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추문예
허주은, 「샘」(제2회 신추문예 <장원> 수상작)
- 등록일
- 2020-10-12
- 작성자
- 국어국문학과
- 조회수
- 217
샘
19학번
허주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씰룩거리자
빨간 풍선에 입김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째깍거리며 일정하던 시계가 결국엔 틀어지고
마치 얼른 풍선이 더 커지길 바라면서
눈총 가득 실은 살랑대는 공기가 부끄럽게 불어왔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빨간 풍선이 말갛게 불어 오를 때마다 이름들을 마음에 못 박았고
괜시리 주위를 살피며 혹시 내 빨간 풍선을 들킬까 웃으면서
풍선을 깊이 더 깊이 숨겨 왔다
언제부터인가 풍선이 제 맘대로 더 힘차게 불어 올랐고
누군가와 걷던 시간엔 나와 풍선만이 자리했으며
풍선은 내 공간을 갉아 먹으며 더 곱고 선명한 빨간색으로
잠 안 오는 밤 아무도 모르게 커지고 있었다
이윽고 빨간 풍선이 곧 터지기 직전
축축하게 잡고 있던 풍선을 탁 놓아 버렸고
매번 날 콕콕 쑤시던 그 풍선은 늘어진 채
피시식 아쉬운 듯 내 곁을 떠났다
빨간 풍선이 사라져 텅 빈 내 시간에는
코끝까지 화한 새 공기가 채워졌고
미운 사람들의 이름들이 희미해질 때쯤
등을 홀로 토닥일 수 없어 길었던 밤에
어깨 전체까지 토닥여줄 손이 내게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