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일반인의 마지노선- 1화
등록일
2020-04-24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65



세상일이라는 게 가끔 엇나갈 때도 있고 그래야 재밌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살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었는데.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제 앞에 있는 여성을 쳐다봤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차가운 금속을 잡고 있었다. 까만 피부에 곱슬머리는 이 슬럼가 근방에 존재하는 이들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는 천천히 양손을 보여주며 소녀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열일곱 정도일까. 많이 봐줘야 10대 후 반쯤 보이는 소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리볼버를 든 채 도끼눈을 하고 있었다. 벌벌 떠는 몸과 다르게 결연한 얼굴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는 소녀를 주시하는 한편 힐끔 거사의 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린아이가 벌인 일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심했다.
피해자는 흑인 남성. 가슴에 두 발과 머리에 한 발. 상대를 확실하게 죽이고자 한 의도가 엿보였다. 소녀의 총이 제 미간을 가리킬 때가 되고서야 그는 시선을 다시 소녀에게 옮겼다.

"네가 이랬니?"
"......"

그의 말에 소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살포시 구겨졌다. 다 봤으면서 뭐하러 물어보는 건가? 하는 의문이 가득했다. 호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표정. 그는 눈앞의 소녀가 단순한 소녀가 아님을 인정했다. 오늘 아침, 캠든에 다녀오라는 상사의 말을 무시했어야 했는데. 

"아이야, 총은 내려놓는 게 어떠니."
"아이?"

소녀는 냉소를 내뱉었다. 세상을 산 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눈앞의 남자처럼 순진하지는 않았다. 캠든은 미국 제일의 슬럼가. 그 속에서 자랐을 사람에게 아이라니. 소녀는 남성을 살폈다. '거사' 후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했다. 평범한 외모에 그리 크지 않은 키. 저냥 저냥 한 몸 위에는 많은 사람이 즐겨 입는 낡은 코트가 성의 없이 걸쳐져 있었다. 
소녀는 이런 평범한 사람이 가장 싫었다. 겪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이해를 한다며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같잖았다. 소녀에게 있어 이런 평범한 사람은 신용도에서 역방향으로 정점을 찍고, 위험도에서 나쁜 방향으로 정점을 찍는 절대 상종하기 싫은 인물이었다. 
그는 소녀의 얼굴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눈에 담겨있는 감정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긍정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답지 않게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결의를 다졌다. 슬럼가의 일이라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곳에는 하루에 몇십 명이 죽고 사라지는 죽음의 대지였으니. 하지만 자신이 소녀의 손에 죽는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그는 철저하게 외부인이었고,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의 부제가 가져올 결과는 눈앞의 소녀에게 더 큰 잘못이 될 것이다. 그는 그런 상황을 막고 싶었다. 
소녀 또한 그의 분위기를 읽었다. 손을 잘게 떨며 상황을 살피던 눈동자가 잔잔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각오한 듯했다. 소녀는 그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녀는 남자의 미간에 총을 겨누었다. 

"X까! 시발!"

남성은 몸을 날렸고, 소녀는 악을 쓰며 방아쇠를 당겼다.


*


남성은 솔직히 말해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평범한 그에게는 그나마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와 조금 돌아가는 머리가 전부일 텐데, 그 모든 걸 사용해도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거대한 숲이었다. 숲이라기보다는 정글에 가까운, 하늘의 구름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나무가 자라고 있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숲이었다. 정글이라면 습하고 더운 기운이 느껴져야 할 테지만, 어째선지 선선한 바람을 맞이해야 했다. 시각, 청각, 촉각. 각 요소가 이렇게 연결이 안 될 수가 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는 뻑뻑한 눈가를 문지르며 대충 상황을 정리했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꿈과 사후세계. 물론 이것은 남성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틀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네."

머리 아프게 고민한다고 해결될 건 아니었다. 세기의 천재라면 주어진 상황에서 단서를 찾아 그럴듯한 유추를 할 테지만, 자신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해결한 단서를 원했고, 공교롭게도 숲은 뻔해 보이는 방식으로 남성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길이 있네."

남성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하늘조차 잘 보이지 않는 빽빽한 숲에 길이 나 있었다. 사람은 무슨 동물들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서. 누가 봐도 함정이라 생각될 만큼 인위적인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남성은 발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있다고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말은 살아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이 상황에서는 쓸모없는 조언이었다.
예상치 못한 산책은 의외로 쾌적했다. 날씨는 선선하니 좋았고, 벌레나 동물도 없어 행동하는데 방해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심지어 걸어가는 길조차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었으니, 그는 15분 정도의 시간만으로 나무 이외의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가정집이었다. 오두막을 이제 막 벗어난 듯한 투박한 외형의 집이었다. 17세기 유럽의 팀버프레임 양식의 건축물을 보며 남성은 더는 놀라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자신은 미국인이고,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소가 미국이기는 했지만, 유럽의 집이 마냥 낯설지 않았다. 남성은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똑똑.

남성은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무에 기대거나 울타리 안에 있는 잔디에 눕는 등의 일차원적인 행동이 다였다. 그리고 그런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었다. 그는 용기 있게 문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두꺼워 보이는 나무의 외형과는 다르게 그 소리는 꽤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와."

천천히 열리는 문을 인지한 그는 이제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있는 염소를 보고는 넋을 잃었다. 총에 맞고 정신을 차리니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숲이 자신을 반겼다. 누가 봐도 함정 같은 길을 걸어 발견한 집 안에는 염소가 스웨터를 입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염소의 눈에는 동그란 안경이 꽤 잘 어울렸다. 염소는 남성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집안으로 고갯짓했다. 명백히 들어오라는 행위였지만, 남성은 눈치를 슬그머니 살폈다. 

"들어오게."

보다못한 염소가 입을 열어 남성을 초대했다. 남성은 이제 다른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사후세계라기보다는 꿈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별의별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신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도 그냥 넘길 정도의 평정심을 가지게 되었다. 

"커피 좋아하나?"
"네? 네."
"홍차를 주겠네."

염소의 말에 남성은 황당한 표정을 했다. 도대체 왜 물어본 거지? 남성은 꽤 침착한 편이지만, 싸구려 콩트를 보고 웃어넘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염소의 손짓에 그는 눈치를 살피며 소파에 앉았다. 자연의 녹진한 향기가 나는 방안은 크기가 큰 가구가 가득 차 있었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군."
"아, 네."

염소는 그에게 따뜻한 홍차를 주며 물었다. 얼떨결에 찻잔을 받은 남성은 당황했다. 염소의 손은 사람의 손이었으며, 놀랍게도 홍차는 우유에 설탕까지 들어가 있었다. 단 것을 싫어하긴 했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흠, 질문해보게. 대답해 줄 테니."

고분고분한 염소의 태도에 잠시 의아한 낯빛을 한 그는 이내 고심해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대와 같은 길 잃은 어린양들의 안내를 하는 존재지. 나는 그대와 같은 존재를 굉장히 많이 봤네. 그리고 대충 어떤 질문을 할지 알고 있지."

염소는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내렸다. 그 둥그런 안경에 낀 김이 금세 사라졌다. 염소는 내려가지도 않은 안경을 올리고는 남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염소 특유의 눈동자가 총명을 담고 있는 것에 어색함이 몰려왔다. 

"이곳은 조금 특별한 곳이지, 사람들은 여러 이름으로 이곳을 부른다네. 사후세계, 거울 세계, 꿈의 세계. 더 옛날에는 이상향, 발할라. 수식하는 단어들은 많지. 자네도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게."

염소의 말에 남성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의 모든 곳. 기록으로 전해지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다른 모든 세계를 뜻한다는 것이었다. 

"자네도 느끼고 있을 것이네. 특이한 일이 일어나는데 놀라지 않는 자신이라던가. 묘하게 침착한 자신. 뭐 원래 그런 거지."

염소는 남성이 느끼는 모든 이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남성은 적어도 염소가 이곳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여겼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는 것 또한 믿었다.

"이유는 필요 없지. 바다에 들어갔을 때, 숨이 막히고 답답하고, 차가운 것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지. 그걸 자네가 알아서 뭐할 텐가? 진실은 때로 독이 되고는 하지. 밝고 깨끗하고 명량 하게 죽을 수 있는 것도, 비참하고 절망하고 씁쓸하게 죽을 수 있네."
"네, 그렇네요."

남성은 염소의 말에 동의했다. 수식어가 도를 넘기는 했으나 공감이 되었다.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았다. 굳이 그 이유를 찾고 진실을 알아내고자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단순한 출판사 직원이지 과학자나 철학가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 진실을 알고 느낄 카타르시스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네는 선택해야 하지."

염소의 말에 남성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염소는 남성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마치 품평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네는 3235라 불리게 될 것이네."
"3235요? 갑자기?"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남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화의 진행이 싸구려 소설의 개연성 없는 클리셰를 보는 것 같아 거북했다. 남성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염소는 한쪽 눈을 치켜떴다. 염소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 심히 괴악하게 느껴졌다. 

"잘 듣게."
"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원인이 있네."
"......."
"자네가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는 개연성이 존재하지."

그리 말하는 염소는 마치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은 그 표정을 보며 답지 않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나?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나? 그럼 아쉽게도 자네의 한계는 짐승 수준이라는 거네. 범재로서의 한계는 쉽게 넘을 수 없긴 하지만, 그걸 그렇게 자랑스럽게 뽐내지는 말게. 불쌍해 보이니까."
"......"

이 염소, 짜증 나는데 말도 잘한다. 남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한 채 염소를 쳐다봤다. 명백히 깔보는 말임에도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