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이지아, 「사실은」(2020-1학기 <웹소설창작과비평>)
등록일
2020-07-10
작성자
국어국문학과
조회수
370


 

 

 

Case 1. 납치사건

 

 

김원장은 구석에 웅크려 벌벌 떨고 있는 아이를 거슬린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김원장의 숨소리 하나하나에도 잔뜩 움츠러들어 위축되어있었다. 여기는 김원장이 운영하는 바른 아이 어린이집”, 그 안에서도 김원장의 사적인 공간인 안쪽구역이었다. 평소라면 아이가 이 구역에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헌신적이라 평가되는 그녀라도 그녀의 사적 공간에 아이들이 드나드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이는 엄연히 그녀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은 분명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일이겠지만 그녀와 아이의 대치가 이상하게 비치는 것은 그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네가 나쁜 거야. 이렇게 된 건 다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란다. 그러게 내가 하는 말을 얌전히 잘 들었으면 얼마나 좋니. 너도, 나도 힘들지 않을 수 있잖니.”

 

김원장은 한 손에 회초리를 든 김원장은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막고 흐느끼고 있었다. 애정 가득한 손길로 윤기 있게 빗겨져서 등원했을 머리카락이 잔뜩 흐트러진 채로 아이의 양쪽 뺨은 이미 새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옷 사이사이로 비치는 피부는 작고 커다란 멍들이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김원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봐봐, 너는 지금 잘못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잖니. 이러니 내가 널 어떻게 예뻐하겠어.”

 

조금 격양된 목소리의 김원장은 조금씩 다가섰다. 훈육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눈빛과 몸짓에서 이미 아이를 상대로 한다는 책임감이나 조절심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이제 누가 보더라도 훈육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김원장은 아이의 잘못이라고 외쳤다. 이 모든 행위가 아이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아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더 이상 뒤로 갈 수도 없을 만큼 벽에 붙었다. 그리곤 곧이어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그저 눈물로 얼룩진 두 눈을 꼭 감고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작은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을 뿐이었다. 마치 이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기라도 한 듯이.

 

봐봐!!!!!! 이것 좀 보라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니, ?!!!! 말을 해!!!!”

 

김원장은 이제는 분을 못 이겨 발악하는 수준으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성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거센 발길로 아이를 차버리기라도 할 듯이 사납게 다가섰다. 자신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김원장을 자극할까 봐 겁을 내던 아이의 손 틈새로 끝내 비명과 같은 울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이 방아쇠라도 되듯 김원장은 아이를 향해 손을 치켜올렸고.

 

“...경찰은 금전을 목적으로 한 유괴로 예상하고 유괴범의 연락을.”

 

뒤로 들려오는 앵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보슬이는 눈앞에 어린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어때, 다영아. 내가 생각한 이번 유괴 사건의 전말이야. 내 생각이 확실해. 분명 김원장이 범인일 거야.”

 

글쎄, 언니. 나는 잘 모르겠어. 우리 원장님은 그렇게 나쁜 짓을 하실 분이 아닌걸?”

 

보슬이와 대화를 하는 아이는 아무리 많이 보더라도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길거리에서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나란히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며, 뉴스를 보고 있는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자매가 아닌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그걸 들은 누구든 그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길 것이다. 그러나 자기 또래 나이의 아이들보다 성숙해야 했던 다영이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보슬이가 사소한 계기로 서로에게 이끌린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비록 그 계기를 보슬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니야. 내 말이 맞아. 알리바이도 애매하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잖아. 김원장이 범인이 확실해.”

 

사실 보슬이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김원장이 운영하는 바른 아이 어린이집은 거의 사회봉사 시설에 가까울 만큼 저렴한 원비만을 받으며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렇기에 이 마을에서 아이를 가진 학부모들이라면은 김원장과 그의 어린이집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 어린이집이라는 특성과 저렴한 원비는 곧 다른 어린이집에 비해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른 아이 어린이집의 취약점은 요즘에는 그 흔하다던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보안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어린이집으로 출퇴근하는 선생님들은 단 1명에 불과했고, 그들이 퇴근하면 그 이후에 모든 아이를 책임지는 것은 김원장 혼자뿐이었다. 납치된 아이는 맞벌이 가정이라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늦은 하원 시간을 의미해 김원장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김원장이라면 아이의 경계심을 풀고 접근할 수 있으며, 아이가 하원 한 척 꾸미는 것 또한 가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원장이 100% 범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그럴듯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납치 범죄가 금전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김원장은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 어린이집을 그럴듯하게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여유가 있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 작은 마을에 있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산이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아이를 매우 좋아했다. 이 작은 마을에서 꾸준히 지역봉사를 도맡고, 적은 돈만 받으며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은 그저 그녀의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대한 애정과 어린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그녀가 처음 이 동네에 나타났을 때 그녀 스스로가 밝힌 이유였고, 작은 동네이니만큼 이야기는 빨리 돌아 이 얘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에게는 원생을 납치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사실 많은 마을 사람들은 이미 김원장에 대한 의심 같은 것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애초에 그렇게 사람 좋기로 유명한 김원장을 의심한 사람조차 매우 적었다. 그러니 사실 보슬이가 김원장을 확신해가며 의심하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확실히 보슬이가 김원장을 의심하는 것은 그저 그녀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수 있는 정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보슬이는 바른 아이 어린이집이 위치한 골목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 길을 통해 가야 하는 곳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그 길이 유일한 경로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그녀는 어쩐지 모르게 어느 날부터 그 길만을 고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길을 지나갈 시간이 될 때쯤 김원장 또한 보슬이가 지나갈 것을 마치 아는 것처럼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보슬이가 어린이집 바로 앞을 지나갈 때면 2초간 서늘해지는 눈빛으로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보슬이는 그 2초간의 기묘한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을 지나가던 그녀는 꼭 그녀를 그러한 눈초리로 내려다봤기 때문이다. 그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지만, 보슬이가 그 감정들을 전부 다 알아차리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눈빛 속에 깃든 감정은 혐오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 골목길을 지나가는 날이 쌓이고 쌓일수록 그 눈빛들로부터 오는 기시감 또한 쌓이고 쌓였다. 그날들 사이에서 보슬이는 어느샌가 그녀에게 의심이 생겼다. 그녀가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저 호의만 가득 찬 사람은 아니라고. 그리고 현재, 원아 납치사건이 터지자 보슬이는 마음속 한구석에서 확신한 것이다. 자신의 의심이 맞았음을. 그러나 그녀의 기시감 그 단 하나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보슬이에게는 김원장이 범인이 맞다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보슬이는 김원장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확실해. 김원장이야.”

 

어느새 다 먹어버린 아이스크림 막대를 들고, 다영이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리고 있는 보슬이를 바라보았다. 다영이에게는 이렇게 대화 중 갑자기 혼자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버리는 보슬이가 익숙했다. 보슬이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생각에 잠겨 걸어갔고, 다영이 또한 그런 그녀와 같이 조용히 거닐을 뿐이었다. 둘 사이에는 아무 대화도 오고 가지 않았지만, 다영이도 보슬이도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걷고 있자 어느새 바른 아이 어린이집이 있는 골목에 도착해 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누군가의 흐느낌이 보슬이의 정신을 드디어 현실 세계로 되돌렸다.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보슬이의 눈앞에 가정 어린이집이 있는 빌라 아래 두 인영이 보였다. 울고 있던 사람의 정체는 이번 납치사건의 당사자인 아이의 엄마였는데, 그 옆을 김원장이 달래고 있었다.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쁜 사람은 꼭 잡혀 벌을 받게 되어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이 어머니. 저희 쪽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경찰에 협조할 생각이니.”

 

감사해요. 김원장님. 울어봤자 상황이 나아지는 게 없는 걸 알면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어서. 엄마가. 엄마가 되어서 이렇게 약하면 안 되는데.”

 

끝내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하늘이 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손길로 달래며 김원장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이미 아이의 어머니는 김원장에 대한 의심은 티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김원장 또한 진심으로 같이 안타까워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 모습에 보슬이는 속이 뒤틀렸다. 그 모든 것이 보슬이에게는 가식적인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아이의 어머니가 김원장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김원장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보슬이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 생각하고 있자 어느새 아이의 어머니는 김원장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직 김원장과 대면하여 무언가를 알아내기에는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한 보슬이는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어머니를 보내며 돌아서는 김원장에 보슬이는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갑자기 찾아든 기묘한 정적과 함께 보슬이는 어딘지 모르는 서늘한 느낌을 받으며, 그녀를 향해 입술을 떼는 김원장의 입을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Case 2. 바른 아이 어린이집

 

 

보슬양이랑 다영이네요. 안으로 들어올래요? 차 한잔하고 가요. 간식거리도 좀 있을 거예요.”

 

보슬이와 다영이를 발견한 김원장은 다정스럽게 말을 건네 왔다. 그러나 보슬이는 그런 그녀의 언행조차 거북했다.

 

아니에.”

 

아직 그녀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게 느낀 보슬이는 거절의 말을 꺼내려고 했으나,

 

좋아요. 선생님!”

 

그녀의 말을 가로챈 건 다영이였다. 다영이는 어느새 김원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쟨 언제 저기까지 간 거지?’

 

보슬이는 그런 다영이가 마치 날쌘 다람쥐 같다고 생각하며 김원장의 반응을 보려 고개를 돌렸다. 김원장 또한 어느새 그런 다영이를 보고 따라 움직이며 보슬이에게도 얼른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다영이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보슬이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김원장을 따라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요즘 동네가 흉흉해요. 다영이도 보슬양도 되도록 늦게까지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알아서 잘하겠지만.”

 

부엌 안쪽에서 음료를 준비하며 김원장은 말을 건넸다. 다영이는 이미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쓰는 책상을 피고 손님용 과자를 꺼내와 먹고 있었다.

 

그러나 보슬이는 마음 편히 앉아 과자를 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확증은 없지만, 보슬이는 김원장을 이번 납치사건의 범인으로 보고 있었다. 위험한 인물 앞에서 마음을 놓고 있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뭐라도 증거를 찾아야 해.’

 

차라리 그녀의 공간 안에 들어온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빨리 사건이 해결될 단서를 찾을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필요한 건 김원장의 시선을 분산시킬 무언가였다. 어린이집은 그렇게 좁은 곳은 아니었지만, 김원장의 의심과 시선을 피하고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넓진 않았다.

 

보슬양은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느새 음료를 준비해 가지고 온 김원장은 보슬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살피느라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보슬이는 김원장에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주춤했다.

 

,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슬이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하곤 음료를 훌쩍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인 아이스티였다. 익숙한 음료를 마시니 마음이 좀 차분해지는 듯했다.

 

한참을 먹고 마시며 떠드는 다영이와 김원장을 보슬이는 그저 지켜보았다. 가끔 자신을 향한 질문들이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김원장을 주시하고 경계하던 보슬이는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보슬이의 몫까지 대신 떠들어대는 듯 조잘거리던 다영이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좀 불편한 듯 몸을 들썩였다.

 

왜 그래?”

 

. 못 참겠다! 화장실 다녀올게요!”

 

왜 굳이 참고 있었는지 의아하게 느끼며 보슬이는 다영이가 화장실을 향해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영이가 없으면 우리가 서로 어색할까 봐 참고 있었나 보네요.”

 

김원장은 그런 다영이의 뒷모습을 같이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아마도 자신이 김원장을 의심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영이 입장에서는 나와 김원장과 안 부딪히게 또한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려 최대한 배려를 한 것이었나보다 생각한 보슬이는 새삼 다영이가 고마워졌다. 그러나 예상대로 다영이가 자리를 뜨자 금세 분위기는 가라앉고 침묵만이 맴돌았다.

 

보슬이는 그저 음료를 홀짝일 뿐이었고, 김원장 또한 보슬이가 대답할 마음이 없는 것을 눈치챈 듯 그저 조용히 웃음을 띠며 보슬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무거운 정적과 긴장감에 보슬이는 자꾸 목이 탔다. 눈치채보니 어느새 음료는 바닥을 보였다.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부엌 냉장고 옆에 정수기가 있단다.”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 보슬이는 김원장의 시선이 떨어져서야 긴장감이 풀렸다. 안도인지 모를 숨을 내쉬며 물을 따르고 있자 부엌 근처의 위치한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하게 듣진 못했지만, 그것은 아이의 흐느낌 같은 소리였다.

 

김원장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그저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보슬이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납치된 아이가 지금 저 문 너머에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보슬이는 문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김원장의 시선이 등 뒤로 날카롭게 꽂히는 듯했다.

 

지금 이 방에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 말이니? 나는 들리지 않았는데. 잘 못 들은 거 같구나.”

 

아뇨, 분명히 들렸어요. 분명 아이의 목소리였는데.”

 

김원장은 아까와 같은 표정이었으나 기분 탓인지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보였다.

 

글쎄, 저 방은 내 개인적인 공간이라 아이들은 드나들지 않는단다. 티비라도 켜놨을지도 모르겠구나.”

 

한 번 확인해봐도 될까요? 혹시 누군가 들었을지도 모르죠. 아무래도 요즘 마을이 흉흉하니까요.”

 

괜찮단다. 저 방은 창문도 없거든.”

 

김원장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대화를 끊고 커피를 마셨다. 보슬이는 방문 너머를 보기라도 할 듯이 응시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한번 어떤 소리라도 들릴 것 같았다.

 

그냥 확 열어버릴까?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위험한데.’

 

보슬이는 고민했다. 더 이상 문 앞에서 서 있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나면 안에 아이가 위험하다. 누군가 김원장의 시선을 끌어주면 좋을 텐데. 슬슬 김원장이 가만히 있는 보슬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그 순간, 신이 도운 듯 초인종이 울렸다.

 

김원장님 계세요~? 다영이 엄마예요~”

 

네 어머님. 나가요~”

 

김원장은 그대로 일어나 문 쪽으로 이동했다. 둘이 문 앞에서 하는 대화를 엿들어보니 다영이 어머니는 다영이를 데리러 오신 듯했다. 몇 분 동안은 문 앞에서 사담할 듯해 보였다. 지금이 기회였다. 보슬이는 수상한 그 방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확신하고 문을 열었으나 막상 방 안으로 들어온 보슬이는 당황했다. 거기에는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소리를 들었는데

 

김원장은 계속 자신의 시야 안에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아이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마 공범이 있는 건가? 그러나 방안은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고, 김원장의 말대로 창문조차 없는 방이었다. 모든 상황이 그녀가 잘 못 들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보슬이는 누군가에게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분명 아이의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녀가 중얼거리며 생각하고 있자 순간 뜨문뜨문 김원장과 다영이 엄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이런 생각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시간이 없어 얼른 증거가 될 만한 걸 찾아야 해.’

 

김원장의 방에 들어온 것은 두 번 다신 안 올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보슬이는 서둘러 김원장의 방을 뒤적였다. 마음이 급한 덕에 예상보다 상당히 많은 곳을 빠르게 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증거가 쉽게 나오진 않았다. 밖에선 다영이가 짐을 챙기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보슬이는 서둘러 손 닿는 아무 서랍이나 열었다.

 

이건.”

 

거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알약 봉지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각양각색의 알약들은 도저히 일반가정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의약품의 종류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엄청난 것을 찾을 걸지도 모른다며 보슬이는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알약들뿐만은 아니었다. 알약들 아래 사진 한 장이 숨겨놓은 듯 놓여 있었다.

 

그러나 사진 한 장 정도가 서랍 속에 섞여 있다 해서 이상하게 여길 것은 아니었다. 이상한 점은 사진이 놓인 장소가 아닌 그 사진 자체에 있었다. 사진은 지금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김원장과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누군가 일부러 그런 듯 아이의 얼굴 부분만 까맣게 타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보자 보슬이는 확신이 들었다. 김원장에게 학대당한 아이가 이번 유괴 사건 아이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보슬이는 뭐가 됐든 이 사진과 저 약들을 사진이라도 찍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슬이가 핸드폰을 찾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는 바로 그 순간 바깥에 이변이 생겼다. 다영이와 다영이 어머니를 배웅하는 김원장의 소리가 들린 것이다. 김원장에게 이 방 안에 있는 것을 들키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보슬이는 얼른 이 방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의식중으로 사진과 핸드폰을 같이 주머니에 넣곤 얼른 방 밖으로 나갔다.

 

어머, 보슬양 미안해요. 내가 보슬양이 있다는 걸 깜박하고.”

 

보슬이가 방문을 닫고 바로 앞을 보는 그 순간 김원장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봤을까?’

 

보슬이는 긴장감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김원장은 보슬이를 살짝 의아하게 쳐다볼 뿐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아니에요, 제가 너무 오래 있었네요. 이만 가볼게요. 오늘 감사했어요.”

 

보슬이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인사하곤 허겁지겁 어린이집을 나왔다.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요~”

 

김원장은 자연스럽지 못한 보슬이의 행동을 보며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평소처럼 웃으며 배웅하였다.

 

어린이집 밖으로 나온 보슬이는 긴장감이 풀림과 동시에 한 번에 피로감이 몰아닥치는 것 같았다. 얼른 집으로 향해야지 생각하며 오늘 얻은 정보들을 정리하려 핸드폰을 꺼내 든 그때 보슬이는 그녀가 같이 가져온 사진을 발견했다.

 

어떡하지.’

 

그 방에 들어갔다는 것을 들키는 것과 같으니 돌려주러 갈 수는 없었다. 약봉지 속에 대충 파묻혀있었으니 이 사진이 없어졌다는 걸 최대한 늦게 깨달아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예상외에 수확에 보슬이는 들뜨는 기분이었다. 김원장에게서 느끼는 싸함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아이와 같이 찍은 사진을 태워버릴 정도일 줄이야. 아마 그 서랍장에 약들도 그녀의 이런 정신병적인 면모를 감추려고 먹는 것이겠지.

 

사진이야 실수로 태웠다고 하면 되는 것이고, 약들 또한 아직 어떤 약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슬이는 김원장의 약점을 잡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보다 상쾌한듯한 바람을 맞으며 보슬이는 집으로 향했다.

 

 

 

 

 

 

 

 

 

 

 

 

 

 

 

 

 

 

 

 

 

 

 

 

 

 

 

 

 

 

 

 

 

 

 

 

 

 

 

 

Case 3. 어떻게 할 건데?

 

 

그래서 어제 뭐 했길래 중간에 사라졌어? 인사하고 가려고 했는데 안보여서 당황했잖아.”

 

보슬이와 다영이는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고 있었다. 굳이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3시쯤만 되면 놀이터에 모여 사담을 늘어놓곤 했다. 딱히 말로 꺼낸 약속이 아니기에 한 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러려니 했다. 오늘은 어제 일도 있고 하니 목적이 있어서 모인 것이지만.

 

부엌 안쪽에 애들은 못 들어가게 해놓는 방이 있다며? 거기 들어갔다 왔어.”

 

, 들켰으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했어? 그 방은 왜 들어갔는데?”

 

놀란 나머지 다영이는 시소를 타기 위해 구르던 발을 그대로 멈췄다. 대책이 없는 어린아이를 혼내는 듯한 경악감이 눈빛 속에 들어있었다.

 

안 들킬 자신이 있었지. 들켰으면. 뭐 그때의 내가 잘 해결했을 거라고 믿어. 그것보다 들키고 안 들키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다영이가 쳐다봤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지 알아? 분명히 그 시간에 있을 리가 없는 아이 목소리가 들렸어.”

 

다영이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이 목소리라고? 거기 진짜 그 아이가 있었어?”

 

. 열어보니까 아무도 없긴 했는데 진짜 분명 똑똑히 들었다니까?”

 

다영이는 김빠진 표정으로 다시 그네를 타기 위해 발을 굴렀다.

 

에이. 뭐야. 언니가 잘 못 들었겠지. 그 방은 아무 데도 연결 안 돼 있는데 걔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지겠어.”

 

그거야 모르지. 어쨌든 똑똑히 들었다고 난!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야. 내가 김원장 방에서 뭘 찾았는지 알아?”

 

보슬이는 약간 들뜬 듯 뜸을 들이다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방안을 샅샅이 뒤져봐도 아무것도 안 나오길래 김샐뻔했는데, 마지막으로 연 서랍 안에 약이 가득 한 거야! 보통 사람들이 가정에 갖고 있는 상비약은 아니었어. 분명 그 여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왜 사람들은 겉만 보고는 모르잖아. 그리고 하나 더.”

 

보슬이는 주머니에서 어제 습득한 그 사진을 꺼내 다영이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그치? 수상하지? 분명 김원장이 예전에 돌보던 어떤 애랑 같이 찍은 걸 텐데 애 얼굴만 누가 의도적으로 태운 것처럼 없어져있잖아.”

 

.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한데 그렇다고 이게 증거가 될 순 없어. 언니. 약도 원장님이 어디 아프신 걸 수도 있잖아.”

 

...렇긴 한데! 나도 이게 완벽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김원장이 의심스럽다는 걸 증명할 때 도움은 될 거야!”

 

허를 찔린 보슬이는 당황한 듯 말이 빨라졌다. 다영이는 조금 안타까운듯한 표정으로 보슬이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 ?”

 

원장님이 범인이라는 걸 증명할 거라며. 일단 어린이집은 아닌 거 확인했잖아.”

 

, 맞아. 그래서 말인데, 김원장의 과거부터 캐보려구.”

 

과거?”

 

! 이 사진의 아이도 똑같은 피해자이지 않을까? 이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아보려고. 김원장이 뭘 하던 사람인지도.”

 

그걸 어떻게 알아볼 건데?”

 

일단 동네 사람들 중에 남의 일에 밝고 제일 오래 마을에 있던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그게 누군데? 라는 다영이의 물음에 보슬이는 가보면 안다며 앞장섰다. 다영이는 어차피 경찰이 밝혀줄 테니 이 모든 일이 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보슬이가 만족스러워하고 자신 또한 별달리 할 일이 없으니 어울려주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둘이 재잘재잘 떠들며 걷고 있자 어느새 정겨운 마을 슈퍼에 도착했다.

 

사실 이 슈퍼는 구멍가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작고 허름한 보잘것없는 가게였으나, 마을에서 꽤 오래 장사하기도 했고, 슈퍼 앞에 넓은 탁상 덕에 동네 어른들이 와서 쉬어가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 모여 떠들기도 하는 동네의 소소한 핫스팟이었다.

 

확실히 여기라면.”

 

그치? 일단 뭐 좀 사고 여쭤보자. 내가 살게 아무거나 골라.”

 

마치 큰 발견이라도 한 듯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보슬이는 가게 안으로 앞장섰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렴, 애들아.”

 

환하게 웃으며 보슬이와 다영이를 반기는 것은 50대 후반의 가게 주인아주머니였다. 보슬이와 다영이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간식거리와 마실 거리를 골라와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5300원이다.”

 

거슬러진 돈을 받으며 보슬이는 드디어 이 가게에 온 목적을 이루려 입을 뗐다.

 

아주머니는 여기서 얼마나 장사하셨어요?”

 

나 말이니? . 글쎄, 내가 이 집에 시집오고부터 이어받았으니, 30년은 되었겠구나.”

 

다영이는 어느새 슈퍼 밖 탁상에 앉아 있었다. 저 둘의 대화에 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럼 이 동네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아시겠네요?”“

 

그렇지 뭐.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보니?“

 

아주머니는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제가 궁금한 사람이 있어서요. 혹시 바른 아이 어린이집 원장님은 언제 이 동네로 이사 오셨는지 아세요?“

 

~ 김원장님 말이구나. 그래그래. 알려주마. 글쎄. . 10년 전이었나? 10년 전이 맞을 게다.“

 

아주머니는 무언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왜 이사 온 건지 아세요?“

 

아마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왔을 거다. 이 마을에 특별히 애정이 있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구나.”

 

혹시 이사 왔을 때 별다른 수상한 점은 없었나요?”

 

이 질문에 아주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이상한 질문을 하는구나. 수상한 사람이면 동네 사람들이 원장님을 그렇게 따르진 않았을 거다. 특이한 건 그 집 따.”

 

아주머니는 말하다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때렸다.

 

아이고 주책이지. 주책이야. 신경 쓰지 말렴. 말이 헛나왔단다.”

 

보슬이는 아주머니를 수상하게 쳐다봤지만, 그 뒷말을 딱히 재촉하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혹시 김원장님이 그 전에 어디서 살았는지 그전에는 뭐 했는지 아세요?”

 

글쎄, 그것까진 모르겠구나. 다만 좀 잘살던 동네에서 살았고 전에도 어린이집을 했다고 들은 거 같은데.”

 

감사해요. 말씀해주셔서.”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뭐. 괜찮단다.”

 

아주머니는 보슬이를 향해 다정하게 웃었다.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보슬이는 이런 사람들이 김원장에게 속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띔이라도 해줘야지 이 사람들이 나중에 배신감이 덜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 보슬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아주머니는 이번 유괴 사건의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갑자기 뜬금없는 주제에 아주머니는 의아한 듯하였다.

 

. 모르겠구나. 아마 돈이 목적인 범죄자겠지?”

 

김원장님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가장 유력한 용의자잖아요.”

 

보슬이는 그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했다. 아주머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기 때문이다.

 

이상한 얘기할 거면 이만 가는 게 좋겠구나. 다음 손님 받아야 한다.”

 

아까까진 다정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게 차가운 목소리로 아주머니는 보슬이를 내쫓았다. 밖에선 다영이가 내쫓긴 보슬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영이 또한 갑자기 변한 아주머니의 반응에 놀란 듯 보였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의아할 뿐이었다.

 

동네 슈퍼 외에도 다양한 곳을 돌며 김원장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줄줄이 허탕이었다. 같은 정보밖에 모이지 않았다. 거기다 매번 김원장이 의심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과하게 거부반응을 보였다. 거기다 대개의 사람들이 보슬이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그 반응을 수차례 반복하고 다시 보슬이와 다영이는 놀이터로 돌아왔다. 시간은 벌써 6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 지쳤다.”

 

벤치에 기대 보슬이는 축 늘어졌다.

 

결국, 얻은 게 없네.”

 

다영이는 그런 보슬이를 보며 서 있었다.

 

아니, 근데 이상하지 않아? 다들 너무 과도하게 김원장을 감싸잖아.”

 

확실히 그건 좀 이상하더라.”

 

김원장이 뭔가 수를 써뒀나.”

 

그냥 원장님이 동네 봉사도 자주 다니고 하니까 다들 감싼 거겠지.”

 

그래도 좀 과한데.”

 

끙 소리를 내며 보슬이는 고민했다. 생각보다 소득이 별로 없어 한참을 뛰어다녔는데도 어제와 같은 상태이다.

 

일단 난 가볼게. 언니. 곧 엄마 오실 시간이야.”

 

. 알았어. 데려다줄까?”

 

아니야. 가까운데 뭐. 혼자 갈 수 있어.”

 

아니야. 그래도 데려다줄게. 위험하잖아.”

 

보슬이는 벤치에서 일어나 익숙한 듯 다영이의 손을 잡고 앞장섰다. 다영이는 그저 조용히 따라갔다. 얼마 되지 않는 길이지만 둘이 사사로운 이야기를 떠들며 걷자 금방 다영이의 집 근처가 되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보슬이에게 익숙한 형체가 걸어왔다.

 

! 아저씨!”

 

보슬이는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다영이는 그런 보슬이를 한 번 쳐다보더니 작게 먼저 간다는 말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보슬이는 듣지 못했지만, 어차피 그녀에게 이미 다영이는 보이지 않았다.

 

누가 아저씨야.”

 

소탈하게 웃으며 다가온 것은 멀끔하게 생긴 30대 중후반 청년, 권지승이었다.

 

내 나이에는 아저씨가 맞죠. 설마 오빠라고 불리고 싶어요?”

 

보슬이는 장난치며 그를 툭 쳤다. 거기에 반응하듯 힘없이 비틀대며 권지승은 보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늦은 시간까지 집에 안 가고 뭐 하고 있었어.”

 

다영이랑 같이 뭐 좀 알아보고 있었어요.”

 

쓰다듬는 손길을 장난치듯 피하며 보슬이는 배시시 웃었다. 권지승은 보슬이가 알아보고 있다는 것에 흥미가 있는 듯했다.

 

뭘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냥 좀 요즘 의심 가는 게 생겨서요.”

 

보슬이는 순간적으로 권지승 또한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라면 좀 더 나은 정보를 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권지승은 자신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 자신의 편이 되어줄 수도 있다. 마침 권지승은 보슬이가 무언가를 캐고 다니는 것에 흥미가 있는 듯해 보였다.

 

아저씨도 알고 싶어요? 알려줄까요?”

 

보슬이의 흥미 유발에 권지승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래. 오랜만에 보슬이 근황도 들을 겸 얘기 좀 하고 가자

 

권지승은 보슬이와 친한 주민이기도 했지만, 보슬이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보슬이는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권지승을 자주 찾았다. 그럴 때마다 권지승은 보슬이가 어떠한 말을 하든 잘 들어주며 열심히 조언해주고 상담해주었다. 다른 것에 신경이 팔려 한동안 권지승을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마주쳐 보슬이는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보슬이와 권지승은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상담 장소인 공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Case 4. 그녀의 과거

 

 

그래서 무슨 일인데?”

 

권지승은 뽑아온 자판기 음료를 건넸다. 벤치에 앉아 있던 보슬이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까닥이며 음료를 받았다.

 

그게. 이번에 일어난 유괴 사건 알아요?”

 

당연히 알지. 엄청 시끄럽잖아. 근데 그게 왜?”

 

아저씨는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해요?”

 

글쎄 뭐 사람들이 돈을 노리는 유괴라고 말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진짜로 그럴까요? 이 작은 마을에서 굳이?”

 

보슬이 생각은 다르구나? 넌 누구라고 생각하는데?”

 

권지승은 흥미로운 듯 보슬이를 바라보았다.

 

저는. 아무래도 최측근이 가장 의심되겠죠.”

 

보슬이는 의미심장하게 떠보듯이 말했다. 권지승은 여전히 웃으며 그녀가 유도하고자 하는 대답을 해주려 노력했다.

 

. 그럼 그 아이의 부모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뇨.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걔네 어머니는 진짜 슬퍼 보였거든요. 제 말은, 어린이집 원장님이 가장 수상하지 않냐는 거에요.”

 

권지승은 좀 놀란 듯이 보였다. 그러나 다른 주민들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저 김원장의 이름이 나온 것이 놀라운 것처럼 보였다.

 

김원장님? . 어떻게 보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시긴 했지. 근데 지금은 다들 아니라고 생각하시지 않나?”

 

맞아요. 그게 이상한 거예요. 분명히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일 텐데, 마을 사람들이 너무 쉽게 의심을 풀었잖아요.”

 

듣고 보니 그렇네. 경찰도 아직까진 김원장님을 용의자로 보고 있긴 하니까.”

 

그렇죠?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범인은 김원장이 맞다니까요! 내가 사람들한테 그렇게 가르쳐줬는데도 다들 들은 척도 안 하고!”

 

보슬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긍정하는 반응에 흥분하여 외쳤다. 자신을 계속 도와주던 다영이조차 시큰둥한 반응이었는데, 권지승의 긍정적인 반응이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것만 같았다. 권지승은 그런 보슬이를 보고 소리 내 웃으며 진정시켰다.

 

진정해. 보슬아. 그렇다고 아직 김원장님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할 수는 없어. 그저 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보슬이는 조금 실망한 기색을 비쳤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얘기했던 사람들 중에는 권지승이 가장 자신을 이해하는 듯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보슬이 또한 아직은 김원장에 대한 확증이 없어서 유력한 용의자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어쨌든 아저씨도 나랑 같은 생각이라서 다행이에요. 혼자서라도 김원장이 수상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썼는데 잘 되질 않아서.”

 

보슬이는 부끄러운 듯 살며시 웃어 보였다. 권지승은 그런 보슬이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 미안하지만 나도 너랑 같은 의견은 아니야. 나도 김원장님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물론 유력한 용의자이시긴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그런 짓을 할만한 분은 아니시라고 생각하니까.”

 

멋쩍게 웃으며 난감해하는 권지승을 보고 보슬이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왠지 모를 배신감마저 들었다. 줬다 뺏는 것이 더 나쁜 것이라고 권지승은 보슬이에게 자신의 편이 생겼다는 희망을 안겨줘 놓고는 그대로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결국 다 똑같아.’

 

이번에도 꾸중이나 설득을 당할 거라 생각하며 보슬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 한 그 순간, 권지승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아직은 나도 마을 사람들도 김원장님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겠네.”

 

엉거주춤한 자세로 보슬이는 권지승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편협한 사고에 사로잡혀 보슬이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믿었던 권지승 또한 그들과 같은 쪽에 서 있었다. 그러나 권지승은 그들과는 달랐다. 반대에 서 있음에도 비난하거나 꾸중하려 들지 않고 보슬이가 주장하는 것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같이 생각해주었다. 보슬이는 그런 권지승이 항상 좋았다. 보슬이가 터무니없는 얘기를 해도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 권지승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보슬이는 다시 자리에 앉아 권지승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맞아요! 역시 아저씨~, 이제야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네.”

 

하하, 그거 고맙네. 그래서 아까 혼자서 증명하려고 했다고 했는데, 뭔가 알아본 거야?”

 

. 그거요? 사실 별거 아니긴 한데.”

 

보슬이는 순간 권지승에게 자신이 김원장의 방에서 본 것을 말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권지승을 알아 오면서 그가 여태껏 보여줬던 언행들은 보슬이가 그를 신뢰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지승은 자신과 다른 의견일지라도 비난하거나 배신하지 않을 거야. 여태까지의 마을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고개를 젓고는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조심스럽게 입 밖에 꺼냈다.

 

.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야기를 다 들은 권지승은 보슬이가 건네준 사진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아이의 얼굴만 의도적으로 태운 것처럼 그을려 사라져 있었다.

 

그래도 김원장님 나이대에 사람들 서랍에 약봉지가 많은 건 드문 일도 아니고 말이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겠네.”

 

그렇죠?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뭔가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도 안 나오고. 이 마을에 오기 전에 김원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면 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근데, 하나만 묻자. 보슬아.”

 

한참을 사진을 살펴보던 권지승은 갑작스레 진지한 표정으로 보슬이를 바라보았다. 보슬이는 왠지 모르게 그러한 권지승이 낯설게 느껴졌다. 둘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김원장님이 범인이라는 것을 그렇게까지 증명하고 싶어 하는 거야? 그냥 경찰이 해결 하도록 내버려 두면 될 일이잖아.”

 

그야.”

 

보슬이는 생각했다. 그야 납치된 아이가 불쌍하니까. 그야 마을 사람들이 불쌍하니까. 그야 아무도 김원장을 의심하지 않으니까. 많은 이유들이 혀끝을 스쳐 지나갔지만, 어떠한 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로 어쩐지 말문이 막혀버렸다. 사실 그런 것들은 그저 경찰이 해결하게 놔두면 되는 일이었다. 다른 사건이었어도, 김원장이 관련되지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나섰을까? 보슬이는 의문이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증명하고 싶어 하는가?

 

사실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김원장에 대한 꺼림칙함. 하교하는 길엔 항상 보슬이를 내려다보던 그 기분 나쁜 눈초리 속에 담긴 혐오감. 그것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출되어 자신의 눈앞에 내어졌을 때, 그 순간을 잡고, 김원장에게 내뱉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을? 보슬이는 자신의 안에서 끓어오르는 이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밝혀내고 끝내 이 감정을 그녀에게 토해내야 한다.

 

그야?”

 

어느새 자신의 세계에 갇힌 보슬이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권지승은 되물었다. 보슬이는 화들짝 자신의 생각 속에서 깨어났다.

 

그야.”

 

끝내 보슬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들이 납득할 만한 명확하게 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보슬이를 권지승은 지긋이 바라보다 이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알았어. 말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나중에 이유를 찾으면 꼭 말해줘야 해.”

 

.”

 

그래서,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었지?”

 

! 맞아요. 마을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물어도 잘 모른다고만 해서.”

 

김원장님에 대한 거?”

 

, 김원장님이 전에 뭘 했는지, 어쩌다 이 마을까지 왔는지, 또 이 마을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면 실마리가 잡힐까 해서요.”

 

좋은 생각이네. 근데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녀가 이름을 바꿨다는 것 말고는.”

보슬이는 순간적으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서둘러 이어지는 그의 뒷말에 표정이 펴졌다. 이름을 바꾼 걸 안 정도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게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는 법이었다. 보슬이는 김원장이 이름을 바꾼 이유조차 수상한 이유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요? 바뀌기 전 이름을 알아요?”

 

그래. 알고 싶니?”

 

! 당연하죠. 빨리 알려주세요!”

 

그래. 김원장의 원래 이름은.”

 

김원장의 이름을 알아낸 보슬이는 권지승과 한참을 근황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보슬이의 마음속은 무언가를 알아낸 듯한 뿌듯함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른 오늘의 수확을 내일 다영이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뭘 알아냈는데?”

 

그게 말이야! 김원장의 지금 이름이 원래 이름이 아니래!”

 

어제에 데자뷰 같이 둘은 또 같은 공원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영이는 그네를 타고 있고 그 뒤를 보슬이가 밀고 있다는 정도였다.

 

이름 바꾸셨구나. 원장님. 그래서 그 전 이름은 알아냈어?”

 

당연하지! 빨리 확인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나 혼자 확인하면 다영이 네가 서운할까 봐 꾹 참구 기다렸지~.”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서 그 이름 가지고 뭐할 건데?”

 

일단은 인터넷에다 쳐보려고. 뭐라도 나오길 바라야지.”

 

이름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 김원장님이 딱히 인터넷에 나올 정도의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거지. 혹시 몰라? 무슨 문제가 있어서 숨기려고 이름을 바꾸고 이 마을에 숨어들어왔는지?”

 

상상력이 지나쳐. 언니.”

 

둘은 이젠 벤치에 앉아 보슬이의 휴대폰으로 김원장의 이름을 쳐보고 있었다. 다영이의 예상대로 보슬이가 원하는 내용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동명이인의 유명인들이 주를 이뤘고 그 외에는 알지 못하는 타인들의 사진이었다. 보슬이는 카테고리를 뉴스로 바꾸고 다양한 수식어를 붙이며 김원장의 이름을 쳤다. 다영이는 시간이 꽤 걸리자 지루한 듯 벤치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 잘 안 나오네.”

 

보슬이가 한참을 찾다 포기할 때쯤 15년 전 기사 하나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기사 내용은 어느 구에서 국공립어린이집을 개원했다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저 타이틀만 읽고 지나칠 만한 별거 아닌 내용의 기사였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기사에 보슬이의 시선이 끌린 것은 그 어린이집의 원장이 김원장의 예전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도 그 기사에는 그 어린이집의 원생들과 같이 찍은 듯한 사진이 실려있었다.

 

제발 내가 찾는 거여라.’

 

사진을 클릭하고 잠시 후 보슬이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화면을 들여다본 다영이 또한 눈이 커다래졌다. 그 사진 속에는.

 

 

 

 

 

 

 

 

 

 

 

 

 

 

 

 

 

 

 

 

 

 

 

 

 

 

 

 

Case 5. 다시 한번 잠입

 

 

사진 속에는 보슬이가 그토록 찾아다닌 김원장의 옛 모습이 있었다. 보슬이는 기쁨에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보슬이의 반응이 의아했던 다영이 또한 보슬이의 핸드폰에 비친 김원장의 옛 모습을 보고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아싸! 발견했다!”

 

들뜸이 담뿍 묻어난 목소리로 보슬이는 소리쳤다. 그런 보슬이를 보고 다영이 또한 미소지었다.

 

진짜 찾을 줄 몰랐는데 축하해. 언니.”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다시 한번 사진을 들여다보던 보슬이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이 커졌다.

 

잠만 들고 있어 봐.”

 

다영이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주머니를 뒤지던 보슬이의 손에 들린 것은 얼마 전 보슬이가 김원장의 집에서 몰래 가져왔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왜?”

 

의아하게 생각한 다영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사진과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보다, 그녀 또한 깨달은 듯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보슬이의 핸드폰 사진 속에는 얼굴이 타들어 있는 그 아이와 같은 옷을 한 아이가 똑같이 김원장 옆에 서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옷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이거. 같은 애겠지?”

 

자세히 보니 뒤에 배경조차 똑같은 건물이었다. 두 아이는 체형과 머리 길이 등 꽤 많은 부분이 유사해 있었다. 보슬이는 사진의 탄 부분을 핸드폰 사진 속 아이의 얼굴에 맞췄다. 사진의 선명도와 크기 등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이 아이는 누구길래 김원장과 두 번이나 사진을 찍은 것일까? 의문이 든 보슬이는 사진을 보느라 내팽개쳐 두었던 기사를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사를 다 읽어도 소득은 없었다. 그냥 단순히 어느 구에 구립 어린이집이 생겼다는 보슬이에게는 별 볼 일 없는 기사였다.

 

하아. 하나 겨우 찾았다 싶어도 또 그다음은 모르겠고 그러네.”

 

보슬이의 한숨을 곁눈질하던 다영이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조용히 기사의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언니, 여기.”

 

다영이의 손끝에는 그 기사를 쓴 듯한 기자의 메일이 적혀있었다. 보슬이는 그런 다영이와 메일을 의아하게 번갈아 바라보았다.

 

? 이게 뭐 어쨌다고. !”

 

그러나 이윽고 다영이의 의도를 깨닫고 보슬이는 소리쳤다.

 

기자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겠구나!”

 

하지만. 기억 못 할지도 몰라. 15년 전 일이고.”

 

확실히 15년간 기억하기에 이 기사는 딱히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보슬이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저 그 기자가 조금이라도 많이 기억해 내주길 바라는 수밖엔.

 

, 그럼 메일은 보냈고. 답장이 얼른 오길 기다리는 수밖엔 없나~”

 

그렇게 말했지만, 메일이 언제 답장 올지, 심지어 그게 답장이 올지에 대한 확신조차 보슬이에게는 없었다. 메일은 메일대로 보슬이는 보슬이대로 할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보슬이는 여기서 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그녀의 옛 이름과 정체 모를 김원장 주변 아이가 끝이었다.

 

무언가 확실한 게 있으면 좋을 텐데.”

 

혼자 골똘히 생각하던 보슬이는 바로 옆에서 나는 소란스러움에 다영이를 쳐다보았다. 다영이는 무언가 꽤 곤란한 듯 가방을 정신없이 뒤적이고 있었다.

 

다영? 왜 그래?”

 

학교 끝나고 어린이집에 잠깐 들렀었는데 집 열쇠를 거기에 두고 왔나 봐.”

 

다영이는 꽤 곤란한 듯 보였다. 열쇠 찾는 걸 끝내면 같이 어린이집에 찾으러 가줄까 하다가 순간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그 순간 보슬이는 벌떡 일어서서 다영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일어난 보슬이를 다영이는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자! 다영.”

 

어디를?”

 

열쇠 찾으러!”

 

다영이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보슬이를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차피 열쇠를 찾으려면 별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영이는 작게 한숨을 쉬며 보슬이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언니는 가서 또 뭘 할 셈이야?”

 

조금 들뜬 걸음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보슬이를 보며 다영이는 질문했다. 평소에는 최대한 김원장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했던 보슬이이다. 그런 그녀가 김원장의 본거지로 향하는데 발걸음이 가볍다는 것은 다영이에게는 충분히 수상하게 여길만한 일이었다.

 

그게. 어차피 메일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할 게 없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그게 왜? 설마 김원장님께 직접 물어보려 하는 건 아니지?”

 

다영이는 불길한 예감에 더더욱 불안한 눈빛으로 보슬이를 쳐다보았다.

 

에이~ 나도 그 정도까진 직설적이진 못하지. 그런 게 아니라,”

 

잠시 뜸을 들이던 보슬이는 다시 말을 이엇다.

 

그 왜, 전에 김원장 방에서 엄청 많은 약을 봤다고 했잖아?”

 

설마.”

 

맞아. 다시 한번 그 방에 들어가서 조금만 가져오게.”

 

무언가 칭찬받을만한 대단한 일을 하려는 아이처럼 들떠 말하면서 보슬이는 다영이를 보며 웃었다. 다영이는 그런 보슬이의 대책 없는 행동력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들어가려고 그래? 저번엔 운이 좋아서 겨우 안 들키고 들어갔다 나온 거지만, 혹시라도 그새 김원장님이 사진이 없어진 걸 깨달았다면 우릴 제일 먼저 의심할 거라고.”

 

그러니까, 진짜 진짜 빨리 약만 가지고 나올 테니까, 네가 김원장 주의를 좀 끌어주라. ?”

 

다영이는 보슬이를 꽤 좋아했다.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다영이에게 친구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상대는 몇 없었다. 보슬이는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보슬이의 부탁은 이렇게 가볍게 부탁한다고 꺼낼 만큼 가벼운 부탁도 아니었고, 보슬이에게 협력하고 있긴 하지만 다영이는 김원장님을 딱히 의심하지도 적대시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영이는 보슬이를 꽤 좋아했다. 이런 억지에 어울려줄 만큼.

 

하아. 알았어. 하지만 진짜 잠깐이야. 들켜도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다영이가 수락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보슬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영이에게 천연덕스럽게 부탁하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어도 사실 보슬이 또한 긴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원장과 마주치는 것은 보슬이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보슬이는 흥분됐다. 여태까지 뭐 하나 쉽게 풀리는 일은 없었지만, 그런데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메일의 답장이 온다면 수수께끼의 아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고, 약을 무사히 가져온다면 그 약의 정체를 알아내 김원장의 약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손에 제대로 얻은 건 없지만 일의 판국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자, 어느새 어린이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전에 왔던 것관 달리 다영이는 조금 긴장된 듯이 보였다. 둘은 잠시 마주 보곤 문을 열고 계단을 올랐다. 어린이집 입구에 서서 벨을 누르자 금방 김원장은 문을 열었다.

 

어머. 둘 다 웬일이에요? 일단 들어와요.”

 

김원장은 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듯했지만 이내 평소의 그녀처럼 자상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였다.

 

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다 집 열쇠를 흘리고 간 것 같아서요.”

 

실례하겠습니다.”

 

! 그랬구나. 천천히 찾다가 가요. 음료수라도 한 잔 내올게요.”

 

다영이의 작전은 이랬다. 일단은 다영이의 열쇠를 찾는 게 우선이다. 보슬이의 목적이 어떻든 다영이는 이곳에 열쇠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열쇠를 다 찾은 후에 다영이는 화장실을 빌릴 것이다. 볼일을 보는 척하면서 휴지를 변기가 막힐 만큼 뭉쳐 변기에 넣고 내린다. 막힌 변기에 난감한 척 김원장을 부른다면 김원장은 변기를 뚫는데 집중할 것이다. 그때를 노려 보슬이는 얼른 방에 가서 필요한 만큼의 약을 가져온다. 괜찮은 작전이지만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흠이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둘이 할 일은 열쇠를 찾는 것이었다.

 

김원장이 내온 음료수의 마지막 얼음조차 다 녹았을 즈음 다영이는 장난감들 사이에 파묻혀있던 집 열쇠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찾아서.”

 

정말이에요. 못 찾는 줄 알았어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영이는 웃었다. 그러고 곧 경직된 표정으로 보슬이를 한 번 바라보았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요.”

 

전과 같이 다영이가 없어지니 둘 사이에 정적이 맴돌았다. 김원장은 보슬이를 조금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 그냥. 평범하게 지내요.”

 

그렇구나. 평범하게.”

 

김원장의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어서 보슬이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순간 다영이에게서 신호가 오듯 화장실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을 연 다영이는 조심스럽게 김원장을 불렀다.

 

원장선생님.”

 

왜 그래요? 다영양.”

 

저 변기가 막혀서요.”

 

, 금방 갈게요. 잠시만요.”

 

아무 의심도 없이 김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보슬이는 서둘러 김원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쯤 서랍이었던 거 같은데.’

 

생각보다 어느 서랍이었는지가 기억이 안 나 지체되고 있었다. 보슬이의 손이 다급해지고 있었다. 밖에서는 슬슬 마무리되려는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조급해진 보슬이는 이젠 아무거나 열고 닫기 시작했다. 그때 운 좋게 손에 얻어걸린 서랍 속이 익숙했다.

 

찾았다.’

 

밖에서는 변기 물을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보슬이는 얼른 서랍 안에 가득 찬 약들을 움켜쥐어 주머니에 찔러놓고 서둘러 나왔다. 보슬이가 문을 닫음과 동시에 김원장과 다영이 또한 화장실에서 나왔다.

 

어머, 누가 이렇게 휴지를 잔뜩 넣어서 내린 걸까?”

 

그러게요.”

 

다영이는 방문을 잠그고 그대로 거실에 서 있는 보슬이를 보고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잘 넘긴 것 같았다.

 

다 뚫으셨나 봐요? 다행이네요. 내려가서.”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보슬이는 말을 걸었다. 김원장은 딱히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거 같았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볼게요. 가자 다영아.”

 

다영이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가방을 챙겨 들고는 김원장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나왔다. 둘은 어린이집이 안 보일 때까지 걸어가서야 겨우 긴장을 풀고 주저앉았다.

 

위험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보슬이를 보고 다영이는 눈을 흘겼다.

 

금방 찾고 나올거랬잖아. 왜 그렇게 아슬할 때까지 끈 거야. 하마터면 들킬뻔했어.”

 

아니 그게, 막상 들어가니까 어느 서랍인지 기억이 안 나서.”

 

보슬이는 민망함에 멋쩍은 듯 웃었다.

 

그래서 찾았어?”

 

당연하지! 고생한 보람은 있어야 하니까.”

 

보슬이는 뒷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Case 6. 시선

 

 

다행스럽게도 둘의 혼신의 작전이 무색하지 않게 약은 보슬이의 뒷주머니에 잘 넣어져 있었다. 보슬이는 그것을 꺼내 다영이에게 보여주었다.

 

. 근데 우리는 이걸 본다고 해도 무슨 약인지 모르잖아. 이걸로 뭘 어쩌게?”

 

어쩌긴! 당연히 알만한 사람한테 찾아가서 물어봐야지!”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당연히 병원도 있고, 약국도 있었다. 병원 밑에 있는 약국이라면 이 약이 어떤 종류의 약인지 알려줄지도 모른다. 보슬이는 약을 가지고 약사에게 갈 생각이었다.

 

그래, . 그래서 오늘 갈 거야?”

 

!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지금 당장 가자!”

 

벌떡 일어나 손을 내미는 보슬이를 보며 다영이는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 . 나도 집 들어가기엔 아직 시간 좀 있고.”

 

마을에 중심에 있는 병원까지 가는 것은 그다지 먼 길이 아니었기에 둘은 금방 도착했다. 약국은 1층에 위치했기에 둘은 지체없이 바로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렴.”

 

약국의 주인은 50대 후반, 둘에게는 할아버지뻘로 보이는 약사였다. 그는 다정하지도 까칠하지도 않은 그저 자기 일을 할 뿐이라는 듯 무감정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보슬이는 별다른 토를 달지도, 참견하지도 않는 성격인 그가 딱 좋은 협력자라고 생각했다. 빙 에둘러 말할 것 없이 보슬이는 바로 약을 보여줬다.

 

이 약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약을 받아든 약사는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그새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다만 어째서인지 다영이와 보슬이를 번갈아 가며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잠시만 기다리라며 둘을 내버려 두고 사라졌던 그는 곧 다시 돌아와 그녀들에게 약에 정체에 대해서 알려줬다.

 

. 조금 어려운데 혹시 써주실 수 있을까요?”

 

약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던 보슬이는 그에게 써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포스트잇에 그 약들에 이름을 적어주고는 건넸다.

 

감사합니다.”

 

보슬이는 다영이와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와서 그가 써준 포스트잇을 보았다. 약의 이름 같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약이 그녀가 찾고 있던 것이라는 거였다. 그 약들의 이름과 효능은 다양했지만 결국은 통틀어 항정신성 약물이었다.

 

거 봐! 내 말이 맞았지? 김원장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보슬이는 뿌듯한 얼굴로 다영이에게 뻐기듯이 말을 걸었다. 다영이는 그저 보슬이를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보슬이는 그러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영이의 침묵이 자신에게 동조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약국에서 나올 때쯤 해는 어느새 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보슬이는 다영이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내일이 기대되네. 분명 그 기자한테서 답신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들거든.”

 

그럼 내일 봐 라며 보슬이는 다영이의 집 대문 앞에서 인사를 건넸다. 다영이는 그저 조용히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영이와 작별하자 보슬이는 거리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여서 외롭다는 기분이랑은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어딘가 불편한, 조금 불안한 감각이었다. 그 감각은 곧 보슬이의 등 뒤에서 응집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보슬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드리운 어둠을 드문드문 밝히는 가로등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찝찝한 기분이 들어 보슬이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보슬이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기자로부터 답신이 온 것이었다.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한 보슬이는 평소보다 일찍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아직 다영이는 오지 않은 듯했다. 기분이 좋으니 다영이를 위해 음료수라도 사 놓을까 싶어 공원 끄트머리에 있는 자판기에 다가간 보슬이는 어제와 같은 기분을 받았다. 오늘은 조금 더 확연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것은 위치를 제대로 가늠할 수는 없어도 확연하고 끈질긴 시선이었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척 손을 움직이던 보슬이는 예상되는 곳으로 휙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대로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아도 수상한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자판기에서 음료가 떨어지는 소리만 텅 빈 공원을 울렸다.

 

역시 기분 탓인가.’

 

그러나 고개를 숙여 음료수를 꺼내려 하자 그 시선은 또 보슬이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뒤돌아서자 저 멀리에서 다영이가 공원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보슬이는 다영이를 발견하자마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동시에 기분 나빴던 시선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언니, 뭐 하고 있어?”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보슬이를 다영이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가섰다.

 

아무것도 아니야.”

 

주변에 아직도 그가 있을 것 같아 보슬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다영이에게 음료수를 건네고 일어선 보슬이는 흙이 묻은 자신의 교복을 툭툭 털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고 더 이상 시선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다영이가 있어서인가?’

 

아무래도 상대는 보슬이가 혼자 있을 때만을 노리는 것 같았다. 지금 보슬이를 노릴 만한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명밖에 없었다. 누군가 혹은 본인이 보슬이를 위협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보슬이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보다 김원장에게 위협적인 상대가 된 것 같아 흥분감이 몸을 감쌌기 때문이었다.

 

오늘 좀 이상하네.”

 

알 수 없는 보슬이의 행동에 다영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답장은 왔어?”

 

둘은 벤치로 이동해 음료수 캔을 땄다. 보슬이는 아까의 긴장감 때문인지 목이 타 상당히 호쾌하게 음료를 들이켰다.

 

! 거봐. 어제 내가 말했지? 올 거라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다영이를 바라보며 보슬이는 말했다.

 

그래서 연락은? 해봤어?”

 

아니, 아직! 같이 해보려고 기다렸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보슬이는 핸드폰을 꺼냈다. 메일함에는 그 기자가 보낸 메일이 있었다.

 

무려 전화번호를 남겨줬다니까? 3시 이후부터는 통화 가능하다고 전화 달래!”

 

마침 지금 시각은 3시를 막 넘긴 시각이었다. 보슬이와 다영이는 긴장된 듯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전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중년의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메일 드렸던 학생인데요.”

 

, 그래요. 보내준 기사 읽었어요. 그 기사에 대해서 꼭 알고 싶은 게 있다면서요?”

 

! 혹시 그 기사를 쓰러 취재하러 가셨을 때가 기억이 나시나요?”

 

보슬이는 긴장감을 갖고 질문을 던졌다. 그녀에게는 그의 기억이 필요했다. 그가 새로운 열쇠가 되어야 한다.

 

글쎄. 아무래도 너무 옛날 일이라 그렇게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

 

그래도 최대한 기억나는 데까지 말해줄게요. 그렇게 오래된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할 정도면 학생도 중요한 거겠죠. 어떤 게 궁금해서 연락했어요?”

 

제가 사람을 찾고 있어서요. 혹시 그. 사진 속 원장님 옆에 있는 아이가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 잠시만요. 사진을 좀 볼게요.”

 

그렇게 말한 그는 사진을 보며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는지 잠깐 아무런 말도 없었다.

 

, 기억났어요. 이 아이, 저 원장님의 딸이에요.”

 

? 딸이요?”

 

김원장에게 딸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아니, 사실은 한 번 더 있었다. 보슬이는 동네 슈퍼에 김원장에 대해 물어보러 갔을 때도 딸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좁은 동네에서 그녀에게 딸이 있었더라면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생각에 잠긴 보슬이를 깨운 것은 기자의 다음 말이었다.

 

. 확실해요. 그 아이가 좀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거든요. 그날이 엄청 날이 더운 날이었는데도 혼자만 긴 팔과 긴바지를 고집하고, 손도 소매 속에 꼭 넣고 숨겼거든요. 엄청나게 땀을 흘리고 있는데도 그러고 있길래 엄청 수줍음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보슬이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 아이는 과거 김원장의 피해자이다. 승리의 여신이 자신에게 미소지어주는 것 같았다.

 

혹시, 그 애.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미안한데, 그것까지는 모르겠네요.”

 

전화기 너머로 기자는 곤란한 듯 웃었다. 이후 몇 가지 수상한 점은 없었냐고 물어봤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통화를 마무리한 보슬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실망감에 의한 한숨은 아니었다.

 

어때? 원하는 답을 얻었어? 언니.”

 

다영이는 벤치에 걸터앉아 발을 흔들며 보슬이를 바라보았다. 보슬이는 그런 다영이를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 생각보다 많은 걸 얻었네.”

 

그렇구나. 다행이네.”

 

다영이는 보슬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다영이는 보슬이가 만족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의 걱정 또한 들었다. 너무 깊게 파고들려는 그녀를 말리지 않아도 될까? 이 이후에 일어나거나 알게 될 일들이 그녀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까 봐 걱정되었다. 보슬이는 그런 다영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 생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영이는 알고 있었다. 어떤 걱정이 들어도 어떤 위험에 빠지게 되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란 것을. 그래서 그녀는 그저 보슬이의 옆에 있어 주기로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것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당연히 이 아이를 찾아야지! 김원장에게 딸이 있었다니 완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보슬이는 상당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다영이는 그저 평소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어떻게 찾을 건데?”

 

. 그게 문제야 일단. 아직 이 아이의 이름도 모르니까.”

 

고민하던 보슬이의 머릿속에서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있어!”

 

그렇구나. 누군데?”

 

그게 말이야. 너도 아는 사람이야.”

 

수줍게 웃으며 보슬이는 입을 열었다.

 

권지승 아저씨. 너도 알지?”

 

다영이는 그의 이름을 듣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역시 다영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새 평소의 표정으로 되돌아간 그녀는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 그 사람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 아저씨라면 분명 가르쳐주실 거야!”

 

흉흉한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보슬이는 활짝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