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새내기백일장

제7회 웹문예학과 새내기백일장 수상작 (장원)
등록일
2022-05-26
작성자
웹문예학과
조회수
32

엘리베이터

김성민

 

아득한 꿈속 너머로 썩은 냄새가 풍겨왔다. 꿈속에서 썰어 먹던 스테이크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머리맡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824, 예상했던 시간이었다. 옆집에선 늘 830분쯤에 청국장 냄새가 풍겨온다. 그 냄새가 바로 알람이었다.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사이 845분이 되었다. 서둘러 이불과 하나가 되어있던 옷가지들을 꺼내 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물을 끼얹어 씻고 나왔다. 핸드폰에 떠오른 시간 851, 서둘러 문을 열었고, 전등에서 노란 불이 서리처럼 내려앉았다. 나는 계단을 뛰어넘듯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는 몇 주째 점검 중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어 사용할 수가 없다. 현관을 나오자 푸른 달빛이 머리 위에 소복이 쌓였다. 고개를 흔들어 달빛을 털어버리고 서둘러 달려나가 미리 불러둔 택시에 올라탔다. 857,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형형색색의 별들을 거스르는 한 마리의 반딧불이가 되었다.

 

주황색과 남색이 사이에서 태어난 바이올렛 색의 하늘이 세상을 감쌀 무렵에 일을 끝내고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집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분명해지는 아기의 울음소리, 102호였다. 102호에서는 새하얀 머리칼을 파마로 말아둔 할머니 한 분이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를 기르고 있다. 아기의 아버지는 짐 덩어리인 아기를 어머니에게 남긴채 사라졌고, 아기의 어머니가 식당에서 식모살이하면서 번 돈과 달마다 아기의 아버지가 보내는 양육비로 간신히 먹고산다는 이야기를 하며 102호 할머니가 관리인을 설득하는 것을 현관 밑에서 담배를 피우다 들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사는 그 누구도 그 아기의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그저 계단 난간이 진동할 정도로 서럽게 우는 아기만이 할머니의 주름 팬 손안에서 살아갈 따름이었다.

 

닫혀있던 유리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 깔린 어둠 속에서 한 여성이 있는 듯했다. 잠깐 귀신인가 싶어 섬뜩했지만, 놀라 달아나기엔 몸이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귀신이 아니길 빌며 엘리베이터 점검 중이라는 말만 던져두고 계단 위에 발을 올리자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어둠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2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전등이 켜지며 201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201호의 초등학생 남매가 기르는 강아지로 포메 뭐시기라고 하는 종이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놀이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노는 남매가 있었다. 그러다 가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올 때면 강아지의 이름이나 그 강아지를 기르기 위해 부모님과 무슨 약속을 했는지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자랑스레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 남매의 얼굴이 똑같이 일그러지며 도망쳤지만.

 

3층 중간 계단의 전등에 빛이 쏟아지자 301호에 수험생이 살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내용의 경고문이 붉은색으로 내 눈을 찔렀다. 경고문은 부탁하는 것이 아닌 명령조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쓰여 있었다. 그뿐이 아니라 같은 내용의 경고문이나 조용히 하랬잖아 같은 문장이 반복해서 쓰인 글이 3층 이곳저곳에 붙어있는 걸 보면 진득한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3층을 지나는 모두가 그 경고문을 보면 비웃음을 터트리고는 지나간다. 301호에 사는 수험생이라는 학생은 늘 어디서 났는지 모를 술을 손에 들고 비틀거리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오직 한 사람, 이 아파트에 홀로 아들을 두고 비쩍 마른 팔로 저 경고문을 붙인 수험생의 아버지만 모를 뿐이었다.

 

4층 마지막 계단을 밟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빛을 머금던 전등이 그 빛을 터트렸다. 이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지칠 대로 지친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우리 집 앞에 서자 등 뒤에서 육중한 현관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옆집의 문은 조용하면서도 굳게 닫힌 뒤였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옆집의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저 늘 830분이 되면 나는 청국장 냄새와 가끔 배달원이 배달오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문을 열 만한 사람은 분명 1층에 있던 그 중년의 여성뿐이다. 하지만 몇 주째 점검 중이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던 것을 보아 그 여성은 이 아파트에 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성은 옆집 사람과 무슨 관계일까? 멀리 사는 연인? 가족? 의문이 들었지만, 곧 모든 의문을 지워버렸다. 옆집 사람이 누구든 문을 연 중년 여성과 어떤 관계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 집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피로에 찌들어 있던 정신은 점차 아득해져 가고 몸은 점차 어디론 가로 가라앉는다. 작은 소리가 귓바퀴를 간질였다. 천천히 그 소리에 집중했다. 한 중년의 여성이 누군가를 다독이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아이들이 꿈결에 내뱉는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늙은 할머니가 아기를 다독이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중년의 여성이 힘겹게 꺼내는 속마음은 피아노가 되었다. 술에 취해야만 자유로워지는 누군가의 한탄은 비올라가 되었다. 꿈속에서 수많은 모험을 하는 아이들의 잠꼬대는 두 대의 바이올린이 되었고 아기를 달래는 자장가는 첼로가 되어 벽을 타고 천장을 타고 바닥을 타고 내 몸에 전해져 하나의 5중주를 이루었다.

 

5중주 속에서 웃으며 헤엄치던 나는 곧 아득하니 멀어져가며 사라졌다.

 

곧 썩은 냄새가 내 코에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