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제6회 새내기창작교실(백일장) 수상작
등록일
2021-05-21
작성자
국어국문학과
조회수
529

6회 새내기 창작교실 백일장 수상작

 

일시: 202156일 오후 3~5

시제: 백신(장혜진), 신발(김억조)

심사: 박노현, 오태영

 

<장원>

 

폐가, 그곳에 머무르는

 

장서은

 

친가 쪽 큰집의 옥상은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 익숙한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은 목화솜을 말리거나, 고추를 말리는 등 여러 가지를 말리는 용도로 쓰이는 곳이었다. 옥상의 바로 뒤쪽은 숲과 폐가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밤나무의 보금자리가 되어버렸지만. 가끔 밤을 따러 폐가로 갔었는데, 이상하게 그 폐가는 무섭지 않았다.

 

나는 큰집에 가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많은 사람이 같은 장소에 몰리는 게 싫었다.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거부감이 들게 했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일 때는 사람을 만나는 걸 괴로워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사람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해서 무뚝뚝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싫어서 문을 닫은 채 늘 방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 마주친 폐가는 따뜻해 보였다. 눈이 오는 겨울에도 내가 서 있는 이 집보다는 훨씬 포근해 보였다. 폐가는 눈이 쌓일 땐 더 반짝였다. 손잡이 없이 열려있는 문, 깨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는 창문, 지붕까지 올라간 죽어가던 넝쿨들. 어둠 속에 달빛이 내려앉은 폐가는 빛이 흩어져 아름다웠다.

 

폐가를 발견한 이후로 나는 새벽마다 몰래 그곳으로 향했다. 늘 마루에 앉아 문을 열어 안을 훑었다. 안은 생명체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최근 보이지 않던 동네 길고양이들과 새벽을 채우는 풀벌레들이 함께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몇 년 동안 온기가 없어진 곳에서 누군가 온기를 채우고 있다니. 나는 늘 온기를 피해 이곳으로 향했는데.

마루에 앉아 폐가를 둘러보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 한 짝을 발견했다. 어린아이의 신발이었다. 이곳에 자리한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자주 이곳을 왔지만 처음 보는 신발이었다. 먼지가 굳어버린 옆면을 닦아보니 몇 년 전 유행하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곳에 살던 사람의 것이었을까.

신발을 들어보니 바닥은 파스를 붙였던 자국처럼 그 자리만 하얬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흘러가고 자라날 때 이 자리는 멈춰있었다. 숲속에 묻혀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에서 홀로 멈춰있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비어있는 자리에서 만났다. 허옇게 남은 자리를 손으로 쓰다듬다 다시 그 자리에 신발을 놓았다. 나는 신발을 베고 누웠다. 하늘에선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수많은 나뭇잎에 스쳤다. 신발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흐른다. 주변에서 흘러가는 모든 것들이 익숙해질 때쯤 괜히 눈물이 났다. 모두가 웃고 떠들 때 내가 홀로 멈춰있던 내가 생각났다. 감정이 북받쳤다. 다시 큰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나는 새벽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밤을 새우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지날수록 폐가는 낡아 가고 있다. 이제 큰집이 두렵지 않은 나는 가끔 폐가로 향한다. 얼마 전 폐가에 갔을 땐 신발 속에 새끼 고양이가 자고 있었다. 신발을 조심히 들어보니 하얗던 자리는 주변 마루들과 색이 비슷해졌다. 그저 머무르는 줄 알았던 이곳의 시간은 숲속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밤나무도 새로운 가지를 틔웠고, 슬슬 야생화도 피고 있다. 죽었던 덩굴은 다시 살아나 집을 덮어가고 있어 가끔 적당히 끊어준다. 먼지가 쌓인 신발을 닦아내고 나는 다시 큰집으로 향한다.

폐가는 나와 함께 시간을 걸어 자라왔다. 점점 커지는 나무들에 가려져 이젠 옥상에서 폐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기억한다. 그곳의 온도를 잊지 않는다.

 

<우수1>(가나다 순)

 

신발

 

오지은

 

세 살 짜리 꼬맹이가 소박한 눈위를 걷다가

두 발을 꼬옥 안아주는 따스함에 문득,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다

운동화의 묵묵한 받쳐줌에 문득,

 

열 아홉살 소녀의 으슥한 하굣길

한 발짝 먼저 내딛고 기다리는 강인함에 문득,

 

서른둘 직장인의 고단한 한숨 소리

희끗한 속살을 내비치는 구두에

 

문득.

 

문득 밀려오는 미안함에

왠지 모를 뭉클함에

 

나는 꼬옥 안아본다

밑창이 닳아 빠진

신발 두 짝을,

 

평생 내가 신고 있던

우리 부모님을,

 

이제야

 

<우수2>

 

추억

 

윤지은

 

누군가 내게 말했다

오랫동안 신발 정리 안 하고 그대로 박아 두면

그 신발 영혼이 집에 나타난대

 

당연히 웃어넘길 이야기였지만

마침 신발 정리를 해야 했던 참이라

그 농담을 핑계로 간만에 팔을 걷어붙였다

 

잔뜩 쌓이고 뒤섞인 신발들을 치우다 보니

그리웠던 향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제일 구석에 박혀 있던 신발을 꺼낸 순간

나는 그 향의 근원지를 깨달았다

 

가장 행복했고

가장 용감했고

가장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그 시절의 내가 그대로 담긴 향

 

잠시 눈을 감았던 나는

내 손바닥보다 작은 그 신발들을

다시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그리고 결국 그 신발장은 치우지 못했다

 

<우수3>

 

신발

 

이현수

 

삶이란 지침과 행복의 연속이고,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간다.”

내 아버지가 말버릇처럼 하시던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고통을 체험하고 또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곤 한다. 길을 걷다 마주한 쌉싸름한 풀냄새, 자기 전에 보는 나른한 영상, 혹은 평범한 커피 한잔. 이 사소한 것들을 지금 느껴도 과연 행복할까? 왜 그때는 행복했지? 누구든 행복해지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해볼 때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어릴 적 나는 행복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본 경험이 있다. 벌써 서른 중반이 넘어버린 나는 매일 반복되는 굴레에서 똑딱똑딱 움직이는 세상 어딘가의 부품이 되어, 행복이 무엇인지는커녕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아버지의 말버릇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 진지 오래고, 행복을 찾아가는 것은 언젠가부터 이 되어있었다.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가끔 내가 어느 위치에 왔고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오늘도 회사를 가고, 오늘도 퇴근한다. 오전 5, 이젠 알람도 필요 없다. 몸이 적응했나 보다. 예전엔 참 맛있다고 느끼던 커피를 식도로 우겨넣고 집을 나온다. 사람이 많아 짜증 나던 지하철은 이젠 명동 중심가를 구경하듯 그러려니 해졌고, 회사의 중심 안 맞는 의자는 한 몸처럼 편해졌다. ‘군대에 있을 때도 이렇게 무기력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문득 이 생각이 들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리링. 띠링. 띠리리링.... 처음 보는 번호다.

여보세요?”

“...”

답변이 없어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회사원 H씨 맞으시죠? 저희는 신발이라는 동호회입니다. H씨에게 저희가 필요하다고 판단 하여 연락드렸습니다.”

전화 속 목소리가 선언하듯 말했다. 어떤 동호회 인지, 날 어떻게 아는지는 설명하지도 않고.

첨엔 신종 보이스 피싱인가 생각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이런 전화를 받으면 당연히 미친 사람이라 생각했을 거다. 그것도 회사업무 중인 오전 11시에.

내가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자,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는 갑자기 꺼졌다.

처음엔 짜증 나던 이 스팸 전화는 온종일 내 신경을 계속 건드렸다. 정교하게 맞물려가던 내 톱니바퀴 일상 사이에 내 새끼손톱보다 자그마한 무언가가 걸린 것이었다. 누군가는 신경 쓰지도 않을것만 같은 이 사소한 일은, 내겐 무적 흥미로웠다. 자기 전 맥주 한 캔이나 일요일 10시 예능프로 같은 늘 겪어 왔던 그런 것들보다 더.

늘 그랬듯이 퇴근하는 길에 맥주 한 캔 사서 집에 들어간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다. 거의 뛰듯이 걸었다. 왜 빨리 걸었는지는 모른다. 그냥 이유 모를 흥분감에 젖어 뛰다 보니 집이었다. 그 전화는 더 이상 연락 오지 않았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 한 건지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고마웠다. 정확히는 즐거웠다고 해야하나..

확실한 감정은 잘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감정인 것은 확실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내 구두는 걸레 짝이 되어있었고 난 행복했다. 내가 왜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어떤 속도로 달리는지도 모르던 시간 속에서, 지하철역에서 우리 집까지의 15분간의 달리기는 내가 그동안 못 쫓아가던,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의 시간을 따라잡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등 뒤에서 차오르는 땀 줄기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땀방울만이 느껴진 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늘 느끼던 허무함과 지루함은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집에 와서야 정신이 들었다. 첫 입사 때 산 구두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신발을 구입한 첫 날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 건지, 방금의 달리기로 인한 상처들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째 마음에 들었다.

14년 전, 군대에서 막 제대했을 때 아버지는 일터에서 돌아가셨다. 암 말기에도 불구하고 치료는커녕 늘 행복하다고만 말하고 일하러 나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일터에서 쓰러지셨는데, 왠지 웃고 있었다. 다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서.

그때는 왜 아버지가 그렇게 일에 나갔는지 몰랐다. 왜 아프면서도 행복하다 하셨는지도 몰랐다. 우리 집은 그리 형편이 어려운 집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마 아버지는 그냥 힘든 일을 잊는 일이 행복하셨던 것 같다. 지쳐 갈 때까지 바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웃기 위해서 달려가시던 거였다. 다 찢어진 신발을 신고서.

내 상처 입은 신발과 내 기억 속 아버지의 신발을 오마주 시키며,

오랜만에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삶이란 지침과 행복의 연속이고,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간다.”

 

<우수4>

 

행복한 나의 집

전호정

2026. 2021년으로부터 고작 5년이 지난 지금의 지구는 이전과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고, 변했다. 평화롭던 일상은 모두 깨져버렸고, 모두가 살기 위해 발악하기만 할 뿐이다. 미국 LA에서 첫 사상자가 나온 이 바이러스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를 휩쓸었다. 감염자는 죽어도 곧 다시 살아나며 산 사람의 신체를 물고 뜯으며 공격한다. 감염자에게 물어 뜯긴 상처 부위를 잘라내지 않으면 물린 사람 역시 똑같은 감염자로 변하며 그들처럼 산 사람을 공격한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 원인 규명과 백신 개발에 힘썼지만, 곧 그곳마저도 바이러스가 퍼져, 원인 규명과 백신 개발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였다. 산 사람들은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별하며 산 자들끼리 서로 공동체를 지어 상호보완하며 생존하고 있었다.

5년 전, 경아가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집 안팎으로 괴성이 가득했다. 방 문을 살짝 열어보니, 거실에는 붉은 핏물만이 가득했고, 어두운 곳에서 그르렁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민은 쌍둥이 누나인 경아를 방에 둔 채, 방을 나섰고 곧 옷과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경민이 넋을 놓은 채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엄마를 죽였어

그 소리에 경아는 놀라긴 했지만, 겁에 질린 경민을 보며 내색할 수 없었다. 경아는 경민의 손을 꽈악 잡아주곤 방문을 열고 나와 처참한 거실의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거실 한 가운데는 아버지로 보이는 시체 한 구가 배가 갈라진 채 누워있었고, 그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시체가 머리가 깨진 채 누워 있었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걸 겨우 눌러 참고 경아는 경민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 지 고민하다, 결국 둘은 마트로 가기로 결심했다. 마트를 향해 방향을 잡은 순간, 저 멀리서 괴성을 지르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괴물을 볼 수 있었다. 겁에 질린 채로 뒷걸음질을 치다, 경아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고 경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 하는 총소리가 들렸고, 차에서 내리는 유진이 보였다. “빨리 타!”라는 준수의 외침에 허겁지겁 그들의 차에 올라타기 바빴고, 경아가 차에 오르자마자 준수는 액셀레이터를 힘껏 밟았고, 유진은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내민 채 차를 향해 달려오는 그것들에 총을 쏘기 시작했다. 유진과 준수는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사격 실력도 출중했다. 그러나 그것을 의심하고 궁금해할 시간은 없었다.

너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감사합니다.”

됐어. 감사는 무슨.”

한참을 총소리와 함께 도로를 질주하던 차의 속도가 줄어들었고, 유진이 차 안으로 몸을 다시 들이며 뒷자리에 앉아있는 경아와 경민을 돌아보며 물었다. 경아는 겁에 질려 경민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다행히 경민은 침착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경민에 유진은 입가에 미소를 잔잔히 그렸다.

어디가려던 중이었어?”

저희도망이요

어디로?”

마트로 가려고 했어요거기엔 생필품이나 먹을 것들도 가득하니까, 또 거긴 사람들도 많이 모여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럼 우리도 마트로 가 볼까?”

경민의 대답에 유진은 준수를 보며 말했다. 준수는 백미러를 통해 경민을 한 번 슥 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며 마트 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트에는 산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그곳에서 백범과 세호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6명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마치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좋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식량을 훔치거나 약탈하러 온 자들이었다. 5년 동안 그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기에 그 누구도 더이상 함께 지내지 않았다. 여러 곳을 거쳐 지금은 한 낡은 교회에 들어와 지내고 있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고, 짧으면 2~3, 길면 한 달 정도 지내다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곤 했다. 주변 보초를 서는 세호를 제외하곤 모두 교회 안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언니, 이거 먹어요.”

, 고마워.”

경아는 모닥불에 구운 고구마를 유진에게 건네었고, 유진은 웃으며 경아가 내민 고구마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반을 갈라 준수에게 건네며 고구마를 나눠먹었다. 고요함을 깬 것은 또 다시 경아였다.

근데, 언니랑 오빠는 진짜 직업이 뭐였어요? 군인?”

경아의 질문에 고구마를 먹던 유진과 준수가 움직임을 멈춘 채 동시에 경아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곧 시선을 내리며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 눈빛으로 대화하는듯 했다. 곧 준수가 몸을 털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경아의 질문이 예리했다. 5년 동안 함께 도망치고, 서로 도우며 살아왔지만 백범과 세호의 직업은 들었지만, 유진과 준수의 직업은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경아가 5년만에 그 질문을 꺼낸 것이다. 백범과 경민 또한 고구마를 먹으며 아닌 척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유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냥, 백수였지.”

에이,”

유진의 대답에 경아가 눈을 작게 뜨며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정말이라며 고개를 젓고 고구마를 마저 먹었다. 그때,

탕 탕 탕

바로 근처에서 총 소리가 3번 울렸고, 모두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백범과 경민은 입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고, 유진은 어느새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세호가 다쳤어.”

?”

준수의 부축을 받으며 세호가 들어왔고, 유진은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피곤 문을 굳게 닫았다. 준수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5년 동안 한 번도 있지 않은 일이었다. 다들 몸이 날쌨기에, 다친 적이 없었다. 근데, 준수의 말로는 숲 속에서 좀비가 튀어나와 자신과 얘기하던 세호의 등을 붙잡은 것. 준수가 곧바로 총을 쏘며 그것을 떼어내긴 했지만, 준수의 등에는 이미 좀비의 손톱에 긁혀 상처가 나있었다. 경민은 그 말에 곧바로 경아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세호에게서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고, 백범은 세호를 걱정스레 바라볼 뿐이었다.

누나죽어요?”

세호의 겁에 질린 물음에 유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 유진을 붙잡은 것은 준수였다.

어쩌려고.”

살려야지. 저렇게 죽게 못 둬.”

그 뒷 책임은 어쩔건데?”

그렇다고, 5년을 같이 도망친 애가 죽게 냅둘 순 없잖아.”

유진의 단호한 말에 준수는 붙잡고 있던 팔에 힘을 천천히 풀었고, 유진은 그런 준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준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여 한숨을 푹 내쉬었고,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겁에 질린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보는 데에서는 아니라고 판단한 준수가 세호에게 다가가, 세호의 팔을 붙잡고 조심히 일으켜 유진이 나간 곳으로 데리고 갔다.

준수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자 유진은 자신들의 차 뒤트렁크를 열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누나

세호의 부름에 유진이 황급히 뒤를 돌았고 세호를 본 유진이 천천히 세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세호의 긁힌 등으로 시선을 옮겼다. 찢어진 옷 새로 검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고, 세호는 아픔을 참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유진은 눈을 꾹 감고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세호와 눈을 마주쳤다.

세호야. 조금만 참을 수 있지?”

세호는 물음을 이해하지 못한 듯 유진을 계속 바라보았고, 유진이 곧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었다. 곧 유진은 세호의 팔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세호가 움찔하며 유진의 손을 피했다. 유진은 세호를 바라보았고, 세호의 눈빛은 어느새 걱정과 불안함에서 의심의 눈빛이 가득했다.

이거뭐예요?”

세호야

이거 맞아야, 너 살아.”

세호의 질문에 유진이 대답하지 못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준수가 차가운 음성을 내뱉았다. 그 소리에 세호가 미간을 힘껏 찌푸리며 유진의 손에 들린 주사기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진과 준수의 정체를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소유한 총기와 사격실력, 그리고 첫 1년 동안 먹어도 부족하지 않던 식량 등을 생각하면 이들은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상처입은 자신을 살리겠다며 내민 주사기. 근거 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에 세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유진에게 팔을 내밀었다.

일단일단 나 살려줘요.”

세호야

나 살고 난 뒤에다시 얘기하자구요.”

세호의 굳은 목소리에 유진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세호의 옷을 걷어올려 능숙하게 혈관을 찾아 주사를 주입했다. 뜨거운 액체가 세호의 혈관 안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고, 주사를 맞은 왼팔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세호가 주먹을 말아 쥐며 눈을 질끈 감았고, 유진이 피스톤을 끝까지 밀어넣은 뒤, 재빨리 주사를 뺐다.

아프지미안해, 미안해

세호가 힘겨워하는 걸 본 유진은 눈물을 머금은 채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해댔고, 그런 유진을 보던 준수가 유진을 일으켜 세호를 볼 수 없도록 꼬옥 끌어안았다. 곧 유진이 진정되고 세호가 고통을 감내하는 동안 그들이 옆을 지켰고,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세호가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이제 괜찮아?”

.”

그럼 들어가자.”

대체 정체가 뭐예요?”

세호는 일어나려는 준수와 유진을 쳐다보며 그들의 정체에 대해 물었고, 그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세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준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그거, 이 바이러스 백신이야.”

? 그럼

맞아. 지금 전 세계에 퍼진 저 괴물들. 우리가 만든 거야.”

준수의 말에 세호는 입을 다물 수 없었고, 당황함에서 곧 경멸로 그들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 세호는 이 괴물들에 의해 부모를 모두 잃었고, 부모가 죽은 모습을 직접 보기까지 했으니까. 더 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살려준 이들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인 제공자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그런 세호를 이해하는 듯 준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세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유진이 또 다시 세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준수는 그런 유진을 막아 섰다. 세호는 결국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문득 떠오른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의 기억이 고통스러웠다. 신음을 흘리며 눈물을 흘리는 세호를 보며 유진 또한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애써 감추려했다. 곧 세호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고, 준수와 유진에게 시선을 조금도 주지 않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어. 우리가 만든 거고, 우리 때문에 가족을 잃은 애야. 우리가 책임 져야지.”

준수는 세호의 뒷모습을 쫓으며 안절부절해하는 유진을 붙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유진은 그런 준수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간지 한참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는 세호와 유진, 준수에 셋을 걱정하던 백범과 경아, 경민이 세호가 들어오자 반갑게 맞이하려다가도 멈칫하며 거리를 유지했다.

괜찮아?”

경아의 조심스런 질문에도 세호는 들리지 않는 듯 몸을 돌려 교회 안 쪽 방으로 들어갔고, 곧 준수와 유진이 들어왔다. 경아는 자신을 막고 있는 경민에게서 벗어나 유진에게 달려갔고,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도 눈물바람을 한 건지, 코끝과 눈 주위가 붉어져있는 게 보였다.

언니무슨 일 있었어요? 세호는 이제 괜찮아요?”

. 괜찮아. 세호 안 죽을 거야.”

다행이다언니는 괜찮아요?”

. 괜찮아.”

유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온 경아를 보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고, 경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곤 피곤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질문을 막곤 세호가 들어간 방과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다. 준수는 그런 유진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고, 고개를 들어 자신이 보초를 서겠다며 백범과 경민에게도 쉬라고 말했다.

아침이 되었고, 세호는 어젯밤 들어간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밥을 먹으라는 경아의 말에도 괜찮다는 말만 할 뿐이었고, 더 이상의 대답도 모습도 비추지 않았다. 유진은 그런 세호를 계속 걱정하며 세호가 들어간 방에만 시선을 둘 뿐이었다. 이 상황을 쭉 지켜보던 준수가 결국 밥을 먹던 도중 몸을 일으켰다. 준수가 일어나자 모두 고개를 들어 준수를 바라보았고, 준수는 잠시 머뭇대가 입을 열었다.

어제, 세호가 다쳤는데도 살아있는 게 신기할 거야.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기도 할 거고. 결론만 얘기하자면. 우리가 살렸어. 정확히는 나랑 유진이가.”

, 김준수.”

모두가 듣도록 설명하는 준수를 보며 유진이 놀라며 준수를 부르며 몸을 일으키려함에도 불구하고 준수는 그런 유진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나랑 유진이 정체가 궁금하다 했지. 이제 말해줄게. 우리는 WHO에서 만든 비밀기구에 속해있는 연구원이었어. 그곳에서 여러 생체실험을 했었고, 거기서 이 바이러스가 새어나가게 된 거야. 우리가 만든 거야. 이 바이러스.”

준수의 거침없는 말에 경아와 경민, 백범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준수를 바라볼 뿐이었고, 유진은 그런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준수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준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얘기했다. 마치 세호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이 바이러스는 원래 전쟁 때 쓸 무기로 개발되던 거였어. 전쟁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게 유리하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게 일반 시중에 유통되는 약품을 만드는 곳에 잘못 전달이 됐고, 이걸 넣어 만든 약품을 먹은 사람들이 모두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 거야. 최초 감염자는 이 루트로 감염됐을 가능성이99%. 다행히 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있었어. 근데, 지금 이렇게 전세계가 혼란해졌으니 WHO는 다 폐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어. 세계보건기구라는 곳에서 이 말도 안 되는 바이러스를 퍼트린 게 돼 버리니까.”

오빠

나랑 유진이는 그 곳에서 이 약품이 유통됐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무기고랑 만들어둔 백신을 털어서 도망쳤어. 한국은 괜찮겠지, 하고 들어왔는데 이미 한국도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었고 결국. 이렇게 된 거야.”

그럼저기 밖에 있는 좀비들한테 그 백신을 주입하면 되잖아요

그건 안 돼. 부패가 시작된 괴물들은 약을 주입해 봤자, 효과가 없어. 아직 부패가 되지 않은세호같은 사람에게만 효과가 나타나는 거야.”

경민의 질문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유진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유진의 말마저 이어지니 사실이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경아와 경민, 백범은 어젯밤 세호가 보여준 경멸의 눈빛과 비슷한 눈빛으로 유진과 준수를 바라보았고, 유진은 그 눈빛을 견딜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준수는 그런 유진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너네한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속인 것도 미안하고 우리 때문에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게 된 것까지도. 너네가 원한다면 우리가 떠날게. 무기랑 백신, 차까지 다 두고 갈 테니까

준수가 힘겹게 말을 이었고, 이미 떠날 생각을 굳게 먹은 준수와 유진이었기에 천천히 그들에게 말하는 도중,

아니요.”

세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세호는 방 안에서 다 듣고 있었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준수를 향해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온 세호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했고, 여전히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세호는 준수의 앞에 멈춰 서서, 바닥에 앉은 채로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경아와 경민, 백범을 한 번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너무 약해요. 아직 형이랑 누나가 필요해요. 형이랑 누나가 이 괴물들 만들었으니까, 이 괴물들에게서 살아남도록 책임은 져야죠.”

세호야.”

형이랑 누나를 용서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근데, 형이랑 누나 덕분에 나도 살았고, 경아도 경민이도 백범이도. 다 살 수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우리 도와만 줘요. 더 바라는 것도, 기대할 것도 없으니까.”

세호의 단호한 음성에 준수는 가만히 세호의 말을 들었고, 세호의 말이 끝나자 경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 경아의 모습을 보던 유진이 세호를 향해 시선을 올렸고, 세호의 단호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알았어우리가 책임질게. 책임지고 너네지킬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준수를 대신해 유진이 대답했고, 모두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쳤다. 경아, 경민, 백범, 세호. 그리고 준수까지. 다시 새롭게 이 난관을 해쳐나가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벌인 일에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과 준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