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구원 _ 1화
등록일
2020-04-24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120

구원

EP.1 천루원의 죽음





 1.
 죽음

 오늘 낮, 엄마가 죽었다.

 “이거... 꿈인가. 악! 아파”

 시이발, 진짜다. 이럴 수가 없다 싶었는데 진짜다. 몇 번이나 볼을 꼬집어봤지만 너무 아프다. 포근한 날씨, 인자한 엄마의 웃음 분명히 다 좋았는데…. 햇살이 따사롭게 나를 맞이하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언젠간 이별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게 오늘일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 누가 감히 죽음을 예상할 수 있겠어.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나머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빈 침대만 바라보다 하루를 보냈다.






 2.
 장례

 엄마의 빈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 중엔 몇 년간 종적을 감췄던 아빠도 있었다.

 “잘 지냈어 우리 딸?”
 “...”
 “여전히 아빠한테는 차갑네”

 아빠는 엄마의 사진 앞에 간단히 목례를 하고 내 옆에 서서 가족인 마냥 손님을 맞았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내 옆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잠시,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 했다. 그래도, 힘들 때 옆에 있는 사람 하나 쯤은 있다 싶어서.






 3.
 부재 

 “이런 씨발…”

 착각이었다. 며칠 뒤 장례식을 마치고 그 사람은 조의금을 챙겨 달아났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절반은 두고 갔다. 잠시라도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마지막으로 뒷정리를 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던 지인들이 내 어깨를 툭툭쳤다. 엄마의 부재를 위로한다는 뜻이었다.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말해야 했으나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위로받고 싶었나보다.






 4.
 세계

 장례식장에서부터 나를 빤히 쳐다보던 남자애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싶어 그냥 내 일만 했다. 근데 그 남자애는 그 날 이후로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야 너 집에 안가? 왜 자꾸 따라다녀?”
 “너 따라다니는 거 아닌데.”
 “뭔 개소리야 진짜! 누가봐도 나 따라다니고 있잖아;”

 그 애는 나를 또 빤히 쳐다봤다. 아니, 왜 쳐다보냐고요. 그냥 무시하고 돌아가려는데 그 남자애가 ‘이루리-’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엥, 내 이름 어떻게 알지?

 “내 이름 어떻게 알아?”
 “진짜였네. 나 기억 안나?”
 “모르겠는데”
 “좀 서운하다. 너”

 아니 제가 님한테 뭘 서운하게 했죠? 그냥 무시하고 가려는데 문득 한 이름이 뇌리를 스쳤다.

 “한세계? 너 혹시 한세계야?”
 “와 드디어 기억하는거야 날?”
 “미안, 나 진짜 정신이 너무 없었나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붙어다녔지만 아빠 일 때문에 전학을 갔다. 아빠는 엄마를 두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고, 새로운 살림을 차렸다. 알리고 싶은 사실은 아니었지만 세계는 모든 걸 알게 됐다. 까먹고 가져간 내 물건을 돌려주러 왔다가 집 앞에서 싸움이 난 것을 봤다.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 내가 먼저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 이후로 자연스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근데 넌 장례식장에 무슨 일로 있었던거야?”
 “어? 아, 그냥 지인 때문에.”

 세계는 뭔가 곤란한 듯 보였지만 그만의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 더 묻지 않았다. 한가지 말을 덧붙이길, 그 날 달아나는 아빠를 봤다고 했다. 잠깐 외출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뒤로 보이지 않길래 계속 신경이 쓰였다며 말이다.

 “아… 봤구나?”
 “응. 미안.”
 “아냐 니가 미안할 게 뭐있어.”
 “여기 내 번호, 연락 해. 걱정 된다.”
 “그래, 고마워.”

 걔는 또 다시 내 비밀을 하나 알았다. 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얘한테 들키는지 모르겠다. 진짜 쪽팔려서 죽고 싶은 지경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눈치를 봐야하냐고.






 5.
 하라

 [010-XXXX-XXXX 유하라]

 핸드폰에 저장해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롤리-폴리가 흘러나온다. 딱 자기다운 노래였다. 컬러링이 이어지자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준 번호였지만 이제까지 한번도 전화해본 적은 없었다.

 [어... 유하라 맞아?]
 [어? 너... 이루리?]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유하라와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목소리는 처음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알고 지낸 건 아니다. 우리는 온라인 친구였다. 서로 힘든 일도 들어줬고, 일상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잘 지내왔다. 전화를 건 것은 처음이지만 그냥 하라라면 잘 들어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냥….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전화했어]
 [응 얘기해, 아니다 그냥 내가 갈게. 어디야]

 그렇게 우리는 정식으로 처음 만났다. 그 애는 내가 생각한 딱 그런 애였다. 걔도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이미 엄마 일은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만나자마자 꼭 안아줬다. 그걸 기점으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했다. 하라는 그럴 수 있다며 나를 토닥여줬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 근데, 이 상황에서 미안한데….”
 “응, 왜?”
 “사실, 나 너보다 나이 두 살 많아.”
 “뭐?”
 “속이려고 그런 건 아니고! 아니 정말!”
 “아….”
 “내가 진짜 미안! 그냥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
 “아니 진짜 미친 거 아냐?”
 “아 루리야, 진짜 너랑 나랑 이렇게 끝이라고? 내가 더 잘할게 그니까….”
 “그럼 나 지금까지 재수없게 반말 한거네?”
 “아 그게 문제였어? 그건 상관 없는데….”

 난 또 심각한 표정을 하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었지만, 그냥 단순 해프닝이었다. 뭐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하면 되는거니까.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혼자 있기 그럴 거 아냐.”

 고맙게도 하라는, 아 아니 하라언니는 자기 집을 내어줬다. 언니는 고향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혼자 있기 적적했는데 마침 잘 됐다며 편하게 있으라고 했다. 며칠간 언니랑 지내면서 엄마와 함께 있던 시간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6
 뉴스

 결국 언니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언니네 집도 좋았지만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언니는 기존에 내던 월세만큼 지불하는 조건으로 우리집으로 이사했다. 함께 살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아, 그 이후 학교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다녔다. 마음 같아서는 진즉에 자퇴서를 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언니 이거 봐봐”
 “뭔데?”

 언니랑은 진짜 가족처럼 잘 지냈다. 진짜, 숨겨진 혈육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잘 맞았다. 덕분에 나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 전에 W기업 사장 죽었대”
 “엥? 엄청 젊지 않았어? 갑자기 왜 죽었대?”
 “모르겠어. 뇌출혈 증상이 있었다는데 이상하네”
 “진짜 사람 일 모른다…. 엄청 착한 사람이던데 그 사람”
 “그니까 말야”
 “진짜 불공평해. 성추행범 같은 나쁜 놈들이나 먼저 데려갈 것이지”
 “그니까”

 갑자기 잘 살던 W기업의 젊은 사장이 죽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렇게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 아직도 미지수다.






 7
 의문

 문득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워졌다. 엄마가 떠난지 벌써 두달이나 됐다.

 “저기서는 잘 지내?”

 대부분의 사람은 죽으면 이승세계로 간다고들 말했다. 착하게 산 사람들은 천국으로, 나쁘게 살았던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고 덧붙이며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근데 솔직히, 우리 엄마를 그렇게 빨리 데려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뭐 때문에 우리 엄마 데려갔어”

 내가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진짜 신이 있다면 이건 좀 듣고 싶다. 대체, 뭐 때문에 우리 엄마를 데려갔는지. 그렇게 착하고 건강하던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갈 수가 있는거냐고. 진짜, 듣고 있으면 말 좀 해봐요.






 8
 꿈

 “루리야”
 “으응…”
 “이루리, 엄마 왔는데 서운하게 이럴래?”
 “으응… 엄마?”

 꿈에 엄마가 나왔다.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볼 줄이야.

 “엄마는 잘 지내. 그냥, 루리가 너무 보고 싶어할까봐 왔어”
 “보고싶었어 진짜로”
 “엄마 걱정은 하지 마 우리 딸.”
 “어떻게 걱정을 안해”
 “엄마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응”
 “여기는 말야, 우리가 살던 세계랑…”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나왔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9
 재회

 → 한세계 야 이루리, 왜 연락이 없냐.
 ← 이루리 아, 미안. 연락한다는 거 까먹었어.

 잊고있던 한세계로부터 연락이 왔다. 얘는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나 싶다. 그냥, 모른척해도 될텐데. 내가 알던 한세계는 예전부터 그랬다. 그 날, 내가 말도 없이 걔를 피했을 때도 끝까지 연락을 했었다. 내가 이사를 가고 번호를 바꾸고서야 멀어졌었다. 아, 괴롭힌다거나 집착은 아니었다. 정말 순수한 의도로 위로해줬었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쪽팔렸다. 어쨌거나 걔가 신경쓸 일이 아니었으니.

 → 한세계 진짜, 이번에는 먼저 연락해줄거라 생각했다고.
 ← 이루리 아 미안하다구~
 → 한세계 미안하면 생존신고 할 겸 밥이나 사.
 ← 이루리 아 오케이~

 그래도 이번에는 고마웠다. 그 때보다 나이를 먹고 보니, 아 물론 조금밖에 더 안먹었지만, 걔처럼 좋은 친구도 없었다. 내 비밀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게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만큼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꿈에서, 우리 엄마 봤다?”
 “아 진짜? 좋았겠네”
 “응, 엄청 밝게 웃더라구. 그래서 걱정 안하려고”
 “그래, 걱정하지 말고 너 살 길이나 챙겨. 너는 잘 살아야지”
 “응, 그래야지. 근데 엄마가 재밌는 얘기라면서 세계 이야기를 했는데…”
 “어? 세계 이야기?”
 “그냥…. 우리랑 조금 다르다 그러던데”

 세계의 표정이 유달리 어두워진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아무튼 세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의 죽음을 다시금 털어낼 수 있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좋으니 필요할 때 연락을 하라며 우리는 헤어졌다.






 10
 발견

 그 날 이후 엄마는 자주 꿈에 나왔다. 엄마는 자꾸 이 세계 얘기를 했다. 하루는 엄마가 내게 침대 밑에 있는 작은 상자를 열어보라고 했다. 이제껏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그런 상자가 있는 줄은 몰랐다. 꿈에서 깨어나 침대 밑을 보니 정말로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다.

 “이런 건 언제 놔뒀대?”

 상자를 여니 엄마의 손글씨가 잔뜩 적힌 수첩이 있었다. 그곳에는 첫 번째 페이지부터 알 수 없는 문구들이 잔뜩 적혀있었다. 심지어는 엄마가 다른 존재를 본다는 말도 적혀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 수 없는 말들로만 가득한 수첩 사이로 하나의 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에는 한세계와 엄마, 그리고 하라언니가 함께 웃고 있었다.

 “이게 뭐야…?”
 
 꽃이 지고 여름이 왔다. 무더운 진실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