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A Rush Of Blood To The Head』 #1
등록일
2020-04-24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22

*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1. 아홉마리의 소, 하나의 털.


나는 한동안 밤낮이 바뀌어 아침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다. 요즘엔 제대로 자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잠에 들기라도 하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오늘도 역시 잠이 들고서 불과 몇시간 만에 깨어났다. 꿈을 꾸는 동안 내 머릿속의 시간은 정말 ‘살아’ 있었고, 그것은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깨어났을 땐, 불과 몇 시간만이 지났을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자 나의 정신은 자면서도 도통 쉬어본적이 없었다.
운이 나쁘게도 나의 몸은 매우 민감했다. 나의 육체는 쓸데없이 매우 민감해서 잠을 자고 있더라도 작은 소리, 작은 불빛에도 깨어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번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까지 오랜 노력이 필요했다. 정말 쓸데없는 천성적인 능력 덕분에 나에겐 수면에 방해가 될만한 작은 빛, 작은 소리 까지도 차단 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이를 테면 빛이 전혀 새어 나오지 못할 만한 커튼을 설치하고, 자는 동안 핸드폰에서 기상 알람 이외의 소리가 나지 않게 ‘방해 금지 모드’를 설정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핸드폰을 아예 끄고 수면을 취했었는데, 한밤중에 엄마가 응급실을 다녀온 후로부터는 전화가 두 번 이상 오면 벨소리가 나는 모드로 설정하고, 가족들에게 나의 수면 습관과 위급 상황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나는 종종 현실과 경계가 매우 모호한 상태 속에서 누워있었다. 며칠째 이런 상태가 계속 되자, 나는 오랜 친구인 ‘쥐’에게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쥐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때부터 교우 관계를 유지해 왔었는데, 우리 둘은 마침 집도 한 블록 거리에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나곤 했다. 우리는 무슨 일들이 있건 없건 자주 만났었는데, 만나서 하는 얘기라곤 주로 주변에서 자질구레하게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대화였다. 가장 최근에 나눈 대화는 투표율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는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 예측했고, 나는 그 반대를 주장해서 우리는 각각의 주장에 내기를 걸었다. 물론 결과는 나의 승리였다.
우리는 동네에 있는 작은 술집에 마주보고 앉아 맥주를 마시고있었다.(당연히 그가 맥주를 샀다.) 그 술집은 생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의 숱한 관심을 받는 중이었다. 나는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에 절반을 마신 다음, 그에게 내 꿈에 대한 고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쥐는 “그것 참 안타깝군. 그것 참 안타까워.”라고 말한 다음 양 입술로 혀를 빨아들이며 ‘쯔읍’ 소리를 길게 내었다. 그에겐 같은 말을 정확히 ‘두 번’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항상 별다른 감흥 없이 묻는 말을 받아 칠 때 그런 습관이 나오곤 했다. 전에 한 번 그에게 버릇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쥐는 “뭐라고? 이봐, 나는 완전 진지하다고. 정말 진지한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야.”라며 역시 ‘두 번’ 말했다.
“얼마 동안 지속 된 거야?”
얼마 남지 않은 맥주를 입어 털어 넣으며 쥐가 물었다.
“모르겠어.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이봐 친구,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마지?”
“글쎄… 17년 조금 넘었나?”
“그것 보라구. 17년. 정확히는 17년 하고도 여전히 진행중이지. 그러니 신경 쓰지 말어.”
“무슨 말이지?”
“잘 생각해 봐. 나같은 미친놈 하고도 17년을 넘게 만나고 있는데, 그 까짓 거 일주일 정도면 뭐랄까… ‘구우일모(九牛一毛)’ 아니겠냐?”
쥐는 검지와 엄지 손가락으로 감자튀김을 집어 야금야금 먹으며 말했다.
“곧 나아지겠지. 걱정하지마. 정말 걱정 안해도 될 문제라니까.”
쥐는 계산을 마치고 나를 바래다 주면서,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걱정 아닌 걱정을 해 주었다.
“그래야지. 정말 그래야지.”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역시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 상태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심지어 병원에 가보려고 했었지만, 내가 겪는 일종의 수면 장애는 스스로 가벼운 것이라고 단정짓고, 상태가 나아질 것이라는 일종의 희망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 읽었던 방법을 통해 내가 직접 꿈에 접근해 보기로 다짐했다.
그것은 바로 내 꿈을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는데, 그 대상은 오직 나에게만 이상하리만치 강한 집착을 보였다. 신기하게도 꿈의 시작점은 다양했는데, 그 중간 부분과 끝맺음은 나날이 변하지 않았다.
꿈의 시작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날엔 그 곳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고, 또다른 날에는 전구가 나간 가로등 옆에서 커다란 검정색 비닐 봉투를 묶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억은 내가 아무런 이유없이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앞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밤 안개에 둘러 싸여 있었다. 내 앞쪽과 뒤쪽으로 길이 하나 나있었는데, 그 길은 자동차 두 대가 지날법한 폭으로 한없이 이어져있었다. 길 양 옆으로는 회색 콘크리트 벽돌로 만들어진 2미터 쯤 되보이는 차가운 담벼락이 이어져 있었고, 달빛은 짙은 안개에 휩싸인 채로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연기사이로 흐릿하게 빠져나오는 그 빛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얼마간 계속 걷고 있음에도, 나는 내가 걸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앞으로 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저벅 저벅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길은 가도 가도 계속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회색. 오로지 회색 뿐이었다. 그곳엔 다른 색은 없었다. 가끔씩 달빛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매우 희미했기 때문에 매우 흐릿한 선으로 담벼락에 그어지는 정도였다. 더욱이 나는 얼마나 걸어왔는지, 또 이 길의 끝이 어딘지에 대해 전혀 알 수 가 없기 마련이었다.
몇 시간 동안을 걸었던 것일까. 나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자그마한 진동때문에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탁 탁 탁 탁 탁 탁…’ 하는 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있었다. 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나는 그저 등에 나기 시작한 식은땀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식을대로 식어버린 내 몸은 움직이길 거부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뛰어오는것이 틀임없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 잡았다. 다급하게 요동치는 심장의 진동은 갈비뼈와 옷깃을 뚫고 내 손으로, 내 두뇌로 전해지고 있었다.
‘뛰어야 한다. 뛰어야만 한다.’
몇 번을 되뇌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온전히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었고, 다음 그다음으로 연속해서 발을 내딛었다. 이윽고 무언가 달려오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을 때, 마침내 나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타닥…’
이내 발소리 들은 서로 얽힌 채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아니 쫓기고 있었다. 나는 내가 쫓기고 있는 중이라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상황 속에는 달리 이유가 없었다. 대상은 나를 쫓았고, 나는 달아났다.
얼마나 달리고 있었던가. 나의 온 몸엔 힘이 풀린지 오래되었다. 나를 쫓는 이는 지칠 줄을 모른다. 
‘왜. 도대체 왜 나를 쫓는 것인가. 
나는 죄를 지은것도, 타인에게 원망을 샀던 적도 없다. 설마 어렸을 때 엄마 몰래 오락실에 혼자 간 일 때문인가? 아니면, 친할아버지의 장례식 기간 동안 전혀 슬퍼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버스에 올라탄 노인을 애써 외면하면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또 그것도 아니면…’

마지막 남은 힘이 다 빠져나갔다. 
‘아, 이제는 잡히는 구나. 이렇게 될 것이라면, 나는 왜 달렸던 건가.’
바로 그 순간, 안개가 걷혔다. 
저 멀리 걷힌 안개 너머로 길이 끝나 있었고, 그 길의 끝은 낭떠러지였다.
몹시 행복했다.
‘아, 드디어. 드디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망설임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 순간 나를 쫓아오던 발걸음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에 맴맴 도는 차갑고 날카로운 공기의 소용돌이에 몸을 맞긴 채, 깊고 깊은 칠흑의 심연 속으로, 아래로 아래로, 그저 아래로만 향하였다.
내가 갑작스럽게 눈을 뜨게 된 건, 아직 땅에 닫기 전이었다.
  
꿈에서 깨어났다. 
이불과 배게는 항상 내가 흘린 땀으로 젖어있었다. 사타구니와 겨드랑이 역시 땀으로 흠뻑 젖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매우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내 호흡은 단거리를 질주한 것처럼 매우 가빴고, 심장 역시 빠르게 쿵쾅쿵쾅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몇 초간 공기를 폐에 머문 채, 다시 깊게 뱉어 냈다.


나의 꿈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까 무언가에 쫓기고, 나는 도망치고. 그러다 떨어지고. 끝. 하지만, 나는 악몽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재된 두려움을 증폭하지만, 그 끝엔 알 수 없는 묘한 개운함이 남았다. 그러나 그 개운함은 미세하게 느껴졌고, 이내 사라졌다.
왠지 모르겠지만, 꿈을 꾸는 날이면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하루 그 자체가 자꾸 나쁜 방향으로 흘러만 갔다. 하긴. 요즘엔 꿈을 꾸지 않는 날이 별로 없었는데. 그냥 날이면 날마다 내 삶 전체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 삶은 원래 엉망진창 이었을까. 나의 일생은 이미 망가져 버렸을 수 도 있다. 아니, 망가져 버린 것이 틀림없다.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깊은 우울의 감정은 이미 오랜 친구가 되어버려서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의 깊고 얕음, 높고 낮음, 밝고 어두움, 넓고 좁음을 스펙트럼 마냥 구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이었다. 내게 생긴 불안한 변화는 일주일이 넘도록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 여전히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서, 창문을 열기 위해 어두운 커튼을 치워버렸다. 어렴풋한 연파랑색 하늘엔, 중간 중간 하얀 실구름들이 하늘 속을 헤집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풀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내 방 안으로 들어와 공기를 헤집어 놓았다. 
‘저항할 수 없다. 더이상 저항 할 수가 없다.’
이내 나는 무슨 일이 없어도, 오늘은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200페이지 정도 되는 책 두 권이 들어가면 꽉 차는 노란색 크로스백에 안경 케이스와 남청색 몰스킨 무제 노트, 그리고 흰색 라미 만년필을 넣은 다음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 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집을 드나들며 항상 대문 옆 담벼락에 붙어 있는, 길이가 내 키 만한 화단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화단에는 장미가 심어져 있었는데, 여름만 되면 빨간 장미들이 갈색 벽돌로 이루어진 화단과 담벽을 수놓았다. 요즘엔 초록 가지마다 꽃 봉우리가 몽글몽글 맺혀 나에게 곧 피어날것만 같은 기대감을 한 껏 주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나는 신발끈을 묶으며 화단을 흘깃 보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그곳엔 어색함이 맴돌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린 다음, 다시 한 번 화단을 주의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그곳에 일어난 변화를 깨닫게 되었다.



쥐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