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이승준, 「호수」(2020-1학기 <웹소설창작과비평>)
등록일
2020-07-10
작성자
국어국문학과
조회수
456

1

 

2008517일 오전 540분쯤 일본 시가현의 한 경찰서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사람 다리 같은 게 비와호에 떠있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신고를 받고 가장 먼저 도착한 남성은 나카모토 사부로라는 형사로 18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큰 키와 조폭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만큼 험상궂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성실함과 상냥함을 가지고 있는 주위에선 꽤나 평판이 좋은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나가하마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카모토 사부로라고 합니다. 발견 당시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라는 말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수첩을 안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 그러니까, 친구랑 같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뭔가 하얗고 기다란 게 떠다니길래 저게 뭐지? 하고 가까이서 보니 사람 다리였어요. 그래서 바로 신고했고요.”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 신고자를 달래가며 당시 상황을 듣고 있는데, 각이 칼같이 잡힌 경찰 제복을 입고 의욕이 충만해 보이는 청년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쪽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오는 청년의 이름은 미나토 스즈키로 경찰이 된지 햇수로 2년이 채 되지 않은 햇병아리다.

나카모토 형사님, 호수에서 발견된 건 사람의 오른쪽 다리라는데요? 근데 그게 허벅지랑 발목의 절단면이 아주 깔끔하다고 합니다.”

엄마의 호수라고 불리는 비와호에 토막 난 사체라니 한동안 시끄러워 지겠어.’ 라고 나카모토는 생각했다.

그래, 일단 본부에 증원 요청하고 이분들 안전하게 댁으로 모셔다드리고 와.”

알겠습니다.”

미나토 순사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혹여나 더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이리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카모토는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은 주인의 성격을 대변이라도 하듯 심플하고 깔끔했다.

네 감사합니다.”

미나토와 신고자를 경찰차에 태워 보낸 뒤 나카모토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토막 살인에 사체유기만 하더라도 보통 문제가 아닌데 절단면까지 아주 깔끔하게 잘라냈다라... 게다가 아무리 비와호가 넓다 하여도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이곳에 사체를 유기할 생각을 하다니. 엄청나게 대범한 놈이다. 그리고 절단면이 깔끔하다는 건 칼이나 톱을 잘 다루는 도축업 종사자이거나 살인이 익숙하고 주저함이 없는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범인 확률이 높다, 만약 후자라면 더 큰일이다. 피해자가 더 나오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한다.’

여러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에 미나토가 불러뒀던 증원부대가 도착했다.

충성! 나카모토 형사님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출동하다니. 무슨 일입니까?”

살인이야, 그것도 토막살인. 발견된 건 오른쪽 다리, 허벅지랑 발목이 자로 잰 듯이 아주 깔끔하게 잘려있었다는구먼.”

? 엄마의 호수에 시체라니...”

그러게 말이야, 연쇄 살인의 가능성도 있으니까 최근 10년 안에 일어난 비슷한 사건들 중에 아직 해결 안 된 사건 리스트들 경시청에 요청하고 비와호 연안 수색해보자고.”

, 알겠습니다!”

평화로움의 상징이던 엄마의 호수에 수많은 경찰들의 행렬은 지나가던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폴리스 라인 근처로 모여들었다.

수색을 시작한 지 2시간 남짓이 지나고 있을 때였다.

수색을 하던 경찰관이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소리를 지르고 뒷걸음질 치자 다들 수색을 멈추고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거나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게워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언가의 발견으로 비와호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정신이 있는 일부 경찰들은 확성기에 대고 시민들에게 귀가하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이 난리 통에 그 말을 듣고 순순히 물러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형사님, 나왔습니다. 이번엔 왼쪽 다리랍니다. 오른쪽이랑 똑같이 허벅지랑 발목의 절단면이 아주 깔끔하게 잘려있었다고 하고요. 최초 발견지점에서 2.5km 떨어진 호숫가 부근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 후 한 달간 경찰은 비와호 근처를 이잡듯이 뒤졌다. 그리고 그간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520일엔 피해자의 머리, 21일엔 왼발을 발견. 그리고 나머지 왼손과 오른손은 한 달 뒤인 622일과 23일에 발견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몸통과 오른발은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이건 뭐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용의자도 없고 피해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조차 나오질 않네. 나오는 거라곤 토막 나 따로따로 호수에 던져진 시체뿐이라.’

나카모토가 사건 첫날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을 때 그것을 방해라도 하듯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발신자는 경시청의 다시로였다. 경시청에서 전화가 왔다는 건 피해자에 대해 뭐라도 나왔을 것이다.

나카모토 형사님, 그래도 피해자의 머리가 발견돼서 다행입니다. 피해자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어요. 사인은 질식사. 목이 졸린 흔적이 남아있어요. 혈액형은 O, 머리가 희끗희끗 한 것으로 보아 나이는 45~65세 사이로 추정 되고요. 근데 얼굴이 심하게 훼손됐어요. 눈은 심하게 파여 있고 치아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앞니도 4개가 없고 코와 턱뼈 쪽은 날카로운 무언가로 갈려있었어요.”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혹은 시간을 끌기 위해 시체를 훼손하고 유기했다면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라고 나카모토는 생각했다.

또 다른 점은 없었습니까?”

,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는데, 왼쪽 눈가에 뾰루지가 있고, 약간 살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월에서 5월 초 사이에 사망한 뒤 비와호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고요.”

, 그리고 피해자의 몽타주 나왔어요. 지금 바로 보낼게요.”

감사합니다. 또 발견되는 것 있으면 전화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은 나카모토는 경시청에서 보내준 몽타주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흔한 외모에 최근에 새로 들어온 실종 신고도 없다. 피해자는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가까이 지내는 친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고, 노숙자나 일용직 근로자 쪽부터 파보면 뭐라도 나올 것 같은데.’

나카모토는 미나토의 얼굴도 보지 않고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으면서 말했다.

어이, 미나토 피해자 몽타주 나온 것 언론에 뿌리고 애들한테 노숙자들 많이 모이는 곳이랑 일용직 근로자들 숙소부터 탐문하라고 해. 지하철이나 빠칭코도 빼먹지 말고.”

, 지금 나가시려고요?”

, 가만히 있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게 마음 편해. 그리고 너는 피해자 몽타주랑 실종자들 사진이랑 대조해서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보고.”

예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사복차림으로 혼자 비와호에 도착한 나카모토는 엄마의 호수라는 이명에 맞게 넓게 펼쳐진 비와호를 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카모토는 사건에 진전이 없을 때 사건 발생 장소에서 기억을 되짚어보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비와호에서 시체가 발견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서 생각을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주위가 시끄럽네. 집중하긴 힘들겠어. 헛걸음했나?’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던 나카모토를 발견한 낚시꾼들은 저마다 소곤소곤 이야기하더니 이내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졌다.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느낀 나카모토는 잘됐다싶어 사건을 기록한 수첩을 꺼내보며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나이는 45~65세 추정, 사인은 질식사, 사망추정 시간은 4~5월초 사이, 517일 새벽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절단면이 아주 깨끗한 상태로 오른쪽 다리 최초 발견, 이어 2시간 뒤 왼쪽 다리, 20일과 21일엔 머리와 왼발, 한 달 뒤인 622~23일 왼손과 오른손 발견, 몸통과 오른발은 두 달이 다되어가는 현재까지 발견하지 못한 걸로 보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큼. 안면이 심하게 훼손된 걸로 보아 면식범의 가능성이 높음. 연쇄살인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음.’

나카모토는 피해자가 조직을 배신한 배신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배신자의 말로를 본보기로 보여줄 것이었다면 시신을 난도질하더라도 최소한 신원은 확인할 수 있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증거가 턱없이 부족해. 하다못해 피해자 신원만 정확하게 밝혀져도 갈피 정도는 잡을 수 있을 텐데.’

연달아 담배 세 개비를 피우고 네 개째 입으로 가져가던 찰나 조용하던 낚시꾼들이 시끄러워 졌다.

물었다. 꽤나 큰놈 같은데.”

네 개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보고 있으니 이윽고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한눈에 봐도 꽤나 커 보인다. 아마 메기의 한 종류 같다.

이 녀석 족히 60cm는 돼 보이는데요 형?”

으하하, 여기는 호수가 넓어서 고기들이 크다고. 이 정도는 기본이지 기본.”

오늘 첫 수확인지 주변에서 오히려 더 흥분한 모양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카모토는 담배를 비벼 끄고 갓길에 세워뒀던 자동차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오늘은 느낌이 좋아. 뭔가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지.’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안전벨트를 매는 손길이 다급해졌다. 몇 번을 허우적거린 끝에 간신히 안전벨트를 매고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ostAlways with m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약간의 흥분상태가 된 나카모토를 진정시켜주기에 적절한 곡이었다. 나카모토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고 자동차 악셀을 밟았다.

 

피해자의 몽타주가 나온 지도 2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진전이 없어 시가현 소속의 경찰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시가현의 경찰청장은 수사원들의 신발 바닥은 문자 그대로 닳아 없어졌고, 수사 차량의 타이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마모돼 갔습니다. 그 정도로 저희 경찰들은 정말 열심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언론과의 인터뷰에 남기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카모토 형사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을 한 미나토가 한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걸어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칼 각에 베일 것 같던 제복이 안쓰러울 정도로 풀이 죽어 있어 더 힘이 없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 보고할 내용이라도 있나?”

, 전에 시키신 것 말인데요. 시가현 시내 건축 근로자숙소 250곳이랑 시가현내의 빠칭코, 지하철 등 일용직 근로자들이 모일만한 곳은 다 탐문해봤는데요.”

그래서 결과는?”

허탕이에요. 뭐라도 하나 나와야 저희도 보고를 드릴 텐데 아주 깨끗합니다. 가출이나 실종자 명단 중에 몽타주랑 비슷하거나 의심이 가는 사람 1700명 정도 추려봤는데 피해자와 일치할만한 사람은 없었어요.”

나카모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미나토가 들어올 때와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모니터로 돌리고 키보드를 연신 두드려댔다.

이대로라면 범인 절대 못 잡아. 이 새끼가 한 번 더 날뛰어야 이 새끼 꼬랑지 냄새라도 맡아보지.”

에이 형사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만약 이 녀석을 못 잡더라도 피해자가 더 안 늘어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 그리고 여기에 현상금 걸린다는 거 알고 계세요?”

현상금?”

, 피해자든 가해자든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한테 최고 300만 엔을 보상금으로 지급한다고, 조금 있다 점심시간에 뉴스 특보로 내보낸다고 아까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는 것 들었어요.”
“300만 엔이면 경시청이 걸 수 있는 최고 금액이잖아.”

, 요즘 국민들 관심이 여기에 쏠려 있어서 위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허위 신고가 넘쳐나는데 보상금까지 걸리면 감당 안 될 텐데?”

그래서 광고 마지막에 허위 신고는 불구속 입건될 수 있는 중범죄다. 라는 경고 문구를 확실하게 넣으라는 청장님 특별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 라고 말한 나카모토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점심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 일찍 갈까? 야끼사바소멘 어때? 요 근처에 새로 생겼다던데.”

요카로우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거기 고등어 소면이 맛있더라고요. 저는 좋아요.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할까요?”

그래, 아마 오늘 점심 이후로 엄청 바빠질 것 같으니까.”

 

2

 

나가하마 경찰서 근처에 위치한 요카로우는 조금 이른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개업한지 2달도 채 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하는 수없이 2층으로 올라간 나카모토 일행은 가게 마당이 보이는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음과 거의 동시에 물티슈와 젓가락 그리고 얼음을 둥둥 띄운 우롱차가 나왔다. 시키지도 않은 우롱차가 나오자 나카모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미나토는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형사님, 여기 우롱차 맛있어요. 개업 이벤트로 지금은 서비스로 준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우롱차 마시러 저희 가게에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있을 정도예요.”라는 말과 함께 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메뉴판을 받아들며 종업원과 눈이 마주친 나카모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평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이토 미사키와 똑 닮은 미인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토 미사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주변에 없지만 방금 표정은 상당히 얼빠져 보였으리라고 나카모토는 생각했다.

형사님, 얼굴이 빨개지신 것 같은데요? 저는 고등어 소면으로 하겠습니다.”

미나토는 평소 이곳에 자주 와본 듯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메뉴를 골랐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카모토는 메뉴판을 펼쳐보지도 않고 말했다.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고등어 소면 2개 맞으시죠?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은 산뜻한 웃음과 함께 나카모토의 손에 들려있던 메뉴판을 다시 받아들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계단을 살금살금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나카모토는 그 모습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형사님 저 종업원한테 반했죠?”

나카모토는 치부를 들킨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평소보다 목소리가 배는 크게 소리쳤다.

뭔 소리야, 이 자식아. 그런 거 아니야.”

에이, 형사님 저도 여기 처음 왔을 때 형사님이랑 똑같은 표정이었어요. 여기 오는 남자 대부분이 저 사람한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어서 온다니까요. 아까 들으셨잖아요. 우롱차, 우롱차가 거기서 거기지 우롱차 마시러 소면 집에 오는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어요? 그리고 여기 손님들 보세요. 여자는 한 명도 없죠?”

정말이었다. 본인들을 포함한 세 테이블이 모두 남자였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1층에서도 여자 손님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힌 나카모토는 TV로 관심을 돌렸다.

TV에서는 특보라는 제목으로 비와호 사건의 단서 제보를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물론 허위 신고는 중범죄에 속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나온다, 뉴스 특보

, 그러네요. 근데 저런다고 효과가 있을까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거겠지. 위에서도 크게 기대는 안 할걸?”

뉴스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음식이 나왔다.

곱빼기로 드렸어요. 많이 먹고 파이팅 하시라고. 그럼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이토 미사키와 닮은 종업원은 수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도망치듯 빠르게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하지만 나카모토는 그 웃음이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형사님이 마음에 들었나 본데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들으셨잖아요. 먹고 힘내라고. 그리고 제가 여기 이번 주만 세 번째 오는 건데 저분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건 처음 봐요.”

좋은 일 있는가 보지.”

게다가 소면도 곱빼기로 줬잖아요. 이건 형사님이 마음에 들었다는 증거라고요. 저 혼자 왔을 때는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밥이나 먹어.”

나카모토는 미나토의 말에 긴가민가했지만 어찌됐든 저런 미인에게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이쁘게 모양 잡힌 소면 위에 고등어 한 덩이가 올라가있어 한 끼 식사로 안성맞춤이었다. 고등어는 훈제한 것 같았는데 그 때문인지 하나도 비리지 않았다.

형사님, 산초도 뿌려서 드셔보세요. 이것도 나름 맛있어요.”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던 나카모토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반쯤 남은 고등어 소면에 산초 가루를 조금 뿌린 뒤 다시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산초 가루를 넣고 먹어보니 혀끝에 알싸한 맛이 올라오는 게 나름대로 매력 있었다.

음식이 나온 후로는 서로 간의 대화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두 사람은 묵묵하게 각자의 몫으로 나온 음식을 빠르게 흡입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릇은 바닥을 드러냈고 서로의 그릇이 텅 빈 것을 확인하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잘 먹었다. 형사님, 계산할 때 잘 보세요. 저 여자분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내기해도 좋아요. 후식으로 커피사기 어때요?”

아니라니까, 그럼 나는 하트가 안 나온다.”

좋아요, 저는 하트가 나온다. 빨리 내려가죠.”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감에 부풀어 계산대 앞에 섰던 나카모토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미나토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자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다 못해 비참하다고까지 느껴졌다.

카운터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고 있는 종업원을 발견한 나카모토는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계산하기 위해 그녀 앞에 섰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그저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기계처럼 말없이 잔돈만 주고받을 뿐, 아까 보여줬던 아름답고 산뜻한 웃음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 나카모토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표정에서 당혹감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나토의 말만 듣고 혼자 설레발을 친 격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지?”

, 저희 밥 먹는 동안 사장님한테 혼난 게 아닐까요? 20분 전이랑 완전 딴사람이던데요.”

됐어, 커피나 빨리 한잔 사서 들어가자고. 이러다 늦겠다.”

 

비와호에 시신이 발견된 지도 2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매년 이맘때면 들려오는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옷차림 또한 가벼워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 끔찍했던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다.

형사님 피해자의 시신은 다 수습했습니다. 저번 사건이랑 유사한 점이 많아요. 시신은 10개로 나눠져 있었는데 서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버려져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어요.”

피해자 신원은 나왔나?”

, 이름은 혼타 테츠야. 마이바라 출생으로 나이는 35살입니다. 뚜렷한 직업은 없고 피해자 부모님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일을 도와주는데 그마저도 안 할 때가 많아서 동네에서 평이 되게 안 좋더라고요. 여자관계도 엄청 복잡하고 이리저리 원한을 살만한 일도 많이 한 것 같아요.”

, 그래도 이번엔 피해자 신원이라도 나왔으니 주변 인물부터 차근차근 파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피해자 부모님이랑 주변 사람들부터 만나러 가자고.”

지금 바로 출발할까요?”

그래, 바로 출발하자.”

 

피해자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는 간단하게 식사를 하거나 조용하게 맥주 한잔하기에 좋을만한 동네의 작은 초밥집이었다.

안녕하세요, 나가하마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카모토 사부로라고 합니다. 이번 일로 힘드실 줄 압니다만 혹시 아드님에 대해 질문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범인은 저희가 꼭 잡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그래, 들어와요.”

피해자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엔 피해자의 아버지와 피해자의 여동생이 앉아 있었다.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것을 보니 아마 늦둥이일 것이라고 나카모토는 생각했다.

나카모토와 미나토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조의를 표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래, 물어보고 싶은 게 뭔가?”

피해자의 아버지는 무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한 인상을 가졌다고 나카모토는 생각했다.

아드님께서 주변에 원한을 살만한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아니면 평소랑 다른 행동을 했다든지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그냥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 동네 사람들이랑 사이는 좋지 않았어도 크게 싸운 적은 없었을 게야. 그놈이 겉으로는 그래 봬도 겁이 많았으니까.”

혹시 아드님이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다거나 이성문제는 없었나요?”

그쪽은 나도 잘 모르겠네. 그놈이 맨날 밖으로 싸돌아다니고 집에서 입을 여는 일은 도통 드무니까 말이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까부터 나카모토를 뚫어지게 노려보던 피해자의 동생이 입을 열었다.

그놈이 여자친구가 있을 리가 없죠. 그렇게 한심한 놈이랑 누가 사귀어요?”

이분은...?”

아 인사가 늦었구먼, 우리 집 작은딸이라네. 이 녀석이 늦둥이라 혼다랑은 나이 차이가 열댓 살 정도 나지.”

, . 그럼 동생분께도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혹시 오빠가 평소랑 다른 행동을 하거나 이상한 점이 없었나요?”

그놈 하는 짓이 똑같죠. 맨날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돈은 돈대로 물 쓰듯이 쓰고, 평소랑 다를 것 없었어요.”라고 말한 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컵에 가득 담겨있던 물을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러고 보니까 나가하마 쪽에 새로 생긴 야끼사바소멘집이 있는데 거기 종업원이 이쁘다고 통화하는 걸 들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점심은 거의 거기서 해결하는 것 같던데요.”

야끼사바소멘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나카모토는 서둘러 질문을 이어갔다.

? 야끼사바소멘이요? 혹시 가게 이름이 요카로우 아니던가요?”

그건 모르겠네요. 어쨌든 최근 들어서 거기에 자주 간 것은 맞을 거예요.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았거든요.”

감사합니다. 또 해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딱히 없는 것 같네요.”

혹시 생각나는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저희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나카모토 일행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실마리를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차에 오르자 조수석에 앉은 미나토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사님, 혹시 거기랑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니겠죠?”

가보면 알겠지. 거기 도착해서 이야기해보기 전 까진 아무 생각도 하지 마.”

.”

그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이어졌다. 한동안 이어지던 정적을 깬 것은 나카모토의 핸드폰이었다.

여보세요?”

나카모토 형사님 핸드폰 맞나요?”

, 맞는데 누구시죠?”

지금 비와호 살인사건 범인 찾고 계시지 않나요?”

?”

제가 알아요. 범인

광고 보셨죠? 만약 장난 전화면 감옥 갈 수도 있어요. 장난치지 마세요.”

저 형사님 뵌 적 있는데, 요카로우에서.”

저예요. 거기서 일하던 종업원.”

나카모토는 자기도 모르게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만약 뒤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급브레이크에 깜짝 놀란 미나토는 원망 섞인 눈초리로 나카모토를 째려봤지만 그딴 것이 나카모토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3

 

이토 미사키를 닮은 요카로우의 종업원을 만난 곳은 나가하마 경찰서와 요카로우의 중간쯤에 위치한 히마와리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였다.

히마와리에 도착한 나카모토와 미나토는 자리에 앉기 전에 가게 안을 훑어봤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꽤나 붐볐지만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카페 구석자리에서 흰색 반팔 티 차림으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전에 요카로우에서 뵌 적 있지요? 저는 나카모토라고 하고 이쪽은 미나토라고 합니다.”

, 그래서 나카모토 형사님한테 직접 연락드렸어요. 번호는 나가하마 경찰서에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자리에 앉은 나카모토는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후 의자를 테이블에 바짝 붙여 앉았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나가하마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가모토 사부로라고 합니다.”라고 자신을 짧게 소개한 후 미나토에게 눈짓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미나토 스즈키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짧게 소개한 미나토는 긴장한 탓인지 안절부절못하는 게 옆자리에 앉아있던 나카모토에게도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요카로우에서 일하고 있는 베니카 쇼코라고 합니다.”

아까 전화로 하신 말씀이 진짜인가요? 비와호 사건의 범인을 알고 계신다고요?”

, 알고 있어요.”

나카모토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그 이유가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앞에 앉아있는 여자의 외모도 한몫했다고 나카모토는 생각했다.

근데 제가 이걸 제보하면 신고 포상금은 언제쯤 받을 수 있나요?

아마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 금방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말없이 나카모토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던 쇼코는 이내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 범인이 저희 가게 사장님인 유우마 고죠인 것 같아요.”

첫 만남 이후로는 가만히 듣고만 있던 미나토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저와 그 사람은 요카로우가 여기에 개업하기 전부터 알던 사이였어요. 전에는 히로시마 쪽에서 초밥집을 했었거든요. 거기 폐업하고 여기서 새로 개업했는데 그때 저도 같이 오게 됐어요. 임금을 많이 쳐준다고 하셨거든요.”

그게 이 사건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이번에 죽은 그 사람 저희 가게 자주 오던 사람인데 저희 사장님이랑 사이가 안 좋았어요. 올 때마다 저한테 치근덕거려서 사장님이랑 대판 싸웠던 적도 있거든요. 그리고 중요한건 다음 이야긴데 3일 전이었을 거예요. 그날따라 사장님이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더라고요. 말을 걸어도 대답도 없고 주문도 빼먹고 엄청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마무리는 자기가 할 테니 저보고 먼저 퇴근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 많이 힘든가 싶어서 그냥 알겠다고 했죠. 그리고 퇴근해서 집에 가는데 가게에 지갑을 놔두고 온 걸 깨달았어요.”

여기까지 말한 쇼코는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커피를 한 입에 쏟아 넣었다.

나카모토와 미나토는 긴가민가했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쇼코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가게에 돌아왔는데 사장님이 가게 뒷정리는 하지도 않고 캐리어를 들고 나오는 걸 봤어요. 처음에는 아는 척을 하려고 했는데 그 상황이 너무 수상해서 따라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큰 캐리어를 들고 비와호를 지나다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확인되면 그 안에 든 무엇인가를 하나씩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어제 비와호에서 시체가 발견되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 맞아요. 저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라 아니기를 바랐지만 이정도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나카모토는 만약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기 위해 유우마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쇼코의 이야기만 곧이곧대로 들으려고 노력했다.

나카모토 형사님, 그래도 이 정도로 확신을 가지기엔 부족하겠죠?”

그렇긴 하지, 뭐 다른 이야기 해주실 것은 없습니까?”

사실 이건 심증이지만 히로시마에서 여기로 옮겨온 이유가 그 사람이 잡히지 않기 위해서 옮겨 왔다고 생각해요. 거기서도 저한테 치근덕대던 사람이 있었는데 히로시마에서 시체로 발견됐거든요. 게다가 굳이 잘 되던 가게를 갑자기 처분하고 여기로 올 이유가 딱히 없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일반 종업원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월급도 많이 주고 게다가 저를 데리고 올 필요는 더더욱 없거든요. 이때까지는 적당히 눈 가리고 살려고 했지만 확신이 생기니까 무서워서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미나토는 무슨 생각이 번뜩였는지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맞아요, 나카모토 형사님께서 미제 사건 찾아보라고 하셨을 때 히로시마에서도 있었어요. 근데 그때는 이번 사건이랑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말씀을 안 드렸어요. 일단 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고 시신이 토막 나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 일단 유우마 고죠를 만나보고 이야기해봐야겠어. 피해자가 죽기 전에 요카로우에 들렸다는 핑계로 만나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쇼코 씨는 어디로 가시나요?”

저는 오늘 쉬는 날이라 집으로 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소식 있으면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에서 나온 세 사람은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은 뒤 흩어졌다.

나카모토는 요카로우의 사장이 정말 두 명 이상을 살인한 괴물이라면 쇼코를 위해서라도 확실한 증거를 잡아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4

 

나카모토와 미나토는 쇼코가 없는 요카로우에 앉아 전에 왔을 때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하지만 지난번에 서비스로 나왔던 우롱차는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마감시간에 맞춰 와서 그런지 가게는 한산했다. 나카모토 일행을 제외하면 직장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두 명만이 늦은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앉아있을 뿐이었다.

때마침 뉴스에서는 혼다 테츠야의 사망 소식에 대한 보도와 범죄 심리학 교수라는 사람이 연쇄 살인의 가능성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카모토는 고죠에게 충분히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미친놈이 사람을 토막 낼 생각을 하지? 저런 놈들은 사형당해 죽어야지.”

그렇죠, 저런 놈들은 사람 취급도 해주면 안 돼요.”

미나토도 눈치껏 나카모토의 말을 받아쳤지만 정작 고죠는 조용히 TV만 응시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이어지던 중 식사를 거의 끝마친 중년 남성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오늘은 저번에 서빙하던 이쁜 종업원은 없나 보네?”

그 말과 동시에 고죠의 표정이 아주 잠깐이었지만 무서울 정도로 뒤틀리는 것을 미나토는 놓치지 않았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얼굴이었다.

악마가 있다면 저런 얼굴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미나토는 생각했다.

음식이 나오고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음식을 해치운 두 사람은 계산을 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미나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형사님, 보셨어요? 아까 다른 손님이 쇼코 씨 이야기 하니까 고죠 그 사람 표정을 못 숨기던데요.”

? 나는 잘 모르겠던데.”

저는 확실히 봤어요. 형사님, 한동안 쇼코 씨랑 두 분이서 자주 만나는 게 어때요? 저 사람이 범인이라면 수상한 행동을 보일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나를 미끼로 쓰겠다고?”

나카모토의 말은 반쯤은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쇼코와 합법적인 이유로 둘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호탕하게 웃으며 못 이기는 척 승낙했다.

하하, 진짜라도 설마 형사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그럼 저는 히로시마에 갔다와볼게요.”

 

히로시마에 간 미나토는 고죠와 쇼코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 그 사람들 알죠. 음식 맛도 괜찮고 장사도 꽤 잘 되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가게 문을 닫더니 인사도 없이 떠났어요.”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 착했어요. 엄청 순했죠. 같이 일하는 여자가 얼굴은 이쁜데 기가 엄청 세서 사장이 꼼짝을 못 했어요. 처음에는 여자가 사장이고 남자가 직원인 줄 알았다니까요.”

혹시 부부나 연인 관계는 아니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둘이 결혼하거나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근데 사장이 종업원을 좋아하는 것 같긴 했어요.”

미나토는 처음에는 기가 세다는 말에 쇼코가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탐문을 하면 할수록 기가 센 여자는 쇼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미나토는 몇 날 몇 일을 수소문했지만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던 찰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시청의 다시로였다.

여보세요, 미나토입니다.”

미나토, 놀라지 말고 들어.”

미나토는 다시로의 목소리에서 장난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

나카모토 형사님이 돌아가셨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카모토 형사님이 돌아가시다니.”

미나토는 심각한 표정으로 검사 결과를 훑어보던 다시로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 아무래도 살해당하신 것 같아. 사망한지 대략 20시간이 넘어서 발견됐어. 술에 취해 무방비한 상태일 때 밧줄 같은 걸로 목을 졸렸어. 근데 범인이 침입한 흔적도 없고 외상도 보이지 않아.”

그날에 같이 마신 사람은 누군데요? 목격자나 증인은 없어요?”

요카로우의 종업원이랑 마셨다는 것 같더군. 그 여자 말로는 나카모토 형사님이랑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던데?”

다시로의 대답을 듣고 미나토는 가슴이 철렁했다.

쇼코와 가까이 지내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미나토는 이미 고죠를 범인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미나토와 쇼코는 지난번과 같은 카페에서 만남을 가졌다. 심지어 자리도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 사람에서 두 사람으로 줄었다는 정도였다.

형사님이 살해당하던 날 같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퇴근하고 같이 술 마시러 갔어요.”

미리 약속되어 있었나요?”

, 근데 그날따라 형사님께서 과음을 하시더라고요. 너무 과한 것 같아서 말리려고 했는데 이미 취기가 오르셔서 말려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형사님 댁에 모셔다 드리고 저는 곧바로 집으로 왔어요. 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혹시 고죠 씨가 두 분이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아마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부쩍 나카모토 형사님이랑 자주 만났거든요.”

최근에 고죠 씨한테 수상한 점이라던가 나카모토 형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없나요?”

크게 생각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혹시 고죠 씨가 평소랑 다른 행동을 한다든가 외출한다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미나토는 이미 고죠가 범인이라 단정 짓고 있다고 쇼코는 생각했다.

, 그럼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나토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이었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된 잠은 자지도 못한 듯 붉게 충혈 된 눈과 꾀죄죄한 옷차림은 전에 알던 미나토와 동일 인물이 맞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쇼고를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기에 혼자 무리를 한 결과였다.

하지만 미나토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진전은 없었다.

어이, 미나토 아무리 그래도 조금씩 쉬어가면서 해. 나카모토 형사님이 너한테 어떤 존재인줄은 아는데 필요할 때를 위해서 체력을 비축하는 것도 필요해.”

하하, , 알겠습니다.”

사람 좋은 듯이 웃어보였지만 미나토의 속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친형처럼 따랐던 나카모토가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명색의 경찰인데도 손 못쓰고 있다는 것이 자신을 더 화나게 했다.

띠리링.

허탈감에 잠시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봤던 미나토의 핸드폰에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발신자는 쇼코였다.

나카모토 사건 이후로 부쩍 연락을 많이 주고받게 된 두 사람이었다.

미나토 씨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미나토는 곧바로 알겠다고 답하고 경찰서를 나섰다.

 

카페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쇼코의 모습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급하게 하실 말씀이라는게..?”

, 저기... 이것 좀 봐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쇼코는 종이로 된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제가 가게 쓰레기를 버리다가 발견했는데요. 봉투 안에 이런 게 들어있어서요.”

쇼핑백 안에 든 물건은 밧줄과 칼이었다.

원래 가게에 없던 물건이기도 했고 전에 고죠 씨가 이상한 점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하셔서 혹시 몰라서 가져와봤어요.”

, 일단 알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데이트로 보였겠지만 데이트와는 전혀 다른 무거운 분위기 속에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다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어이, 미나토, 미나토

경시청의 다시로였다.

?”

전에 네가 부탁한 거 말이야. 이거 어디서 구한 거야? 검사해봤는데 나카모토 씨의 지문이 묻어 나왔어. 뭔가를 조른듯한 흔적도 있고 말이야.”

? 정말이에요? 다른 지문은 안 나왔어요?”

, 그렇다니까. 다른 사람 지문도 있어. 혹시 의심되는 사람 있는 거야?”

그 지문 유우마 고죠라는 사람 지문이랑 대조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그 사람 좀 만나고 와야겠어요.”

반쯤 포기하고 있던 미나토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사실과 억울하게 죽은 나카모토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심하게 고동치는 게 느껴졌다.

 

요카로우 앞에 도착한 미나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가게 문을 열어젖혔다.

먼저 쇼코와 눈이 마주친 미나토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지체 없이 고죠가 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유우마 고죠 씨 맞으시죠? 나가하마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나토 스즈키라고 합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경찰의 갑작스런 방문에 고죠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대놓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얼마 전에 이 근처에서 살인사건 일어난 건 아시죠? 근데 이 가게에서 버린 쓰레기봉투에서 그 사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습니다.”

고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나토를 똑바로 노려봤다.

혹시 제가 지금 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는 건가요? 저는 아니에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요.”

그건 들어보면 알겠죠. 좀 지나긴 했지만 915일 저녁에 뭐 하셨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렇게 말하면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근데 아마 최근에는 가게 정리하고 바로 집으로 갔기 때문에 그날도 아마 집에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거네요?”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저는 결백해요.”

이 가게 쓰레기봉투에서 피해자의 살인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밧줄이 나왔어요. 만약 그 밧줄에 고죠 씨 지문이 묻어나온다면 그때부터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될 겁니다. 저도 물론 고죠 씨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만약을 위해 말해두는 겁니다.”

고죠의 당황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요카로우로 달려왔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태연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에 미나토 역시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상태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지만 타이밍 좋게도 곧바로 미나토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무거운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하마사키 아유미의 Depend on you가 흘러나왔다.

미나토는 곧바로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미나토 스즈키입니다.”

, 미나토 결과 나왔어. 고죠 그 사람 지문이 맞아. 어떻게 찾은 거야?”

제가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미나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유우마 고죠 씨 당신은 앞으로 나카모토 사부로에 대한 살인 혐의를 가진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앞으로 하는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습니다.”

고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수갑이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 5

 

취조실에서의 미나토는 상당히 강압적인 모습이었다.

미나토의 취조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그것을 느꼈지만 여러 감정이 결합되어 복잡한 심정일 미나토의 상황을 알기에 굳이 참견하지는 않았다.

유우마 고죠 씨 이렇게 입만 다물고 있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 잘 알고 계시잖아요? 나카모토 씨를 죽인 이유가 뭐에요?”

저는 정말 아니에요. 왜 그게 저희 가게 봉투에 들어있는지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요.”

고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했지만 미나토에게는 나카모토를 죽인 살인범이 불쌍한 척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옛날 일부터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보죠. 히로시마에서 급하게 여기로 넘어온 이유가 뭐죠? 그쪽에서 장사도 상당히 잘됐다고 하던데요.”

예전부터 이쪽으로 이사 오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 그럼 200828일에 산에서 암매장 된 시신이 발견 된 히로시마 살인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시겠네요?”

당연하죠,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 2008825일에 비와호에 토막 난 시신이 발견 된 사건 아시죠? 그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신가요?”

.”

일말의 부끄럼움도 없다는 듯이 고죠의 목소리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매우 단호했다.

그 사건 피해자가 죽기 전에 당신 가게에 매일같이 밥 먹으러 갔어요. 굳이 마이바라에서 나가하마까지 밥을 먹으러 갈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620일에 비와호에서 토막 난 시신이 발견 된 사건과 매우 흡사해요 저는 두 사건 모두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와는 상관없는 이야깁니다.”

추궁하면 할수록 고죠는 더더욱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고 비협조적인 그런 태도가 미나토의 화를 더 돋우고 있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던 남자의 가게로 종업원이 한 명 들어옵니다. 남자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이내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되죠. 하지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은 사실 사랑이 아닌 집착이었죠. 게다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첫눈에 반한 남자들이 그 남자만은 아니었던 거죠. 그 남자는 생각했을 겁니다. 그녀의 껍데기만 보고 좋아하는 저런 남자들과 나는 다르다. 나만큼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계속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어떤 놈 하나 때문에 심사가 뒤틀려서 그 사람을 쫓아가 죽이고 산에 암매장하기까지 이릅니다. 경찰에게 잡힐까 두려웠던 남자는 가게를 급히 정리하고 히로시마를 떠나 멀리 떨어진 나가하마까지 오게 되죠.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남자는 여자에게 말도 안 되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함께 나가하마로 가자고 하죠. 어때요 여기까지 말 되나요?”

소설가 하셔도 되겠네.”

고죠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받아쳤다.

하지만 남자는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여자에게 고백조차 못해봤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말을 마친 미나토가 싱긋 웃으며 양팔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를 취하자 고죠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당장 달려들어도 이상할 것 없는 기세였다.

하지만 고죠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미나토는 그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가하마에서 새로 개업을 한 두 사람은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겠죠. 하지만 문제는 그녀를 향한 끊임없는 남자들의 추태를 바라보고만 있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죽이고 시신을 처리할 방법을 생각했겠죠. 히로시마에서 이미 한번 해본 상태라 별로 두렵지도 않았을 거예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니 바로 옆에 비와호가 있으니 거기다가 시신을 토막 내 버리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겠죠? 그리고 대략 618~19일경에 나가하마에서의 첫 살인을 실행에 옮긴 거겠죠. 그리고 825일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남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거죠.”

미나토는 고죠의 반응을 보기위해 잠시 멈췄지만 고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그리고 915일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죠. 어떤 남자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여자가 처음 보는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을 본겁니다. 남자는 배신감에 분노를 느꼈을거에요. 하지만 여자가 보는 곳에서는 행동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뒤를 밟아 두 사람이 있는 술집 앞에서 기다리다 고주망태가 된 나카모토 씨를 발견하게 되죠. 두 사람이 나카모토 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본 남자는 이때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을 겁니다. 남자는 밖에서 수없는 상상과 살인충동을 느꼈을 거예요.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안심했겠죠. 하지만 남자는 자신에게서 여자를 빼앗아간 혹은 빼앗길 것이라는 초조함에 나카모토 씨를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게다가 우연찮게 문도 잠겨있지 않았고 늦은 시간이라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겠죠. 그래서 남자는 생각했던 일을 실행한 겁니다. 아마 시체를 처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음날에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갔지만 그 전의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피해자가 너무 빨리 발견된 것이겠죠. 어떤가요? 제 추리가 그럴싸하지 않나요?”

고죠는 넋이 나간 듯 대꾸도 하지 않고 허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고죠 씨 나카모토 씨의 살인에 쓰인 밧줄엔 당신의 지문이 나왔고 6월과 8월에 캐리어를 대량으로 사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생김새도 당신과 거의 흡사하다는 증언이 나왔어요. 이제 그만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세요.”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온 미나토는 극도의 피로를 느끼며 수면실로 가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미나토는 아직 피로가 덜 풀린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미나토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나가하마 경찰서가 수많은 기자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 경찰 재직 후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서장은 잠에서 덜 깬 미나토를 옆으로 데려와 비와호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은 일등공신이라고 소개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수많은 플래시 세례와 함께 경쟁하듯 질문을 쏟아 내는 게 미나토의 눈에는 우악스럽게 보였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미나토, 재판 결과 봤어?”

, 사형 받았다고 했죠?”

맞아, 그래도 자네 덕분에 나카모토도 이제 편히 눈 감을 수 있겠어.”

하하, 그럼 다행이지만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미나토는 나카모토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나카모토의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이제 이 사건도 끝났으니까 한동안은 긴장 좀 풀어도 되겠네.”

그러게요, 저도 여자친구랑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여행도 좀 다니게요.”

쇼코 씨라고 했나? 미인이시던데.”

하하, 그렇죠. 저는 나카모토 형사님이 주고 가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어쨌든 너는 이번에 고생 많았으니까 푹 쉬어.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 알겠습니다.”

얼마 전에 그런 큰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나날이 계속 되고 있었다.

미나토는 나카모토의 빈자리를 느끼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아 섭섭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자기가 지금 당장 죽어도 아마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번에 재판이 진짜 빨리 진행되기는 했지?”

그러게요.”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연달아 터지는 살인사건에 단서조차 잡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함에 국민들의 비판여론이 커지자 윗선에서 개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유우마 고죠를 잡은 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비와호 사건이 터졌을 때는 걸어만 다녀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11월을 넘어서고 있었다.

날씨에 맞춰 미나토는 꽤나 두툼한 가디건을 입고 있고 이제는 여자친구가 된 베니카 쇼코를 간사이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보라카이는 어땠어? 재밌었어?”

, 완전! 거기는 엄청 더웠는데 일본은 역시나 춥구나.”

쇼코는 고죠를 잡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 공으로 신고 포상금 100만 엔을 받은 상태였다.

원래는 그 돈으로 유럽여행을 할 생각이었으나 일정이 틀어져 보라카이로 간다고 투덜거렸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피곤하지? 바로 집으로 갈까?”

, 오늘은 좀 쉬어야겠어.”

두 사람은 나가하마에 가기위해 오미시오츠행 열차를 탔다.

오미시오츠행 열차는 마이바라를 경유해서 가는 열차였는데 마이바라에 도착하자 미나토는 마이바라에 살았던 희생자 혼다 테츠야가 생각났다.

마이바라네. 혹시 유우마 고죠 사형 받은 거 알고 있어?”

아 몰라 그런 거, 피곤해 잘래.”

미나토는 머쓱했지만 해외여행 다녀온 직후라 피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차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빨갛게 물든 나무들이 미나토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6

 

나카모토가 죽은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친한 상사의 죽음을 겪은 미나토에게 그 후 1년간 일어난 자잘한 사건들은 그저 따분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큰 사건이 벌어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학생들처럼 미나토도 의무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카모토 사건 이후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베니카 쇼코와 올해 초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는 정도였다.

오늘도 도시락 사 가야 하나?”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미나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결혼 후 한 달간은 미나토가 평소에 꿈꿔오던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쇼코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미나토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낭비벽이 심해졌는데 TV에서나 보던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들이 방에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어르고 달래보고 불같이 화도 내봤지만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엔 저자세로 일관했던 쇼코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싸우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점차 태도가 강하게 바뀌었다.

최근에는 돈도 못 벌어오는 한심한 남자라는 폭언도 서슴지 않으며 밤늦게 나가 미나토의 출근 시간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비일비재했다.

쇼코가 나가는 날이면 온 집안에 풍기는 진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쇼코와 부딪치게 될 것을 알기에 애써 무시했다.

거의 매일 아침을 혼자 잠에서 깨면 미나토는 생각이 많아졌다.

출근 준비를 끝낸 미나토가 집을 나서면서 사실은 이게 쇼코의 진짜 모습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이, 미나토 다크서클이 심한데? 신혼이 좋긴 좋은가 봐?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말이야.”

다시로와는 나카모토 사건 이후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부부관계를 터놓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하, 그런가요? 피곤하긴 하네요.”

다시로가 생각한 피곤함과는 다르겠지만 거짓말은 아니라고 미나토는 생각했다.

지금 많이 즐겨둬야지. 아기 가지면 이제 그것도 끝이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결혼한 사람들은 꼭 저 이야기를 하더라.’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다시로가 떠난 뒤 미나토는 다시로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와는 확실히 다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미나토는 생각했다.

확실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쇼코와 제대로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쇼코와 화해할 작정으로 쇼코가 좋아했던 토마토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미나토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현관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어질러진 옷가지와 널브러진 쓰레기, 마지막으로 취해서 아무렇게나 퍼질러 자고 있는 쇼코를 보고 있자니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쇼코! 쇼코! 일어나 봐!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지금 뭐 하자는 건데?”

잠에서 깬 쇼코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 또 뭐가?”

집안 꼴이 왜 이래? 당신은 매일 밤에 뭘 하길래 안 들어오는 거고?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한번 말해보자 우리.”

아니, 당신이 돈을 못 벌어오니까 내가 쓸 돈 내가 벌겠다는데 왜 당신이 참견이야?”

쇼코, 우리 부부야. 남이 아니라고. 내가 남편으로서 부인이 밤에 무슨 일하는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별거 아니라고. 그냥 술집에서 서빙하는 것뿐이라고.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참견이야.”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쇼코를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의미 없는 공방전만 이어지다 결국 미나토도 대화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대화로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달은 미나토는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쇼코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미행을 해서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나토의 미행은 미나토의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오늘 있었던 미나토와의 논쟁으로 기분이 언짢았는지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나선 쇼코였다.

하지만 진한 향수 냄새가 쇼코가 말하는 일이라는 것을 하러 갔다고 알 수 있었다.

미나토 역시 곧바로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따라나섰다.

속으로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어디서 일하는지 보고만 오는 거야. 설마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거야.’

쇼코는 익숙한 걸음으로 나가하마 시내를 활보했다.

그리고 이내 익숙한 듯이 어느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평소 나가하마 시내에서 자주 순찰을 도는 미나토에게도 익숙한 호스티스 거리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나토는 몸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쇼코가 들어간 가게는 겐조라고 하는 호스티스 바로 미나토도 대충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고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깨지자 배신감과 분노로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한 미나토는 쇼코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추위 따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1분이 1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대략 2시간이 지났을 무렵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쇼코가 낯선 남자의 팔짱을 끼고 나오는 모습이 미나토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미나토는 이성을 잃고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