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백일장
- 등록일
- 2022-05-26
- 작성자
- 웹문예학과
- 조회수
- 117
미자의 기쁨
오현주
흰색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가오는 백구 한 마리. 밤마다 험한 산길을 넘어 미자의 집을 찾아온지도 2주가 넘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털과 목줄이 없는 모양새를 보니 주인은 없는 모양이다. 건물도, 사람도 모두 낡고 늙은 시골에서 주인이 있는 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설령 주인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모두 개를 사고팔기 바빴다.
“이리 와서 밥 먹고 가.”
미자는 이름 모를 백구에게 항상 밥을 챙겨주었다. 사료와 먹다 남은 밥을 섞은 음식물 찌꺼기였지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정작 본인도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남편은 벌써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이다. 일흔을 넘어선 뒤로 남편은 온몸이 마비되는 병을 얻었고 그녀 또한 정신이 온전치 않을 때가 많았다.
남편을 간호하는데 하루를 보내는 미자에게 백구는 반가운 존재였다. 백구가 오면 미자는 말이 많아졌다. 죽은 듯이 고요한 집 안은 항상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가끔 그녀는 미치도록 고요한 정적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고물 라디오라도 켜서 집 안을 환기하려 했지만 간신히 잠이 든 남편이 일어날까봐 차마 켜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정작 백구는 미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밥을 챙겨주어도 남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오늘도 백구는 밥을 먹다 말고 나무로 된 낡은 문을 긁었다. 낡은 문 뒤에는 창백한 남편이 누워있었다.
미자는 백구가 매번 나무 문을 긁으며 짖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밥을 주는 것도, 쓰다듬어 주는 것도 남편이 아닌 자신인데 말이다. 꿀꿀한 기분을 뒤로 하고 기분 전환을 하기로 한 미자는 전화기를 들었다. 행여나 딸 아이의 일에 방해가 될까봐 점심 먹을 시간에 전화를 하는 그녀였다.
“딸, 잘 지내고 있지?”
“왜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지만 미자는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지금까지 자기가 한 모든 일에 대해서 보상을 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왜 전화하셨어요?”
“그냥 우리 딸 목소리 듣고싶어서 전화했어.”
“저 바빠요. 이제 끊을게요.”
애정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삭막한 전화가 끊겼다. 미자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짧은 통화를 딸 아이가 회사 일로 바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며 짧은 대화라도 했다는 사실에 금방 서운함을 잊었다. 전화를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미자는 남편이 먹을 흰 죽을 만들기 시작했고 백구가 올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백구는 평소와 똑같았다. 밥을 먹다말고 나무 문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조금 더 심했다. 문을 긁으며 앓는 소리를 내고 쉬지 않고 짖었다. 안을 보라는 듯이 미자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녀는 백구를 지켜보기만 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백구를 지켜보다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짖는거야, 도대체. 제발 그만 짖어, 제발...”
다음날 미자네 집에 누군가 찾아왔다. 백구말고 새로운 손님이 왔다는 사실에 미자는 누가 왔을지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자동차가 형형색색으로 빛을 내고 있는게 보였다.
“이미자씨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경찰입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건조한 대화를 마치고 경찰은 미자네 집으로 들어갔다. 밤마다 백구가 긁었던 문을 열고 들어간 경찰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무전기를 들었다.
“사망자 한 명 발견. 이미 부패가 시작되는 중인 것 같다. 구급차 지원바란다. 이상.”
언제온건지 백구는 빤히 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공허한 눈빛으로 백구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부패가 되어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보다 많은 사람이 왔다는 기쁨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