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새내기백일장

제7회 웹문예학과 새내기백일장 수상작 (차상2)
등록일
2022-05-26
작성자
웹문예학과
조회수
19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고심 끝에 마지막에야 겨우 내뱉은 한 마디에도 들려오는 답은 없다.
몇 남지도 않은 짐을 한 손에 싸 들고 나서는 순간까지도 누구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등 뒤의 유리문이 거의 닫힐 즈음에야 작은 웅성거림이 새어 나온다.
아마 다시 볼 일은 없을 지하 주차장을 두리번거리던 눈에 새빨간 스프레이가 점철된 하얀 승용차 한 대가 띈다.
고작 몇 달 전에 출시된 새 차였다.
고작 한 달 전에 산 새 차였다.
“.흐으으...”
가까스로 욕을 참은 대신 이미 몇 번이고 꽉 깨물린 이빨이 결국 잇몸을 파고들어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 채 트렁크에 짐을 싣는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순간, 활짝 열려있던 차단기가 내려온다.
시야가 바깥쪽부터 함몰되더니, 차단기 너머 입구에서 여러 대의 차가 내려오며 길을 막기까지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마아안!!!!”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경적을 울리자 뒷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누군가가 깔깔대며 웃는다.
“꺼져! 제발 사라지라고!!”
심지어 차가 선 땅바닥이 흔들리더니 점차 위로 치솟고, 이내 차가 뒤집히며 깨진 창문으로 흙과 콘크리트 가루 따위가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품고 쏟아져 들어온다.
눈물을 흘리는 눈으로, 비명을 지르는 입 속으로 쏟아진 흙이 날카로운 것으로 마구 찌른다.
“아악!! 으아아악!!”
남자는 시야를 잃고 눈을 감은 채 찢어진 목으로 악을 쓰며 꿈틀거렸다.
남자의 팔이 얼굴을 덮은 것을 쳐내자 인상을 쓰며 감긴 눈꺼풀 너머로 빛이 침투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눈을 떴다. 어느새 비명이 멎어있다.
“시이팔..”
또 이 꿈이다.
“그만 좀 해!!”
남자는 이불 끝을 잡고 바람 소리가 나도록 집어던졌다.
연이어 그는 베개를 집어 들었지만, 이불이 팔랑이며 침대 끝에 살포시 내려앉는 모습에 한숨을 쉬며 베개를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침대를 벗어났다.
금방 꺼낸 차가운 캔커피를 손에 쥔 채 달력에 빨간 엑스 자를 그렸다.
오늘로 총 열 다섯 개의 엑스 자가 그려졌다. 저저번 달부터 그렸으니 최소 마흔 개가 넘을 것이다.
‘이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까, 아침저녁으로 드시고 잠을 푹 주무세여. 차츰 나아질 겁니다.’
“나아지긴 개뿔.”
악몽을 꾸는 빈도가 잦아지는 것을 느낀 후로는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악몽을 꾼 날을 표시하는 것은 그저 습관이었다.

간단히 머리만 감은 남자는 빨간 스프레이 따위는 칠해지지 않은 깨끗한 승용차를 타고 대형마트로 향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마트를 끝없이 돌아다녔다.
모두가 각자의 대화를 하느라 시끄러운 대형 마트는 남자가 꽤나 좋아하는 장소다.
결국 몇 시간 만에 컵라면과 캔커피 몇 개를 산 남자는 지하 주차장이 아닌 마트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원을 가지 않게 된 이후, 그는 억지로라도 산책을 즐겼다.
도로와 간판을 구경하며 하염없이 걷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주저하더니 결국 발걸음을 돌려 상가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찜질방에 들어선 남자는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않고 머리만 감은 자신의 몸을 위해 탕에 몸을 담갔으나. 마트에서와는 정반대로 몇 분 있지도 못하고 뛰쳐나왔다.
더운 것은 질색이었다.
결국 간단히 샤워만 한 남자는 컵라면과 캔커피를 가득 들고 신기하리만치 아무도 없는 찜질방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남자는 컵라면 하나를 뜯어 캔커피를 곁들여 먹었고,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질 때가 돼서야 악몽으로 설친 잠을 보충했다.

꿈 한 번 꾸지 않고 편안한 시간을 보낸 남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 거의 전부가 잠들어 있었다.
시간이 굉장히 늦었다는 뜻이었고, 헐레벌떡 찜질방을 나선 남자는 대형마트로 향했지만 이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보니 밝은 화면이 이미 새벽 2시가 넘었음을 알려주었다.
다시 찜질방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한 남자는 결국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의 집까지 가는 시간이 결코 짧진 않겠지만, 다시 아침이 되어 마트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빠를 것이었다.
그동안 자동차로 다녔던 길을 직접 걷자, 이곳저곳에서 새삼 새로움을 느꼈다.
마치 유명한 에세이의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30분을 더 걷자 입꼬리가 수평을 향하더니, 다시 30분을 더 걷고 나서부터는 간간히 해탈한 웃음을 흘렸다.
“젠장, 더는 못 걷겠다.”
늦은 밤, 아니, 이젠 이른 새벽인 탓에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수두룩했다.
그 덕에 아무 가게 앞에서나 앉아 숨을 돌려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들어와, 열었어.”
남자가 불이 꺼진 카페 유리벽에 등을 기대고 앉자마자 바로 옆에서 문이 열리며 들리는 목소리에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영업 중입니까?”
“그렇다니까. 들어와.”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장바구니에 캔커피가 한가득이다.
또 커피를 사 마실 생각은 없었던 남자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자 남자를 부른 노파가 문을 활짝 열고 손짓했다.
“커피 안 마셔도 되니까, 들어와서 앉기나 해, 힘들어 보이는구만.”
결국 남자는 소심한 발걸음으로 들어와 마치 바처럼 카운터 앞에 놓인 의자들 중 하나를 골라 앉았다.
“다 큰 청년이 이런 시간에 뭐해? 그런 것만 잔뜩 들구.”
“아닙니다. 그냥 차를 잃어버려서..”
“아이고, 큰일났네. 회사는 안 멀어?”
“..안 다닙니다.”
“미안혀. 그래도 총각은 인물이 돼서 금방금방 일자리도 구할 겨.”
“하하,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말동무가 없어 심심하셨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말을 이었다.
“할머님께서는 이런 시간에 가게에서 뭐 하세요?”
“에이, 가게 연 거라니까.”
분명 가게 불이 꺼져있었지만, 남자는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부지런하시네요. 아무래도 일자리는 저보다 할머님을 찾겠는데요?”
“에잉, 다 늙은 노인네를 누가 써?”
기분 좋게 웃으며 대꾸한 노파가 남자의 맞은편에 앉더니 넌지시 물었다.
“총각, 뭐가 그리 힘들어?”
“예?”
“눈은 퀭, 하니 영혼이 없지, 얼굴은 희멀겋고 눈두덩이 시꺼먼 게 오 년 전에 죽은 내 남편보다 시체같이 생겼어, 아주.”
“무슨 그런 소리를 하세요..”
“일자리가 많이 힘들었나?”
“무슨 소리세요, 안 다닌다니까.”
“총각, 구두 신고 있잖어. 회사 안 다니는 것들은 평소에 구두를 안 신어. 일자리 구하러 다니는 애들은 아주 광이 나게 해서 다닌단 말여. 총각 구두만 봐도 아이고, 회사에서 잘렸구나, 싶은겨.”
“하하..그렇군요..”
“한창 자존심 세울 나이지. 같은 청년들한테 나 힘드오, 하면 밑져 보이고 싫잖어. 총각, 맘 편히 털어놔도 괜찮어. 나같이 맘씨 좋은 사람한테 털어놓을 기회 흔치 않어?”
가라앉던 기분이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짙은 한숨을 내뱉는 남자에게 노파가 다시 말했다.
”괜찮어. 말을 하라고 트여있는 입이고 잘 들어주라고 뚫려있는 귓구멍이여. 그게 필요하니까 있는 겨.“
”..할머님 말대로, 잘렸습니다.“
짙은 갈색의 원목 테이블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말하는 남자에게 노파는 침묵으로 답했다.
”모함을 당했어요. 도와준 건데,,도와달라고 하기에 도와줬는데...저를 아주 천하의 인간 쓰레기로 만들더군요.“
남자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만큼 입은 가볍게 말을 쏟아 냈다.
”과한 일을 시키더니..아무 일도 안 시키고, 그 다음엔 말을 안 걸고...나중엔 대답도 안 하더군요. 제가 잘린 날이었습니다.“
노파가 여전히 탁자만 바라보는 남자의 앞으로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밀었다.
”모함당한 건 괜찮았습니다. 아니, 괜찮진 않았지만..그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 더 무서웠습니다. 그래서인지..회사를 잘린 다음 날부턴, 자꾸 악몽을 꿉니다.“
얼굴 아래 놓인 찻잔으로 남자의 눈물이 한 방울 뚝 하고 떨어졌다.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서는데..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가고 나면 수군거리다가...제 차에는 비난하고 저주하는 낙서가 그려져있고, 주차장 출구가 막히고 뒷자석에서 누가 절 비웃고..차가 뒤집히고 뾰족한 유리조각이 눈이고 입이고 가리지 않고 찔러댑니다.“
남자의 손이,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한적한 곳에 가면, 조용히 들리는 소리들이..제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것 같아 시끄러운 곳만 다녔습니다..끅, 의사는 약 먹고 푹 자면 나아질 거라 했는데...나아지기는 개뿔이, 이젠 매일 악몽을 꿉니다. 사람들이..“
남자가 찻잔을 피해 머리를 푹 숙인 채 흐느꼈다.
”사람들이..흡, 제게 등 돌리는 것이, 너무 무섭습니다..“
남자는 울음을 삼키며 눈물을 쏟아냈다.
노파는 말없이 남자의 등을 두드렸다.
”내일도 또 와.“
”끅,예?“
”내일도 오고, 모레도 와.“
”여기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학생활은 어땠어, 즐거웠어? 회사에 합격했을 땐 또 어땠어.“
”세상이..환했습니다. 온 세상이 제게 웃고 있었습니다..“
”낮이 오면 밤도 오는 거야.“
”..당연하다는 겁니까? 제가 겪은 불행도 당연히 찾아오는 인생이니까 견디라는 겁니까?“
”밤이 오면 낮도 오지.“
노파는 직접 찻잔을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에도 달은 떠.“
남자는 말없이 찻잔을 내려다보다, 한 모금을 삼켰다.
”앞으로 여기 매일 와서 내 말동무 좀 해주게.“
따듯한 차에 몸이 풀어지자 노파의 말도 더욱 따스하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다시 해가 뜰 때까진, 달빛을 보고 살아야지.“

남자는 그날 밤에도 악몽을 꾸었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하지만 남자는 씻고, 작은 카페로 향했다.
그 다음 날도 악몽을 꾸고, 카페로 향했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악몽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젠 잠을 자지 않는 시간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달을 보는 사람은 밤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