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차종은, 「인 픽셀스(IN PIXELS)」(2020-1학기 <웹소설창작과비평>)
등록일
2020-07-10
작성자
국어국문학과
조회수
437


 

 

 

1

 

 

드높은 하늘을 찌르는 고층부터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낮은 층수의 건물들. 그 사이에는 붉은 비늘의 용이 유유히 날아다니며 거리에는 여러 천사, 악마, 좀비 등등 각자 개성 있는 생김새를 가진 이들이 돌아다닌다. 우리가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그 비디오 게임들의 실제 세계, “픽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RPG대륙의24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주식회사 다니지에서 오늘은 큰 사건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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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지 사, 미계부서 5팀 사무실]

 

 

팀장님 부디 화를 푸시고 제 말을 먼저...”

 

목에 인큐버스라고 적힌 사원증을 매고 있는 단정한 흑 단발을 한 악마는 비에 젖은 쥐 마냥 몸을 심하게 떨고 있다. 반면에 그의 앞에 선 마계부서 5팀의 팀장 바알은 족히 3미터가 넘는 덩치를 이끌고 인큐버스에게 다가간다.

 

그래, 일단 좀 맞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알은 거추장스러운 정장을 벗어 던졌다. 그가 흐읍하고 숨을 들이쉬자 바알의 몸이 부풀어 오르면서 피부가 시뻘겋게 변색된다. 눈앞의 광경에 놀란 인큐버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팀장님 제발 살

 

그러고 난 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한다. 그러나 인큐버스가 입을 열자마자 바알은 인큐버스의 다리를 붙잡고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몇 번이고 패대기를 쳤다. 주변 이들은 황급하게 당할 만 했지”, “팀장님 저렇게 꼭지 돈 거 오랜만이네요.”라며 속닥거리며 시선을 회피한다.

그리고 나서 여러 번 패대기 당한 인큐버스는 끼에에엑이라는 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너덜너덜해진 채, 그대로 기절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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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전, 클라이언트 OLE-005]

 

보안팀의 안내에 따라 출입구에서 너덜너덜해진 전교대 팀들이 곡소리를 내며 나오고 후교대 팀들이 투입 대기한다. 투입하는 인원들은 표정을 바로 잡고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몸을 푼다. 단 현 명만 빼고

 

거 다리 좀 그만 떱시다.”

... 죄송 ... 합니다 ...”

 

첫 출근에 긴장을 심하게 하여 몸을 주체 못하는 작은 악마, 인큐버스는 옆 자리에 앉아 불만을 토하는 다른 악마에게 사과를 하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선지 캔디라 적힌 작은 빨간 색 젤리를 한 입에 넣더니 바로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걸 바라본 한 늑대인간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인큐버스에게 다가갔다.

 

우리 인턴이 결국 정직원 됐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웨어울프 선배님.”

 

알면식이 있는 듯 익숙하게 서로 인사를 나눈다.

 

웨선이라고 부르라니깐. 그래서 저번에 사준 커피 값 갚으러 온거냐?”

 

인큐버스의 표정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은 웨어울프는 피식 웃으며 작업복 주머니에서 캔커피 하나를 건네줬다.

 

자식이~ 뭘 그렇게 떨고 있어. 여기 현장이 어려워 보여도 그냥 버티다가 나오는 게 끝이야 별거 없다고

 

웨어울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안팀의 “5팀 들어가실게요~”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인큐버스는 웨어울프에게 격려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어느새 웨어울프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정신만 차리자.’

 

그렇게 생각한 인큐버스는 웨어울프가 건네준 캔커피를 한 번에 들이킨 후 클라이언트 안으로 들어갔다.

 

인조적으로 만든 어둑어둑한 하늘과 앙상하게 남아있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 그리고 곳곳에서 으스스한 목소리가 들리는 분위기에도 인큐버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엉거주춤 걸어간다.

 

자리 지키는 거 ... 쯤이야!’

 

인큐버스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무전으로 호명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곧 몰려옵니다. 자세 잡으세요.”

 

시설관리팀에서 무전을 내리자마자 웃음기 가득했던 주변 이들은 모두 험악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포악하고 잔혹한 마물의 표정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웃으며 떠들던 몬스터 무리들이 라인이 작동하자마자 ~ 신선한 고기군”, “니 놈의 피는 어떤 맛일까와 같은 대사와 기분 나쁜 비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들의 급작스런 변화에 인큐버스는 잠시 당황을 했지만 곧이어 결심을 다진 표정을 짓고는 얼굴을 일그러트려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질 순 없지!”

 

틈틈이 외워둔 대사를 말하면서 유저들을 상대할 준비를 한다.

 

여기선 살아남을 수 없뜨에엑

 

그러나 준비한 대사가 무색하게 유저들의 무차별 공격에 의해 인큐버스의 사지는 무참히 찢겨나갔다. 이는 인큐버스 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처참한 비명소리와 붉은색, 초록 색 등 다른 이들도 무참히 학살을 당한다. 그대로 몸이 해체가 돼버린 인큐버스는 바닥에 흥건한 피와 함께 초점을 잃다가 곧이어 매우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생각보다 ... 개 아프다...’

 

아프지만 자신은 지금 죽은 시체이기에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애써 참는다. 지금 소리를 지르면 게임의 오류가 날 것이 뻔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의 사망 연기를 하는 인큐버스 옆으로 유저들은 유유히 지나간다.

 

! 제대로 좀 해!”

? 저요?”

 

옆에서 형태를 잃어 액체괴물이 된 한 몬스터가 귓속말로 인큐버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다가 시설팀에서 우리한테 쪼인트 존나 준다고!”

 

아니나 다를까 시설관리팀의 누군가가 무전으로 연기가 어색하다고 욕을 퍼 붓기 시작했다.

 

거기 69번 라인 너 그걸 연기라고 하냐? 씨발 똑바로 안해?”

그것봐! 제대로 해봐 좀!”

 

그와 동시에 인큐버스의 사지는 시설관리팀의 조작으로 다시 달라붙는다.

 

어떻게 쓰러지지... 더 고통스럽게? 처절하게 소리질러? 아 어떡하지...”

 

어떻게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인큐버스는 유저들이 몰려 들어온다는 무전을 듣고 다시 자세를 잡고 대사를 뱉는다.

 

... 일단 멀리 날라가야겠다.’

 

유저의 칼이 코 앞까지 왔다.

 

으하하 여기선 살아남을 수없@!%!#”

 

유저가 인큐버스를 베어버리려는 찰나에 갑자기 인큐버스가 땅에 엎드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갑작스런 상황에 유저는 당황한다.

 

?”

 

인큐버스는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유저는 건들지도 않았는데 몬스터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쉰다.

 

에휴 X망겜 수준. 또 버그야?”

 

그렇게 말하고는 유저는 어느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주변의 몬스터들은 일제히 인큐버스에게 뭐하냐고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하기 시작한다. 시설관리팀은 말할 것도 없이 비상에 걸렸다.

 

야 신입 너 뭐하는 거야. 빨리 일어나!”

... 지금 나올 거 같아요.”

뭐가 나올 거 같은데

그거...그 큰 거...”

? 이 미친놈이

 

현장에 있는 몬스터들은 무슨 말인지 눈치 챈 이들은 역겹다는 표정을 짓고 인큐버스에게서 시선을 피한다. 인큐버스의 귀에 달린 인이어 안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함이 흘러 나온다.

 

야 당장 자세 잡아! 너 지금 자리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네 일단 참아보겠...”

 

어떻게든 참아보겠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인큐버스는 강렬하게 들어온 신호에 실낱같은 의지마저 잃어버린다.

 

으아 죄송합니다. 못 참겠어요.”

 

제발 바지에 지려도 좋으니까 가만히 있어!”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큐버스는 자리를 이탈하고 만다.

[경고, 경고 OLE-005에서 텍스쳐 오류 “ALPHA”발생 비상조치 들어갑니다.]

 

그와 동시에 시설관리팀의 모니터에서는 비상조치가 들어간다며 자동 조치 시스템이 작동한다. 인큐버스가 있어야할 자리에 빈공간이 생기게 되어 임시로 체크무늬 박스가 대체되었다. 지나가던 유저들은 체크무늬 박스를 보며 뭐야 버그걸렸네?”, “또 클라 닫겠네 XX”라고 웅성거린다.

 

""

 

이를 보고 있던 시설 관리팀의 코딩 팀장은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참으며 다른 직원들에게 명령한다.

 

씨발 클라 닫아 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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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죽여 팰 수도 없고... , 일단 너 이사회에서 최종 판결을 할 때 까지 알아서 기다려라. 대신 내 눈에 띄지나 마라. 그 땐 패대기로 안 끝난다.”

 

인큐버스는 낮에 바알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술잔을 반찬 종지에 계속 부딪혔다. 그러면서 실 없는 웃음을 짓는 인큐버스를 향해 그릇을 닦고 있던 술집 주인은 그에게 주의를 준다.

 

손님 그릇 깨지면 보상하셔야 됩니다.”

 

진짜 하필 투입 전 마신 게 밀크커피인 줄이야. 이게 제가 우유를 마시면 진짜 바로 반응이 오거든요. 저 웃긴 놈이죠? 재밌는 건 뭔지 알아요? 우리 회사의 24년 역사 중에서 출근 첫날에 긴급 점검 만든 새낀 제가 처음이래요. 하하하

 

꼬인 혀를 애써 바로잡으며 오늘 있던 일과 고충을 털어놓는다. 술집 주인은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하던 그릇을 다시 닦기 시작한다.

 

그 말만 다섯 번 짼데

 

그러면서도 그의 말에 단답식으로라도 답을 해줬다. 그렇지만 정도가 점점 심해지자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큐버스 앞자리를 슬쩍 피한다. 그러나 자리를 옮겨도 인큐버스는 주인을 졸졸 따라갔다. 술집 주인은 잡던 그릇을 놓고 그에게 크게 한 마디 한다.

 

이 답답한 사람아. 억울하면 느그 팀장한테 얘기하면 되잖아. 여기서 행패부리지 말고!”

 

가계에 다른 이들이 인큐버스는 들고 있는 술잔을 톡 치면서 말을 이어간다.

 

나 따위가 해고 당하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나 때문에 모두가 피해봤다는 것이 너무 쪽팔리고 ... 화가 나요. 나는 균형을 맞추러 온 거지 깨려고 온 버그 같은 게 아닌데... 난 왜...”

 

인큐버스는 본능적으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려하자 혀를 깨무는 것으로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는 자기 앞에 있는 글라스 잔을 들어 올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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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밤이 드리웠다. 취할 대로 취한 인큐버스는 비틀거리는 몸을 애써 이끌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서있는 가로등을 과자로 착각하고 씹어댈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인큐버스는 그대로 근처 벤치에 몸을 기댔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을 감자 말자 오늘의 일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두통이 심해졌다. 인큐버스는 계속해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한다.

 

미친놈.”

 

검은 장발에 길고 가느다란 뿔을 가졌으며 인큐버스와 같이 악마의 날개를 한 여성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인큐버스 앞에 나타나 다짜고짜 욕을 박는다.

 

... 서큐야? 서큐야~”

 

인큐버스는 아는 사이인 양 친근하게 불렀지만 서큐버스는 그 말투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짓거리 해놓고 술이 넘어가?”

 

서큐야~ 너도 한 잔 할래??”

입닥쳐 버러지 새꺄

... 왜 그랭...”

 

서큐버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바 팀장님이 너한테 전해달래

 

그리고는 서큐버스는 가방에서 통보장을 꺼낸 뒤 인큐버스에게 전해준다. 인큐버스는 바 팀장이란 말을 듣자마자 온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설마 해고 당한 김에 일찌감치 날 죽이겠다고 살인통보 하시는 건가. 아니면 내 손 더럽히기 싫으니 알아서 옥상에서 떨어지라는 걸까.’

 

인큐버스는 혼자 중얼거린다. 서큐버스는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갔다.

 

통보장

 

마계부서 5팀 인큐버스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귀하의 처벌을 다음과 같이 행한다.

 

한 달간 현장투입 엄금과 근신 조치, 사내 봉사 50시간.

 

 

술이 덜 깨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해고라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았다. 인큐버스는 안도감과 동시에 몸의 힘이 빠지면서 벤치에서 떨어진다.

 

살았네... 살았어? ? !!”

 

인큐버스의 함성에 놀라 다시 뒤돌아본 서큐버스는 그의 꼴값을 보면서 아니꼬운 표정으로 바라본 뒤 가던 길을 간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이런 귀찮은 짓을 맡기면서 했던 바알의 말과 짧은 대화를 회상했다.

 

동기잖아. 이럴 땐 동기가 좀 챙겨라.”

 

서큐버스는 바알과의 대화가 생각나자 불쾌해진 마음을 애써 참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맘에 안들어 죄다

2

 

 

막내야!“

 

가느다란 뿔에 푸른빛의 장발머리를 한 여성이 인큐버스를 불러 세운다. 그녀의 목에는 마계부 5, 레이첼 대리라 쓰인 사원증이 보인다.

 

대리님? ... 충성!”

인큐버스는 갑자기 각을 잡고 레이첼에게 경례를 했다. 뜬금없는 경례에 레이첼은 잠시 움찔거렸다.

 

... 회사에선 상사한테 경례하라고 누가...”

 

경례를 받아주지 않자 자신이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인큐버스는 천천히 경례를 한 손을 내렸다. 그러자 레이첼은 말없이 장난기가 넘치는 웃음 지었다.

 

쉬어! 우리 인등병, 아침부터 인사가 좋구만!”

... 감사합니다!”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고 ~ 우유 0프로 블랙커피라는 말과 함께 캔커피를 건내준다. 인큐버스는 출근 첫 날에 잠깐만 본 자신에게 큰 호의를 베푸는 레이첼을 보며 자신도 이런 상사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고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킨다.

 

그래 우리 막내 오늘도 뭐 한 건 터트려 줄 거야? 누나 기대해도 되지?”

 

레이첼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 그럴 바에 차라리 여기서 떨어지겠습니다.”

 

인큐버스는 고개와 손을 격하게 좌우로 흔들며 강한 부정을 표현했다. 레이첼은 인큐버스의 그런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헐 늦었다. 또 팀발럼이 한 소리 하겠다. 빨리 가자.”

 

그 악명 높은 바알 팀장 욕을 서슴없이 하는 레이첼은 인큐버스와 함께 5팀 사무실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자로 잰 듯한 각도로 앉아있는 인큐버스의 입사동기인 서큐버스, 그리고 바알 팀장이 서 있었다.

인큐버스는 한 달 전 패대기 당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 자동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그 위에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인큐버스의 이런 과장된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알은 이전보다 차분하고 냉철한 어투로 인큐버스에게 첫 말을 건넸다.

 

복귀 첫 날부터 농땡이냐 임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소리 줄여! 반항하냐!! ”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레이첼은 새어나오는 웃음 애써 참고 있었다. 바알은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서큐버스와 하던 대화를 다시 이어갔다.

 

너는... 그래 방금 말한 거 명심하고 너만은 돌발행동 하지마라.”

 

그렇게 말하고서 바알은 생각을 곰곰이 하다가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는 인큐버스를 5초가량 쳐다보았다.

 

너는 쟤 보조로 따라가라.”

 

바알의 갑작스런 결정에 인큐버스는 ?”하면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서큐버스도 적잖게 놀란 표정을 짓더니 바알에게 정중하게 질문을 한다.

 

팀장님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하신건지 연유를 여쭤봐도...”

어짜피 너한테 방해 안 되는 일을 시킬 거다. 걱정말고 넌 네가 할 일이나 해라. 자 움직이자.”

 

서큐버스는 바알이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언짢은 표정으로 인큐버스를 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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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지 사, 이벤트 전용 클라이언트 “OLE-510”]

 

와 개쩐다. 서큐야. 1등하면 저기 단상에서 춤 출 수 있대 진짜 재밌겠다. 저기봐바. 옆 팀의 드라큘라 사원님은 마늘분장 하셨네 푸하하

 

인큐버스는 이벤트 필드의 화려한 모습에 감탄을 머금지 못한다. 거기에 이런 매인 이벤트에 내년에는 꼭 참여하면 좋겠다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혼자만 먹구름이 낀 사람이 있다.

 

저기 정신 사나우니까 좀 닥쳐줄래?”

 

서큐버스는 호들갑 떠는 동기에게 심장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말을 뱉었다. 그러나 인큐버스는 다른 곳에 한 눈이 팔려 듣지 못했다. 그건 바로 눈에 확 띄는 서큐버스의 외간 때문이었다. 평소에 입던 작업복이나 정장이 아닌 무도회에서 입을 법한 진홍색의 화려한 장식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서큐버스를 보던 인큐버스는 한참을 넋을 놓고 보다가 박수를 쳤다.

 

... 역시 옷걸이가 좋으니깐...”

 

인큐버스가 감탄사를 난발하며 서큐버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인큐버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서큐버스는 손사래를 치며 화를 냈다.

 

씨발 좀 붙지마!”

 

갑자기 들린 험한 말에 인큐버스는 잠시 당황을 했다.

 

... 미안... 근데 너 옆구리에 실밥이...”

 

신경 꺼 제발...”

 

인큐버스는 서큐버스의 표정을 보며 다른 곳으로 부랴부랴 다른 팀의 일손을 도우러 떠났다. 서큐버스는 해맑게 웃으며 다른 팀의 허드렛일을 도우러 간 인큐버스를 보며 경멸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기분 잡치게 계속 엮이는 거지.”

 

길게 늘어진 드레스 자락을 꼼지락거리며 서큐버스는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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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대륙의 어느 외각 지역, 이곳은 픽셀의 주민이 되기 전의 존재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똑같이 전신이 하얀 색의 셀 분자로 태어났다 이들은 속 안에 데이터가 존재하지만 아직 정의되지 않아서 (NULL)”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신의 몸에 있는 데이터를 정의해 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러다 부름을 받으면 이 널들은 자신의 그릇에 따라 잡다한 몬스터로 태어날지 천공을 가르는 거대한 용이 될 지가 정해진다.

그리고 여기 머리도 좋고 체력도 좋으며 다른 이들과 경쟁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남들과 다른 비범함을 가진 널이 있다. 이 데이터는 자신은 누구보다 위대한 데이터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고 다른 이들은 이 널을 따랐다. 그는 자신이 항상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에 반해 나약한 체력을 가지고 무리에서 떨어진 이 모자란 널은 모두에게 무시당하며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괴롭힘을 당해도 아기처럼 실실 웃으면서 넘어간다.

 

모자란 놈들은 당해도 저렇게 실실 웃는 건가. 멍청하네.’

 

그는 자신보다 한참 덜 떨어진 저런 존재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평생 저런 하찮은 존재와 엮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망의 데이터가 정의되는 날이 왔다. 모두 자기의 구체화된 데이터를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돼 내가... 내가 고작 흔하디흔한 서큐버스 따위라니.”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어느 RPG 계열사에 존재하는 일반 몬스터였다. 그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이전에 곧잘 그녀를 따랐던 이들은 완전 남인 척 무시하기 시작했다. 서큐버스는 지난날의 영광을 한순간에 부정당하고 말았다.

 

저기 너랑 나 같은 계열사에 들어가는 거 같던데... 나는 인큐버스라고 해 너는?”

 

그렇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서큐버스에게 누군가 유일하게 말을 걸었다.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건내는 이는 이전에 자신이 무시했던 그 머저리 널이었다.

 

너랑 내가 같은... 동기라는 거야?”

 

어 맞아! 우리 같이 한 번 잘해보자!”

 

“x

 

그렇게 말하며 서큐버스는 인큐버스가 내민 손을 쌔게 쳐서 밀었다. 혼자서 자리에 일어난 서큐버스는 무릎에 먼지를 털고 난 뒤 인큐버스를 경멸의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내가 너 따위랑 동급일 리가 없잖아. 격 떨어지니까 말 걸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한 서큐버스는 다니지 사에 입사하게 되고 난 후 내 모든 걸 쏟아 부어서 날 무시했던 것들 보란 듯이 이 회사의 탑이 되겠다.”는 악바리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큐버스는 그렇게 보란 듯이 인턴 때부터 탁월한 업무능력과 수려한 외모로 회사에서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인재가 왔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에 반해 그녀의 동기인 인큐버스는 항상 무언가를 시키면 일을 더 벌이고 잘못하면 항상 실실 웃는 모습 때문에 약간 모자라거나 머저리 같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거기에 입사 첫 날, 인큐버스가 대형사고를 일으키면서 사내에서 둘의 비교는 더욱 심해졌다.

이후 서큐버스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근신조치 받고 휴게실을 청소하는 인큐버스를 보았다. 본래라면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는 자신의 평가에 웃고 있어야 할 터인데 휴게실 청소하면서도 웃고 있는 인큐버스를 보면 이상하게 계속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울컥한다.

 

진짜 맘에 안 들어.”

 

서큐버스는 알 수 없는 기분에 고조되는 감정을 애써 제어하며 앞으로 있을 대형 이벤트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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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클라이언트 OLE-510, “다니지과 함께 춤을의 무도회장]

 

 

야 이 새끼야! 당장 안 일어나고 뭐해! 뒤지고 싶어!!”

 

서큐버스의 귀에 단 소형 무전기에서 과격한 언어가 흘러나온다.

 

... ... 어떡하지...”

3

 

 

[3시간 전]

 

현장을 무도회장처럼 꾸미며 시스템 점검하는 시설관리팀, 이벤트 실행 시 행동할 코드를 외우는 현장팀원들, 그리고 이들을 완벽하게 관리해야 하는 각 팀의 팀장들 까지 평소 말단사원들만 보이던 현장과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런 묘하게 긴장감이 맴도는 현장에서 23인치 정도 되는 모니터가 얼굴인 코딩 팀장이 나타난다. 코딩은 자기 팀원들과 이야기 중인 바알에게 다가간다.

 

귀하신 몸이 현장에도 나타나고 오늘 무슨 날인가?”

 

바쁜 놈이 여길 왜 기어 와

 

둘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번에 너네 팀에서 오는 친구는 믿을 만 한 거지?”

 

다니지와 함께 춤을이벤트는 이 회사에서 일 년에 한 번 가장 크게 열리는 이벤트라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클라이언트를 닫는 사건이 오늘 일어난다면 회사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현장부서 팀장급들은 인기투표에 선정되어 고객들과 직접 춤추는 직원들에게 셀 수 없는 교육을 행한다. 그 덕에 지난 3년 간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뭐 그럭저럭?”

 

바알은 진홍빛 드레스에 생기 넘치는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알려준 춤을 군더더기 없이 소화하는 서큐버스를 바라보며 얘기한다. 코딩은 근심하나 섞이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바알에게 고생하라는 말과 함께 현장에 클라이언트 열기 30분전입니다!”라고 소리 지르며 사라진다.

 

야 인큐야! 무전기를 만들어서 왔냐!”

 

서큐버스와 얘기할 때 까지는 얌전했던 바알의 목소리는 인큐버스를 찾자마자 격양되기 시작한다. 바알의 크게 울리는 목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오는 인큐버스는 무전기를 흘릴 듯 말 듯 불안하게 가지고 온다.

 

팀장님 이거 맞습니까?”

 

멍청아 3개 가져오라했잖아! 나머지 도로 갖다놓고 와!”

 

인큐버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나머지 무전기를 집고 돌아서 뛰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서큐버스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쳐다본다.

 

한심한 새끼

 

그렇게 생각하던 서큐버스는 임시로 깔아둔 책상에서 인큐버스가 사가지고 온 커피 중 뜨아, 인큐버스라고 적힌 것을 집은 후 쓰레기통에 던졌다. 후에 인큐버스는 자신이 마실 커피를 애타게 찾았지만 그의 커피는 쓰레기통에 미묘한 향기를 내며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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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이벤트 시간이 되기 5분 전, 무도회장으로 꾸며진 필드에서 자신을 투표해준 고객들과 함께 춤을 출 몬스터 직원들은 자기 자리에 서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했지만 무전기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열기는 그 무엇보다 뜨거웠다. 모니터가 가득 찬 대기실에서 각 직원들의 담당 팀장들이 계속 무전을 확인하고 교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스텐바이 10초전!”

 

필드에 울려 퍼지는 확성기의 소리와 함께 필드에 있는 직원들은 정체모를 중압감을 느낀다. 서큐버스 또한 평소와 달리 식은땀을 흘린다.

 

이 귀찮은 것만 잘 끝내면 나도 이름 날리고 출세할 수 있겠지.’

 

서큐버스는 다니지와 함께 춤을 이벤트에 파견되면 특진의 기회를 얻는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렇기에 이번 이벤트에 뽑히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빌었고 뽑히고 난 뒤에는 누구보다 기뻐했으며 출세의 욕심은 그녀를 누구보다 독한 연습벌레로 만들었다.

그렇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녀는 무전기에서 들리는 바알의 신호에 따라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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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놈의 허접한 춤사위에 신물이 나는 구나.”

 

신나는 분위기와 상반되는 대사를 뱉는 몬스터와 유저가 한 몸이 되어 춤추는 모습을 대기실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다.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대형 이벤트이기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지만 클라이언트 전체로 울려 퍼지는 무도회 음악과 분위기에 다들 취해 있었다.

 

이 맛에 겜 하지 꺄아~”

 

유저들도 자신이 투표한 몬스터와 춤을 추며 자신의 캐릭터의 채팅기능으로 감탄사를 남발한다. 직접적으로 몬스터들에게 대화를 시도할 순 없지만 이들은 자기혼자 떠들면서 감상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좋은 쪽은 역시 사전 투표 1위의 위엄을 보여준 서큐버스였다. 수 천 번의 연습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춤선을 그리는 서큐버스의 모습은 모두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서큐버스는 자신이 준비한 대로의 모습을 누구보다 월등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알과 인큐버스도 슬슬 긴장을 풀고 즐기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듯 했다.

시간은 흘러 무도회는 어느 덧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시간상으로 몬스터들이 각자 고객 한 명씩만 맡으면 끝난다. 모두가 마지막 고객을 접하고 있었고 서큐버스 또한 지치는 심신을 뒤로 한 채 마지막 고객을 맞이하였다. 다리를 절고 음침한 분위기의 본 적 없는 캐릭터였지만 당장 퇴근생각만 가득 찬 서큐버스에게는 상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추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인간

 

서큐버스는 마지막까지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방금 전부터 지겹도록 뱉어댄 대사를 뱉으면서 자세를 잡았다.

 

고년 xx xxx 싶게 생겼네

 

자세를 잡고 고객의 손을 잡으려던 서큐버스는 한 유저의 상스러운 대사에 흠칫한다. 이전까지 이상한 채팅을 하는 고객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서큐버스는 놀란 마음을 삭히고 유저가 하는 말을 무시하며 마지막 춤사위를 시작한다.

 

진짜 내 집으로 끌고 가서 xxx 흔들어서 xx 마냥 xxx하고 싶네. xx”

 

그러나 그는 비속어 필터링에도 불구하고 계속 멈추지 않고 서큐버스를 향해 성희롱이 담긴 상스러운 채팅을 계속했다. 대기실에서는 그의 상스러운 말이 그대로 들려왔다.

 

저거 말하는 수준 왜 저래?”

 

바알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하며 모니터와 무전기를 번갈아가며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무전으로 서큐버스에게 지속적인 당부를 한다.

 

서큐! 반응 하지마. 몇 분이면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

 

그러나 음침한 캐릭터의 분위기에 더하는 저속적인 말은 서큐버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에 너무 충분했다. 순간적으로 욕이 입 바로 앞까지 나올 뻔했다.

 

그래, 곧 이니까 ... 이것만 끝내면

 

만약 욕이라도 하게 된다면 코딩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을 조기교육 받아 잘 알고 있었다.

바알은 이런 악성유저는 매년 한 명씩은 꼭 있던 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경험이 없는 서큐버스가 잘 대처할지가 관건이었다. 바알의 충고를 들은 서큐버스는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며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비속어로 인해 당장이라도 누가 건들면 폭발할 것 같았다. 힘겹게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서큐버스에게 유저는 몸을 자기 쪽으로 밀착시킨 후 귓속말을 했다.

 

그 지랄해도 넌 영원히 말단이야 병x년아.”

 

순간 서큐버스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끊기게 된다.

 

xx 새끼가!”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서큐버스는 소리를 지르면서 고객을 밀쳤다. 몸이 불편한 줄 알았던 유저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서큐버스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서큐버스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야 이 새끼야! 당장 안 일어나고 뭐해! 뒤지고 싶어!!”

 

서큐버스의 귀에 단 소형 무전기에서 바알의 과격하지만 간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이성을 잃고 쓰러진 서큐버스를 정신 차리게 했다. 서큐버스는 바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쓰러졌다. 다리를 심하게 삐끗한 것이다.

서큐버스는 어떻게든 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갈구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다. 항상 주어진 업무, 배웠던 위기상황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그녀가 위기대처능력 떨어진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 어떡하지.... 어떡하지...’

 

무전에서 괴성이 계속 흘러나오지만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져 메아리처럼 들리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이제 생각자체를 하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힘겹게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그러다 갑자기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서큐버스를 불렀다.

 

서큐야 그냥 춤춰!”

 

그 목소리는 다른 희미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뚜렷하게 그녀의 귀를 강타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 신념이 담긴 목소리.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동기이자 가장 싫어하는 인큐버스의 목소리였다.

 

너 그게 무슨...”

 

정신을 차린 서큐버스는 쓰러진 자신을 가만히 서서 째려보면서 웅성거리는 고객들과 불안함이 담긴 동료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설명할 시간 없어! 내가 조명을 너한테 집중할 태니까 너는 남은 시간동안 네가 할 수 있는 막춤을 시작해. 그게 너와 내가 살길이야!”

 

내가 막춤을 어떻게 해. 난 못해. 차라리 죽고 말지

 

미쳤냐! 내가 동기가 죽는 꼴을 그냥 볼 거 같냐! 네가 못한다면 내가 지금 찾아가서 일으켜서라고 시킬 거야. 한 배를 탄 이상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는다! 알았어? ”

 

인큐버스의 목소리는 평소 하던 것과 다르게 매우 격양되었다. 서큐버스는 잠시 동안 침묵을 하였다. 그러고 서큐버스는 일단 한숨을 푹 내쉰 뒤 무전기를 멋대로 끄고 쓰러진 자세에서 그대로 손을 위로 세차게 뻗었다.

 

씨브... 나도 몰라 이제

 

그 모습을 모니터로 본 인큐버스는 그래야지라고 말하며 조명 장치를 멋대로 건드렸다. 그러자 필드의 주변은 어두워지면서 몇몇 스포트라이트가 서큐버스를 집중한다. 그러고 서큐버스는 이전의 몸이 닮도록 익혔던 안무를 모두 잊어버리고 다친 다리는 거의 고정 시킨 채로 자신의 몸이 느끼는 대로 춤을 췄다. 때로는 날치같이 파닥 거리다가도 때로는 문어같이 흐느적거리는 근본 없는 몸짓을 했다.

서큐버스는 주변에서 비웃는 웃음이 틈틈이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조차 사치라 생각한 그녀는 블루스 계열의 음악에서 라틴 계열로 바뀌자마자 더욱 격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이벤트의 마무리는 서큐버스의 원맨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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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새벽, 서큐버스는 한적한 골목에서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앉아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허름한 플라스틱 식탁에 팔을 괴고 자신이 마신 술병을 새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새끼 때문에 오늘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욕이랑 비난을 실컷 처먹었다니까요? 내가 그 새끼랑 엮이면서 좋게 풀린 적이 없어~ 내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든가 사직서를 내든가 해야쥐 쥔쫘

 

서큐버스는 꼬인 혀를 힘겹게 바로 잡으면서 박쥐 얼굴을 한 포장마차 주인에게 넋두리를 뱉었다. 포장마차 주인은 지겹다는 표정으로 네 네거리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서큐버스 옆에 누군가 앉아 의자에서 쓰려지려던 서큐버스를 붙잡고 입을 열었다.

 

동기가 아니라 웬수죠. 완전?”

 

서큐버스는 그러니까요라고 말하며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희미하게 금색 머리가 보이고 고운 미성의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을 뿐이었다.

 

뉘세요?”

 

그 쪽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으니 조언을 드리자면 ... 마음이 정리가 안 될 때는 상대를 보며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을 뱉어보세요. 그러면 좀 속 시원해질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서큐버스의 술값 계산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서큐버스는 자기 할 말하고 사라지는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내뱉으 ... 라고?”

 

그러면서도 서큐버스는 오늘 있던 일을 생각하면서 그가 해준 말을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멀리서 뛰어오는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 받고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그냥 혼술 때린 거였어?”

 

인큐버스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혼자 뭐하는 짓이냐 이제 들어가자.”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인큐버스를 서큐버스는 빤히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진한 시선에 인큐버스는 낯 간지러워 고개를 돌렸다.

 

고맙~x새꺄

 

서큐버스가 말했다.

 

?”

 

인큐버스가 반응했다.

 

뭘 봐 이 x새끼야

 

그녀는 다친 다리를 비틀거리며 질질 끌며 그 고마운 x새끼를 가녀린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인큐버스는 그런 그녀를 힘들게 진정시키며 등으로 엎었다. 그의 등에 엎인 서큐버스는 계속 x새끼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인큐버스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4

 

 

에휴

 

바알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평소 심기가 불편할 때 나오는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손에 진술서라 쓰인 종이를 계속해서 책상에 치면서 햇빛이 비추는 창가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 앞에서 인큐버스는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서큐버스는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몸에서 한 치의 떨림이 없고 시선도 바닥을 뚫을 듯이 올곧게 째려보고 있었다.

 

팀장님... 그건 진짜 불가항력 이라고 할까요.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다고 할까요...”

불가항력?”

 

바알의 한마디에 인큐버스는 바로 꼬리 내린다.

 

이번 거 진짜 잘못 됐으면 우리 팀 전부 모가지였다고 새끼야! 너 여기 열 대명 모가지 책임 질 수 있냐?”

 

인큐버스는 고개를 숙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험악한 분위기가 지속되던 중에 서큐버스가 입을 연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피해 안 봤잖아요.”

 

서큐버스의 당돌한 하남디는 험악한 사무실의 분위기를 빙하기로 바꾸었다.

 

저 막내야 지금 좀 흥분을...”

 

레이첼이 당황하며 서큐버스를 어르고 달래려고 다가갔으나 서큐버스는 레이첼의 손길을 뿌리치고 한마디를 더 했다.

 

오히려 현장 분위기를 더 띄웠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바알 팀장님

 

그녀의 말투는 사그라들기는커녕 아까보다 더 당당해졌다.

 

지금 그게 네가 할 말이냐?”

제가 못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

 

서큐버스가 강하게 나오자 옆에 있던 인큐버스가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며 서큐버스의 입을 급하게 막는다.

 

너 갑자기 왜 그래

이거 놔. 내가 틀린 말 했어?”

아니... 그러다 너 패대기 당한다니깐...”

 

서큐버스는 비실대며 자신을 막는 인큐버스를 때놓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런 그들을 바라보던 바알은 얕은 한숨을 내쉬면서 손에 쥐고 있던 종이의 윗면을 이들에게 보여준다.

종이에는 진술서라고 쓰인 커다란 단어가 보인다.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는 멍하니 종이를 쳐다본다.

 

멍 때리지 말고 당장 진술서 쓰고 일하러 가!”

 

바알은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등을 돌려 창가에 향한 그의 호통은 소리가 옅었다. 서큐버스는 창문에 비친 바알의 표정을 보려 했지만 마침 바깥에서 슬라임이 세척도구를 통해 바알의 표정이 비추는 창가를 닦고 있어서 보지 못했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나란히 진술서를 들고서 레이첼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조용해진 사무실로 한 여성이 들어온다.

 

팀장님 아이들 오늘도 기운이 넘치네요.”

 

금빛 장발에 하얀 천사날개를 등에 달고 나서 바알에게 온화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짓는 여성은 잔잔하고 고운 천사 같은 목소리로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이제 다른 부서 신경 쓰지 말라니까 새끼가. 어째 대리를 달아도 여전하냐.”

 

여성은 사원증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 인증 사진 밑에 라파엘 대리라고 적힌 부분을 만지작거린다.

 

그런 꾸준함이 저의 매력 아니겠어요. 아하하

 

라파엘이 천연덕스럽게 웃는다.

 

그래서 결정하셨어요?”

뭐를

설마 잊으셨어요? 모바일대륙에 파견, 두 명.”

 

바알은 책상에서 빠르게 [마계 5팀 명단부]를 찾아서 뒤적거린다.

 

얘는 이번 주 휴가고, 얘는 병원. 얘도... 얘도...”

 

바알은 갑자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한다.

 

x발 롬의 팀은 어떻게 파견을 보낼 새끼들이 하나도 없어!”

! 여기 적절한 인재들이 있네요.”

 

바알과 함께 명단부를 보고 있던 라파엘은 명단부에 두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리킨 두 얼굴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였다.

 

너 진심이냐? 얘네...”

, 이 장난꾸러기들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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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다니지 사의 정문을 나와서 오른쪽 차도를 향해 쭉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차도가 끊겼다. 그리고 그 앞은 이 대륙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거대한 방벽이 있었다.

통과 절차를 거친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는 방벽의 출입구를 통해 방벽 밖으로 나왔다. 대륙의 경계를 넘어선 그들을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용들이 날개를 펼치며 구름을 가로지르면서 대륙과 대륙을 유유히 날아다니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스카이라인이 펼쳐지는 컨티넌트 터미널이었다.

 

저기... 서큐야 우리 어디 팔려 가는건 아니겠지? 막 그런 난리 쳤다고 우리 어디로 유배보는거 아닐까...”

그렇게 쫄리면 다시 돌아가든가.”

야 그런말 하지마...”

 

서큐버스는 귀찮다는 듯이 인큐버스를 무시하고 주위를 들러본다.

 

천사, 날개 달린 천사라.’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바알이 터미널에 들어가 있으면 누가 봐도 천사같이 생긴 여자가 자기들 데리고 갈 거라는 말을 믿고 터미널을 찾아봤지만 좀처럼 날개 달린 천사의 모습을 한 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무슨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천사 뭐야? 어디 있는 건데?”

그럼 두 분은 나쁜 사람인가요?”

“!??”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감미로운 미성에 깜짝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그들의 눈앞에는 눈부신 금빛 장발에 푸른 눈동자가 어울리는 하얀 피부를 가졌으며 하얀 천사날개를 달고 넘어진 자신들에게 손을 뻗는 라파엘이 있었다.

 

날개.. 달린... 천사?”

어머? 바 팀장님이 절 그렇게 부르라던가요? 부끄러워라~”

그 모습은, 천계부 직원이세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인큐버스와는 다르게 바로 이성을 되찾은 서큐버스는 자신들과 똑같은 라파엘의 정체를 바로 물어본다.

 

반가워요. 천계부 3팀의 라파엘 대리라고 해요.”

, 몰라뵀습니다. 마계부 5팀 서큐버스라고 합니다.”

...같은 팀의... 인큐버스라고 합니다.”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돼요. 우리 편하게 일하다 갑시다!”

 

그렇게 말한 라파엘은 바로 티켓 세 장을 끊은 뒤 운송용 그리핀의 등에 올라탔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까지 올라탄 뒤에 시간이 되자마자 그리핀은 기다렸다는 듯이 천천히 날개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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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대륙, 밤투스 사의 미팅실]

 

드디어 왔구먼!”

오랜만에 뵙습니다~”

 

딱 보기에도 나이 많아 보이는 드워프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라파엘의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저 햇병아리들은 뭔가? 전에 계속 같이 오던 친구들은 어디가고?”

그 친구들 사정이 있어서 이번에 못 왔어요. 대신에 이번엔 파릇파릇한 신입들 데리고 왔어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가 인사를 하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늙은 드워프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무시했다.

 

다니지 사가 예전만하지 못하는구먼. 이젠 우리 회사에 새파란 신입이나 보내고 말이야. 쯧쯧... 파트너 관계는 모름지기 신중해야 하는 것을.”

 

그렇게 말하고는 늙은 드워프는 뒷짐을 지고 미팅실을 나갔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파엘이 둘의 표정을 힐끗 쳐다본다.

 

... 우리 저기 가서 커피나 한잔 할까요?”

 

라파엘은 둘을 대리고 사내 카페에 들어갔다. 서큐버스는 인큐버스와 커피를 받아 오면서도 방금 전 드워프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늙다리 드워프 새끼 내가 찢어버리고 만다. 뭔데 그렇게 싸가지가 없는 건데. 아니 저희 회사는 여기랑 파트너십 관계 같은 게 아니었나요? 그런 것 치곤 너무 예의가 없는데.”

나도 욕 나올 뻔했어... 진짜로

 

라파엘은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게 우리 파트너십 관계의 현실이에요.”

 

라파엘은 커피를 마시던 중 손에 실수로 흘리고 만다. 휴지로 손을 닦으면서 라파엘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겉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모바일 대륙 쪽이 대부분의 지분을 싹쓸이 하는 상황이라 상당히 기고만장하죠. 특히 저 드워프 이사는 악명 높기로 유명해요.”

결론적으로 저희가 을이라서 뭐라 하지도 못한다는 거죠?”

“...이거 미안하구먼 하하 즐겁고 편안하게 일하자고 해놓고

 

라파엘은 무안한 마음에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슬픔이 맺혀 있었다.

이를 본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안절부절하다가 갑자기 서로 눈이 맞았다.

잠시 생각을 하던 서큐버스는 억지로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 때문에 뭔 고생이냐 진짜

...갑자기?”

아무튼 너 때문이야. 인정해? 안해?”

인정 못해! 넌 나 덕에 회사에 붙어 있는거잖아!”

? 선 넘네?”

 

서큐버스는 인큐버스의 볼을 두 손으로 잡아 젤리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계속 늘렸다. 젤리처럼 늘어난 볼 때문에 인큐버스는 제대로 발음을 못하고 허우적댄다.

그 모습을 본 라파엘은 폭소를 터트린다.

 

아하하 둘이 동기가 아니라 웬수야. 웬수

 

5

 

 

잠깐의 티타임을 즐긴 라파엘과 일행은 밤투스 사의 작업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밤투스 사의 작업 현장을 보고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이유는 작업 현장에 최신 모델로 이루어진 작업 장비들이 빛나는 자태를 뽐내며 현장을 바삐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장비들은 가장 많은 인력이 소비되는 몬스터 리젠, 시나리오 전용 라인 생성 등의 작업에 이용되고 있었다. 이들은 여전히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하는 다니지 사에서는 상상도 못할 현장의 자동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 좀 봐 서큐야, 몬스터 리젠을 기계가 알아서 해줘. 대박...”

 

인큐버스는 기계가 오밀조밀하게 모인 현장을 그저 감탄사와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에 서큐버스는 노트를 꺼내어 필기하면서 밤투스 사 현장의 특이점과 분석을 하고 있었으며 이런 동기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인큐버스는 마음속으로 감탄을 난발한다.

 

뭘 저렇게 적고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작은 노트에 무엇을 적는지 궁금해진 인큐버스는 몰래 훔쳐보기 위해 살금살금 그녀에게 다가간다.

 

작업의 자동화... 현장직 감축... 전문 TO 확대... 오호라

쥐새끼 마냥 살금살금 오지마!”

 

서큐버스는 자신의 뒤에서 웅얼거리는 인큐버스는 길거리에 보이는 벌레처럼 쳐다보면서 꿀밤을 한 대 쥐어박는다. 인큐버스는 맞은 부위를 손으로 부여잡으며 두 발자국 정도 물러난다.

 

대놓고 보여 달라하면 안 보여줄 거면서...”

당연한 거 아니겠니?”

 

서글픈 표정을 짓던 인큐버스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서 현장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라파엘이 밤투스 사의 간부로 보이는 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한동안 쳐다본다. 이를 눈치 챈 서큐버스는 인큐버스에게 먼저 말을 건다.

 

라 대리님한테 관심 있냐?”

아니, 아니! 그럴 리가 ... 갑자기 그게 기억나서 ...”

?”

 

인큐버스는 시선을 서큐버스에게 돌리고 숨을 고른 다음 소리를 줄이고 말을 이어갔다.

 

너 그 우리 회사 천계 부서에 천사이야기 알아?”

뭔 헛소리야

 

서큐버스는 인큐버스의 말을 흘려 듣고 무시했지만 인큐버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천계 부서는 우리보다도 위계질서가 엄격하다는 거 너도 알고 있지? 그래서 사소한 실수에도 엄격하게 징벌하는 분위기라 선임들이 살벌하다더라고. 그런데 부서에서 단 한 명만큼은 그렇지 않다더라. 그게 바로...”

그게 라파엘 대리님이라고?”

... 알고 있었어?”

난 소문에 빠삭하니까

 

서큐버스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으나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은 인큐버스가 말을 걸었다.

 

서큐야. 나도 라 대리님처럼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서큐버스는 평소처럼 말이 되는 소리냐고 윽박지르려고 했지만 그녀도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는 못하는 성격이었다. 서큐버스는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될 건 뭐 있겠냐만... ”

뭐라고? 잘 안 들렸어.”

징그러! 붙지마! 꺼져!”

아니 무슨 소릴...”

 

서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던 인큐버스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는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서큐버스도 그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말로 표현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새끼야 내가 이 라인은 오른쪽에 서야한다고 말하지 않았냐?”

 

악어 얼굴을 한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를 바닥에 눕혀놓고 계속 무자비하게 밟고 있는 것이다.

 

... 죄송합... 오늘 처음... ... 한 번만 자비를...”

 

계속 밟히고 있는 하마 얼굴을 한 남성은 입을 열려고 하지만 계속 얼굴 쪽에 밟히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둘의 관계는 누가 봐도 선임과 후임 같았다.

 

아 처음이세요? 그럼 처 맞으면서 배우세요. x새끼야

 

악어 얼굴을 한 남성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마 얼굴을 밟았다. 그는 계속 몸을 움츠렸고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저런 행동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무엇보다도 이상한 건 이를 보는 사람은 있어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야?”

 

폭행이 대놓고 이루어져 있는데 웃으면서 구경하고 방관하는 무리들, 서큐버스는 단번에 이 회사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피해야 하는 상황임을.

 

야 좋은 구경도 아닌데 그냥 가자.”

 

서큐버스는 인큐버스를 끌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서큐버스가 아무리 끌고 가려고 해도 인큐버스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너 뭐하는 거야 빨리 나가자고.”

이거 놔. 당장

! !!”

 

갑작스러운 인큐버스의 급발진에 놀란 서큐버스는 폭행의 현장에 무대포처럼 달려가는 인큐버스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본 인큐버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평소의 한심하고 멍한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굳은 신념이 담긴 강렬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잡아먹힌 서큐버스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인큐버스는 다시 몸을 돌려 모두가 비웃으며 바라보는 폭행의 현장으로 돌진했다. 그 걸음에는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기요.”

 

인큐버스가 악어 얼굴의 남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걸었다.

 

? 넌 뭐야

넌 뭐하시는데요.”

뭐긴 뭐야 신입 교육 중이지. 방해하지 말고 꺼져

교육?”

 

인큐버스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이새끼 뭐야? ! 당장 치워!”

 

악어 얼굴의 한 마디에 주변의 직원들이 한 번에 모여들어 인큐버스에게 다가갔다. 그럼에도 인큐버스는 뒷걸음조차 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악어 얼굴의 뺨을 두 손으로 살포시 잡았다.

 

“x까고 있네

 

인큐버스는 남성의 얼굴을 부여잡은 두 손에 힘을 쌔게 쥐고 왼쪽 다리를 뒤로 뺏다. 그리고는 뒤로 뺀 다리를 반동을 이용해서 앞으로 올림과 동시에 얼굴을 잡은 손도 몸 쪽을 당기면서 그대로 니킥을 갈겼다.

 

 

니킥을 맞은 남성의 그 소리 하나에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 진짜 x됐다.’

 

서큐버스는 이번에야 말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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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지 사, 사탄 상무의 사무실]

 

조용히 사무실에서 파이프 담배를 물고 창밖을 바라보는 거대한 남성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문을 두들기고 들어오면서 사무실의 정적이 깨진다.

 

왔냐.”

네 상무님

 

정적을 깨고 어두운 표정을 하며 바알이 사무실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거대한 남성은 자신의 책상에 사탄, 상무라고 적힌 명패를 가볍게 만졌다. 그리고는 어두운 기운을 실컷 풍기면서 바알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다.

 

부장 일은 어떠냐. 힘들지?”

할 만합니다.”

쌘 척은 새끼가.”

 

둘은 낯선 사이가 아닌 듯 가벼운 농담을 편하게 주고받았다. 그러나 조금은 가벼워 질 듯 했던 사무실의 분위기는 사탄의 한 마디로 다시 무거워졌다.

 

얼추 너도 소문 들었지?”

소문이요?”

 

바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사탄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익명의 제보로 임원실에 직접 소포로 왔었다. 발신자의 대한 주소, 나이, 성별 등 아무 것도 적힌 것이 없는 편지와 몇 가지 서류와 함께.”

갑자기 그건 무슨

“...”

 

사탄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입에서 쉽게 내뱉어지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결심을 한 듯 표정을 고쳤다.

 

한 달 전에, 우리 회사 내에 불법 프로그램이 숨어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또 입니까? 보안팀 새끼들 또 죽어나가겠군. 그런데 그건 저희에겐 흔히 있는 일 아닙니까. 그거 가지고 절 부르신 건...”

그냥 들어온 게 아니야. 우리 회사 직원들로 위장했다고 한다.”

위장이요? 아니 그러면 보안 툴에 검사기능을 켜고 확인하면...”

 

바알은 순간 방금 전의 말을 되새겼다. ‘회사 내의 인원으로 위장, 한 달 전에이 단어를 보며 떠오르는 용의자는 단 두 명이었다. 바알은 아차 싶었다.

 

그래 임마. 너희 부서에 새로 들어온 신입 두 명이 용의선상에 섰어.”

 

바알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좀처럼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회사를 침투한 불법 툴, 해킹 류의 첩자들은 항상 조용히 회사의 보안을 먼저 침투해서 무력화 하려고 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어떤 첩자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서 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발악하겠는가. 누구보다 조용히 집단에 스며들어가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뒤처리가 깔끔한데 말이다. 그들이 첩자라면 여러 사건을 일으키고 다닐 일이 전혀 없다. 분명 잘못된 정보라고 생각하는 바알은 다시 입을 열었다.

 

상무님, 우선 정보의 신뢰성부터 확인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건 이미 보안팀에서 사람 보냈다.”

보내요? 어디에

 

사탄은 말을 이어 하지 않고 바알을 계속 쳐다봤다. 바알은 이전에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던 눈빛이 아닌 의심이 담겨 있는 사탄의 눈동자를 통해 이 침묵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6

 

 

지금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네가 방금 말했잖아. 정보의 신뢰성부터 확인하라고. 그냥 정말 확인 차원이야. 적어도 너한테는 피해가 안 간다고.”

 

바알은 사탄의 눈동자를 다시 보았다. 그러나 그 눈에는 신뢰가 보이지 않았다. 사탄은 이미 자신까지 의심하고 있다. 그걸 알게 되자 이미 자신이 들을 말과 행동은 진작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증거가 발견 된다면 거리낌 없이 징계해고 때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몇 년을 같이 일한 직원의 호소보다 익명의 자료에 흔들리는 임원진의 말을 순순히 따를 지는 고려해보겠습니다.”

너 이 새끼가

 

사탄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바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날의 사건 때문에 더욱 민감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확고하게 선을 그어 버리려고 하는 사탄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바알은 사탄의 사무실을 나간 후 문을 닫자마자 자기 팀원들이 있는 사무실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5팀의 사무실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오셨어요. 팀장님

 

레이첼이 바닥에 흐트러진 서류를 주우면서 바알을 부른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레이첼도 이번 일은 꽤 충격인 것으로 보인다. 바알을 부르는 목소리에 평소 같은 생기가 있지 않았다. 바알은 말없이 레이첼과 함께 떨어진 서류를 주웠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기분이 상했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그저 서로 말을 꺼낼 타이밍이 아닌 것이다. 정리가 완료된 후 레이첼은 바알에게 오늘의 결재서류를 바알이 앉아있는 책상에 두었다.

 

보안팀에서 곧 바투스 사에 사람 보낸다는데

알고 있어

“... 팀장님

 

바알을 부르는 레이첼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날카로웠다. 평소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아닌 한이 섞힌 목소리였다. 바알은 그녀와의 오랜 생활로 그 목소리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레이첼.”

그럼 막내들 나가리 되는 걸 그냥 보라고요?”

상황을 지켜봐야할 거 아니냐.”

지켜봐요? 또 그 때처럼? 전 못해요. 다시는 그런 일을...”

 

레이첼은 애써 눈물을 숨기며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바알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와서 레이첼이 주워 준 서류를 훑어봤다. 그 중에는 인큐버스와 서큐버스의 이력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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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계부에 지원을 ㅇ... 인뀨 아니 인큐버스라고 합니다. 뽑아주십시오!”

 

바알은 처음 그들이 인턴 면접을 보러 올 때를 회상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인큐버스였다. 말은 한 음절마다 더듬고 어순이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상태로 계속 말하는 그의 대답들은 면접관들에게 한숨만 짓게 만들었다. 반대로 옆에서 같이 면접을 보던 서큐버스는 면접에서 가장 모범적인 대답만을 하고 움직임과 표정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정반대 성향의 이 신입들에게 바알은 다른 면접처럼 형식적으로 마지막 질문을 했었다.

 

앞으로 가질 다짐을 짧게 한 문장으로 말해보세요.”

 

그리 말하고 바알은 먼저 짐을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대답하면 대충 대꾸해주고 나갈 생각이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높은 존재가 되자 입니다.”

 

처음 대답한 건 서큐버스였다. 그녀의 대답은 면접관 중 그 누구도 그 대답을 듣고 온전한 표정을 짓지 못하게 했다.

그 어떤 당찬 신입도 임원 자리를 넘보는 발언을 하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면접관들은 기침만 낼 뿐이었다. 바알, 단 한명을 제외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경솔한 발언을 싫어...”

저의 발언이 경솔한 것이 아님을 이제부터 보게 되실 겁니다.”

 

바알은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발언, 그녀의 표정에서 자신감과 독기가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그 독기가 조금은 거슬렸지만 아직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 판단했었다.

 

그럼 다음은...”

저는 이 세계를 지킬 겁니다!!!”

“... ?”

 

어이없을 정도로 두루뭉술한 인큐버스의 대답이 기억난다. 바알은 그 때 진심으로 화를 내며 면접이 장난이냐고 꾸짖으려고 했지만 인큐버스는 바알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저는 단 한 순간도 이 다짐에 대해 소홀한 적이 없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그 말을 하던 인큐버스의 표정은 앞의 모자란 모습과는 다르게 확신에 찼고 어찌 보면 야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바알은 그때를 생각하며 이력서에 붙어있는 그들의 증명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인큐버스가 정식 출근 첫날에 사고를 일으킨 것을 임원들에게 선처 요청한 것, 입사한 지 한 달 된 신입을 주요 이벤트 매인으로 세운 것, 이벤트 당일에 그들이 사고를 일으킨 것과 멋대로 수습하려 한 행동 또한 지켜만 보고 이 또한 선처 요청을 한 것.

바알은 자신의 이런 모든 행동이 어떤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은 바알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사무실에서 나갔다.

 

레이첼!!”

 

그러면서 레이첼을 목이 터져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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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스 사의 긴급 회의실에서는 모든 임원진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그 내용은 바로 파트너십 회사의 말단 사원의 자사 임원진 폭행 사건 처리였다. 인큐버스가 얼굴을 아작 낸 대상은 바로 바투스 사의 주요 임원진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주변에 아무도 섣불리 나서 말리지 않았으며 겉으로는 협력관계지만 실상은 갑을 관계에서 을에 속했던 다니지 사에서의 개입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됐다.

바투스 사의 임원들은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긴급회의를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라파엘, 인큐버스, 서큐버스가 대기실에서 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세 명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암울했다.

 

이 새끼야 진짜 어쩌려고 넌, ...”

 

서큐버스는 인큐버스에게 욕을 박다가 한숨 쉬는 언행을 반복했다.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하고 싶었지만 인큐버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속 시원하게 뱉지 못한다. 인큐버스는 고개를 숙이며 침묵을 일관할 뿐이었다. 라파엘은 그저 눈을 감고만 있었다.

 

야 인큐, 뭐라고 말 좀 해봐. 진짜 욕을 하던 다시 주먹을 날리든 뭐라도 좀 액션을 취해달라고 나만 병신된 거 같잖아.”

평생 후회 할 거 같았어.”

?”

 

인큐버스의 굳게 닫힌 입이 열렸다.

 

그 광경을 무시하고 지나가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았다고... 그래서 팼어

 

서큐버스는 인큐버스의 말을 듣자마자 헛웃음을 지었다.

 

“xx같네 진짜

 

그렇게 말하고선 서큐버스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고 싶어 계속 걷고 걸었다.

 

정의롭지만 융통성이 없는 동료

 

분명 자신의 목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부류이다. 그렇기에 무시하고 배척하면 될 일인데 몸과 마음이 그렇지 못한다. 이런 자신에게 회의감 비슷한 것을 애써 거부하며 하염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건물의 옥상까지 와버렸다. 바투스 사의 건물은 다니지 사의 건물과는 다르게 가로로 길에 이어져 있어서 옥상이 높지 않았다.

서큐버스는 답답함을 날려버리고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축축한 공기의 냄새,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이 어둑어둑한 하늘, 조금만 있으면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다.

하늘을 보자 마음은 오히려 더 갑갑해졌다. 그녀의 인내심에 한계가 다했다. 복부에 힘을 힘껏 주고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으아아아!!!!”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함성을 질렀다. 서큐버스의 몸에 달린 날개와 꼬리가 그녀가 뱉은 함성과 함께 위로 솟구쳤다.

그런데 갑자기 옥상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가 밟은 서큐버스는 그 찰나의 소리를 알아듣고 바로 울분을 토해내던 입을 닫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 있던 혈청 주스를 홀짝홀짝 마셨다.

 

방금 누가 소리 지르는 거 같지 않았어?”

에이 어떤 미친 것이 임원회의실 바로 옆에서 그러겠어.”

 

바로 옆이 임원회의실 이었구나.’

 

서큐버스는 급격하게 과다한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는 저 젊은 트롤과 박쥐인간이 다른 벤치에 앉을 때를 노려서 옥상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서큐버스는 시선을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가기 위해 그들의 소리에 집중하였고 귀를 쫑긋거렸다. 그러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는 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다.

 

아니 진짜 그 악어가 그랬대요?”

진짜야! 그 소심남이 다 보는 앞에서 그랬다니까.”

 

서큐버스는 그들의 잡담을 흘겨 듣다가 그들이 벤치에 앉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옥상 문을 향해 걸어갔다.

 

평소에 좀 음흉하게 생기긴 해도 누굴 건들고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그럴 리가 있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입사한 지 하루된 아이를 먼지 나도록 줘 팼는데. 그 무슨 악마처럼 생긴 사람이 안 막았으면 걔 오늘 살아서 못 돌아갔을 걸?”

아 그 뭐야, 그 다니지에서 파견 온 그 사람이요?”

 

그녀들의 말은 이제 서큐버스에게 단순한 잡담이 아닌 자기 동기의 폭행에 대한 목격담이 되어버렸다. 서큐버스는 못들은 척 건물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려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귀는 여전히 그녀들에게 향해있었다.

 

언니, 왠지 저 합리적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 뭐가

그 악어 있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발광한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시간상으로 보면 그 다니지에서 파견 오자마자 갑자기 이상해졌는데 혹시 그 사람들이 악어를 막 어떻게 한 거 아니에요?”

! 너 무슨 드라마 쓰냐? 웃긴다 하하하

... 그렇죠? 너무 갔넹

 

이 대화를 들은 서큐버스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동상처럼 굳어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을 한다.

 

그럴 리가 없어... 굳이 그럴 이유가... 아니 왜?’

 

그러다가 서큐버스는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문을 열은 뒤에 미친 듯이 달렸다.

 

제발... 제발...’

 

서큐버스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 종착지는 방금 전 바투스 사의 임원회의를 기다리던 대기실 이었다. 서큐버스는 문을 박차고 열었다. 그러나 그곳의 풍경은 그 사이에 바뀌었다. 걸상들은 어지럽혀져 있고 라파엘은 얼굴을 대고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리고 인큐버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라 대리님...”

 

서큐버스는 말없이 라파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라파엘은 서글프게 울면서 서큐버스의 품에 안겼다.

 

어떡해... 인큐 씨가 갑자기 소리 지르면서 날 밀치더니 밖으로 뛰쳐나갔어...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라파엘은 서큐버스의 품에 꼭 안기고서 울음이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그러나 서큐버스는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역시...”

 

그러고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라파엘의 팔을 말없이 꽉 잡았다. 그리고는 라파엘의 몸을 자신에게서 멀리 밀쳤다.

 

서큐... ?”

가식 떠는 거 역겨우니까 그만하시지.”

“... ?”

 

서큐버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살며시 두 걸음 정도 뒷걸음질 치면서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이 사건 당신이 꾸민 짓이잖아. 라파엘, 당신 대체 무슨 꿍꿍이야.”

 

의자와 책상 등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는 대기실에서 서큐버스와 라파엘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어느 순간 라파엘의 울음소리와 눈물은 갑자기 소나기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그쳤다. 하지만 건물 밖에는 한참 동안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