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동문인터뷰

시인, 공광규 동문(국어국문학과 졸업)을 만나다!
등록일
2020-05-12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71



※ 인터뷰 기사는 동국 커뮤니티 Vol.15(2014년 겨울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공광규 동문은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 하고,

햇살을 맞으며 ‘따뜻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손을 보며 ‘손가락 염주’를 떠올리는,

그런 시인입니다.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요?

문학도를 꿈꿨고, 고전(古典)들을 읽으며 사색하고

세상을 깨우쳤습니다.

주어진 삶에 치열하게 맞닥뜨렸으며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랑받는 시를 썼고, 많은 이들이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공광규 동문은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 하고,

햇살을 맞으며 ‘따뜻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손을 보며 ‘손가락 염주’를 떠올리는, 그런 시인입니다.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요?

문학도를 꿈꿨고, 고전(古典)들을 읽으며 사색하고 세상을 깨우쳤습니다.

주어진 삶에 치열하게 맞닥뜨렸으며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랑받는 시를 썼고, 많은 이들이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공광규 동문은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 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가 있으며,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구름> 등을 펴냈습니다. 신라문학대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동국문학상, 김만중문학상,현대불교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을 받았으며, ‘201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에 선정되었습니다.


문학을 하고 싶었어요.


학교는 스물네 살에 입학했습니다.국립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포항제철에 취직을 해서 제철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아무래도 다른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학을 한 것입니다. 공장생활을 해봤으니, 가능하면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국문과에 입학한 것이죠.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와는 지리적 운명으로 만났습니다.직장과 가까운 포항에 살고 있었고, 동국대는 문학명문이기도 했죠. 학교생활은 동국문학회 활동을 중심으로 했어요. 방학 때 풍기 희방사와 영천 은해사에서 여름 창작교실을 했던 기억이 지금까지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대학생활 중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을 했습니다. 첫 시집도 졸업 무렵 가을에 냈고요.동국대라는 문학 전통과 분위기 때문에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은 현실이었죠


졸업 이후에는 국문과 고(故) 이내수 교수님이 남산에 있는 불교재단에 추천해주셔서 월간지 편집기자 일을 시작했습니다.이후 충무로에 있는 홍보대행 회사로 옮겨서 일을 했는데,거기는 너무 바빠서 개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공기업 홍보실에 시험을 쳐서 옮겼습니다. 그런데 재학 중 낸 첫 시집이 현실 부정적이고 재학 중에 반사회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해직이 되었습니다. 장장 2년 8개월간 복직투쟁을 했어요. 십수 년이 지나 정권이 바뀌어 민주화 운동 관련 명예 회복이 되었습니다. 보상위원회에서 복직 권고를 했지만 다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상급단체노동조합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었고, 문단 활동도 한창이었죠. 문예 창작 박사과정도 진행 중이었고요.치열한 시간 속에서도 문학 활동은 계속 이어왔습니다. 지금껏 시집도 6권 내고 연구서와 평론집을 내면서 문단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작가 회의 사무총장으로 2년간 활동하였고, 올해 임기를 마쳤습니다.


고전(古典)이 원동력이에요


제 문학의 원동력은 학교 도서관의 수많은 책과 자료들입니다. 학창시절, 옛날 신문이나 잡지 등 영인본(影印本)을 보면서 남이 못 보는 자료들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 금서(禁書)들을 읽고 베껴 쓰고, 나름대로 역사와 사회를 보는 방법도 깨달았어요.그래서 <마르크스>를 아직도 끌고 다니고,이때 읽을 수 없었던 정지용의 ‘시’를 만나 몰래 베껴 쓰면서 시 공부를 했어요. <삼국유사>도 관심 있게 보고 유적들을 많이 찾아다녔어요.무엇보다 시가 깊어진 비결은 학교에서 불교를 만난 것입니다. 입학 때 나누어준 <불교성전>을 지금도 책상 오른쪽 책꽂이에 두고 보고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고전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결국은 불교와 고전을 우려먹으며 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무조건 경주 바닥을 돌아다녔으면 해요. <삼국유사>를 들고요. 나중에 큰 재산이 될 거니까요.


‘시’로 소통합니다


좋은 시란 감동을 주는 시라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쉬워야 되고, 잘 읽혀야 되고, 재미있고 의미 있어야 되고요. 그런데 그런 시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려운 시는 시인이 표현력이 부족해서 잘못 쓴 시일 경우가 많아요.그래서 저는 손에서 책과 시를 놓지 않으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물론, 앞으로 좋은 시를 쓰고 싶어요. 위대한 시를 쓰면 더 좋고요. 책도 열심히 내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려 합니다. 콘서트를 하거나 낭독회를 하는 것도 이런 소통을 위한 것이죠. 제가 ‘시’를 통해 소통하듯 학생들도 자기의 전공을 통해 세상과 만났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전공을 확실히 장악해야겠죠. 전공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집중하세요. 그러면 꼭 어떤 스펙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무조건 경주 바닥을 돌아다녔으면 해요.

<삼국유사>를 들고요. 나중에 큰 재산이 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