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ment of Web Culture & Arts

웹문예학과

창작 공간

소설

클라우드 나인 (Cloud 9) 1.
등록일
2020-04-24
작성자
사이트매니저
조회수
48


  그때는 몇 시였을까. 블랙 백팩을 매고 다소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많지 않은 차가 주말 밤길을 뚫고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골목 끝에서 나타난 파란 조명이 보인다. 나는 아주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휘파람 소리가 장내를 채우고 있었고, 가드에게 맥주 한 캔을 받아든 뒤 한 모금을 삼켰다. 연신 몇 모금을 들이키다 아무 테이블에다 놓고 뒤쪽에 서 있는 루크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쳤다. 루크는 데이 나잇의 매니저였고 그의 고질적인 질병 같은 손톱 물어뜯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노래 부를 거야.”

  “제발, 아까 사샤가 무대 망쳐놓은 거 지금 비비가 겨우 올려놓은 거야.”


  백팩을 내려놓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사샤는 전여자친구이자, 마약 중독자였다. 금단현상인지 그녀의 천성인지, 그녀는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더불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조차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젖히며 두 눈을 깜박였다.


  “소용없어. 이미 가셨거든.”

  그 말에 눈을 지그시 감은 나는 그녀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허리를 곧추세웠다.


  “저 남자 또 왔네.”


  나는 관중석을 훑으며 앞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손뼉을 치는 그 남자는 내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크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바이올렛이 무대를 마치고 관객들에게 손키스를 날렸다. 클럽 데이 나잇의 밤이 찾아왔다. 요란스러운 가발을 벗어 던진 바이올렛이 백스테이지로 종종 걸어 사라졌다. 나는 셔츠 깃을 정리했다. 트랜스젠더 바에서 유일한 남자 싱어로서 떠안는 뒷이야기들이 많았기에, 흠을 주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카우치 서핑(*남의 소파에서 자면서 여행을 하는 것)을 끝내게 해준 이곳이 은인이라면 은인이었기에. 하, 한숨을 몰아쉰 뒤, 거울 앞에서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오늘이 약을 끊은 지 며칠째인지 모를 정도로, 나는 많이 변했다. 마른 까닭에 조금 퀭해 보이는 아이홀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만 널브러진 아이 섀도 하나를 들어 눈가에 살짝 발랐다. 욕먹기 좋은 눈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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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크가 관객석에 털썩 앉았다. 앨런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필시 바이올렛이 쓸데없는 협박을 하는 게 분명했다. 루크는, 의자를 옮겼다. 세 번씩이나 이곳에 오고 있는 이 어린애. 몸은 어린애가 아니었지만- 


  “내 친구 차례에요.”


  루크가 온 걸 이제 깨달은 듯 애덤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덩치는 커다란 놈이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사실 제일 잘하죠. 우리는 특히 CD(*크로스 드레서)가 많아서, 립싱크가 대부분이니까. 아니면 춤을 추고,”

  “그런가요.”


  너무 확연히 드러나는 ‘남자’ 라서 사랑을 못 받는 거지. 루크는 혼자 읊조렸다. 그 말소리를 들었는지 아닌지, 애덤은 다시 무대로 눈을 고정했다. 앨런이 준비를 끝낸 듯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빨리 불러! 아니면 오늘 소파 치워버릴 거니까.”

 
  루크의 넉살에 관객들이 거의 웃음을 터뜨렸다. 앨런은 그를 향해 중지 손가락을 들어준 후 다시 시선을 옮겨갔다. 그 남자. 남자는 루크의 말투가 웃기는지 큭큭 대고 있었다. 그 주위를 잠시 훑어본 앨런은 그 남자가 미성년자인 걸 알 수 있었다. 웃기게 생긴 녀석들이 주위를 빙 두르고 있었다. 그 남자와, 여자 몇 명. 그리고 남자 몇 명. 그 남자 옆에는 아이홀이 유난히 짙은, 검은 뿌리가 드러난 핑크 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연인처럼 보였지만 여자는 남자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쨌든 다른 무리는 트랜스 젠더바 따윈 호기심인 듯, 무대에 더 이상 여자가 보이지 않자 몇몇은 담배를 쥐고 자리를 떴고, 특히 멍청하게 생긴 놈이 핸드폰만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을 경박스럽게 튕기는 걸 보니 틴더(*데이팅 앱)임이 확실했다.


  “거기.”


  내 물음에 남자는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입술을 내민 채로 오늘 밤 상대 찾기에 집중했다.



  “오늘 그렇게 한가할 여자 없을 테니까 틴더 꺼요.”



  관객석에서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에서 와하하 크게 울리는 소리에 남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남자는 영문을 모르는 듯 하다가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그때서야 허겁지겁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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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 완전히 무례해.”


  애덤의 곁으로 시드가 다가왔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데킬라를 들고 다가온 시드는 웩 하며 앨런의 표정을 따라 했다. .


 “바이 섹슈얼 아니면 게이만 드나드는 줄 알았더니, 질색이라고. 왜 이런 데를 오자고 한 거야?”

 “너는 공연 내내 핸드폰만 봤잖아.”


  관심없다는 듯,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주문한 애덤이 한 모금 들이켰다.


  “뭐? 하하하. 그래. 내가 너무했네!”


  비꼬듯이 말했지만, 뺨이 붉게 달아오른 걸 보아 자신의 행동은 알고 있는 듯, 시드는 곧 빈 술잔을 쾅 내려놓았다. 애덤은 시드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캐묻기 시작했다.


  “시드. 너 이나한테 뭐라고 했어?”

  “음. 어. 아무 말 안 했는데. 그냥 다시 잘해보라고.”


  그말에 머리를 쥐어뜯는 애덤에 시드가 당황한 듯 애덤의 잔을 치웠다.


  “아니. 그게 웃기잖아. 너네 벌써 3년이나 사귀었으면서, 뭘 갑자기 노부부처럼 구는 거야?”


  애덤은 한숨을 푹 쉬고 입을 다시 닫았다. 시드는 입술을 다물고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 나가자. 밖에 애들이 차 대놨어.”


두 손을 들며 항복 표시를 한 시드가 얼른 나가자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그에 애덤은 다시 한 잔을 더 주문하며 돌아섰다.


  “그냥. 난 좀 걸을래. 그리고 화장실도 가야겠고.”

  “뭐, 알겠어.”


  순순히 물러난 시드가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무대 커튼 옆으로 소란스러운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애덤은 잔에 끼워진 레몬을 빼고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제 너무 힘들거든요?”

  “그 남자는 좋아했잖아?”

  “말이 돼요? 딱 보면 알잖아요. 그냥 스트레이트(*이성애자) 고등학생인데. 그것도 완전 해리 로이드같이 생겼어. 난 그냥 삐쩍 마른 막대기에 솜사탕 붙여 놓은 것 같고.” 


  루크는 웃음을 터뜨린 후 다시 앨런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냥 말이라도 걸어봐요?”

  “그래. 지금 3번이나 와서 네 노래만 듣잖아. 딱 너 하기 전 세 번째 순서쯤에 들어오는 거 내가 확인했어. 인기 없는 거 데이 나잇 사람들 다 아는데.”


  앨런이 루크를 힐난하듯 올려보았지만, 적의는 없었다. 


  “뭐가 두려워?”

  “음, 일단은 고등학생이니까. 죄책감, 부끄러움. 뭐 또 후회 이 정도가 밀려오겠죠.”


   앨런의 목소리였다. 루크와 선곡 문제로 말다툼을 벌인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루크는 앨런의 변덕을 허용할 수 없었다. 애덤은 곧 앨런의 시야에 들어섰고 그를 알아챈 앨런이 루크를 향해 손짓했다. 루크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다가 사라졌다. 뒤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미안해요. 바쁜 거죠?”

  “아뇨. 다른 칵테일 더 줄까요? 항상 같은 거만 마시길래.”

 
  빈 테이블로 애덤을 이끈 앨런은 무표정하게 그의 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그 무표정은 곧 깨졌다. 애덤도 그 표정의 의미를 아는 것처럼, 자신은 웃고 있었다.

  “아 괜찮아요. 그냥 친구 놈 대신해서 사과하러 온 거에요.”

  “됐어요. 더한 일 많은데.”


  곤란해 보이는 애덤의 표정 뒤로, 앨런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애덤을 올려다보았다.

  “게임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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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거의 빠져나간 바 중앙에 먼저 앉은 앨런을 따라 애덤도 의자를 끌어 앉았다. 둘은 주사위 하나를 두고 마주했다. 앨런은 주사위를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좋아요. 규칙을 설명할게요. 그냥 2의 배수가 나오는 사람이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럼 몇 살이에요?”

  “아직 주사위 굴리지도 않았는데요?”

  “처음이니까.”

  “음…. 어. 열여섯이요.”


  예상했다는 듯 앨런이 주사위를 잡고 굴렸다.

  “잠깐만요. 또요?”

  “4. 첫 경험은 언제였어요?”

  “어제요.”

  “뭐라고? 어제요?”

  앨런이 다시 주사위를 잡으려고 하자 애덤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낚아챘다.


  “좋아하는 영화는 뭐에요? 나는 위아더 밀러스.”

  “위아더 밀러스? 거짓말이네요.”

  “맞아요.”

  앨런이 주사위를 굴렸다. 2가 나왔다.


  “오아시스에서 좋아하는 멤버는요?”

  “어, 음. 앤디?”


  앨런이 웃으며 애덤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을 굴리며 대답하는 이 모양새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꽤 재미가 있었다. 


  “이거 데이트에요?”


  주사위 눈을 보며 굴릴 준비를 하고 있던 앨런의 말문이 순간 막힌다.


  “주사위 굴렸어요? 음. 모르겠어요. 맞아요?”

  “모르겠는데요. 내가 물었잖아요.”

  “모르겠어요. 데이트 하고 싶어요? 우리 왜 싸우려드는 거죠?”


  두 사람 모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파란 네온사인이 둘러진 바 벽에서 루크가 다가왔다.


  “난 집에 갈 거야. 좀 더 있을 거야?”

 "아, 글쎄. 먼저 가요."


  루크는 둘을 빤히 쳐다보더니 흠 하고 고개를 비틀었다.


  “그래. 뭐.. 그럼 6개월 뒤에 다시 소파베드 꺼내놓으면 되는 거지?”


  루크의 농담에 질린다는 듯 표정을 지은 앨런이 눈썹을 찡그렸다.


  “열쇠는 있잖아, 그치? 데이트 잘해.”


  앨런은 몸을 다시 돌려 애덤의 잔을 빼앗아 마셨다.


  “데이트군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남자랑 데이트는 처음이에요.”

  “아, 그래요. 그럼, 여자랑 키스해 본 적은 있어요?”


  애덤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이내 대답했다.


  “그럼요. 사이비 종교는 안 믿거든요.”

  “아쉽네요. 내 전 여자친구들은 다 모르몬교 믿었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요? 앨런?”

  “아, 그럼요.”


  가볍게 받아친 앨런이 애덤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이내 눈을 치켜떴다.


  “지금요?”

  “네.”


  마치 결심한 사람처럼, 애덤은 앨런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앨런이 먼저 다가갔고 애덤은 눈썹을 살짝 내렸다. 그의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우 짧은 마찰음이 지나갔다. 


“그, 어쨌든.”


  애덤이 상체를 일으켰다. 다시 부딪힌다. 전과는 달리 바로 떨어질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눈을 감았고, 그들은 서둘러 데이나잇을 빠져나왔다. 애덤은 시에서 지원하는 캠핑카에서 살았다.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닌 캠핑카들이 모여있었고 시내와는 조금 동떨어진 들판에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애덤의 자전거가 곤두박질치듯 땅으로 떨어지자 둘은 다시 몸을 붙였다. 주방을 지나, 한쪽 방으로 걸음은 더 바빠졌다. 이상하게도 큰 소음이 이 집 같은 좁은 차 안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앨런은 블랙 백팩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놀란 애덤이 앨런의 얼굴을 잡고 멈췄다. 그러나 다시 몸이 다시 부딪혔다. 다시, 다시 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며칠이 마법처럼 계속 흐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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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달 후, 앨런은 이 캠핑카에 완벽히 적응했다. 그리 크지 않은 키는 앨런에게 그냥 천장이 낮은 가정집이었지만, 아침마다 애덤은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둘은 매일 서로를 놀라게 하는 재미를 깨달았고 과하게 침대 끝으로 내몰리는 좁은 침대도 적응했다. 옷을 갖춰 입지 않고 차 안을 흔들며 다녔다. 어쨌든, 앨런은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코스타 커피에서 두 잔을 사 오고 스탬프를 찍었다. 애덤의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아직 이불에 파묻힌 애덤을 보고 앨런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커피 향에 눈을 깜박거리던 그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뒤척였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앨런이 애덤 위로 풀썩 쓰러지며 그와 눈을 맞췄다. 그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1916년 4월 24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대항해서 부활절 봉기를 일으켰지.”


  애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이불이 완전히 걷혔고 앨런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애덤이 침대 헤드로 상체를 기대었다. 그때 전자음 소리가 주방 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이런. 우리 엄마 스카이프야. 너도 올래?”


  앨런이 주방으로 달려가 급하게 노트북을 열었다. 애덤이 커피를 다시 옮겨주었고 의자를 끌어와 같이 앉았다.


  “안녕, 엄마!”
  “아, 너무 똑바로 바라보지 마. 안녕. 아들, 애덤.”
  “오랜만이에요. 레베카.”


  레베카는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그 뒤로 아버지 레미가 지나갔다. 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걸로 보아 꽤나 열중한 듯 했다.


  “음, 그래. 애덤. 학기 시작 전에 한 번 볼 줄 알았는데 아쉽구나. 넌 열여덟살이잖니.”
  “아. 저 그래도 아직 학생이니까. 네.”
  “우리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같이 살았어!”


  화면 밖으로 레미의 소리가 들렸다. 레베카는 못 말린다는 듯 웃었고 다시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마주했다. 


  “3개월밖에 안 됐어요. 애덤도 성인이니까.”


  앨런의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베카는 입술을 깨물며 몸을 조금 더 가까이 숙였다.


  “그래, 다른 건 됐고. 우린 그냥 앨런 네가 마약중독자 치료 모임을 새로 찾았는지 알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앨런이 당황했다. 몸을 살짝 돌린 채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애덤이 노트북을 가지고 달아나는 앨런을 바라보았다. 애덤도 못지않게 당황한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화장실 문소리가 쾅 하고 닫혔다.