……

 

 

그것은 요즘따라 찾아오는 이가 많은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해서 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에 그것을 찾아온 것은 새하얀 여우 가면에 은빛 꼬리를 가진 여우였다.

 

처음 뵙겠소. 비비나으리

“.. .. ..”

 

아그작.. 아그작..

 

소인은 은호라고 하오.”

“.. .. ..”

 

아그작.. 아그작..

 

소인이 그대를 찾아온 이유는..”

“.. .. ..”

 

아그작.. 아그작..

 

다름이 아니라..”

“.. .. ..”

 

아그작.. 아그작..

 

자신의 말을 무시한채 행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거슬린걸까. 은호는 기분이 상한 듯 했지만 섣불리 행동하지는 않았다.

 

후우.. 소인이 찾아온 이유는 그대가 어린 용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찾아온 것이오. 소인이 그 쪽에게.. 조금 관심이 있어서..”

너도 그 가면 놈이랑 같은 족속인가..”

 

목만이 은호를 향해 돌아가고 쇠를 긁는 듯한 괴상한 목소리가 해골에서 흘러나왔다. 은호는 목소리와 함께 자신을 압박해오는 기운에 몸이 저릿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소인이.. 왜 그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모르겠으나.. 결코 악의가 있는건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시길 바라오. 다만.. 지금 그대와 대화를 이어가기에는 힘들어보이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소.. 그럼 이만..”

 

은호는 파란 불꽃과 함께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행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

 

 

으으음..!”

 

영주는 용이 말했던 사실을 떠올리며 다시 그 장소로 들어가기 위해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일까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일러서 그런가..”

 

일찍 자겠다는 말에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았지만 영주는 아무 일도 없다면서 자신의 방을 뛰어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그 꿈을 꾸길.. 그 꿈을 꾸길..!’

 

결과는 실패. 의식하고 해서 그런 것일까. 꿈은 커녕 잠이 오지 않았다.

 

하아.. 잠이 안오네..”

~”

 

누워서 자려고 애쓰고 있는 가운데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가도 되지?”

 

이미 들어온 상태로 물어보는 엄마는 한결같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못자는 거 같길래.”

 

엄마의 손에 들린 건 뜨끈한 코코아였다.

 

뜨끈한 코코아 한잔 마시면 잠 푹 잘 수 있을거야.”

감사해요 엄마.”

그럼 좋은 꿈 꾸렴.”

 

영주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엄마는 문을 닫고 나갔다. 영주는 엄마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 따끈한 코코아를 깨끗이 비우고는 잠을 청했다. 따끈한 코코아 덕분일까 엄마의 따뜻한 사랑 덕분일까 영주는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

 

 

익숙한 풍경이었다 꿈을 꾸면 항상 보이는 풍경.. 그리고.. 여우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는 검은 뱀..

 

소녀는 여우를 막기위해 움직이고자 하지만 몸은 무언가에 묶인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괴롭힘을 받는 모습을 보다보면..

 

얘 그러면 안돼!”

 

한 여인이 나타나 여우에게 괴롭힘을 받고있는 뱀을 구했다. 여우는 여인을 피해 도망갔고 여인은 뱀을 손에 얹고는 살포시 쓰다듬는다.

 

너는 괴롭힘 안 당할수있으면서 그걸 왜 가만히 있니?”

“.. .. .. ..”

 

뱀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지만 소녀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구해주고 싶은데..”

 

하지만 소녀의 마음과 목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꿈에서 깨고 여느때와 같은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함께 흐르는 눈물.. 소녀는 그에게 닿고 싶었지만 그것은 항상 불가능했다. 꿈에서조차.. 그렇기에 소녀는 그에게 닿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하기로 했고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힘내기로 했다.

 

오늘도.. 할머님께 연애.. 강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